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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이 빙의를 숨김-12화 (12/205)

등천의 구도자 (1)

이하린은 정말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나비효과가 일어날 거란 예상은 충분히 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 빙의한 순간부터 이미 원래의 미래와는 다른 변수가 발생한 것이었으니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벌써?

이건 그녀의 생각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었다. 본격적으로 원작이 시작되기도 전에 나타난 변화는 벌써부터 너무나 극명한 존재감을 흩뿌렸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하린은 이 사실을 간과할 수 없었다. 유천하의 재능을 직적 목격한 이상, 만약 자신이 생각한 내용이 맞았다면 이건 실로 믿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물론 이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자신이 묘사하지 않았던 설정 밖의 이야기들도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무리 작가라 한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을 일일이 설정해놓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이하린이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는 부분은 자신이 이 세계를 집필한 원작자라는 것.

그녀가 설정했던 부분들은, 적어 내려갔던 이야기만큼은, 이 세계에 그대로- 그녀만이 알고 있는 설정 그대로 동화되어 있었다.

그녀가 써넣었던 개연성 그대로 말이다.

“······?”

“······.”

그렇기에 이건 명백한 오류였다.

인과가 어긋나고, 개연성이 뒤틀린 상황.

모든 게 들어맞는 세계의 흐름 가운데 확실하게 인지되는 비틀림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실존하는 세계였고, 미래는 분명 인과의 비틀림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하린은 그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렇기에 이 상황은 그녀에게 한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나비효과라면··· 그렇다면······.’

이하린의 이성과 기억은 실타래처럼 얽혀들어 최대한 합리적인 근거를 짜올렸다.

원작과 달라진 유일한 변수는 오직 하나.

그녀 자신이 소설 속에 빙의했다는 것.

하지만 유천하가 생활했다는 곳은 침식 접경지의 틈새. 그렇다면 유천하의 스승님이 타계했다는 것도, 유천하가 세상에 나오게 된 시기도. 모두 그녀의 행동으로 변화가 생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침식현상은 사람의 인과와는 동떨어진 일이었고, 수명 또한 달라질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였다.

‘원작’에 없었던 인물이, ‘원작’의 무대로 들어가게 된 상황. 이 상황을 납득시킬 수 있는 가능성.

만약 원래의 세계선에서 유천하가 등천회랑에 입학하지 못했던 이유가, 원작에 등장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녀의 행적으로 뒤바뀐 것이라면···?

그 개연성은 오직 하나로 귀결되었다.

“······.”

그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하린이 유천하와 처음 마주했던 순간.

그녀가 보았던 광경들.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마수에게 검을 휘두르던 그의 모습. 마수를 앞두고 정신을 잃고 쓰러지던 유천하의 모습.

이하린은 모든 가능성을 떠올린 끝에 결국 그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원작’에서의 유천하는.

원래의 세계선에서의 유천하는.

원래대로라면 죽었을 운명이었던 것이다.

바로 자신과 유천하가 처음 마주친 날.

유천하가 피에 젖은 몸으로 바닥에 몸을 뉘었던 그 날에 말이다!

“······!”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이하린은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표정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두뇌가 삐걱거린다.

“······천하씨는.”

그렇다면 눈앞의 남자는 자신으로 인해 살아난 것이다. 그건 단순히 그 날의 도움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 순간의 구원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 말은 즉.

원래대로라면 죽었을 운명을.

원래의 세계선에서는 죽었을 생명을.

‘원작’에서는 덧없이 스러졌을 가능성을.

“······.”

자신의 손으로 구해낸 것이었다.

“······제가 구한 거였네요.”

“예. 그러셨지요.”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하린의 심장이 무섭게 뛰어올랐다. 가슴을 뚫고 터져나갈 것처럼 무섭게, 그리고 땅을 뚫고 처박힐 것처럼 무겁게.

이하린은 생각했다.

도대체 이 세계에 빙의하고 나서부터.

“······제가.”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렸던가?

자신의 재미를 위해 써내려간 이야기가, 이야기의 흥미를 위해 짜내려 간 설정들이. 이들에게는 일상의 지옥으로 펼쳐지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이하린은 항상 괴로워했다.

“······.”

그렇기에 이하린은 이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그녀의 눈시울은 붉게 달아올랐고, 이러면 곤란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고, 그녀는 창백해진 시야로 유천하를 바라보았다.

“······제가 구했어요.”

유천하만큼은- 적어도 눈앞의 생명만큼은 자신의 손으로 살려낸 것이다.

다른 이들처럼 불확실한 도움이 아니라. 일시적인 구원이 아니라. 원래라면 이 순간 존재하지 않았을 운명을 자신의 손으로 바꿔낸 것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제가··· 구했어요.”

