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45화
45화. 청소년 선발전(1)
두 번째 방송이 나간 직후, 지영을 향한 시선들이 오묘하게 변했다.
잘생긴 얼굴.
타고난 유도 실력.
이는 시샘 받아 마땅한 조건이었다.
사람은 본래, 가지지 못한 것에는 동경과 시샘을 보내니까 말이다. 실제로 파놓기만 한 지영의 SNS에 와서 욕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시샘들이 방송이 나간 직후 변하기 시작했다.
타고났음에도, 그걸 지키기 위해 철저하다 못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모습.
하루를 7분할로 쪼개서, 그 시간 시간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 모습에는 일종의 독기마저 보였다.
흔히 비교하는 게 하나 있다.
운동이 힘드냐.
공부가 힘드냐.
하루 24시간 중 8시간에서 10시간을 운동만 하는 게 힘드냐.
아니면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의자에 앉아서 공부하는 게 힘드냐.
당연히 둘 다 힘들다.
어느 게 더 쉽고, 어느 게 더 힘들다.
이 두 가지는 그렇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고집이 센 사람이라면 각자가 했던 걸 더 힘들다고 우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답을 내자면 둘 다 힘들다가 맞았다. 그리고 사실 그 정도는 다들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그래서 지영의 영상을 본 이들은 혀를 내둘렀다.
하나만 하는 것도 사실 힘들다. 운동 하나, 공부 하나도 정상을 찍는 건 정말 힘들다. 그런데 강지영이란 학생은, 선수는 둘 다 놓치지 않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강지영의 성적은 상위 클래스는 아니었다. 반에서 중간, 전교에서도 중간. 하지만 그 중간이란 게 중요했다.
수학, 과학은 약해도 국사와 국어 쪽은 상위 클래스다.
심지어 연희고 1% 안에 들어갈 정도로 두 과목은 엄청 잘했다. 그렇게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모습에 배경음으로 땅땅거리는 소리가 들어가니, 지영이 타고난 것도 타고난 거지만 얼마만큼이나 노력하는지가 아주 잘 설명이 됐다.
그래서 와…… 하고 탄성이 나왔다.
새벽 운동, 오전 수업, 오후 수업, 오후 운동, 저녁 공부, 야간 운동, 야간 공부. 그리고 12시쯤 취침. 다시 5시간을 조금 넘게 자고 이 사이클이 계속, 그대로 돈다.
경탄할 만한 정신력.
이걸 지켜본 시청자들이 거의 입을 모아 말한 칭찬이었다.
이게 조작이 아니냐는 의문도 있었지만 조작일 수가 없는 게, 성적이 증명했다.
1년 동안 출전한 세 개의 대회에서 금메달. 1년간 치른 시험에서 받은 강지영의 성적표. 그게 확실하게, 절대 조작일 수 없다는 증거가 됐다.
그렇게 3화가 방영되고, 지영은 웬만한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포털사이트에 인명이 등재되는 일도 벌어졌고, 심지어 학교까지 찾아오는 기자나 엔터테인먼트 관계자, 그리고 팬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갑작스럽게 스타의 조건을 갖추기 시작했지만, 지영은 흔들리지 않았다.
흔들림 없는 고목처럼 수업을 받고, 시합을 준비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시합 전날이 되었다.
시합은 서울에서 열렸다.
시합장에 도착한 지영은 곧장 예비 계체부터 했다.
72, 80.
딱 200그램을 남기고 딱 체중감량에 성공했다.
“후우.”
하지만 지영의 표정은 좋지만은 않았다.
이번 감량이 진짜,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좀 넉넉하게 감량에 성공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진짜 진이 쭉 빠졌다. 특히 마지막 1㎏이 고비였다.
몸이 이제 더 뺄 살은 없어! 하고 악을 쓰는 것처럼 땀이 빠지질 않아서 평소와는 다르게 어제부터 오늘까지 아예 음식물은커녕 물 한 모금도 절제하며 살을 뺐다.
그렇게 겨우겨우 200그램을 남기고 일단은 통과다.
임효중, 강한결, 황석 순으로 다시 체중계에 올랐고, 다들 통과했다.
마지막으로 이성진이 올라갔고, 체중계엔 65, 95란 숫자가 떴다.
“예스!”
“고생했다. 성진아.”
