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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28화 (2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28화

28화. 합동훈련(7)

시원하게 날아갔다.

근 10분을 넘긴 게임은, 지영의 패배였다.

하지만 지영은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살아 있는 시합을 했기 때문이었다. 장호선 코치가 자신을 소아다리 시킨 건 분명 선을 넘긴 했다. 이 경우, 적어도 임대성 코치에게만큼은 말하고 허락을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임대성은 지영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는 그도 몰랐다는 뜻.

만약 소아다리가 거칠어졌다면 그가 말렸겠지만, 그는 말리지 않았다. 작정한 지영이 절반조차 안 뺏기고 상대를 모조리 날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인이 직접 나왔다. 이는 선을 넘다 못해, 임대성 코치가 쌍욕을 박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개입을 지영이 말렸다.

마지막을 굳이 피하고 싶지 않았고, 강한 선수와의 자유 연습에 목이 마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졌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또한 이번 게임으로 지영은 자신에게 부족한 점 또한 파악할 수 있었다.

피지컬(physical).

시합 운용, 기술, 체력, 모두 부족함이 없다.

여기에 경험까지 있으니, 고등부 선수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부로 들어가면 좀 힘들겠는데.’

지금 이 상태는, 사실 지영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신체였다.

지영은 73체급에서도 거의 가장 큰 신장이다. 180 정도면, 보통은 81을 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평체도 80에 가까워서 한 번 시합에 나갈 때마다 기본 7㎏ 정도는 감량을 했다.

이게, 지영이 가장 컨디션이 좋은 감량 수치였다.

여기서 피지컬을 더 끌어올리는 건 결국엔 근력을 상승시키는 것밖에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체중증가는 피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근력이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순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순발력 또한 지영의 무기 중 하나라서, 이것도 포기하는 건 쉽지 않았다.

“흠.”

고민이 됐다.

야간운동으로 고무줄 20세트, 로프 10회를 마치고 씻고 각자 방에 들어와서도, 지영은 책상 앞에 앉아 펴놓은 책을 들여다보며 공부 대신, 유도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오늘 장호선에게 진 게 억울하진 않았다.

전체적인 실력 면에서는 분명 자신이 부족했지만, 그 부족한 실력에서도 최고의 게임을 했다 할 수 있으니까. 실제로 초반에 허벅다리 되치기로 한판도 따냈으니 엄밀히 따지면 비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래도, 지영은 지는 게 싫었다.

유도는 수만 번은 날아다녀야 이제 유도 좀 한다는 소리를 듣는 스포츠였다. 그러니 10살이나 넘게 차이나고, 실업팀 생활까지 한 장호선에게 한 판으로 날아간 건 창피한 일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지영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회귀 전, 언제나 승자였던 지영은 사고로 모든 것을 잃었다. 그 상실감은 지영에게 엄청난 갈증을 선사했다. 그 갈증이 종내에 자신에게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몰라 결국엔 지켜만 봐야 하는 코치직마저 그만두려 했었다.

그랬던 상황에서 돌아왔으나, 갈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지영은 이 또한 트라우마의 한 갈래라고 생각했다. 가지고 싶은 승리자의 위치. 하지만 사고로 가질 자격조차 빼앗겨 버렸기에 생긴 갈증.

그래서 이제는 이기고 싶었다.

상대가 중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대학생이건, 국가대표건 상관없이 이제는 무조건 이기고 싶어졌다.

나중에 대학교까지 진학하고 나면 피지컬도 완성될 테니, 그때부터 노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지만, 싫다.

지금이다.

지금부터, 이기고 싶어졌다.

매트에 누워 천장을 보는 패자가 아닌, 천장을 보는 패자를 내려다보는 승자가 되고 싶었다.

지영은 책상을 정리하고 침대에 누웠다.

보통 1시간쯤은 공부를 하지만 오늘은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편한 자세로 누운 지영은 눈을 감고, 오늘 시합을 복기했다.

장호선.

정상급은 아니어도, 실업팀까지 갔다가 은퇴한 선수다. 그게 뭐 대단하다고 하겠지만 유도는 프로팀이 없다. 전부 실업팀인데, 이마저도 현재 13개 정도밖에 없었다.

그럼 여기에 소속된 선수의 수는?

많아야 5명에서 10명 사이다.

그럼 대학을 졸업하고 실업까지 가는 선수는 정말로 손에 꼽는다는 소리였다. 장호선은 그 소수에 뽑힌 선수였다. 그러니 실력은 분명 최고 수준이었다.

일단, 완성된 선수답게 힘과 기술, 체력, 거기에 경험까지 모든 게 풍부했다.

그래서 밀렸다.

체력적으로야 문제 될 게 없었지만 피지컬에 밀려 나머지가 전체적으로 전부 밀렸다. 처음 허벅다리 되치기는 그가 방심하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았을 한판이기도 했다. 시합을 큰 그림으로 보면, 완벽하게 밀렸다.