이 세계에서 자신의 손으로 구해낸, 그걸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이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

“······게이트 허가 좀 받고 올게요!”

“······예. 다녀오세요.”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눈동자는 빠르게 입국 허가소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녀가 도도도-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조용히 숨을 내뱉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아까 이하린은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여기까지 오면서 둘 사이에 내려앉았던 분위기는 정말, 너무나도 어색했다.

나는 그런 걸 별로 개의치 않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색했다.

‘······갑자기 왜 그런 거지?’

처음에는 설마 빙의라도 들킨 줄 알았다.

다짜고짜 검강으로 이야기할때는 내가 조금 과했나 싶어 조마조마했고, 뭔가 의심하는 기색에 순간 나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예상과는 다르게 갑자기 그 날의 일- 우리가 처음 마주쳤던 날을 언급하며 이하린이 뜻밖의 감정을 표출한 것이다.

그건 정말이지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이하린의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그런 감정변화가 일어난건지 도저히 모르겠군.’’

혹시 그냥 엑스트라인 줄 알았던 내가 생각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어서 감격했던 걸까?

암울한 원작의 후반부를 떠올리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생각되었다. 그녀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만큼, 심연의 침식을 저지하고자 했었으니 말이다.

애초에 그녀가 등천회랑으로 향하는 데에는, 최대한 더 많은 동료를 모으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얼추 납득이 되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내 실력은 분명 뛰어났고, 원작의 미래를 알고 있을 그녀로서는 어느 정도 마음의 부담이 줄어드는 걸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아무튼 다행이긴 하네.’

뜻밖의 상황이 당황스럽긴 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긴 했으나 이하린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뭐라고 해야 할까.

조금 친절하다고 하면 되는 걸까?

원래 이하린도 친절하긴 했지만 선이 그어져 있는 느낌었다면, 황색탑에서 나온 후부터는 그 선이 아예 사라진 느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그녀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뭐랄까···.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대하는 느낌?

여기까지 오면서도 수시로 나를 힐끗거리면서도 혹시 몸 상태는 어떠냐, 아픈 곳은 없냐, 황색탑에서 충격을 받진 않았냐. 계속해서 내게 신경을 쏟았던 것이다.

정말이지 당황스러운 태도변화였다.

‘뭐··· 일단 결과는 좋으니 상관없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중요한 건 그녀가 날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고, 애초에 그녀의 호의를 얻는 게 내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목적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일.

‘생각보다 계획의 진척이 빨라지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게이트 이용 허가를 받고 있는 이하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빠른 이동을 위해 공간이동 게이트 허가를 받는 중이었다. 허가가 떨어지면 우리는 바로 ‘등천의 구도자’ 본부에 도착할 수 있겠지.

나는 앞으로의 계획을 떠올려보았다.

‘순례자의 길을 통과했으니, 등천회랑에 입학하는 것까진 문제없겠고··· 원작에서도 입학 후 한 달···? 정도는 아무런 일도 없었어.’

현재 등천회랑의 입학식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3주, 아니 2주 좀 남짓한 정도.

그렇다면 첫 번째 메인 에피소드가 시작될 때까지 꽤 여유가 있는 셈이었다. 정확한 타이밍이 기억나는 건 아니었다만 분명 학기 초에 여유가 있었다는 건 확실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대략 2주하고도 약 한 달쯤.

그 시간 동안 내가 해야 할 건 내상을 완전히 회복하고, 이 세계에 제대로 녹아드는 것이다.

원작의 큰 줄기라면 모를까 세세한 부분과 설정까지 모두 기억나는건 아니었기에 그 기간 동안 이 세상과 침식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 정도는 습득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야 계획을 구체적으로 다듬어보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었다.

‘그걸 위해서 계약을 맺으러 가는 거지.’

애초에 나는 그 과정을 원만하게 진행하기 위해 등천의 구도자와 계약을 맺기로 한 것이었다.

등천회랑에 입학하는 이상 내가 해야 할 의무 같은 건 없었고, 소속으로서 지원받을 수 있는 혜택들은 내게 편의성을 제공해줄 테니 말이다.

예를 들면, 저기 이하린이 받고 있는 게이트 이용 허가라든가. 아니면 침식공략 시 제공되는 기본적인 지원과 뒤처리 같은 걸 말이다.

“······해서 둘 다 본부로 갈 거예요! 네. 네넵. 아. 그 부분은 따로 메시지를 보내드릴게요. 이왕이면 꼭 설득해주세요···!”

멀리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이하린과 연락하고 있는 상대는 원작에 나왔던 ‘그녀’ 일테지.

