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천의 구도자 (2)
‘이게 등천자인가.’
역시나- 그녀는 원작에 나온 대로 따로 무공이나 마법 같은 기예를 익히진 않은 것 같았다. 만상의 눈으로 투시된 그녀의 육체에는 그 어떠한 단련의 흔적도 엿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강인했다.
‘기세가 강해.’
강자의 아우라.
그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그 몸에서부터 풍겨나오는 막대한 기운은 그녀를 휘감고 끊임없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마력은 아무런 규칙도 없이 사지백해에 고루 나뉘어 퍼져있었지만, 그 아우라만큼은 마치 단단하게 정련되고 단조된 철퇴와도 같았다.
기운의 기세로만 판단하면 자신보다도 강했고, 어지간한 절정의 고수보다도 더 압도적인 수준. 이게 원작에서 묘사된 랭커의 강함인 걸까?
‘5성으로는 필패. 6성으로는··· 내력이 부족하겠군. 애매해.’
그녀의 기세와 마력. 그리고 원작에 묘사된 그녀의 ‘특성’을 떠올린 나는 그렇게 판단을 끝마쳤다.
그와 동시에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유천하?”
“예. 그렇습니다.”
“반가워. 이쪽으로 따라와.”
그 말과 함께 그녀는 휙- 우리를 지나쳤다. 별도의 부연설명은 없었다.
그야말로 무관심한 태도.
순간 조금 얼떨떨하긴 했지만 어렴풋이 그녀의 성격을 짐작하고 있던 나는 말없이 그 뒤를 따라갔다.
“하린.”
“······넵!”
“말해준 대로 페루에 이상한 게 있었어.”
“아! 잘 처리하셨나요?”
“응. 대가는 저번에 부탁한 걸로 메꿀게.”
“아, 네! 감사합니다!”
적막한 복도를 걸어가며 그녀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난 정보를 취합했다.
‘역시 원작대로 이하린은 티르유와 별도의 후원 계약을 맺은 상태인가.’
아마도 이하린은 자신의 가호와 ‘원작’의 정보를 바탕으로 티르유에게 여러 위험요소를 알려줬을 것이다. 그 대가로 별도의 지원을 따로 받고 있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부탁한 건 한번 회의해봤어.”
“아! 어떻게 됐어요?”
“일단 보류. 내가 직접보고 결정하래.”
“······넵! 그거면 충분해요.”
무슨 부탁을 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아까 이하린이 공항에서 전화로 뭔가를 계속 이야기하긴 했었다.
그렇게 의아함을 느끼며 잠시 걷고 있으니 곧 복도 끄트머리에 다다랐다.
“들어가자.”
티르유는 주머니에서 꺼낸 카드를 어떤 장치에 꽂았고, 그러자 이내 한 쪽에 있던 넓은 문이 자동으로 열리며 그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치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내 눈에 들어오는 건 복잡해 보이는 기계와 백색의 구조물.
우리를 데리고 그 앞으로 다가간 티르유는 그제서야 나를 향해 말을 건넸다.
“유천하?”
“예.”
“확인할게. 등천회랑 추천서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고 싶다 했지?”
“그렇습니다.”
“후원이 아닌 계약인만큼 졸업하면 우리와 함께 활동하게 될 거야.”
이곳 또한 하나의 집단.
필요로 하는 대가의 종류가 다를지언정, 도움을 받는 이상 공짜는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는 대가지.’
등천회랑의 교육 기간은 총 3년이었고, 원작대로라면 세계침식은 그 안에 무조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이면 나는 무림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이었다. 물론 받기만 하고 떠날 생각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래.”
단호하게 내뱉어진 내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가까운 곳에 있던 의자에 내려앉았다.
“우리, 그러니까 등천의 구도자는 다른 무엇보다 공략을 중요시해.”
“예.”
그리고는 담담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하린이 설명했던 것처럼 이익보다는 사명감. 권리보다는 의무를 강조하는 곳이야.”
“예.”
“들어오는 지원금은 모두 공략을 위해 쓰여. 우리는 끊임없이 탑에 뛰어들고, 쉴 틈 없이 침식영역에 들어가고, 방어전을 치르고, 역류를 막아내고, 탑을 공략할 거야.”
“예.”
“공략 방식은 너의 자유. 하지만 공략을 등한시하는 경우는 결코 있어선 안 돼.”
“예. 알고 있습니다.”
내 대답은 막힘없이 흘러나왔다.
애초에 내 손등의 업륜이 증명하듯, 만상세계는 침식과 맞서 싸우는 이에게는 그 업에 맞는 대가를 부여한다.
게다가 마수를 토벌하면서 얻는 기운이, 운공으로 쌓는 내력의 양보다 더 많은데 어떻게 공략을 안 하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최대한 탑을 공략할 생각이었다.
