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58화
58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3)
그렇게 쏘아보면, 어쩔 건데?
피식.
지영은 그 눈빛을 깔끔하게 무시했다. 주심이 들어서고, 사인에 맞춰 지영도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강지영 파이팅!
여자팀의 응원에 맞춰 심판이 손짓으로 다시 사인을 줬다.
그에 맞춰 다시 한번 인사.
하지메!
하아아!
챠이가 마치 짐승 같은 기합을 지른 뒤 빠르게 접근했다. 지영은 평소의 느긋한 자세를 풀고 즉시 자세를 낮췄다. 챠이의 접근은 멧돼지가 생각나는 돌진이다.
확실하진 않지만, 지영은 챠이의 전술을 알 것 같았다. 이렇게까지 저돌적인 돌진은 뒤를 생각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반대로 상대를 정신없이 만들어 몰아붙이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전술은 극단적이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전술이었다.
만약, 지영이 당황했다면 말이다.
툭, 툭.
지영은 평소는 잘 하지 않는 잡기 싸움을 이번엔 철저하게 이어나갔다. 잡으면 쳐 내고, 잡으면 다시 쳐 내고. 지금까지 시합을 하고, 보면서 지영은 몇 개 깨달은 게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잡기 싸움에 관대하다.’
한국 유도는 손을 쳐 내는 동작을 몇 번 반복하면, 일단 심판은 그 선수를 수비적인 자세라 판단한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들고 나서 다시 두어 번만 더 이어지면 곧장 그쳐를 선언하고 지도를 준다.
이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한국은 특유의 공격 유도를 선호했고, 심판이 이런 판정을 줌으로써 선수들을 좀 더 공격적인 유도를 하게끔 유도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도 흔치 않게, 방어 유도를 하던 게 지영이었다.
그렇다면 유도에서 방어는 어떤 걸까?
정의를 내리자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안 넘어가면 된다.
그럼 방어 유도는 뭘까?
안 넘어가면서, 시합을 운용하는 것.
또한 방어적이면서도 반칙을 받지 않는 것.
그렇게 시합을 우세하게 이끌고 가는 것.
그런 방어 유도의 전문가인데, 잡기 싸움에 심판이 후하다? 그건 곧 지영에게 작지만, 그래도 몸을 붕 띄울 수 있는 날개를 달아준 것과 같았다.
툭, 툭툭.
들어오던 손을 쳐 내고, 잽싸게 가슴 깃을 잡아 털다가 모두걸기. 하지만 단단한 나무를 때린 것처럼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그러나 어차피 지영도 넘기려고 건 기술은 아니었다. 그저 수비적인 상황에, 잠깐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줬을 뿐.
어차피 진짜는, 챠이의 돌진을 막는 거다.
지영은 밀리지 않았다.
힘으로 밀고 들어오지만, 지영은 왼발을 축으로 고정시켜 놓고, 좌와 우로 돌면서 거의 그 자리에서 돌면서 챠이를 상대했다. 이는 투우와 비슷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서 나를 스쳐 가게 하는 것.
힘은 좋다.
벌크업을 통해 근력을 올린 지영보다도, 더 좋았다. 대만, 중국 쪽 선수들이 힘이 장사라더니, 진짜 그랬다.
‘힘만 좋은 게 아니야.’
그의 시합을 봤을 때 확실 기술도 나쁘지 않다.
첫판, 두 번째 판에 했었던 선수들은 그냥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굳이 따진다면 잘 봐줘야 중학생 입상권 선수 정도? 반대로 챠이는 대학생급 실력이다. 이 정도면 이호석이나 황영길보다도 위였다.
‘역시 세상은 넓다…….’
그래서 좋았다.
챠이가 잡기로 안 되겠는지 지영의 어깨 깃을 잡았다. 지영은 그걸 앞으로 털어서 쳐낸 다음 역으로 당겨 등판 깃을 선점했다. 그리고 잡음과 동시에 상체를 숙이면서 허벅다리를 차올렸다.
힘은 밀리지만, 신장은 지영이 위였다.
제대로 걸려 몸이 뜨긴 했지만 등판 깃만 잡고 있어서 기울이기가 전혀 되지 않아 점수로 연결되진 않았다.
하지만 어차피 간 보기다.
힘은 좋지만.
‘방어는 별로네?’
지금처럼 대놓고 차는 기술에는 아예 흔들림 없이 막아주는 정도는 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습적으로 차올렸다고 해도 챠이의 몸은 붕 떠올랐다.
만약 지영이 이때 소매 깃, 아니, 적어도 가슴 깃만 잡고 있었어도 이건 한판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기술이었다.
이 정도면, 대충 파악은 했다.
마데!
