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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60화 (60/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60화

60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5)

“와, 진짜 오랜만에 보네, 지영이 점수 뺏기는 거.”

이성진의 말에 황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적어도 올해는 시합에서 점수 처음 뺏긴 거야.”

“그치? 저 무슨 신지? 쟤가 진짜 잘하긴 잘하나 보네.”

“적어도 지영이만큼 천재는 맞아.”

“천재, 천재라. 하여간 천재란 것들은 진짜. 에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성진을 황석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 이성진도 충분히 천재였다. 재능으로 따졌을 때 가장 떨어지는 건 자신이라는 생각도 했다.

“어, 어!”

이성진이 경호성을 냈다.

그리고 황석도 깜짝 놀라 몸을 흠칫 굳혔다. 하지만 다행히 업어치기에 걸려 붕 떴던 지영이 빙글 돌아 앞으로 떨어졌다. 그리곤 오히려 상대의 목깃을 잡고 밭다리를 찍었다. 그러자 역으로 신지의 몸이 뒤로 찍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용케 그 선수도 잘 피했다.

“와 진짜, 심장 쫄깃하네. 나 신지혁이랑 시합 때도 이랬겠지?”

“그땐 더 했다.”

“어? 그래?”

“너는 정말 질 수도 있었잖아.”

“야, 그럼 지영이는? 쟤도 지금 절반 뺏겼는데?”

이성진의 항의에 황석은 다부진 표정으로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지영이는 안 져.”

“…… 아니, 누가 진대? 나도 지영이가 이길 거라는 거에 전 재산 걸 자신 있거든? 그래도 지금은 대등하잖아? 나랑 신지혁이랑 할 때처럼.”

“아니야. 지영이는 지금, 즐기고 있어.”

“…… 눈치 빠른 놈. 너는 행동이나 눈빛, 말도 소처럼 순한데 뭔 눈치가 그렇게 빠르냐?”

황석의 대답에 이성진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너도 보여?”

황석의 되물음에, 이성진은 지영이, 지영답지 않게 치열하게 잡기 싸움을 하는 걸 보며 대답했다.

“아까 어깨로 메치기. 그거 내가 봤을 땐 마지막에 힘 줄였어. 제대로 끼웠는데, 그냥 봐준 거야.”

“음…….”

이성진의 말에 황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분명 보았다. 지영이 카운터로 어깨로 메치기를 걸었을 때, 진짜 제대로 걸렸다. 그런데 지영은 그걸 마지막에 놔줬다. 그래서 신지가 겨우 절반을 빼앗기는 선에서 기술을 방어할 수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으면, 보면 안다고 대답할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영이 왜 마지막에 놔줬는지, 둘은 그 이유도 알고 있었다.

“지영이 저렇게 신나게 유도하는 거, 진짜 오랜만에 본다.”

“그러니까. 지영의 그 날도 아닌데, 진짜 신들린 것처럼 즐겁게 하네.”

“저런 미소도 정말 오랜만에 봐. 항상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표정이었는데.”

황석의 말에 이성진이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선발전 끝나고 나서가 절정이었지. 거기서 이우진이 기권하는 바람에 진짜 지영이가 얼마나 허탈했는지, 그건 진짜 우리밖에 모를 거야.”

“…….”

이성진의 말에 황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의 정면에서 그 상황을 지켜본 둘이었다. 그때 지영은, 정말 터지기 일보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들이 봤을 때는 그냥 차분하게 보였겠지만 지영의 친구들, 연희고 황금세대들은 그 표정에서 지영의 허탈함과 분노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시합에 목마른 친구. 또래의 적수가 없어서, 원정이라도 뛰지 않는 이상은 풀리지 않는 목마름.

그렇기에 걱정이 됐었다.

친구는 그걸 감추고, 컨트롤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들은 전부 알았다. 마치 가수에게 무대를 빼앗고, 화가에게 컨버스를 빼앗은 것처럼 지영이 한동안 공허한 느낌을 줬다는 것을. 그런데 그런 친구가 지금은, 저렇게 신들린 것처럼 시합을 하고 있다.

간간이 보이는 얼굴은 어떤가.

아주 희미한 미소가 감도는 얼굴을 보면 얼마나 즐거워하고 있는지, 그게 너무 잘 보였다. 그래서 이성진도, 황석도 지영의 시합을 보면서 덩달아 즐거워졌다.

친구의 갈증이 해결된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좋았다.

삐이이!

4분이 지나고 연장전에 돌입하자.

“자, 너도 이제 몸 풀자.”

“응.”

이성진이 황석의 몸풀기를 도왔다.

부딪치기를 몸을 풀기 시작했지만, 둘의 시선은 여전히 오랜만에 찬란히 빛나는 친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 *

후우, 후우.

지영은 도복을 고쳐 입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절반을 빼앗겼을 때가 2분쯤 남았을 때였다. 그리고 남은 2분을 정말 피 터지게 싸웠다. 실제로 지영은 자신의 흰도복 소매와 가슴에 피가 덕지덕지 묻은 걸 도복을 고쳐 입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피가 아니었다.

신지의 손이 터지면서 난 피였다.

