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9화
29화. 임스테이(1)
훈련으로 주말이 날아갔지만 지영도, 다른 친구들도 그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주말에 훈련하는 거야 뭐, 일상이기 때문이었다.
일요일 오후에 잠시 나가서 돌아다니다 들어와 일요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시작된 한 주.
주말에도 훈련해 새벽은 쉬기로 해서 지영은 오랜만에 푹 자고 일어났다.
푹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컨디션이 좋았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을 먹은 지영은 다시 숙소로 내려왔다.
“아 지영 군 왔어요?”
“네. 안녕하세요?”
이선영이 나연석, 그리고 김선욱과 함께 찾아왔다.
아무래도 방송 때문인 것 같아서 연락을 주면 잘 받고, 보자고 하면 빼지 않고 나가는 지영이었다.
“저 때문에 주말도 못 쉬셨을 텐데, 어쩐 일이세요?”
앞에 앉으며 지영이 묻자 이선영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촬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지영 군도 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가요? 아, 혹시 문제가 있나요? 너무 밋밋하다던가.”
“후후, 아니요. 처음에 관찰 예능 형태라고 했지만, 우리가 진짜 예능을 찍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네, 그러셨죠?”
“그래서 괜찮아요. 어차피 충주라는 작은 도시에, 이렇게 재능이 있는 유도 선수가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선수는 전에 4명의 모녀를 구한 청년이었다. 그 청년은 이마만큼 운동에 진심이고, 이마만큼 훈련하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정도만 나가면 돼요.”
“아…….”
그렇구나.
처음에 했던 얘기와 그럼 다를 게 없었다.
그럼 왜?
왜 찾아왔을까?
어제 헤어질 때 듣기로는 오늘 촬영은 없다고 들었다.
지영 군.
나연석이 지영이 궁금하던 걸 풀어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찾아온 이유가 궁금하죠?”
“네.”
“음,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물어보세요.”
“지영 군은 방송에 나가서 유명해지고, 그런 마음은 별로 없죠?”
나연석의 물음에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연예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지금은 운동이랑 공부가 더 중요하거든요.”
지영은 가능한 한 솔직하게 대답했다.
지금 지영에게 가장 중요한 건 현재의 육체가 가진 순발력, 속도 등을 잃지 않는 선에서 몸을 만드는 거고, 그다음이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 거였다.
아, 돈 걱정 없이 사는 건 예외다. 그건 어차피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런 지영의 솔직한 대답에도 나연석은 웃었다.
듣기로 그는 예능PD였다고 들었다. 그런 그가 자신에게 이런 호의적인 이유가 혹시 연예인을 시키고 싶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세요?”
“음. 뭐 하나 제안을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제안이요?”
“네. 음, 제가 나종석 PD와 사촌인 건 알고 계시죠?”
“네. 알고 있어요. 그때 말씀 주셨잖아요.”
“하하. 네. 그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사실 지금 사촌 형이 촬영 중인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들어봤을 겁니다. 임스테이라고.”
“아, 아…….”
뭐지, 그게?
유명한 건가?
표정을 관리하며 지영은 그게 뭔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잠깐 생각 끝에 그래도 그게 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임스테이. 대한민국 예능계를 대표하는 두 명의 스타 PD 중 한 명인 나종석의 간판 예능 프로 중의 하나였다.
배우들이 뷰가 아주 멋진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손님을 받는 예능 프로그램.
‘이 시기가 시즌 1인가?’
지영의 기억에는 시즌 4인가까지 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전부 시청률이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대박에 가까운 시청률을 보였었다. 시골에 가서, 섬에 가서 밥을 해 먹는 특별하지 않은 플롯을 대박으로 엮어내는 능력이 있는 그런 PD의 작품이라 아무리 TV를 잘 안 보던 지영도 아는 방송이었다.
“하하, 정말 지영 군은 TV를 잘 안 보시나 보네요. 올 초에 정말 엄청 히트를 쳤었는데. 아무튼 지금 사촌 형이 시즌 2를 찍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문제요?”
“네. 시즌 1과는 다르게 한국인을 받는데, 예약되어 있던 팀 두 개가 캔슬이 났습니다. 한 팀이야 캔슬이 나도 괜찮은데 같은 날 두 팀은 좀 곤란하거든요. 인원이 너무 빠져서 그림이 안 나오니까. 그래서 급히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주말 촬영인데 주변에 추천하고 싶은 지인 없냐고.”