심판의 그쳐 사인에 도복을 놓고 자리로 왔다. 그리고 쿵! 잇폰! 옆의 경기장에서 시원한 한판이 나왔다. 지영과 거의 동시에 준결승에 들어간 미야모토 신지의 한판승 소리였다.
지영은 그걸 봤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아, 있긴 했다.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어, 다행이라는 감흥.
하지메!
다시 시작되는 시합.
지영은 생각을 접고, 이전과 똑같이 저돌적으로 덤벼오는 챠이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툭. 뻗은 손을 막고 손목을 휘감아 잡은 뒤 돌진하던 힘을 이용해 당겼다. 그러자 쭉 끌려오는 상태, 지영은 거기에 발목받치기를 툭 넣었다. 하지만 이건 미리 파악했는지 중심을 잡아서 잘 막아내는 챠이.
그래, 그 정도는 해줘야지.
지영은 챠이가 기술을 막자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번엔 미끼를 던져보기로 했다.
도복을 놓은 뒤, 잠시 호흡을 고른 다음 다시 맞붙었다. 지영은 이때 미끼를 던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깃을 내준 적이 없었던 지영은 막아내는 척하다가 소매 깃을 줬다.
소매 깃을 제대로 잡히자 지영은 그걸 뿌리치기 위해 큰 동작으로 손을 빼냈다. 하지만 역시 힘이 좋은 챠이는 도복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뒤로 물러나면서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챠이는 어렵게 잡은 도복을 놓을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지영이 물러나는 타이밍에 맞춰 한 걸음 다가왔다.
유도선수에게 옷을 잡히면 뿌리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 이런 움직임 때문이었다. 아무리 뿌리치려고 해도, 그 방향으로 슬쩍 따라가서 힘이 온전히 전달이 못 되도록 막아버리니 아무리 용을 쓴들 일반인은 유도선수에게서 옷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리고 요게, 미끼였다.
툭, 툭툭.
인상을 찌푸린 채 사력을 다시 한번 물러나면서 손을 뿌리치자 그걸 기회라 봤는지 챠이가 쫓아 들어오면서 손을 목 쪽으로 쭉 뻗어왔다.
소매 깃을 잡은 그대로 목깃을 잡아, 유리한 포지션을 잡기 위한 전진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지영의 눈빛이 빛났다.
‘단순하긴.’
툭!
홱!
첫판에 미야모토 신지가 보여줬던 빗당겨치기를 이번엔 지영이 빛살처럼 꽂았다. 애초에 목깃을 잡으려 들어 오던 상태라 챠이는 아예 반응조차 하지 못했고, 그대로 몸이 반원을 그리며 하늘을 날았다.
쿵! 쿠웅.
매트에 제대로 떨어진 뒤, 탄성에 의해 붕 떴다가 다시 뚝 떨어지는 챠이.
잇폰!
심판의 한판 선언이 나오자 지영은 그 순간에도 소매 깃을 놓지 않은 챠이의 손을 툭 쳐내 끊은 뒤, 자리로 가서 섰다. 자리에 서자 저 끝에, 미야모토 신지가 웃으며 자신을
보는 게 보였다.
‘알아봤나 보네?’
그도 지영의 실력을 제대로 알아본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안목까지 있으니, 지영은 결승전이 정말 기대가 됐다. 이렇게 지영의 한판과 동시에, 전 경기 준결승이 끝났다. 그리고 다시 30분의 휴식.
“수고했다. 이제 결승전 준비하자.”
“네.”
지영은 코치가 주는 물을 받아 들고는, 매트에 앉아서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성진에게 다가갔다. 지영이 다가가자 이성진이 벌서는 것처럼 양팔을 들어 올렸다.
“나 이미 신나게 까였다.”
피식.
임효중이 가만있었겠나?
아주 옆에서 멘탈이 가루가 되도록 놀렸을 거다.
시합도 졌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될 정도로 이성진의 멘탈이 회복되었다는 증거기도 했다.
“알았으니까 내려. 아까 보니까 그거로 너 저격하려고 제대로 준비해서 왔더만.”
“몰랐지. 그 타이밍에 앞으로 나오면서 모두걸기 칠 줄은.”
“다음에 잘하면 돼. 뭐 국제대회 이번 한 번만 하고 말 것도 아닌데.”
“그래. 대신 오늘 복수는 너희들이 해주라. 다 일본이랑 결승이더만.”
“오케이.”
신기하게도 연희고는 정말 전부 일본과 결승전이었다. 55, 66은 떨어져서 그 체급만 일본이랑 다른 나라가 결승이었다. 아, +100은 중국 선수가 일본 선수를 잡고 올라와서 장대호와 중국 선수와 결승전이었다.
결국엔, 일본과 한국의 피 터지는 결승전이 예약됐다는 뜻이었다.
