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21)
정호준이 탑승한 전용기는 무사히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빨리빨리 움직여!!”
활주로에 무사히 착륙한 전용기는 천천히 배정받은 주기장으로 이동했다. 전용기가 완전히 기동을 멈추자 경호팀과 비서팀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호를 위한 장비를 꺼내는 걸 시작으로 미리 빌려 둔 차량들의 안전을 점검했다.
사전에 먼저 한국에 당도한 경호팀이 충분히 안전 점검한 것을 가져다 놓은 거겠지만 안전, 보안과 관련한 사항은 과해서 나쁠 게 없었기에 조용히 기다렸다.
아리아는 조용히 기다리는 정호준을 보며 말을 걸었다.
“오랜만의 한국이네요.”
작년에 브라질로 날아가 구단 일을 처리한 뒤 한국에 방문해 공장 확장식에 참석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호준 혼자 한 일이다. 아리아의 말처럼 함께 한국에 방문한 건 꽤 오랜만이었다.
감상에 젖은 건지, 너 혼자 해외여행 갔다고 추궁하는 여자어인지 판별이 안 가서 잠깐 고민하던 정호준은 차분하게 대꾸했다.
“아리아도 나도 바빴으니까요. 이번에는 일로 왔지만, 다음에는 가족여행으로 방문해요, 우리. 주문한 메가 요트가 올해 말쯤 완공된다니까 내년에 하와이, 일본, 한국. 이렇게 여행코스 짜 볼게요.”
정호준은 완벽한 회피기동을 선보였고, 트집 잡을 거리가 마땅치 않았는지, 아니면 그냥 감상에 젖었던 게 맞았는지 아리아는 웃으면서 기대하겠다는 말을 뱉었다.
“대표님, 확인 작업 다 마쳤습니다. 차로 모시겠습니다.”
정호준을 경호하는 현장에 있고 싶다는 이유로 임원 승진을 거부한 브리안 경호 팀장이 조심스럽게 차량 탑승을 권했다.
‘좀 더 빨리 차에 타라고 했으면 좋았을 텐데.’
* * *
호텔에 머물면서 여독을 풀었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박정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는 날이 밝았다.
2월 25일 새벽. 정호준은 최소한의 경호 인력만 동원해 박정혜의 취임식이 개최되는 대한민국 국회 취임식장으로 향했다.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박정혜 대통령의 취임식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해외 귀빈들 또한 박정혜를 축하하기 위해 자리했는데, 이 무리에 정호준과 아리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 뵙습니다, 정 대표님!”
“응예 티 지엔 부주석입니다. 주석님께서는 대표님께서 베트남에 방문해 주시길 고대하고 계십니다.”
“아베 총리를 대신해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취임식에 참석한 면면 중 정호준을 제외하면 미국에서는 존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가장 격이 높았고, 중국에선 류옌북 공산당 정치국 위원, 일본에선 야스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경축 사절 자격으로 참석했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의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축하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여성 정치인들이 취임식에 참석했다. ‘브라이언’ 호주 총독이나 ‘양락’ 태국 총리, ‘에스피에사’ 페루 부통령, ‘응예 티 지엔’ 베트남 부주석, ‘바실렛 유엔’ 여성기구 총재, ‘프란츠 가봉’ 헌법재판소장, ‘피오라’ 프랑스 고등교육연구부장관 등이 참석해서 자리를 빛내 주었다.
이 밖에도 상주 대사 102명과 비상주 대사 26명 등 총 145명의 주한 외교사절도 내·외빈석을 메워 박 대통령의 취임을 축하해 주었다.
취임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 하지만 취임식에 참석한 이들의 면면을 확인하고 정호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조금 씁쓸하긴 하네.’
오리하 대통령의 취임식에 두 번이나 참석해 본 경험이 있는 정호준이다. 참석한 면면의 레벨 차이가 현저하게 존재했다. 만약 박정혜가 여성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보다도 못한 귀빈들을 받았을 거다.
이게 국격에서 비롯되는 현실이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괜히 씁쓸했다. 그런 걸 보면 아직도 속으로는 한국인이란 정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박정혜 대통령의 취임식이 무사히 끝난 후 약 일주일 뒤쯤 한국, 미국, 일본의 언론사에서 비슷한 논조의 기사가 발표되었다.
[JHJ Capital 1인당 Maximum 88달러 펀드 개설.]
[노민현 정부 이후 처음. 박정혜 대통령 JHJ Capital 100만 원 한도의 펀드 개설 설득!]
[아베 료이치 총리의 설득으로 일본에서도 10만 엔 한도의 펀드 모집.]
미국, 일본, 한국. 구분할 것 없이 삼국 모두에서, 언론은 대통령이 정호준을 직접 설득해 펀드를 개설했다는 점을 어필했다. 대통령과의 사전 교감을 마치지 않고서는 보일 수 없는 행보였다.
기사 내용은 특히나 노골적이었다. 정호준이 최근 몇 년 동안 세계 최고 부자로 선정됐다는 것을 알리며 기사를 시작했고, 정호준이 지금껏 투자에 실패하지 않고 큰돈을 벌어왔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JHJ Capital이 철저히 개인 자산을 운용하는 펀드임을 강조하며 펀드 개설에 본인(대통령)들이 입김을 불어 넣었음을 강조했다.
물론 중간중간 펀드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긴 했다.
정호준이 개설한 펀드는 9월 말까지 약 7개월 동안 모집자를 받을 것이며, 1인당 한 개의 계좌만 개설할 수 있다는 것, 펀드 청산은 2019년 말 JHJ Capital에 의해 일괄적으로 정리된다는 점, 그리고 펀드 정리 시 수익의 60%는 JHJ Capital이 가져간다는 조항과 만약 투자에 실패해 손실을 입게 되더라도 JHJ Capital은 손해를 배상하지 않는다는 책임회피 조항도 설명했다.
