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7화
17화. 시합이 끝나고 난 뒤(2)
“야, 이선영아. 요즘 너 이상한 데 꽂혔다? 매번 사건 사고만 파던 애가?”
자신이 가져온 계획서를 보던 임호정의 말에, 이선영은 씩 웃었다.
“제가 뭐 항상 자극적인 것만 찾는 줄 아세요? 그땐 그냥 그런 게 눈에 보이니까 파본 거지.”
“웃기시네. 목숨 걸고 대정 그룹 파다가 너 여기로 날아왔잖아. 너 그때 진짜 안 죽은 게 용한 거야.”
“흐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깡패들 회장 감옥 보내고, 살아남은 게 용하긴 하죠. 그래서 어때요? 20분, 3부 편성 받을 만하죠?”
“흐음. 나쁘진 않네. 나쁘진 않은데.”
이선영이 말을 돌리자 임호정은 말끝을 흐린 뒤 그녀가 가져온 계획서를 다시 읽었다. 단순히 계획서만 가져온 게 아니라 벌써 조사한 자료도 꽤 됐다. 게다가 USB에 담아온 영상은 벌써 편집까지 되어 있었다.
이건 어제 가져다준 거라, 벌써 다 확인한 계획서였다.
“신기하긴 하다. 이런 애가 충주에 있었네?”
“뭐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죠. 네 생명을 구한 운동선수가 알고 보니 엄청난 유망주였고, 청주에서는 아이돌급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인성, 공부, 운동,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완벽한 엄친아가 충주에 있을 줄 누가 예상했겠어요?”
“그렇긴 하네. 제보받은 거 보면 진짜 다 좋은 말만 있어. 어이쿠, 왕따도 구해줬네? 심지어 한두 명도 아니고.”
“그건 저도 좀 놀랐어요. 중계방송 중에 그런 말이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이선영이 그날 중계방송 댓글에 제보를 받는다는 글을 달고, 시합이 끝나고 충주로 돌아오는 도중 메일함을 열고 깜짝 놀랐다. 평소에도 제법 메일이 많이 오는 편이긴 한데, 그날은 정말 유독 많았다.
적어도 백 개 이상.
고작 학생 다섯 명에 대한 제보가 100개가 넘게 메일로 들어와 있던 거였다. 그걸 모두 꼼꼼히 살펴본 결과, 그중 90%가 내 친구의 선행을 자랑하는 제보였다.
아까 말했던 왕따도 그렇고, 고민이 있으면 친절히 들어준다든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몸소 나서서 해결한다든가, 학업을 못 따라오는 친구가 있으면 자신의 필기 노트를 빌려주기도 한다든가, 진짜 이건 뭐 유느님을 취재하는 것도 아닌데 선행만이 가득했다.
물론 험담하는 제보도 있었다.
하지만 딱 봐도 앞뒤 말이 안 맞는 게, 황금세대를 질투하거나 아니면 괜히 흠잡고 싶은 프로불편러의 메일로 보였다.
그러니 더욱 궁금증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왕따.
이 사건에도 아주 유명한 게 하나 있었다.
그들이 중학교 때 사건이었다. 한 여학생에게 도를 넘는 짓을 한 일진 무리가 있었는데, 황금세대가 점심시간에 매점을 가다가 우연찮게 건물 뒤에서 일진들이 여학생을 괴롭히는 장면을 목격했고, 주장 강한결이 여학생을 구했다. 그러자 당연히 그에 불만을 품은 일진이 시비를 걸었는데 여기서 강한결과 황금세대의 대응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들은 폭력을 쓰지 않았다.
전원 전국대회 유도 체급별 일인자들이니, 일진들이 아무리 많고 날고 기어도 이들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거다. 그런데도 황금세대는 여학생을 빙 둘레 보호하고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모욕적인 언사와 폭력을 막아섰다.
이에 열 받은 일진이 뺨만 치던 걸 결국 주먹으로 바꿨고, 걷어차고, 나중에는 쇠 파이프를 강한결의 어깨에 휘두르려고도 했다. 물론 쇠 파이프는 강한결의 몸에 닿지 않았다. 인내심이 바닥난 이성진이 ‘제보’에 따르면 ‘원샷원킬’로 일진을 모조리 때려눕혔기 때문이었다.
운동선수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히 문제가 됐는데, 학교 측의 반응도 재밌었다.
연희 재단은 이 폭력 사건에 수사기관의 힘을 동원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형사가 와서 상황을 자세히 파헤쳤는데 당연히 일진들의 악행과 황금세대의 선행을 한 아름 들고 갔다.