그러니 아무 문제 없었다.
‘오히려 개인적으로 공략을 시도할 때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나야 좋은 일이니까.’
애초에 이곳에 소속된다 한들 졸업 전까지는 불필요한 제약이 없었기에 큰 상관은 없었다. 나는 생도 신분으로도 계속 공략을 진행할 생각이었고 말이다.
그런 판단끝에 내린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그녀가 이런 내 사정을 알 리는 없었고, 티르유는 거듭되는 내 대답에 나지막한 우려를 내비쳤을 따름이다. 차가웠던 얼굴 위로 작게나마 염려의 기색이 떠올랐다.
“······정말 괜찮겠어?”
“예.”
“등천의 구도자는 다른 기관들에 비해 사망률이 높은 편이야. 우리는 침식지역에 뛰어드는 걸 망설이지 않으니까.”
“상관없습니다. 저 또한 바라는 바입니다.”
내 대답에 그녀의 눈길이 내게 향했고, 나는 그 시선을 마주 바라보았다. 서로의 시야가 교차한다.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저곳에 손을 올려.”
그리 말한 티르유가 한쪽을 가리켰다.
방 정중안에 놓여 있던 백색의 구조물.
“저걸 통해 자격을 확인할 거야.”
“어떻게 확인이 되는 겁니까?”
“상태창을 통해서.”
순간 타인의 상태창을 어떻게 확인하겠다는 건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생각해보니 원작에서도 그런 묘사가 가끔 등장했던 것 같았다.
나는 구조물을 향해 다가가며 만상의 눈으로 그 속을 들여다보았다.
기계와 연결된 백색의 구조물. 그 내부에는 기하학적인 구조로 짜여진 마법술식과 고요하게 침잠돼있는 보옥이 들어있었다.
그 보옥에선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근원석인가?’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저건 잿빛탑을 유지하는, 그리고 수호자급 마수가 지키고 있는 침식의 원인- 근원석일 것이다.
판단의 근거는 간단했다.
그 내부에 휘몰아치는 마력과 주변의 세계와 동화되어있는 무형의 구조가 마치 업륜과 흡사한 구조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일반적인 물건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티르유가 담담하게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지금부터 뜨는 내용은 연맹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될 거야.”
“······데이터베이스 말인가요?”
“응. 어차피 너는 신원등록이 안 돼 있어서 등천회랑에 입학서를 넣으려면 필수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야. 괜찮지?”
“예. 괜찮습니다.”
내 정보가 노출된다는 게 순간적으로 조금 꺼려지긴 했다만, 생각해보니 큰 상관은 없었다.
이곳에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고작 상태창에 표기된 정보 정도는 별 의미가 없다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무의 경지였고, 그건 단순히 글자 몇 마디로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구조물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치익- 내력과 구조물 속의 보옥이 연결되며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우웅-!
무언가가 나를 훑고 지나가는 느낌.
차원 이동을 경험했을 때, 탑의 세계를 경험했을 때와 어느 정도 유사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렇게 구조물에서 흘러나온 마력은 기묘한 공명을 토해내며 순환을 이루더니, 다시 구조물로 기어들어갔다.
그리곤 방 한편에 놓여 있던 스크린 위로 익숙한 내용의 문자가 떠올랐다.
[유천하]
칭호 : 순례자
특성 : 만상의 눈
등급 : 각성자
가호 : 없음
업륜 : 一
형태가 조금 다르긴 했지만 이건 분명 내 상태창이었다. 그것도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아닌, 전자 기기위에 출력된 상태창.
만상세계가 부여한 기능이 스크린위로 떠오른 모습에 나는 조금 신기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원리인 걸까?
조금 신기하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갑자기 왠지 모를 적막함이 느껴졌다.
“···?”
의아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니 두 사람 모두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러지?
순간적으로 나는 상태창에 문제 되는 내용이 있는 건가 싶어서 빠르게 기억을 되짚어보았지만 이상한 구석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고. 그 순간 이하린이 경악스러운 외침을 토해냈다.
“업륜!!”
***
난데없이 터져 나온 말.
그 반응에 난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업륜이요?”
여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걸까?
아니, 딱히 이상한 구석은 없어 보였다.
원작에서도 업륜은 자주 등장했던 요소이고, 이제 겨우 일 획이 새겨진 정도로는 딱히 놀랄만한 거리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녀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아 보였다.
“도대체 언제···?! 아···!! 설마 그때 수호자급을 처치하신 걸로···?”
“예. 황색탑에서 얻은 업륜입니다.”
이하린이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생각나는게, 그녀에게 업륜에 대해 말해준다는 걸 지금껏 계속 까먹고 있었다.