다만 불리한 점은 짧고 간략하게 다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집권 세력이 국민의 찬사를 받는 걸 원치 않는 야당에서는 그에 대한 반박 기사를 냈다.
[수익의 60%를 가져가는 펀드가 과연 옳은가?]
[손해에 책임지지 않는 펀드. 국민에게 독이 든 성배를 권하는 격!]
[국민을 위한 펀드가 아닌 정호준 대표를 위한 펀드!]
[설령 수익이 배분된다 해도 표를 돈으로 사는 것과 뭐가 다른가? 투표의 공정성을 해치는 행위!]
[서민을 위한다는 구실로 총리는 정호준 대표에게 막대한 자금을 안겨 주었다]
수익을 60%나 가져가면서 손실에는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건 사실 뻔뻔한 조항이 맞긴 했다. 미국‧한국‧일본 삼국의 야당에서는 이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 탓에 인수합병에 신경을 쏟고 있는 정호준은 기자들을 불러 약식으로나마 기자회견을 해야만 했다. 그것도 생방송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말이다.
“정호준 대표님. 펀드의 조건이 너무 불리하다는 말이 돌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저는 펀드의 조건이 왜 이렇게까지 화제가 됐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그 말은 대표님께서는 펀드의 조건들이 과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한국에서 기레기라 불리는 기자들 못지않게 공격성이 강한 미국 언론은 곧바로 정호준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그나마 미국 기자들은 논제에서 벗어나는 질문은 삼갔다. 물론 논제를 벗어나지 않는 게 정호준의 영향력이 두려워서 그런 건지까지는 본인들만 알겠지만 말이다.
“받아들이기에 따라 분명 과하다 여겨지는 조항들이 있죠.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싫으면 펀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언제 펀드에 가입해 달라고 사정했나요? 총을 들고 펀드에 들라고 협박이라도 했습니까? 대통령이나 총리분들께서 국민께 강요를 했나요?”
정호준의 반문에 흉흉한 공격성을 띠던 기자들의 표정이 하나둘 가라앉았다.
“미국도 한국도 일본도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인 여러분은 펀드에 가입할지 말지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조건이 마음에 안 들면 펀드에 가입하지 않으면 그만인 일입니다.”
무엇 하나 아쉽지 않다는 정호준의 태도에 기자들은 추가로 질문을 던지지 않고 침묵했다. 그런 기자들을 보며 정호준은 약간의 립서비스를 내뱉었다.
“제가 투자자의 돈을 받지 않는 이유 잘 아시잖습니까?”
투자를 원하는 이들을 두고 과실을 나누기 싫다고 이야기한 전적이 있는 정호준이다. 그래서일까? 정호준의 표현은 노골적이었다.
“오리하 대통령과 박정혜 대통령, 아베 료스케 총리가 저를 찾아와 서민층에게 여유를 선물해 주고 싶다며 간곡히 요청(?)하지 않았다면, 펀드를 개설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기자들이 어느 단체의 입김으로 이 자리에 나왔는지 알고 있는 터라 정호준은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 정권을 잡고 있는 여당을 밀어주었다.
‘정치색이 너무 민주당 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아 걱정이네. 공화당 쪽에서도 앙심을 품을 것도 같고.’
한쪽에 치우쳐 있는 것은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좋지 않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권 교체는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정호준은 치우친 것보다 더 창피하고 부정적인 상황을 초래하는 게 얕보이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자신을 향한 정치 공작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해 줘야, 이후에 자신을 걸고 넘어질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본인 소유의 시카고 트리븐이 운영하는 케이블 뉴스 채널에 기자회견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JHJ Capital이 개설한 펀드에 관심이 있던 이들은 모두 시카고 트리븐의 뉴스 채널을 시청했다.
그리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다른 방송사에서 나온 기자들은 받아적은 정호준의 발언을 가지고 기사를 냈다.
[정호준 대표 曰, 조건이 과하다고 판단했다면 가입하지 않으면 그만인 일.]
한국이나 일본의 언론사들은 당연히 미국 언론의 기사를 가져다가 그대로 복붙했고 말이다.
⌎조건이 불만이면 안 하면 된다라. 어려서 그런 건가? 아니면 성공해서 눈에 뵈는 게 없는 건가?
⌎re: 되게 삐딱하게 구네? 저 패기 멋지지 않냐? 나는 되게 멋지게 보이는데.
⌎정호준 대표의 말대로야. 강요한 것도 아닌데, 대체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거지?
⌎국민연금이나 한국투자공사에서도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진 적 없잖아? 정호준 대표랑 뭐가 달라?
⌎re: 내 말이. 그리고 정호준은 최소한 지금까지 투자에 실패한 경험이 없다는 커리어라도 있음.
정호준의 뻔뻔한 대응에 삼국의 국민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람 사는 곳은 거의 다 비슷하다고, 이미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은 삼국에서 몇 번씩 일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손해를 배상하지 않겠다고 한 점이 걸렸는지 삼국의 펀드 가입 속도에는 저마다의 차이가 나타났다.
정호준이 돈을 불려 준 것을 경험했던 대한민국에서는 날마다 줄을 서며 펀드 계좌를 개설했다.
“고객님. 뉴스를 통해 전해들어서 아시겠지만, 이번에 개설하는 펀드는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JHJ Capital이 손해에 책임지지 않는 것과 수익의 60%를 가져가는 것을 다시 한번 고지하며 사인을 받았고, 설명을 충분히 해 줬다는 문서에서도 사인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