“어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예비 계체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체육관에 모인 선수들의 시선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 시선에 섞인 호승심들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청소년 선발전은 입상권 내에 있는 선수들만 나오는 대회다.
그래서 그 제한 연령 안에 들어가는 선수들 전부가 3등 하나라도 했던 선수들인 만큼, 역시 기세가 남달랐다.
어떻게 보면 전국체전 때보다 더욱 강렬한 기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선수들에게, 지영을 포함한 황금세대는 사실 악당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이도 어린 것들이 대회를 골라잡아 나와 금메달만 쏙쏙 파먹는.
자신들은 이를 악물고 모든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려 노력하는데, 마치 설렁설렁 그냥 취미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니까 좋게 보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여기서 1등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래서 보는 시선들이 참 곱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다섯이 앉아서 정식 계체를 기다리는데, 익숙한 선수가 다가왔다.
부산체고 구혁이었다.
“여 아이돌들. 오랜만이다.”
“네, 형.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지영이 인사를 받자, 푸석푸석함이 가득한 얼굴로 구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살 빼는데 죽는 줄 알았다. 너네도 만만찮게 힘들었나 본데? 얼굴 보니까?”
“네, 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말이 입 끝까지 나왔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괜히 약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털썩, 옆에 앉은 구혁이 지영의 어깨를 툭 때렸다.
“오, 연예인.”
“아, 왜 그러세요?”
“너 나온다고 그래서 찾아봤는데, 진짜 연예인처럼 나왔던데? 너네 연희고 아이돌로 불린다며?”
“아이돌은 무슨요. 그냥 그렇게 부르는 거지.”
“진짜 아이돌 할 생각은 없고?”
“하하. 무슨 아이돌이에요.”
아이돌에는 관심이 정말 없었다.
“아까워서 그러지, 그 얼굴이. 뭐 근데 관심 없다니까 넘어가고. 너 내년 아시안 게임은 노려볼 거냐?”
아시안 게임?
2022년 아시안 게임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내년 항저우에서 열리지 아마?’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려면 이번 선발전부터 점수 쌓아야 하는데, 저흰 이미 늦었어요. 형은 노리게요?”
“응. 남자라면 함 노려봐야 않겠나?”
하긴.
구혁 정도라면.
73㎏에는 강자들이 많지만 이미 다들 나이가 제법 있고, 구혁 정도의 실력이면 아직은 부족해도 또 모르는 거다.
‘잘하면 엔트리에 낄 수도 있겠네.’
하지만 이미 점수를 쌓아놓은 선수들이 많아서 구혁도 이번 아시안 게임은 힘들 거다. 그래도 노려보는 건 나쁘지 않았다. 목적, 목표가 있으면 동기부여가 되어 더 열심히 훈련도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너 올림픽은 노릴 거냐?”
“네. 그건 노려봐야죠.”
지금은 힘들지 몰라도, 4년 뒤에 열리는 올림픽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때쯤이면 피지컬도 더 좋아질 거고, 고등학교도 졸업할 테니 충분히 유도에 더 전념할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올림픽은 지영도 노려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는 지영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황금세대 전체의 의견이었다.
“어후, 강력한 라이벌이 생겼네.”
“라이벌 생기면 좋죠. 실력도 잘 오르고.”
“그래도 없는 게 더 좋아.”
“하하.”
구혁이 앓는 소리를 하더니 어깨를 다시 툭 치곤 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구혁이 돌아가자 지영은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6시 정식 계체. 지금이 5시 40분이니 20분 남았다. 20분을 남겨두고, 지영의 첫판 상대가 들어왔다.
용인대.
이호석.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지영은 이호석과 첫판에서 맞붙게 됐다. 그리고 지영은 오히려 대진이 그렇게 나온 게 좋았다.
가뜩이나 그때 두고 보자고 해놓고, 발목이 돌아가는 바람에 제대로 혼쭐을 못 내줬는데, 이렇게 공식 대회에서 맞붙게 됐으니 헛소리를 한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리고 시합에 못 나오면 어쩌나 걱정도 했는데, 들어오자마자 어떻게 자신을 바로 알아보곤 눈을 부라리는 이호석을 보며 안심이 됐다.
정식 계체가 시작됐다.
체급별로 쭉 들어가서 체중을 재니 빠르게 지영의 차례까지 왔다. 지영도 들어가서 팬티만 입고 체중을 잰 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사 온 이온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이성진이 보였다.