그런데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오랜만에 피 터지게, 정말 잡기 싸움도 혼신의 힘을 다해서 하다 보니 지영의 손도 터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판이 다가와 두 선수의 손을 보더니, 테이핑을 할 거냐고 물었다.

지영은 그에 고개를 저었다.

아깝다.

테이핑하는 시간조차도.

그리고 그건 신지도 마찬가지인지 테이핑을 하겠냐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이거, 시합 끝나고 나면 쓰라린 정도로 안 끝날 정도다. 심지어 손톱이 살짝 벌어진 손가락도 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의 열기가 식기 전에, 다시 시합이 시작되었으면 할 뿐이었다.

하지메!

그런 두 사람의 투지를 읽었는지 심판은 물러나자마자 시합을 시작시켰다. 후우. 약 1분 정도, 숨을 고른 지영과 신지는 다시 맞붙었다. 강지영 파이팅! 하고 간간이 들려오던 응원마저 이제는 멎었다.

심판들도, 선수들도, 팀 관계자들도, 그리고 얼마 안 되는 관중들도 숨소리마저 조심하는 것처럼 시합장엔 정적만 흘렀다. 정말, 정말 정적만 흘렀다. 그 정적 속에서 두 선수가 움직이며 나는 소리만이 오롯이 체육관 전체를 지배했다.

열기.

고작 두 사람이 뿜어내는 열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투지. 상대를 넘기려는 집착. 넘어가지 않으려는 악착같음이 두 선수의 시합에서 어마어마한 크기로 뿜어졌다.

그 중심에서, 터지기 시작한 공방전은 확실히 대단했다.

미야모토 신지의 업어치기.

지영의 신형이 그대로 업혀서 구를 것 같았지만 저런 동작이 어떻게 가능하지? 싶을 정도로 아크로바틱하게 돌아서 피했고, 다시 일어나 잡는 순간 지영의 허벅다리에 신지의 신형이 크게 떠올라서 날아갈 것 같았지만 용케 또 그걸 버텨내는 모습을 보였다.

최초에는, 검과 방패인 줄 알았다.

신지의 기술은 그만큼 날카로웠고, 강지영의 방어도 그만큼 견고했다.

하지만 지금은 검과 방패, 그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다.

둘 다 검이고, 둘 다 방패인 상태.

상대의 기술을 악착같이 버티고, 반대로 상대를 넘기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자세를 한껏 낮춘 상태에서 두 선수가 등 깃과 가슴 깃을 잡은 상태로 머리를 맞댄 채 잠시 소강상태에 들었다.

뚝, 뚝, 뚝.

그리고 그런 둘에게서 떨어지는 땀방울.

심판은 거기서 그쳐를 선언했다.

후.

둘이 도복을 놓고 물러나자, 심판은 양쪽에 지도를 하나씩 줬다. 그리고 의료진 대기석을 바라본 뒤, 입장하란 신호를 줬다. 그 신호에 마스크를 쓴 채 눈만 데굴데굴 굴리던 의료진이 화들짝 놀라 급히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다.

“아.”

터졌다.

왜 자신에게 오나 했더니 입술이 터져서 피가 길게 흐르고 있었다. 아까 업어치기를 피하다가 신지의 뒤통수에 얼굴을 박은 적이 있는데, 그때 아무래도 입술로 부딪치면서 안쪽이 찢어진 것 같았다.

그래서 피가 지영이 숨을 쉴 때마다 입술 사이로 흘러나와 땀과 함께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온몸이 뜨겁게 달궈진 상태라 지영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지만, 출혈이 났으니 문제가 되는 상황은 맞았다.

하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이렇게 피 튀기는 시합을 입술이 찢어졌다고 끝낸다고? 그랬다간 저 심판은 아마 자격정지를 당할지도 몰랐다.

이런 게임은 웬만해서는 멈춰지지 않는다.

그리고 반칙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불이 붙은 시합은 이목이 집중되기 때문에, 여기에는 심판의 자질 자체가 걸리는 시합도 되어버린다.

그래서 지영은 걱정하지 않았다.

걱정되는 게 하나 있다면 종주국에 대한 판정인데, 설마 이런 경기까지 개입하진 않을 것 같았다.

“아, 해보세요.”

“아…….”

의료진의 지시에 따라 입을 벌리자, 안을 본 40대 여자 의료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많이 찢어졌네요. 이거 봉합해야겠는데요?”

영어였지만 그래도 띄엄띄엄 다 알아들었다.

그래서 지영은 고개를 젓고는 시합이 끝나고 하겠다고 답했다. 지금 상황 때문에 웃음기는 사라졌고, 지영 특유의 서늘한 표정 때문에 의료진은 찔끔하곤 물러났다. 하지만 다시 다가와 가방에서 거즈를 입에 물려줬다. 출혈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지영은 그걸 입에 물었다.

이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출혈이 멎으면 나중에 뱉어내도 되고.

의료진이 빠지자 심판이 시합을 계속할 수 있겠냐는 의사를 물어왔다. 지영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판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지영은 고개를 돌려 신지를 바라봤다.

