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유도 천재는 다재다능 19화
19화. 시합이 끝나고 난 뒤(4)
좀 더 세부적인 대화는 지영이 허락을 맡은 뒤에 나누기로 하고 이선영 기자는 돌아갔다.
같이 나와서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집에 가려는데 누가 뒤에서 불렀다.
“저…….”
“네?”
고개를 돌려보니 앳된 여학생 둘이 서 있었다. 주말인데도 학교를 갔다 왔는지 교복을 입고 있었다. 교복도 낯이 익었는데, 여상에서 디자인고로 바뀐 학교의 교복이었다.
“저, 혹시 강지영 선수 아니세요?”
“어…… 맞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맞죠! 와! 저 중계 봤어요!”
체전도 준결승부터 결승까지는 중계해 준다.
그래도 이렇게 빨리 알아본다고?
지영은 그런 의문을 가졌지만 그건 지영이 잘 모르고 생각한 의문이다. 아까 이선영이 말했던 것처럼 여자들은 맛있는 것, 그리고 잘생긴 것에 대한 집중도가 정말 남다르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남자도 똑같았다. 당시 유도 중계는 훈남들 대거 출연으로 인해 SNS를 타고 빠르게 퍼져 생방송도, 그리고 인터넷방송도 시청률과 조회 수가 아주 잘 나왔었다.
“금메달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저 사인 좀 해주세요!”
“네? 사인이요?”
연예인이 아니라서 당연히 지영은 사인이 없었다. 그래서 난감한 표정을 짓자 가방에서 연습장을 꺼낸 여학생 둘이 펜과 함께 내밀었다.
“그냥 이름만 써주셔도 돼요!”
“아, 네.”
이렇게 알아봐 주고 하는 게 사실 좀 멋쩍었다. 회귀 전, 그리고 사고 전엔 여자들의 관심에 무관심했었다. 지나갈 때마다 힐끔힐끔 보는 것도 내성이 생겨서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지영은 정말 많이 변했다. 머리를 길게 길러 얼굴의 태반을 가렸고, 절룩이기까지 하니 지금 같은 시선을 받을 일도 없었다.
있다면, 연민 섞인 시선일 뿐.
그래서 좀 신선하면서도, 신기했고, 감회도 새로웠다.
“네, 그럴게요.”
지영은 그녀가 건네준 펜으로 연습장에 이름을 휘갈겨 적었다. 그러자 선화에게! 수능 대박 나세요! 이렇게 적어달라는 추가 요청이 들어와서 그것도 적어줬다.
옆에 있는 친구도 마찬가지로 사인을 해줬다. 그렇게 사인을 해주고 나자 셀카도 함께 찍어주면 안 되냐고 해서 지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보면서 이렇게 좋아해 주고, 관심도 가져주는데 고작 셀카 따위가 뭐가 문제겠나.
찰칵! 찰칵! 뽀샤시 효과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샷과 그냥 적당히 보정이 들어간 샷 하나, 그리고 일반 샷 하나까지 찍고 나서야 두 여학생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카페로 들어갔다.
“하하…….”
신기했다.
연예인이 된 기분 같아서.
사고 전에는 그냥 이런 시선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그걸 빼앗겼다가 다시 찾아 느끼는 기분이 정말 신선했다.
“와, 존잘 진짜…….”
“이거 별스타에 올려도 돼요?”
“네. 그럼요.”
“아싸!”
이런 걸 팬서비스라고 하던가?
그래도 된다고 하니까 자기들끼리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여학생의 에너지는 진짜, 엄청났다. 수능 대박 나게 해주세요라고 적어달란 걸 보면 두 살 위겠지만 지영은 스물일곱까지 살다가 회귀한 인간이라, 그냥 귀엽게만 보였다.
그렇게 나름의 팬 서비스를 해준 지영은 집으로 돌아왔다.
의미가 남다른 신호등을 건너 시장을 통과해 집 앞으로 가니, 낯익은 덩치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 석아.”
“지영이 왔구나.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데, 잘됐다.”
폰을 보고 있던 황석이 지영의 부름에 도로 그걸 주머니에 넣고는, 세상 순한 미소를 지었다.
“짠! 안뇽!”
그런 석이의 뒤에서 휙 튀어나오는 머리 하나.
황석의 소꿉친구이자 현 여자친구이며, 미래의 와이프가 되는 한은정이었다.
“어, 은정이도 왔네. 오랜만이야.”
“흐흐, 오랜만용! 지영이 너너! 자꾸 잘생겨진다? 우리 석이보다 잘생겨지면 내가 어떻게 한다고 했지?”
“글쎄? 뭐라고 했더라?”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기억하겠나.
한은정.