그걸로 결정되었다.
일진들은 강제 전학 당했고, 이성진은 교내봉사활동 7일로, 아주 깔끔하게 말이다.
연희 재단이 보여준 대응도 놀라웠지만, 고작 중3이었던 황금세대가 보여준 대응은 더 놀라웠다. 물론 이성진이 이성이 끊겨 결국 사고가 크게 났지만, 그래도 중학생이 보여준 대응이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이런 제보를 이선영이 믿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여러 사람에 걸쳐서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같은 학교 학생으로 보이는 제보자들은 이 이야기를 꼭 언급을 했을 정도였다.
“음, 그래. 20분 3부작 줄 테니까, 해봐.”
“아싸! 고마워요, 언니!”
“이게 확! 빨리 가서 취재나 해! 참, 근데 허락은 맡은 거지?”
“아니요? 오늘 주말이라 충주 온다니까 가서 물어봐야죠. 그런데 저번에 보니까 인터뷰에 거부감도 없고, 아마 해줄 것 같아요.”
“잘 구슬려서 해. 근데 왜 그 다섯 중에 얘야? 스타성으로는 강한결? 주장인 얘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임호정의 말에 이선영은 손가락을 내밀며 휘휘 저었다.
“그건 언니가 지영이 직접 못 봐서 그래요. 직접 보면, 카메라가 담지 못하는 뭔가가 있는 애예요, 강지영은.”
“그 정도야?”
“네. 특히 분위기. 얘는 진짜 분위기가 압권인데…… 어쨌든! 나중에 방송국에 한번 부를 수도 있는데, 그때 한번 보세요.”
“흠…… 그래, 알겠다. 이제 그만 가줄래? 나도 퇴근 준비하게.”
“넵!”
이선영은 경계를 올리고는 잽싸게 국장실을 빠져나왔다.
나이는 고작 마흔다섯이지만, 한때 서울 본사에서도 에이스였던 임호정과의 친분은 그녀에게는 정말 행운이었다. 늦결혼, 그리고 임신으로 인해 충주로 내려간다고 해서 언니 미친 거 아니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적도 있었는데 사람 일 모르는 거라더니, 결국은 그녀와 함께 일하고 있는 이선영이었다.
총알같이 건물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나오자, 저 끝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김선욱이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 썬욱이! 역시 시간은 잘 지킨다니까?”
“괜히 늦었다가 또 누님한테 죽빵 맞으려고요? 어후, 이젠 싫습니다.”
“에이, 연약한 내가 어떻게 사람을 때려? 너 없는 소리 하고 막 그러는 거 아니야. 알았어?”
“……네.”
우웩.
헛구0역질 시늉을 한 김선욱이 운전석에 타자 그녀도 잽싸게 보조석으로 올랐다.
“어디로 갑니까?”
“부민약국 삼거리. 여기서 안 멀어. 어디 보자, 시간이……. 슬슬 왔겠네.”
“그것도 벌써 조사했어요?”
“어려울 거 뭐 있나? 거기 학생들 몇 명만 꾀어내면 되는 건데.”
“……대단하십니다, 진짜.”
“자, 고고!”
“넵!”
그렇게 그녀는 체전이 끝난 주의 토요일에 황금세대 강지영에 대한 취재를, 정식으로 시작했다.
시장 고용주차장에 차를 대고, 지영의 집을 수소문해 찾아가 그에게 허락을 받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영을 보며 그녀는 확신했다.
‘이 애는, 역시 뭔가 달라.’
그게 뭔지 모르지만, 그게 뭔지 이제부터 취재해 보면 알 일.
아주 오랜만에 인간에 대한 흥미가 생긴 이선영은 자신의 앞에 앉는 지영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환한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 * *
“뭐 마실래요?”
이선영의 물음에 지영은 두 사람의 뒤,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잠시 훑었다.
“저는 얼음물이면 돼요. 커피나 주스 같은 건 잘 안 마셔서.”
“그래요? 몸 관리 때문에 그런 건가요?”
“네. 커피도 커피지만 주스 같은 건 혀에 단맛이 돌아서 나중에 더 힘들거든요. 그래서 보통 목마르면 물만 마셔요.”
“오…….”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영은 음료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딱히 건강이나 칼로리 때문이 아니라, 마시고 나면 그때 당장은 좋지만 나중에 혀끝에 맴도는 단맛이 싫어서였다. 그래서 치킨이나 피자를 먹어도 한 컵 정도밖에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황금세대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스포츠음료를 매주 지원해 줘서, 따로 돈을 내고 사 먹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도 여긴 카페니까, 뭐 하나 시켜야겠죠?”