등천의 구도자에는 여러 비중 있는 인물들이 많았고, 그들은 대부분 이 세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강자들이었다.

그리고 이하린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있는 인물 또한 원작에서 꽤 자주 나왔던 사람이었고 말이다.

“······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하니까요. 이전보다도 더더욱이요···! 네. 네! 부탁드립니다!”

무슨 대화를 저렇게 열정적으로 나누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하린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나는 이하린의 목소리를 흘려들으며 원작에 나왔던 그녀- 등천자 티르유 아르파냐에 대한 묘사를 떠올려 보았다.

이제 그녀와 만나 계약만 체결한다면 기본적인 준비는 얼추 끝나는 셈.

게다가 이 기회를 통해 등천자의 무력수위를 중원과 비교해 볼 수 있다면 구체적인 성장 목표치를 다듬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을 따름이다.

***

등천의 구도자.

그곳은 안전과 사익을 뒤로 한 채, 오로지 침식을 저지하기 위해 일생을 불태운 초인들이 모임으로서 창설되었다.

침식과 맞서 싸우는 이들이 승천자를 중심으로 모여들고, 뭉치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그들은 하나의 단체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역사를 지니고 있었기에 등천의 구도자에 소속되는 공략자들은 다른 기관들보다도 침식저지에 최우선으로 앞장섰고.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될 때면 이런 말을 덧붙이곤 했다.

-가장 명예로운 집단.

그것이 이 세계에서 등천의 구도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이었고, 나는 눈앞에 놓인 거대한 건물을 보며 그 내용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인가요?”

“네! 여기가 등천의 구도자 중앙 본부에요.”

단정해 보이는, 그러면서도 굉장히 거대한 규모를 이루고 있는 건물은 단체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처럼 불필요한 장식 하나 없는 백색의 단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규모가··· 더 크군요.”

“대단하죠? 참고로 연맹에서 지원받는 후원금도 상당히 빠방한 편이에요···!”

이곳에 와서 그런 걸까? 아니면 그녀가 공들여 설정했던 단체여서 그런 걸까?

이하린의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그러면 공략에도 당연히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겠네요?”

“넵! 지금에 와서는 가용자금의 80%는 모두 공략에 투자하고 있답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라면 예전에는 아니었나 보군요?”

참고로 원작의 이하린은 설정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었고, 그걸 떠올린 나는 기분이나 맞춰 줄 겸 그녀가 좋아할 만한 반응을 해주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눈빛이 조금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궁금하세요?”

“예. 조금 궁금하네요.”

“······네! 그럼 설명해드릴게요! 사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등천의 구도자에는 따로 운영자금이라 할 게 없었어요. 지금이야 연맹으로부터 공적을 인정받아 이런저런 지원이 들어오지만, 원래는 비영리로 운영되는 NGO에 불과했거든요.”

“그럼 그때까지는 어떻게 운영을 한 겁니까?”

적당한 타이밍에 건넨 질문에 그녀는 눈을 반짝거리며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보수로요! 사람들을 구하려고 탑에 뛰어들고, 거기서 나온 근원석을 팔아다 다시 공략준비를 하고··· 애초에 여기는 그런 분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곳이니까요.”

이하린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건물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천의 구도자는 예나 지금이나, 오로지 침식을 저지하기 위해 활약하는 공략자분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사익과 명예가 아닌 의무를 위해서요···!”

그녀 역시도 이곳에 속해있기 때문일까?

설명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꽤 자부심이 묻어나왔다. 그 목소리가 생각보다 커서 그런지 홀에서 업무를 보던 기관 직원들이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하린은 그에 마주 웃어 보이며 안 쪽으로 경쾌히 발걸음을 옮겼다.

“천중무련, 기원학회, 각성자협회··· 각 기관들이 초인을 양성하고 초인의 이득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라면. 등천의 구도자는 오로지 인류를 위해 모인 곳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래 맞아.”

이하린의 당찬 외침이 끝남과 동시에 저 건너편에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차가운, 그러면서도 강인한 목소리.

우리는 그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게 등천의 구도자야.”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건 선홍빛이 감도는 붉은 머리와 그 차가운 목소리처럼 냉철한 빛을 눈속에 머금고 있는 미인.

“생각보다 빨리 왔네.”

우리를 반기는 것처럼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선 표정과는 반대로 약간의 차가움이 묻어나왔고, 그와 동시에 강렬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강한 기세가 말이다.

“안녕하세요 티르유씨!”

“응. 어서 와 하린.”

그녀- 티르유 아르파냐는 이하린과 인사를 나눴고,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나 또한 그녀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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