지영은 회귀 전, 그리고 지금까지를 통틀어서 어머니를 빼고는 한은정만 한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한 병원에서 거의 동시에 태어난 둘은 신기하게도 집도 서로 옆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둘은 자연스럽게 어울렸고, 어린이집,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다. 실제로 지금도 한은정은 연희고 학생이었고, 나중에는 대학도 같이 간다.
그런 한은정은 황석이 사고가 나고, 모든 수발을 들었다.
버스에서 떨어졌을 때 이성진 다음으로 부상이 심했던 게 황석이었다. 이유는 하나, 앞에 있던 이성진 말고,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둘을 끌어안고 거의 모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허리가 제대로 나갔고, 발목도 비슷하게 다쳤다, 억지로 힘을 준 대가로 황석은 지영만큼이나 구부정하고, 절룩이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황석을 끝까지 케어하고, 자기가 프러포즈까지 해서 결혼에 골인한 게 바로 한은정이었다. 황석을 그렇게까지 챙겨준 한은정은 지영에게도 은인이었다. 그의 결혼식에서…… 신부 대기실까지 찾아간 지영이 그녀의 손을 잡고 정말 고맙다고 눈물까지 흘렸을 정도였다.
그런 한은정을 다치지 않은 상태에서 보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다.
“또또, 흥. 그래도 우리 석이 웃음이 더 예쁘지롱!”
“그래, 네 남자가 최고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아니! 지영아! 이렇게 세워두고 그걸 묻는 거니?”
“아, 쏘리…….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간 지영은 두 사람을 거실로 안내하고, 냉장고를 열어 어머니가 언제나 만들어두는 보리차를 두 잔 따라 가져다줬다.
“너는?”
“나는 아까 카페서 마셨어. 그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그것도 둘이 같이?”
벌컥벌컥!
지영의 물음에 보리차를 원샷한 한은정이 열불이 터진다는 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 남자께서, 충주에 가신 강지영 님이 그렇게 걱정이 된다고, 오랜만에 데이트인데 가봐야겠다고! 고집을 고집을 아주 똥고집을!! 그렇게 부려대서! 그래서 왔습니다.”
홱!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황석을 째려보는 한은정. 그런 한은정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황석. 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나? 나 왜?”
“음, 괜찮나 싶어서 찾아왔다.”
“그러니까 뭐가 괜찮냐 싶어서 찾아왔냐니까? 나 어디 아픈 데도 없었는데?”
“…….”
지영의 말에 대답 대신 빤히 바라보는 황석.
지영은 그런 황석의 시선에, 속으로 와, 진짜 대단한 놈…… 하고 중얼거렸다.
우리 중에 덩치는 제일 큰 친구다.
그래서 둔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와 정반대로 황금세대 중에 가장 세심하고, 섬세한 친구가 황석이었다.
‘섬세하고, 헌신적이고.’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구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게 아무리 가족이고, 정말 진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 사이라고 해도 말이다.
“달라졌다.”
“뭐가?”
감이 좋다 못해 무서운 황석의 말에 지영은 이번엔 솔직할 수 없었다.
‘10년을 더 살다가 왔다고 하면, 아무리 석이라도 믿지 않겠지.’
게다가 그냥 10년도 아니다.
절망만 존재하는 나락에서, 모두가 함께 몸부림쳐야 했던 10년이었다. 그 10년은 아무도 모르는 게 좋았다. 오직 자신만 간직하는 게, 최선 중에 최선이었다.
“뭐라 콕 찍어 말할 순 없지만, 달라졌어. 지영이 네 분위기가.”
“분위기는 뭐 달라질 수 있지. 내가 시합 때 예민해지는 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 그 말투도.”
“…….”
귀신같은 놈.
사실 사고 전 지영은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황금세대 중에서도 과묵 라인을 지키는 게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황석의 말에 받아치다 보니 확실히 말이 많았다.
‘게다가 말투도 많이 변했고.’
본래는 좀 시니컬한 면이 강한 지영이었다. 이는 대화는 물론 행동에서도 자주 드러났다. ‘지영의 그 날’이라는 말이 그냥 생겨난 게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의 지영은?
“음, 그건 그러네. 지영이 지금 너무 순한 맛인데?”
“응?”
“너 내가 인사하면 보통 어, 은정이 오랜만. 하고 끝이잖아. 내가 황금세대를 부모님들 빼면 아마 가장 오래 봤을 건데, 그중에서도 너랑 나눈 대화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잖아? 아냐?”
“…….”
그랬지……. 분명 그랬다.
지영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랬나?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 미치게 촉이 좋은 커플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자신을 궁지로 몰고 있었다.
하지만 지영은 그래도 10년은 이들보다는 더 살았다.
“그냥, 좀 변해보려고.”
“갑자기?”
눈을 쪽 찢으며 의심하는 한은정에게 지영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머니를 팔았다.
