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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18화 (18/538)

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8화

18화. 시합이 끝나고 난 뒤(3)

방송, 방송이라.

사실 카메라 앞에는 몇 번 서본 적이 있었다.

회귀 전, 초등학교 때 소년체전 1등을 하고 초등부 최우수선수가 되었을 때도 한 번 섰고, 중학교 때도 소체 전에 충북 방송사에서 유망주들 인터뷰할 때도 섰었고, 고등학교 때도 사고 며칠 전 인터뷰를 했었다.

하지만 인터뷰는 소감 몇 마디, 아니면 시합을 어떻게 하겠다 같은 각오 몇 마디가 전부였다.

그리고 그런 인터뷰와 지금 이선영이 제안하는 방송은 아예 다른 거였다. 하지만 흥미가 돋는다고 무턱대고 덥석 물 수는 없었다.

“인생극장, 뭐 이런 건가요?”

지영이 그렇게 묻자, 이선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생극장.

보통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조명하지만 그러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 한 인간의 인생을 담는 다큐멘터리.

그런데 그런 느낌이라면, 조금 꺼려졌다. 일종의 선입견이 지영에게도 있던 탓이었다. 그런 지영의 기색을 읽었는지, 이선영이 얼른 말을 이었다.

“물론 테마가 다르니까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완전히 다를 거예요.”

“테마가 다르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인생극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죠. 사실 지영 군은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이미 어느 정도 정상에 선 선수잖아요?”

“…….”

이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지영을 이채롭게 보던 이선영이 말을 이었다.

“그런 선수의 인생보다는, 그냥 뭐에 관심이 있는지, 운동은 어떻게 하는지, 요즘 많이 하는 관찰 예능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저희가 인력이 부족해서 전문 업체처럼 스타일리시하게 뽑지는 못해도, 이 친구가 편집 하나는 기가 막혀서 그런 느낌은 전혀 안 나게 해줄 거예요.”

“…….”

이어진 이선영의 말에도 지영은 묵묵부답이었다.

하지만 거부감이 있는 얼굴은 아니라 이선영은 조금 안도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고1인데, 와 진짜 쉽지 않은 애네?’

솔직히 좀 들뜰 줄 알았다.

이제 고1이고, 아무리 경기에서는 차분한 모습을 보여줘도 실제로는 방송 얘기를 꺼내면 좋아하거나 그럴 줄 알았다. 왜 보통 이 또래 애들이 이런 관심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황금세대라고 불리는 천재들 중에 한 명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호기심을 보일 줄 알았다.

그런데 딱 호기심 정도에서 끝났다.

인생극장과 같다는 자신의 대답에는 바로 거부감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어서 설득했는데도, 감정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게 그녀는 신기하면서도 좀 소름이 돋았다.

마치 세상의 풍파를 겪은, 그런 인간과 마주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숱하게 취재한 사람들 중에도 당연히 이런 느낌을 주는 인간들이 많았다.

기업, 정치, 사법, 사학, 의료에 종사하는 인간들 중, 어느 정도 연륜을 먹으면 능구렁이처럼 변해 속을 전혀 내보이지 않는 단계로 변하는 이들이 있는데, 눈앞에 지영이 딱 그 단계에 들어선 인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와…….’

그래서 속으로 감탄을 흘리는 이선영.

그런 그녀는 지영이 어떻게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는지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회귀 전, 지영은 기본적으로 아주 많은 연민의 눈초리를 받았던 인간이었다. 일단 걷는 걸음걸이부터 정상적이지 못해 지나가던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잠깐이라도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보고 갈 길을 갔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시선을 견뎌내려면, 무뎌져야 했다.

겉도 속도,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너무 힘들어져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지영은 감정을 필요한 때만 꺼내서 썼다. 기쁜 감정도, 슬픈 감정도, 다 필요할 때만 꺼내 썼다.

살기 위해서, 감정조차 죽이면서 살아야 했던 게 바로 눈앞에 강지영이란 청년이었다. 물론 마지막에는 그마저도 한계에 봉착했었지만 말이다.

그런 지영이, 이번에는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재밌겠네요.”

“어? 아, 괜찮죠?”

“네. 특히 성진이가 좋아하겠어요. 그 친구는 주목받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아, 귀공자가 그런 성격인가요?”

“하하, 성진이 별명도 아시네요? 네. 맞아요. 주목받길 좋아해요.”

“오오…….”

메모메모.

얼른 수첩에 메모하는 이선영을 보며 지영은 속으로 쓴웃음을 흘렸다.

사실 이성진이 그런 성격이 된 건, 좋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황금세대에는 엄청난 부잣집 아들들은 없었다. 하지만 불우했던 시간을 보낸 친구는 있었다. 그게 바로 이성진이었다.