실제 시합이었다면 아마도…….

“반칙패.”

요즘은 국제유도도 그렇고, 한국 유도도 그렇고 조금만 수세에 밀리거나 아니면 소극적으로 나와도 지도가 대번에 들어가는 추세였다. 그러니 실제로 시합이었다면 아마 지영은 반칙패로 게임을 마무리했을 거다.

그렇다면 그걸 빼면?

“마지막에 조급했네.”

실제 시합이라고 치고, 마지막에 자주 쓰지 않는 안다리 기술을 제대로 걸으려고 했던 게 패착이었다. 그리고 발을 살짝 빼놓고 있던 것도, 미끼였다.

그 미끼는 실제로 지영이 아주 자주 써먹는 전술인데도, 지도가 2개고, 더 밀리면 반칙패나 마찬가지란 생각에 그걸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그냥 덥석 물었다.

결과는 뭐, 한판이었다.

“좀 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겠어.”

유도는 시합이 끝날 때까지, 어떻게 될지 절대 모르는 스포츠로도 유명하다. 1초 남기고도 한판으로 시합이 뒤집히는 경우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흔한 스포츠 중에 하나였다.

한 번 중고등학교 전국대회를 열면 하루 전체에 1초 남기고 이기고 있다가 지는 게임이 아마 열댓 개쯤은 충분히 나오니까 말이다.

“후, 더 노력하고 단…….”

똑똑.

지영아 자냐?

강한결의 목소리였다.

지영은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아니, 아직. 왜?”

“야식 와서. 먹을래?”

“야식? 시킨다는 말 없었잖아.”

“그러니까. 갑자기 왔어. 어, 잠깐만.”

웅웅 울리는 폰을 꺼내 전화를 받는 강한결.

“네, 코치님. 네. 네, 지금 왔습니다. 아, 장호선 코치님이요? 네. 잘 먹겠습니다. 네.”

그걸로 지영은 왜 야식이 왔는지 바로 파악했다. 아마 밖에서 코치들끼리 한 잔 걸치고 있다가, 술이 좀 올라온 장호선 코치가 오늘 지영에게 했던 게 마음에 걸려 야식을 사준 걸 거다. 이런 건 그냥, 맛있게 먹어주면 된다.

야식 먹자!

강한결이 소리치기 무섭게 문들이 벌컥벌컥 열렸다.

“야식? 웬 야식? 우리 리더님이 쏘는 건가?”

“장호선 코치님이 사주신 거야. 내일 감사하다고 말씀들 드리자.”

“그럼! 90도로 고개 숙여야지!”

이성진의 너스레에 다들 피식 웃고는 야식계의 제왕, 치킨과 족발을 뜯었다.

안 그래도 좀 출출한 느낌이었고, 좀 전까지 피지컬 부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지영은 정말 오랜만에…… 전투적 ‘흡입’을 시작했다.

“야…… 얘 누가 굶겼냐?”

이성진의 말에, 임효중이 그럴 리가 있겠냐며 상추 두 발을 장전하고, 그 위에 살코기 네 점을 올렸다. 황석은 젓가락으로 족발 살덩이를 가득 들어 초장에 찍어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야! 야! 좀 천천히 먹……!”

니네 갑자기 왜 그러는데!

라고 하소연을 시작할 무렵, 강한결도 한 손에는 치킨, 한 손으로는 족발 살이 가득 붙은 다리를 들고 뜯기 시작했다.

그제야 이성진도 속도를 내지만 이미 흐름을 탄 4인은 족발 두 개, 치킨 두 개를 순식간에 작살 내버렸다.

“와나, 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뜨리는 이성진을 뒤로한 지영과 3인은 후다닥 먹은 흔적을 치우고, 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배를 툭툭 두들기면서. 아, 이성진을 향해 한 번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잠시 뒤, 살짝 닫히지 않은 문틈 사이로 라면 삶는 냄새가 솔솔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그에 피식 웃은 지영은 잠시 앉아 유도 영상을 보다가, 누워 잠을 청했다.

배가 부르니, 오늘은 꿀잠 예약이었다.

* * *

한 번 졌다고, 아아 그래도 뭐, 국가대표도 잠깐 했었던 실력자한테 진 건데 뭐 어때? 하는 생각 같은 건 조금도 하지 않는 게, 지영의 스타일이다.

토요일 오후 훈련. 오늘은 당연히 소아다리가 없었다.

의미가 없는 소아다리는 지영도 사양이지만, 하나는 오히려 바라는 게 있었다.

“코치님.”

“야! 소매 주지……! 응? 어어, 왜?”

“이따 한판 잡아주시면 안 됩니까?”

“……어?”

지영의 말에 장호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피식 웃었다.

“그래. 막판은 좀 그렇고, 그전에 와라.”

“네. 감사합니다.”

장호선 코치와 자유 연습 예약을 걸어둔 지영은 돌아가서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이야. 남자네.”