“호호, 아무래도 그게 좋겠죠?”
“그럼 전, 여기 케모마일 티 하나 마실게요.”
“잘생각했어요. 선욱아.”
“아니요. 제가 갔다 올게요.”
일어나려는 김선욱을 제지한 지영은 말릴 새도 없이 움직여 차를 주문하곤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자세를 고친 이선영이 진지한 얼굴로 지영에게 말했다.
“차가 나오기 전에, 일단 지영 군에게 부탁과 허락을 구할 일이 있어요.”
“부탁과 허락이요? 뭔데요?”
“음, 사실 제가 인터뷰라고 아까 말했잖아요?”
“네, 그러셨죠.”
“근데 실은, 그것보다 좀 더 딥한 취재를 하고 싶어요.”
“딥하다면…… 어느 정도로요?”
반짝.
지영이 조금은 호기심을 내보이자 이선영의 눈빛이 슬쩍 변했다.
“20분 3화 분량의 방송이에요.”
“네? 방송이요?”
“네. 음, 취재만으로는 지영 군에게 지금 몰린 관심이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서요. 지영 군도 알죠? 저번 주 전국체전 이후, 거의 3일간이나 ‘황금세대’, 전국체전 유도, 편파 판정, 그리고 강지영이란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거요. 아, 지영 씨는 아직도 30위권에 있네요.”
“아…… 네. 알고 있어요.”
지금은 그래도 20위권 밖으로 밀려났지만 확실히 그때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도 올랐었다. 그것도 잠깐이 아니라, 무려 3일이나 올랐었다.
그렇게 검색어에 오른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편파 판정 때문이었다. 권력에 굴복한 심판이 경기도 이우진에게 유리한 판정을 계속해서 내렸는데, 심판이 자신의 편인 이우진은 나중에 시합을 던졌고, 지영은 오히려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상대를 몰아붙이고, 경기가 끝나고 고개를 푹 숙이며 사죄하는 이우진을 일으켜 안아주는 걸로 화제가 되었다.
그 경기는 당연히 네티즌의 분노를 일으켰다. 시합을 던진 이우진. 끝나고 사과하는 이우진, 그걸 받아주는 지영. 이런 모습이 나갔으니 화가 안 나기를 바라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경기 영상은 곧장 SNS로 옮겨가 박제가 됐고, 동시에 화제도 같이 끌었다.
그 결과, 황금세대와 강지영이 검색어에 오르는 진귀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하지만 관심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보통은 이런 관심은 며칠이 지나면 사그라들게 마련이지만 지영의 경우는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
바로 외모 때문이었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잘생긴, 아름다운 남성과 여성에게는 호감을 보인다. 지영의 경우가 그랬다. 당장 SNS에서도 연예인이 아닌데 잘생기고, 아름다우면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이는 지영이라고, 황금세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사건이 중심이고, 실력은 정말 출중하고, 지인들, 같이 학교 다니는 학생들의 입에서 황금세대에 대한 얘기들이 풀려나오자 대중들의 궁금증은 꺼지지 않고 오히려 불이 붙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신기하게 지영에게 아주 많은 관심이 쏠렸다.
여기에 다시 하나가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지영이 승아와 승아의 어머니 선미 씨를 구하는 장면이 따라붙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스타덤은 아니지만, 확실히 주목받기 시작한 지영이었다.
그걸 지영이라고 모르지 않았다. 쉬는 시간만 되면 반 애들이 와서 조잘조잘 다 말해줬기 때문이었다.
“그 궁금증을 풀어주는 방송, 어때요?”
“잠깐 화제가 된 걸 알겠는데요. 그걸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지영은 순수한 궁금증으로 물었다.
회귀 전에도 이런 일은 당연히 없었다. 그러니 갑작스럽기도 했다.
그런 지영의 궁금증과 걱정을 이선영은 단번에 일축했다.
“장담하는데, 엄청나게 볼걸요?”
“음…….”
“인간은, 특히 그중에서도 여자란 동물은 잘생긴 사람과 단 거에는 환장하는 법이거든요.”
“…….”
그래?
해볼까?
‘남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거고, 회귀하지 않았다면 꿈도 못 꿨던 거니까…….’
그래서…… 흥미가 돌았다.
회귀 전, 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갈망은 아직 1%도 채우지 못한 지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