“시합 전에 집에 왔을 때, 어머니가 좀 외로워하시는 걸 봤어. 어머니는 집에 혼자 계시고, 내가 올 때만 집안에서 말할 상대가 있는 건데, 그때도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시합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좀 서운하셨나 봐.”
“아…….”
“나중에 설거지하는 모습 보는데, 외로운 게 막 눈에 보였어. 그래서 좀 변하려고 다짐했어. 그게 티가 많이 났나 보네. 이상해?”
끝에는 이상해? 라고 물어서 지금 자신이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니냐며 대를 슬쩍 던져주자 한은정이 냉큼 바늘을 물었다.
“아니아니! 밝아지면 좋은 거지!”
“…….”
다행이었다.
촉이 좋은 만큼, 그만큼 단순해서.
하지만 황석은 그저 처음과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 식은땀이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아, 이놈 진짜…….’
그런데 오죽했으면 여기까지 왔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친구가 고마웠다.
“걱정 고맙다, 석아.”
“…….”
지영이 그렇게 부드럽게 말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황석. 아직 눈빛에 담긴 걱정이 전부 가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영을 이해는 하려는 것 같았다.
겨우 넘어갔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남몰래 쉬자, 한은정이 황석의 등을 팡팡 때렸다.
“지영이 괜찮다니까 내 남자 외간 남자 걱정은 그만!”
“그런 거 아냐.”
“알아. 아니까. 무슨 일 있으면 자기가 얘기해 주겠지. 지영이가 일 생겨도 혼자 끙끙 앓는 타입은 아니잖아?”
“…….”
그 말에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는 황석.
이번엔 걱정보단, 친구에 대한 믿음이 다부지게 담긴 눈빛이라 지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고맙다, 은정이 너도. 근데 두 사람 점심은 먹었어?”
“아니! 갑자기 충주 가야겠다고 해서 끌려왔다니까! 지영아, 밥 사주라!”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아 맞다. 나 옷 좀 사려고 하는데, 시내나 갔다가 옷 좀 사고 밥 먹을까?”
“좋지! 콜!”
“석인 어때? 바로 청주로 갈래?”
“…….”
그러자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 의사를 표현하는 황석.
이럴 땐 또 이렇게 귀엽다. 그렇게 대화를 일단락시키고, 얼른 집을 나섰다.
집을 나서서 시내로 가는 길에, 세 사람은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황석이 워낙에 크고 다부진 체형인데, 워낙에 또 잘생겨서 안 그래도 이목이 쏠리는 편인데 그런 황석의 팔에 한은정이 고목 나무에 매달린 매미마냥 붙어 있으니 더욱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은 한은정의 옆에서 걷는 지영이었다.
황석과 한은정도 선남선녀 커플이지만, 지영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표출하는 외모라 지나가던 행인들이 전부 세 사람을 한 번씩 바라봤다.
“오오, 오랜만이당. 이런 연예인이 된 기분. 흐흐.”
한은정은 신나서 시선을 즐겼고, 지영과 황석은 익숙하게 그 시선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10분쯤 걸어 시내에 도착했을 땐, 더욱 많은 시선이 몰렸다. 한창 유행에 민감한 중고생들이 몰려 있는 시내다 보니까, 지영과 황석을 알아본 학생들이 생겼다.
‘야, 저기 실검 뜬 애들 아니냐?’
‘어디? 맞네. 충주 산다더니 진짜였구나.’
‘진짜 대박…… 아까 한아름이 별스타에 사진 올린 거 구라치지 말라고 지랄 X나했는데…….’
‘와 황석 봐. 저 덩치에 밸런스 어쩔…….’
‘난 저런 얼굴이 좋더라. 되게 듬직하잖아? 겁나 잘생기기도 했고. 강지영보단 황석이 더 내 스탈!’
‘나도! 확 거침없이 막 리드해 줄 것 같아. 흐흐!’
‘근데 저 여자 뭐야? 여친인가?’
‘동생 아님?’
‘어떤 미친년이 오빠 팔에 저렇게 매달려 돌아다니겠냐?’
‘나?’
‘미친년…….’
흐흐.
심지어 옷을 고르는데 이런 소곤거림까지 들려왔을 정도였다. 이쯤 되면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한은정은 역시 한은정이었다.
“호호! 기분이다! 내 남자! 이 누나가 다 사줄 테니까 마음껏 골라봐!”
매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호쾌하게 외치는 한은정 덕분에, 지영은 자신이 진짜 돌아오긴 돌아왔구나라는 걸 새삼스럽게, 다시 한번 깨닫게 됐다.
‘청춘이다.’
깨가 쏟아지는 두 사람을 보며 이 생각도 같이, 덤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아주 잠시나마, 옆구리가 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