휙.
이성진이 던져준 음료를 잡은 지영도 곧장, 마시기 시작했다.
오백짜리 음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수분이 충전되자, 절로 아…… 하고 탄성이 나왔다.
“하. 이제 좀 살겠다. 와…….”
이성진이 길게 숨을 내쉬며 하는 말이 지영의 심정이었다.
지영의 뒤로 임효중, 강한결, 황석이 차례대로 체중을 재고 나왔다. 음료를 던져줘 몸에 수분을 쭉쭉 넣어주고, 개체가 끝났으니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근처에 잡아 놓은 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마인드 컨트롤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병행하며 시합 전날을 보냈다.
시합 당일.
지영은 일어나자마자 곧장 체중계에 올라갔다.
73,80.
딱이다.
아침을 적당히 챙겨 먹고, 시합장으로 가서 몸을 풀었다.
선수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시합은 10시부터라 여유가 있었다.
9시에 도착해 땀을 한번 쭉 빼고, 체력 인터벌을 짧게 해서 숨까지 트여놓았다.
-10시부터 본 시합을 시작하겠습니다. 선수들은 전부 대기석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경기 진행 이사의 성의 없는 안내를 듣고 선수들이 하나둘씩 퇴장해 대기석으로 이동했다. 지영과 친구들도 라인을 쳐놓은 대기석으로 이동했고, 대진표를 빼 들었다.
“음, 효중이가 첫 게임이겠네. 지영이가 또 마지막이고. 효중이 컨디션 어때?”
“좋지. 여느 때처럼.”
강한결의 말에 임효중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웃으며 답했다. 싱그러운 미소. 임효중은 시합 전 언제나 이렇게 자신감에 차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이 미소는 승리의 미소였다.
그런 임효중이 10분 정도 뒤에 시합에 들어갔고, 1분 만에 한판을 던지고 돌아왔다.
그다음 강한결 역시 한판, 황석 역시 한판으로 1회전을 통과했다.
체전과 비교해 딱 두 배 정도 선수가 더 나온 정도라 경기는 빠르게 진행이 됐다.
이성진은 첫판 상대가 나오지 않아 부전승으로 1회전을 통과했고, 1회전 거의 마지막 차례가 지영이었다.
툭.
입장석에 서 있는데 이호석이 어깨를 툭 쳤다.
‘하…….’
이런 종류의 도발은 진짜 별론데.
하는 생각을 하며 돌아보자 이호석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노려보고 있었다.
“왜, 뭐. 짜증 나냐?”
“…….”
쯔쯔.
지영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차며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러자 X발 새끼가 비웃냐? 하고 욕을 했지만 지영은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이런 놈에게는 말 한마디도 섞어주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실력은 좀 있지만.
인성은 그와는 정반대인 놈.
나중에 크게 사고를 칠 놈이고, 그 결과 유도계에서 강제 은퇴 당할 놈이다. 온갖 욕을 다 처먹고 말이다.
지영의 차례가 됐다.
매트로 올라선 지영은 발바닥의 땀을 닦아낸 뒤에, 경기장 선에 섰다.
인사를 하고, 입장, 다시 인사.
그리고 하지메!
사실 첫판은 몸을 푸는 게 좋다.
하지만 지영은 굳이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런 놈과는 손속을 섞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공세로 나갔다. 시작과 동시에 훅 달려들며 목깃을 잡고 반원을 그리며 당겼다. 지영의 힘이 늘어서인지, 이호석의 몸이 그대로 쭉 끌려왔다.
아마, 방어유도를 하겠지, 하고 생각했을 거다.
거의 모두가 지영의 유도 스타일이 그렇다고 생각할 테니까. 아마 이호석도 지영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그게 맹점이란 거다.
지영은 올라운더다.
방어, 공격 유도 전부 다 잘하는.
툭.
이전에도 굴욕을 줬던 발목받치기에 걸린 이호석의 몸이 붕 날았다. 시작과 동시에, 상대가 방심하고, 아직 적응도 못 한 순간에 걸린 기술은 이호석은 제대로 기술에 걸렸다.
몸이 돌아가는 순간 지영은 상대를 툭 받쳐 올렸다.
그래도 기울이기.
쿵!
제대로 걸린 기술. 제대로 떨어진 이호석.
“와자리!”
……그런데 절반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