‘호스트바에 다니던 아버지와 룸에 다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니…….’

이는 실제로 이성진이 황금세대에게만 밝힌 사실이었다.

이성진의 아버지는 호스트바 출신이고, 그 아버지가 손님을 상대하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룸을 찾아다니다가 만난 게 바로 성진이의 어머니였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이성진은 보통 그러하듯, 불우했다.

이성진의 부모님은 자식을 낳았지만 관심이 없었다.

하루에 한 끼도 겨우 먹었고, 그래서 관심을 갈구하기 위해 억지로 웃으며 환심을 샀다. 혼인신고조차 하지 않아 어머니랑 같이 산 이성진에게 어느 순간부터 관심은 삶에 가장 중요한 기둥이 되어버렸다. 관심을 받아야 동네 할머니나 아줌마, 아저씨들이 뭐라도 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성진의 관심병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황금세대 중에서도 유일하게 활발하게 SNS를 하는 것도 이성진인데, 그런 이유 또한 타인의 관심 때문이었다.

만약 그 친구에게서 관심을 빼앗아버리면, 아무리 황금세대 전원이 곁에 있다고 하더라도 물을 주지 않은 나무처럼 서서히 말라 죽어갈 것이다. 그만큼 그 친구의 아픔은 깊었다.

“그럼 지영 군에게는 그런 마음은 없어요? 보니까 SNS는 만들어만 두고 관리도 안 하는 것 같던데.”

지영의 상념을 끊으며, 이선영이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 좋은 상념이 아니었는데, 그걸 자연스럽게 끊어준 이선영에게 속으로 감사를 보낸 지영은 질문을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시간이 없어요.”

“네?”

“저나 제 친구들을 황금세대라고 부르며 천재라고 하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호호, 너무 겸손한 거 아닌가요?”

“아니요. 실제로 저희는 자는 시간이 얼마 안 돼요. 새벽 운동 하고, 오전에 수업에 들어가서 진도를 따라가는 건 진짜 힘들거든요. 그리고 수업 끝나면 또 훈련이고. 저녁에도 각자 훈련이나 공부를 해요. 두 가지를 병행하다 보면 정말 정신적으로 엄청 지쳐요. 그래도 쳐지기는 싫어서 다들 이 악물고 합니다. 이건 한결이 빼면 전부 똑같아요.”

“아, 그래요?”

“네. 그래서 보통 주말에는 웬만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거의 뻗어 있어요. 하하.”

오…….

그건 또 몰랐다며, 메모하는 이선영.

그리고 이 말도 거짓말은 아니었다. 아마 강한결을 빼면 모두가 그럴 거다. 지영도 진도를 따라가려고 일주일에 세 번은 저녁 운동을 쉬고 공부만 한다. 그래서 겨우 반에서 겨우 상위권 턱걸이였다.

다른 또래 애들이 들으면 배때기 부른 소리 한다고 하겠지만, 대신 황금세대도 희생하는 게 있었다.

바로 자유였다.

운동, 그리고 공부.

병행하기 힘든 두 가지를 동시에 하다 보니 또래 애들처럼 놀 생각은 꿈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딱 꿈에서만 가능했다. 그만큼 많은 것을 포기하고 얻은 것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외롭거나 그러진 않았다. 황금세대 전원이 함께 있었으니까.

하지만.

“물론 재능도 어느 정도씩은 있을 거예요. 한결이만 해도, 저희는 정말 죽을 것 같은데 공부와 운동 전부 최상위 클래스를 유지하는데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으니까.”

“그럼 지영 군도 어느 정도 천재성은 있다고 인정하는 거죠?”

“뭐, 저는 공부보다는 운동 쪽에는 좀 타고났다고 생각은 해요.”

지영은 솔직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주의였기 때문에 그 물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겸손? 그게 밥 먹여주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게다가 사실 이런 것도 좀 해보고 싶었던 지영이었다. 회귀 전의 삶이, 아직도 지영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때는 잘나갔는데란 말은 이제 넌덜머리가 나니까.’

정상적인 은퇴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호, 시원하게 인정하니까 오히려 제 속이 다 시원하네요. 그럼 적당히 천재다. 이렇게 메모할게요?”

“하하, 네.”

“그럼 이제 좀 다른 얘기를 해볼까요? 저번 주에 있었던 결승전이 도마 위에 올라 네티즌에게 신나게 씹혔어요. 잘 아시죠? 호호.”

“네, 물론이죠. 제가 뛰었던 시합인데요.”

“솔직히 심정이 어떠세요?”

“음…….”

사실 그거에 대한 감정은 그렇게 남아 있지 않았다.

일단 이우진이 시합을 포기해 금메달을 딴 것도 있지만, 어차피 그러지 않았어도 금메달을 딸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우진 그가 좋은 선수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실력 차이가 너무 났다.