“아. 아아.”
그 말에 지영은 왜 이곳에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전화상으로 해도 되지만 직접 만나서 의견을 물어보는 게 일단은 고마웠다.
“그럼 저랑 제 친구들이 그 프로그램 촬영을 했으면 하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겸사겸사, 황금세대가 힘든 훈련을 마치고 휴식하는 모습도 좀 담고요. 아, 이건 허락받았습니다. 프로그램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선에서 편집해 내보내도 된다는 걸로.”
즉, 지영을 촬영에 일반인 팀으로 임스테이에 내보내 그림을 좀 따보겠다. 이런 말이었다. 연예인에 관심이 없냐고 물은 건 아마 지영이 방송에 제대로 얼굴이 노출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건지에 대해 확인한 것 같았다.
“그 프로그램은 가서 뭐 특별하게 해야 할 게 없는 프로였죠?”
“네, 그냥 쉬다 오면 됩니다. 경치 구경하고,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때 되면 주는 밥 먹고, 푹 쉬고 오면 됩니다.”
“음…… 당연히 이것도 애들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물론이죠.”
“그럼 지금 톡방에 물어볼게요.”
“하하, 네.”
지영은 폰을 꺼내 바로 짧게 내용을 요약해 보냈다.
한 사람이 아니라 5인이나 되니 좀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숫자가 빠르게 사라졌다. 가장 먼저 답한 건 당연히 이성진이었다.
주목받아야 하는 고질병이 있는 이성진이 이 기회를 넘어갈 리가 없었다.
-해! 하자! 무조건 하자!
-한결아 하자고!
-야!
-한결!
-결!
-강한결!
-하자고!
-하자고하자고하자고하자고!
손가락에 제트엔진이라도 달았는지 주르륵 올라오는 이성진의 메시지가 웃기면서도 가슴이 답답했다. 이성진은 본인은 모르지만 이럴 수밖에 없었다. 잘 보이고, 주목받아야 하던 어린 시절 때문에 이런 성격이 되어버렸다.
그냥 보면 참 밝고 신나는 친구지만, 알고 나면 이럴 때마다 조금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친구기도 했다.
그런 이성진의 톡에 강한결이 답했다.
-석이랑 효중이는?
-지영이 너도.
-하고 싶어?
그 답장에 지영은 해보고 싶다 답을 적어 올렸다.
해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갈망. 캠핑? 여행? 회귀 전엔 진짜 꿈도 꾸지 못했다.
지영은 다리가 정말 불편했고, 어깨도 비슷하게 망가져서 무거운 물건은 일절 들지 못했다. 그런 몸으로 여행이나 캠핑은 가봐야 짐만 될 뿐이었다.
황금세대 전체가 다 비슷해서, 만나면 그냥 편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근처 호프집에서 가볍게 한잔하고 헤어지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가보고 싶었다.
이런 기회가 흔한 건 아니니까.
방송이란 것도, 그리고 여행이란 것도.
다 처음이니까.
-지영이가 하고 싶다니까 난 찬성.
황석의 답장.
-나도. 임스테이 그거 엄청 유명하잖아? 그리고 그건 가서 그냥 놀다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임효중의 답장.
-그럼 가는 걸로.
강한결이 결론을 내렸다.
지영은 아싸! 우와아! 좋아하는 이성진의 메시지를 확인하며 폰을 넣고는 나연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좋대요.”
“잘생각했습니다. 음, 그럼 바로 프로필 사촌 형에게 보냅니다?”
“네.”
나연석이 태블릿을 꺼내 잠시 자리를 옮기자 이선영이 지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생각했어요. 가서 부담되는 걸 찍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진짜 말 그대로 쉬고 오면 되거든요.”
“감사합니다. 근데 이렇게 가도, 문제 안 돼요?”
“문제요? 무슨 문제?”
“이거 어떻게 보면 지인 찬스로 가는 거잖아요.”
지영의 질문에 이선영은 오묘한 눈빛을 했다.
그리고 태블릿을 두들기던 나연석도 고개를 들고는, 그를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지영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물었다.
“왜 그런 눈들이세요?”
“지영 군은 참 신기해.”
“네? 뭐가요?”
“아니, 그렇잖아요. 보통 이런 우연한 기회로 방송에도 나가고 그러면, 진짜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우와! 이러면서 좋아할 거란 말이에요. 보통은.”