이번 판 파트너 구혁이 씩 웃으며 지영을 보며 말했고, 지영도 비슷하게 웃었다. 하루에 한 번씩은 꼭 잡다 보니까, 이제는 말도 제법 편하게 나누는 사이가 됐다.

“형도 그러잖아요?”

“그렇지. 내도 지면 잠도 잘 안 온다. 한판 내던져 놔야, 발 뻗고 잔다아이가.”

“저도 그래요. 지기만 하면 억울해서요.”

“흐흐, 그래 보인다.”

“이제 시작할까요?”

“오냐.”

사담을 멈추고 맞붙은 둘은, 고작 이틀이지만 상대를 이미 제대로 파악했기에 서로 기술을 쉽사리 걸 수 없었다. 둘 다 되치기에는 도가 튼 도사들이라, 조금만 기술을 엉성하게 걸면 그대로 날아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로 빡세게 잡기 싸움만 하다가 결국 시간이 다 흘렀다.

삐! 소리가 나자 도복을 놓는 두 사람. 숨을 몰아쉬며 구혁이 먼저 말했다.

“고생했다. 오늘 내 단체전 안 나가니까, 연습은 이게 마지막이네.”

“네, 수고하셨습니다. 형.”

“오냐. 참, 청소년 선발전 나오나? 12월로 밀렸다던데.”

“모르겠어요. 근데 아마 나가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 그럼 다음은 잘함 거서 붙겠네.”

“네.”

툭툭.

악수를 하고, 지영의 어깨를 두들겨준 구혁이 다음 파트너를 잡기 위해 갔다.

지영은 매트 사이드로 움직이면서, 그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청소년 선발전이라.’

본래는 벌써 했었어야 하는 대회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꼬여, 아무래도 12월로 밀린 것 같았다.

‘아, 그래서 탐라기가 날아갔나?’

아닌가?

뭐, 그것까지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지영은 신경 끄고 훈련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윽고 다시 잡은 장호선. 후! 5분이다. 지영은 이미 목표를 세우고 그에게 갔었다.

‘반칙 받지 않기.’

에 이은, 넘어가지 않기.

일단은 버텨볼 생각이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강한 선수와의 훈련만큼 실력을 빠르게 올리는 것도 없었다. 그래서 지영은 장호선을 넘기지 못할 거라면, 적어도 반칙을 받지 않고, 대등하게 맞붙는 걸 목표로 삼았다.

반칙도 반칙이지만, 넘어가지 않는 게 일단 우선 목표였다.

실전이라고 치면 한판을 당하지 않아야 상대를 던질 기회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타이머가 울리고 2분.

지영은 버티고, 역습하고, 또 버텼다.

3분쯤 지나자 장호선이 지영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넘어가는 게 중요하지. 잘생각했다.”

“……감사합니다.”

“아깝다. 우리 보성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연희고도 좋아요.”

“하하, 그래. 좋은 학교지. 어제 대성이 말 들어보니까 정말 좋은 학교 같더라. 엘리트 체육인데, 엘리트 체육 같지 않은 게 보기 좋기도 하고.”

“…….”

지영은 그 말에는 뭐라 답할 게 궁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힐끔, 시간을 본 그가 다시 시작하자. 하더니 다가왔다. 지영도 자세를 잡고 장호선과 맞붙었다. 지영의 의도를 알아차린 장호선은, 맹공을 넣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지영보다 힘이 좋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자신에게 얼마나 유리한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그걸 피하고, 버텼다. 진짜 악착같이 버텼다. 때때로 되치기를 하기 힘든 기술도 억지로 욱여넣어 들어가며 반칙 상황을 최대한 피했다.

장호선은 그쳐 상황이 와도 쉼 없이 바로 지영을 몰아붙였다.

그와 붙어가며 지영은 느꼈다.

그는 공격을 걸면서도, 지영을 배려하고 있었다. 한 선수가 자신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받아들여, 모션도 크게 주며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는지, 버틸 수 있는지를 몸으로 가르쳐 줬다.

이런 지도, 아주 오랜만에 받아서 감사하면서도, 새삼 나이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차이가 아쉬웠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 결국 지영은 넘어가지 않고 5분을 보낼 수 있었다.

“고생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래.”

후…….

진이 빠진다.

인사를 하고 선수들의 틈으로 돌아온 지영은 숨을 몰아쉬었다. 딱 5분. 고작 5분으로 아귀가 저릿저릿했고, 팔뚝이 부들부들거렸다. 한계까지 힘을 쓴 탓에 근 경련이 살짝 와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목표로 했던 것은, 지켰으니까.

잠시 뒤 정규훈련 시간이 끝나고 부산체고와 연습 시합을 하는 걸로 합동훈련은 실질적으로 끝났다. 내일은 오전에 학교끼리 볼 한번 차고 끝나기 때문이었다.

나쁘지 않은.

아니, 지영에게도 도움이 된 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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