회귀 전, 사고가 나기 전에 붙었어도 실력 차이는 제법 났다. 이우진이 중학교 때까지 일본에서 유도를 배워서 한국으로 와 지영과 붙어본 적은 없지만, 사고가 없었고 무난히 지영과 붙었다고 해도 아마 지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거기에 지영은 회귀를 하며 10년이란 시간의 경험, 연륜을 쌓아버렸기 때문에 시합을 보는 눈 자체가 달랐다.

그게 두 선수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놓았다.

“음, 뭐 심판 판정이 조금 이상하다는 건 바로 느꼈어요. 그런데 그렇게 신경 쓰진 않았습니다.”

“어째서요? 이길 자신이 있어서였나요?”

“음…… 네.”

이번에도 지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래,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건방진 말로 들리겠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걸 굳이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대화가 어떻게 나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상하게 나가진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이선영.

이 사람은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이고, 이런 사람들은 결코 남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반대가 되면 모를까…….’

그런 마음에서 기인한 솔직한 대답에 이선영은 이번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무 솔직했나요?”

“아뇨. 이번엔 그 또래의 패기처럼 느껴져서 좋았어요. 호호.”

“다행이네요. 지금 대화도 나중에 방송에 나가거나 그러나요?”

“아니요. 일부 삽입은 되겠지만 지금 대화는 영상으로 찍고는 있는데 이건 추후 지영 군과 상의를 전부 하고 담더라도 담을 거니까 괜찮아요. 그러니 지금은 그냥 사전인터뷰. 그게 뭔지 아시죠? 그런 개념이라 생각해 주세요.”

“저 아직 허락 안 했는데요?”

“네? 아까 재밌겠다면서요?”

그 말에 지영은 씩 웃었다.

“기자님인 만큼, 허락과 재밌겠다의 차이가 뭔지는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하하.”

지영의 대답에 한 방 먹었다는 표정이 된 이선영. 그런 이선영을 꼬시다는 눈빛으로 보는 김선욱. 두 사람을 보며 잠시 웃은 지영은 바로 이어서 하려던 말을 던져줬다.

“아직 부모님한테도 물어봐야 하고, 친구들한테도 물어봐야 해요. 거절은 아니니까 화내진 마세요.”

“아 맞다. 제가 너무 급발진했던 거구나?”

조금 당황했는지 말이 좀 꼬였지만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상관없었다.

“아마 거절하진 않을 거예요. 저희 어머니도 집만 공개되는 거 아니면 괜찮으실 거고.”

“그래요? 그럼 기대해도 되는 거죠?”

“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아까도 물었던 건데 저를 방송에 왜 내보내려고 하는 거예요? 저처럼 생기고, 운동 좀 하는 애들은 찾아보면 많을 건데. 왜 축구천재 박지원도 있고.”

“으음, 박지원은 제가 예전에 우연찮게 한 번 봤는데, 싸가지가 더러워요. 그래서 갠 패스.”

“아, 그래요?”

“네. 그래서 지영 군이 최적이에요. 그리고 지금 당장 지영 군에 대한 관심이 많잖아요? 그걸 좀 기자로서 해소하고 싶기도 하고요. 겸사겸사, 지영 군에게 푹 빠진 여자들의 궁금증도 좀 해결해 주고 싶기도 하고. 호호.”

이선영의 말에 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추 이해가 갔다.

물론 저게 전부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르는. 다른 사람이 나를 봤을 때만 보이는 뭔가가 있나?’

그렇지 않으면 굳이 인터뷰나 취재도 아니고, ‘방송’을 해보자는 말은 안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잠깐 의문을 가진 걸로는 답을 도출할 수 없었다.

“그럼 좋은 소식 기대해도 되는 거죠?”

“아마도요? 그런데 실망하실까 봐, 그게 걱정이네요.”

“작게 충주 방송에나 나갈 거예요. 저희 SNS에서 업데이트도 될 거고. 그 정도는 뭐 크게 문제도 안 돼요. 그러니 너무 부담가질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없는 그림은 전문가가 만들어줄 거예요.”

“어, 직접 안 하세요?”

“기자가 방송 제작에 뭘 알겠어요? 알아봐야 수박 겉핥기식이지. 하지만 걱정 마세요. 아무리 충주의 작은 방송국이지만,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도 전부 프로시니까. 그리고 마침 적임자도 알고 있어요. 저랑 같이 사고 쳐서 고향으로 추방된 친구인데, 아마 그 친구가 맡으면 제법 퀄리티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예요. 호호.”

“…….”

사고 쳐서 고향으로 추방됐다니.

그 말에 조금은 못 미더워진 지영이었지만, 그래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내게 새로운 것을 제안해 준 사람이니까.’

그것만으로도, 한번 믿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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