지영도 지영이지만, 신지도 만만치 않았다. 다른 의료진이 준 테이핑을 결국 터지고 까지고, 들린 손가락에 감았다. 그리고 지영만큼은 아니지만 입술도 터졌고, 눈 옆이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언제 어떻게 다친 건지는 지영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만큼 치열하게 시합을 했구나. 지영은 이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여전히, 투지로 빛나는 둘.

심판은 그런 둘을 번갈아 본 뒤, 하지메! 그 어느 때보다 다부지게 외쳤다.

“하아!”

“합!”

오랜만에 외쳐보는, 진심 가득한 기합.

지영은 미야모토 신지의 자세가 좀 전과는 다르게 좀 변했다는 걸 바로 파악했다. 지금까지 업어치기 위주로 기술을 건 만큼, 자세도 그쪽이었는데 지금은 아예 지영과 맞잡이 쪽을 택했다.

즉, 왼쪽 자세를 잡았다는 것.

그에 지영은 살짝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지금 상태에 저렇게 자세를 바꿨다는 건, 이제 승부를 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된다.

그래서 심호흡을 크게 하고, 그런 승부에 맞섰다.

이전처럼 짝잡던 상황이 아니라 맞잡던 상태가 되었지만 치열함은 가시지 않았다.

툭, 툭툭.

빠르게 손속이 교환되면서, 깃을 먼저 선점한 건 지영이었다. 지영은 깃을 잡자마자 뒤로 물러나며 강하게 털었다. 그리고 넓게 돌면서 목깃을 잡았다. 지영이 먼저 목깃을 잡자 미야모토 신지는 불리함을 느꼈는지 강하게 도복을 쳐 끊었다.

그리곤 다시 자세를 오른쪽으로 바꿨다.

그에 지영은 다시 작게 웃었다.

‘그래, 하던 대로 해.’

괜히 자세를 바꿨다가, 허무하게 날아가지 말고.

그건 지영이 바라는 게 아니었다. 자세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고, 두 선수는 다시 맞붙었다. 그렇게 맞붙으며 지영도 승부를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거즈에 맺힌 피는 어쩔 수 없이 꿀꺽, 꿀꺽 삼켰는데 이게 호흡을 방해했다.

호흡은 힘을 줄 때도 반드시 필요해서, 이런 상태라면 나중에는 자신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힘을 줄 때 말고도 체력을 빠르게 빼앗아 갈 테니까 말이다.

미야모토 신지의 안뒤축, 그리고 말아업어치기.

지영은 그걸 코어에 최대한 힘을 준 뒤 앞으로 돌아나가며 방어했다. 이미 도복을 말았으니 끝까지 회전해보지만, 지영은 오른발로 매트를 강하게 밀어내며 버텼다. 그쳐. 그리고 다시 시작.

이번엔 지영이 선공이었다.

앞으로 나가는 척, 뒷 덫걸이. 움찔한 신지의 뒤를 제대로 쳤지만 그도 상체를 아예 앞으로 쭉 엎어지듯이 숙여 덫걸이를 피했다. 지영이 끝까지 이를 악물고 당겨봤지만, 이미 중심이 너무 앞에 있어 기술은 들어가지 않았다.

다시 그쳐.

후우, 후우.

꿀꺽.

피가 가득 섞인 침을 삼킨 지영은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자세를 낮췄다. 서로의 기술은 이미 거의 다 파악했다. 그래서 좀처럼 유효기술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연장전이 5분을 지나, 10분에 근접해갔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숨 쉬는 게 조금 불편하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만했다.

쇼부! 신지 쇼부!

전부는 안 들리지만, 잠시 멈춘 사이 일본 코치가 신지에게 승부를 보라고 외치는 게 들렸다. 반대로 전기정 교수는 팔짱을 낀 채 담담한 눈빛으로 지영을 바라봤다.

‘교수님, 그거 직무유기입니다?’

코치석에 앉았으면, 코칭을 해줘야지. 난 널 믿는다! 하는 눈빛으로 보면 어떡합니까? 지영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시작 외침에 다시 앞으로 나섰다.

느낌이 온다.

슬슬 끝이 온다는 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느껴졌다.

다만, 그 끝에 위에서 내려다보는 승자의 포지션에 설지, 매트에 누워 눈을 질끈 감은 채 패배감에 휩싸일지, 그건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자신이 등판 깃을 잡자마자 아까 자신이 걸었던 뒤치기를 해오는 신지의 모습에 본능적으로 돌면서 허벅다리를 차올렸다.

파앙!

걸렸다.

소매 깃은 잡지도 못했지만, 그래서 기울이기도 제대로 안 됐지만 느껴졌다.

이건, 걸렸다고.

본능적으로 찼지만, 아마 오늘 시합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허벅다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찼다. 그냥 그런 게, 그냥 느껴졌다. 그에 지영이 미소를 짓는 순간, 축이 된 발끝이 살짝 뜨며 가벼운 부유감이 들었고, 그 뒤에 미야모토 신지와 함께 한 바퀴를 훅 굴렀다.

쿠웅!

“……잇폰!”

한판.

위에서 내려다보는 승자의 포지션은, 지영의 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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