물론 그건 탑에서 나오고나서 바로 어색한 일이 있었던지라 업륜에 대해 말할 타이밍이 없었던 탓이었고,
이하린 또한 그 사실을 떠올렸는지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는 살며시 내 눈치를 살폈다.
“······저는 붙어있으면서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제가 얘기 하는 걸 깜빡했네요. 아마 얻자마자 바로 사용해서 티가 안 났나 봅니다.”
참고로 업륜은 마력이 차있을 때만 형상이 떠오르는 구조였고, 속에 담긴 기운이 줄어들수록 문양 또한 옅어졌다.
그런만큼 당연히 받자마자 내공을 회복하는데 업륜을 소모했던 내 손등에는 희미한 문양만 남아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업륜에 내력을 주입하며, 그녀들을 향해 손등을 내보였다.
그러자 웅- 하고 짙어지는 손등의 각인.
그걸 확인한 이하린이 다시 한 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짜로 업륜···!”
“진짜 업륜이네···.”
오히려 난 그녀들의 반응이 당황스러웠다.
업륜이 이렇게 놀랄만한 일이었던가?
‘원작에 따르면 대부분 보유했을 텐데?’
분명 기억을 되짚어보면 제대로 된 공략자들은 누구나 다 업륜정도는 소지하고 있었고, 원작의 주역급으로 갈수록 수획씩, 많게는 십 획에 가까운 업륜을 보유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입니까?”
“······오히려 네가 태연한 게 더 신기한데?”
티르유는 내게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채 잠시 설명을 해주었다.
“업륜이 부여되는 기준은 꽤 까다로워. 첫 번째 획은 그나마 여유로운 편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탑 한 개를 경험한 거로는, 특히나 황색탑에서 얻을만한 건 더욱 아니야.”
“그런가요?”
“그래. 그건 단순히 마수를 많이 잡는다고 생기는 게 아니니까.”
그녀가 설명을 이어갔다.
“세계가 칭송하고 만상에 각일될만한 업.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타파하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고, 인과를 뒤틀어냈을 때- 그럴때 주어지는거야.”
“······맞아요! 물론 일 획의 기준은 너그러운 편이라지만··· 그래도 최소한 단신으로 탑을 토벌했다는 수준은 되어야 주어지는 거에요!!”
아-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판단했던 기준은 원작의 내용. 그것도 초반부보단 파워인플레가 일어난 중후반부의 내용이 머릿속에 자리잡혀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내용마저도 주연들의 묘사였던 만큼 당연히 다른 이들에 비해 더 높은 성장세를 보였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기준점이 다를 수밖에.
이어진 이하린의 말이 그런 내 생각을 뒷받침해주었다.
“···저희 또래에서 업륜을 보유한 분은 정말 드물 거에요! 올해 생도들 중에선 사실상 혼자이실걸요?”
그녀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열띤 음성을 토해냈고, 이내 흥분에 들뜬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그마한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니까 정말 대단한 거에요 이건···!!”
“···그렇군요.”
미처 생각 못 한 반응이었던지라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자니 이내 티르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정리했다.
“넌··· 등천회랑에 가기 전까지 기본적인 상식 정도는 배울 필요가 있겠어. 일단 우선 순례자의 자격은 확인했어. 축하해.”
“예. 감사합니다.”
티르유는 황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몇번 내젓더니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 내 상태창을 쭉 들여다보더니 한가지 질문을 건네왔다.
“그것보다 만상의 눈이라는 특성. 어떤건지 설명해 줄 수 있어? 연맹이나 회랑에도 설명을 첨부해야 하니까.”
“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딱히 어려울게 없는 질문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전부 사실대로 말해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어느 정도가 좋을지 잠시 고민했고.
이내 곧 적정선을 정할 수 있었다.
만상의 눈이 아닌 원래의 내 눈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애초에 기존의 내 눈 또한 만상의 눈과 상당히 흡사한 부분이 많았으니 말이다.
만물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파악한다.
무형의 기운을 감지하고, 관측한다.
그 감각은 내가 쌓아온 무공과 만났을 때 비로소 값어치를 증명해냈고, 신교의 인물들은 그 정보의 일부만으로도 내 눈을 경계했을 정도였다.
“제 특성 만상의 눈은 관찰계 특성입니다. 집중하면 마력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데 경우에 따라선······”
그러니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나는 그렇게 판단했고.
“······좋은데? 단일특성이면 모르겠지만 무인이나 마법사가 쓰기엔 굉장히 효율성이 높은 특성이야. 나쁘지 않네.”
그 판단은 적절했을 따름이었다.