“…….”
“그런데 지영 군은 안 그러네? 방송, 그리고 사람 걱정을 먼저 해요. 혹시 자신이 남의 찬스를 빼앗은 건 아닐까. 그 찬스를 준 사람이 혹여 구설에 휘말리진 않을까. 이런 걸 먼저 걱정하잖아요.”
“아…….”
뜨끔.
그렇기도 하다.
‘사고 전의 나였다면, 아마도 그랬겠지.’
그랬을 거다.
분명.
그때는 아무리 지영이 또래보다 여물었다고 해도, 정말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건 지영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회귀란 걸 했다. 웬만한 아이들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일을 겪고, 10년을 살다가 사고 전으로 돌아왔다.
그러니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와 여행이다! 방송이다! 이런 생각보다 혹시 이렇게 방송에 나가면 지인 찬스라고 나연석이나 이선영, 그리고 방송이 욕먹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어본 건데, 듣는 입장에서는 그 멘트 자체가 그렇게 자연스럽진 않았나 보다.
“뭐, 그게 지영 군의 매력이기도 하니까. 이만 곤란하게 할게요. 후후.”
“하하, 네…….”
이선영은 센스 있게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빠졌다.
그러자 태블릿을 잠시 내려놓은 나연석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문제가 됐을 겁니다. 그건 진짜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은 거니까요. 하지만 이번엔 경우가 조금 특수하잖아요? 빼앗은 게 아니라, 공석에 들어가는 겁니다. 빈자리에.”
“아…… 맞네요. 그러네.”
“하하. 문제 안 될 겁니다. 애초에 요즘처럼 민감한 시대에 그게 문제가 될 거라는 걸 가장 잘 아는 게 바로 사촌 형입니다. 그걸 형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다 문제가 안 되니까 저한테도 부탁한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음. 감사합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지영은 일어나서 얼른 세 사람에게 고개를 숙였다.
가만히 그냥 듣고만 있던 김선욱이 좀 민망한지 손을 저었다.
“음음, 이번엔 좀 또래 같았어요. 후후.”
“하하, 네. 그럼 출발은 어떻게 해요?”
“저희가 픽업을 와도 되는데, 아마 보호자가 붙어야 할 거예요. 지영 군도, 황금세대도 전부 미성년자잖아요. 그러니 코치님이나 가족에게 말씀드려 보는 게?”
“아. 그걸 까먹었네요.”
원래는 27살을 살다 보니, 지금처럼 가끔 자신이 미성년자라는 걸 까먹을 때가 있었다. 지영은 어색하게 웃고는 일단 임대성 코치에게 먼저 말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들이 가면 좋지만, 그래도 일단은 임대성 코치였다.
“그럼 세부 일정은 제가 차차 다시 알려줄게요.”
“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와서 직접 말씀해 주셔서.”
“후후, 당연한 거죠. 궁한 사람이 찾아오는 건.”
이선영은 그렇게 지영의 인사에 답하고는 일어나서 바로 차에 올라 떠났다. 지영은 시간을 확인하곤 임대성 코치에게 갔다. 노크를 하니 들어와,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 지영아. 웬일이냐, 이 시간에?”
“저, 코치님.”
“어, 왜?”
지영은 바로 이선영과 나눴던 얘기를 해줬다.
그러자 임대성은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도 중요하지만, 휴식은 그것보다 더 중요하지. 알았다. 주말이라고?”
“네. 토요일에 가서 일요일날 오는 거요.”
“그래. 학교에 그렇게 보고해 놓을게. 주말에 움직이는 거니 학교도 별말 안 할 거다.”
“네, 감사합니다.”
“그보다 지영아.”
“네?”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지영을 붙잡는 임대성. 그는 자신의 앞에 선 지영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펴봤다.
“너, 근력 좀 늘리자.”
“……네.”
어떻게 알았지?
그게 궁금하긴 했지만 효율적으로 근력을 늘리는 건 지영 본인이 정말 원했던 일이라, 조금의 고심도 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올릴 거니까, 너무 걱정 말고.”
“네.”
“그래. 수업 들어가 봐.”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 지영은 코치실을 나와 다시 교실로 향했다.
잘 풀린다.
해보고 싶던 것, 해야 하는 것들이 하나씩 알아서 풀리고 있었다.
그러한 것들이 모여 교실로 향하는 지영의 입가에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려주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