휴식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55부터 시작되는 결승전. 역시 결승전이었다.
시작부터 대만과 일본 선수가 절반을 주고받더니, 접전을 펼치면서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다. 그리고 무려, 10분이 흐른 뒤에, 대만 선수가 업어치기 되치기로 우승을 차지했다.
한 게임에 무려 20분 이상이 소요됐다. 시합 시간은 15분이지만, 그쳐 시간까지 합치면 적어도 20분은 넘었다.
그다음 60은 한국과 일본의 경기였다.
60의 용인대 김주원과 일본의 텐도 아키라도, 시작부터 피 터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피도 터졌다. 뻗는 손을 쳐냈는데, 그게 하필이면 텐도의 눈을 찔렀다. 다행히 동공이 찔린 건 아니었지만 눈가가 살짝 찢어졌고 출혈이 났다.
하지만 이 정도로 시합을 포기할 선수는 적어도 이 체육관엔 없었다.
응급처치 후 다시 시작되는 경기.
피까지 났으니 경기는 과열되기 시작했다.
차분한 편이던 일본 선수의 강력한 압박.
고의적인 건 아니었다.
그런데 텐도 아키라는 화가 나 있다.
이는 김주원에게는 기회였다.
차분히! 차분하게!
일본 코치의 외침은 마치 공허한 메아리처럼 고요한 시합장을 울렸다. 그리고 김주원은 흥분한 텐도를 그대로 받아 업어치기로 한판을 꽂아버렸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린 경기. 60은 한국의 우승이었다.
이어서 66은 정말 허망할 정도로 이성진을 한판 날렸던 일본 선수가 똑같은 기술로 중국 선수를 매트에 꽂아버렸다. 고작 30초. 30초 만에 시합이 끝나면서 지영의 차례가 왔다.
툭.
“잘해라, 지영아.”
“파이팅!”
“긴장 풀지 말고! 하던 대로만 해.”
임효중, 황석, 강한결 순의 응원을 받은 지영은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강지영 파이팅! 지면 죽는다!”
피식.
지는 건 너 하나로 족해. 그 말을 해줄 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으로 매트 위로 올라선 지영은 건너편의 미야모토 신지를 바라봤다.
신지는 여전히 오만한 얼굴이었다. 상대를 깔아보는 특유의 눈빛. 턱을 지켜 들고, 눈을 반개한 뒤에 내려다보려 했지만 지영의 신장이 커서 그건 별 소용이 없었다.
후우…….
그러거나 말거나, 지영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긴장하자, 긴장.’
상대는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아직 가늠이 안 되는 천재다.
지영은 원래도 방심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번엔 더 긴장의 끈을 조였다. 이렇게 긴장의 끈을 조였더니, 호흡이 턱 막히는 느낌이 찾아왔다. 순간적으로 전신에 힘을 바짝 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다시 느슨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전신의 근육이 수축했다가, 이완되면서 이미 예열되어 있던 육체가 이전에 없던 긴장감을 품은 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마치 눈앞에 상대가 이전과는 다르다고 몸이, 육체가 직접 경고를 해주는 것 같았다. 보통 이런 건 육감이 전해주지 않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 때쯤 심판이 입장했다. 심판이 입장한다는 건 바로 경기가 시작된다는 뜻.
지영은 긴장으로 인해 발바닥에 찬 땀을 매트에 닦아내고, 손아귀에 찬 땀도 도복에 닦았다.
심판의 입장 사인이 떨어졌다.
인사.
그리고 입장.
다시 인사.
두 번의 인사 후 심판의 입에서 하지메! 시합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졌다.
하!
거의 비슷한 기합을 짧게 내지른 뒤, 서로를 마주 보며 빙글 돌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간 보기 타임.
하지만 그건 몇 초 되지도 않았다.
지영은 왼쪽, 미야모토 신지는 오른쪽.
서로 짝잡이 상황.
지영이 가장 좋아하는 자세였다.
10초가 지난 후에야 시작되는 잡기 싸움.
미야모토 신지는 자신이 먼저 뻗은 손을 지영이 먼저 잡아채자, 그걸 빠르게 툭 끊어쳐서 뜯어냈다. 그러곤 다시 오만한 표정 그대로 다가와 손을 뻗어 이번엔 먼저 지영의 가슴 깃을 잡았다.
아니, 정정이다.
지영이 가슴 깃을 먼저 내줬다.
그다음 어깨 깃을 잡으려고 지영이 잠깐 상대의 어깨를 확인한 순간, 미야모토 신지의 머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파앙!
미야모토 신지가 벼락처럼 차올린, 찍어 허벅다리 후리기. 반응하지 못한 지영의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떠올랐다.
‘아, 얘는 진짜구나.’
신기하게도 지영은 몸이 떠오르는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