***
그렇게 검증이 끝나자 티르유는 한 번 더 계약사항을 조율해보고 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우리는 응접실에서 대기하며 적당히 대화를 나눴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하린이 스마트워치를 열심히 두들기기 시작했기에 나 또한 조용히 업륜이나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1시간쯤 지났을까?
이하린이 마침내 스마트워치에서 시선을 떼고, 무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떠올렸을 때쯤- 티르유가 돌아왔다.
티르유의 손에는 검은색 하드케이스 하나와 몇 가지 서류가 들려있었는데,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바로 내게 계약서를 내밀었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공략자에게 주어지는 지원과 권리.
그리고 몇 가지 의무사항.
‘탑 공략 횟수 기준도 나쁘지 않고, 자체 공략 시도 시 금전적인 지원부터 각종 도구까지 지원된다라···.’
사실 의무라 해봤자 등천회랑 졸업 후 공략활동에 대한 규칙만 몇 개 있을 뿐이라 내게 있어선 상당히 자유로운 계약이었다.
“나쁘지 않네요.”
나는 바로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그렇게 계약서를 전달하자 티르유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이제부턴 너도 등천의 구도자야.”
“잘 부탁드려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얼추 끝난 셈이었다. 추천서를 받아 등천회랑에 입학신청만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티르유의 입에서 상당히 반가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럼 둘 다 이곳에서 입학신청까지 처리해줄게. 그게 편하겠지?”
“넵. 감사합니다.”
“아. 감사합니다.”
이곳이나 등천회랑이나 모두 세계연맹에 소속된 공식기관인 만큼 바로 일 처리가 가능한 모양이었다.
‘내가 하려면 꽤 번거로웠을 텐데.’
역시 이 루트를 선택하길 잘했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옆에 있던 이하린이 티르유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마치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느낌.
이내 티르유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녀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처음에 들고왔던 검은색 케이스를 들어 올렸다.
“그래 이제 계약금을 줄 차례지.”
“······계약금?”
그녀의 말에 순간 반문이 튀어나왔다.
계약금이라면 등천회랑 추천서로 대체하는 거 아니었나?
티르유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케이스를 열어 자그마한 곽을 하나 꺼내 들었고, 그걸 그대로 탁- 하고 테이블 위로 올려놓았을 뿐이었다.
기껏해야 주먹만 한 크기의 작은 상자.
하지만 그곳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기운에 나는 즉시 만상의 눈으로 상자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이건?”
내 눈은 기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음? 뭔지 짐작하겠어? 원래대로라면 적당한 장비를 지원해줄 생각이었는데··· 누구누구 씨 때문에 예정이 좀 바뀌었거든.”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이하린을 바라보았고, 이하린은 그저 소리 없이 멋쩍게 웃어 보였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모습이 시야에 담기고 있음에도 내 신경은 저 작은 상자에서 한치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처음의 케이스와 작은 곽- 이중으로 가려져 있을 때는 불투명했지만 만상의 눈으로 속을 투시했더니 이제는 상자 속에서 일렁거리는 기운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상황. 하지만 내 눈이 잘못됐을 리는 없으니 이건 정말 뜻밖의 사태였다.
······이런 걸 준다고?
“특성이 관찰계여서 그런가? 마력을 감지할 수 있다더니 이런 것도 보이나 보네.”
티르유는 그렇게 말하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표정했던 얼굴에 떠오른 그 감정이 꽤 색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내부에서도 말이 많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한 결과 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어.”
그 말과 함께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던 곽을 손으로 쭉- 밀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자 열어봐.”
“어서 열어봐요!”
“······.”
그녀들의 말에 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상자를 들어 올렸다. 손바닥이 닿는 순간, 내 기감으로도 그 기운이 느껴졌다.
짜릿한 기운이 손을 훑고 지나간다.
“······아.”
철컥- 소리와 함께 열린 상자.
그 속에는 자그마한 구슬이 들어있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영롱한 구슬.
아니, 구슬처럼 보이는 어떤 밀집체.
그 마력의 구조는 내 손등에 있는 업륜과 유사한 파장을 띄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이거 설마 근원석입니까?”
“정확히는 정제된 근원석을 다시 수차례 가공한 물건이지. 정식 명칭은 에테리얼 크리스탈. 일종의 마력 집적체야.”
정제된 근원석을 가공했다고?
나는 에테리얼 크리스탈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물건은 상당한 기운을 내포한 채 고요하게 침잠되어 있었다.
“아. 그쪽 지역에서 익숙할 만한 명칭으로 말해주자면······”
확연히 체감될 정도로 선명하게, 세계의 기운과 동조되어 선명한 존재감을 흩뿌리는 고밀도의 마력 덩어리.
그렇기에 그 기운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내 손에 들어온 게-
“영약. 그렇게 말하면 알겠지?”
정말 말도 안 되는 물건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