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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20화 (320/335)

32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20)

사람들은 주변 친구가 잘되면 뭐라도 주워 먹을 것이 있나 달려든다. 사돈의 팔촌은 물론이고 연락 한번 안 하고 지내던 초등학교 동창에게까지 연락이 온다는 썰이 종종 넷상에서 돌곤 했다.

그런데 이런 속물적인 근성을 욕하는 건 별 영양가 없는 쓸데없는 행동이었다. 그도 그럴 게 강자에게 비위를 맞춰 주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과 같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리를 이루는 습성을 가진 동물이었고, 고금을 막론하고 무리를 주도하는 건 어디까지나 ‘강자’였다.

21세기에서 돈이 많거나 잘나간다는 평가를 듣는 건 ‘강자’라는 의미다.

마냥 강자에게 굴종했던 고대나 중세 시대와 달리 21세기는 강자에게 기생해 단물만 쪽 빼먹고 버리는 일이 가능해졌지만.

잘나가고 못 나가고를 결정짓는 건 언제나 그렇듯이 과정이 아닌 눈에 보이는 ‘결과’였다.

그리고 결과가 중요한 건 재벌이나 대기업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잘나갈 때는 구직자를 구하는 것도 쉽고 정관[정치인+관(정부)]이 알아서 협조해 주거나 알아서 기진 않아도 순순히 협조해 준다. 게다가 기업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대출을 받아 내기도 수월했다.

일적인 면 외에도 지금의 기업을 만들어 낸 창업자의 능력을 인정하며 존경과 찬사가 이어졌고, 말에 무게감이 생긴다. 이를테면 옹고집에 불과했던 결정이 결과만 좋다면 뚝심 있는 선택이 된달까?

‘물론 상황이 나쁘면 뚝심이 아니라, 고집이나 집착이 만들어 낸 참사로 변하지만.’

남부 그룹의 강준호 회장이 바로 대표적인 예였다. IMF 위기를 버텨 내고 00년대 한국 재계 순위 10위 안에 진입할 때는 과감하고 능력 있는 경영자로 언론에 포장됐다. 그러나 수천억 단위의 적자가 매년 발생하는데 매각은 생각도 안 하고 남부 하이텍을 끌고 가려고만 하고 그 남부 하이텍으로 인해 회사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지자 강준호 회장의 의지에 평가가 바뀌기 시작했다.

남들이 못 보는 비전을 봐서 뚝심 있게 버티는 게 아닌, 그저 노인네의 옹고집과 집착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그러한 경향이 절정에 달한 것이 2010년대 초반이다. 2013년 말. 남부 그룹 전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돼서야 강준호 회장은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남부메탈과 LED, 하이텍을 매각해 회사를 살리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창고에 불나서 다 타고 나니까 이제야 매각하네. 매각할 거면 진작 하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과 뭐가 달라?

남부 그룹을 살리기 위해 하이텍을 포기한 강준호 회장의 결정조차 사람들은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정호준은 기억을 되짚어 남부 그룹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돌아봤다.

* * *

전문가나 여론의 비난 세례가 이어졌지만 강준호 회장은 최소한의 자구책을 마련하는 데 모든 신경을 쏟고 있어서 여론을 컨트롤할 정신이 없었다.

‘예전이 좋았는데.’

독재자의 기분에 맞춰야 하고 심기에 거스르면 잘 나가던 기업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리스크가 존재했고,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뇌물을 먹어야 했지만 독재정권이 꼭 나쁜 점만 있던 건 아니었다.

독재자의 기분만 잘 맞추고 뇌물을 찔러 주면 대출을 받는 것부터 파업을 진압하는 것까지 복잡한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번에도 반려시키면 그땐 청와대와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강준호 회장은 속으로 독재정권 시절이 지금보다 사업하기 편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구책 마련에 힘썼다.

강준호 회장이 자구책 마련에 힘을 쓰는 이유는 간단했다. 산업은행을 포함해 금융권에서 추가 대출은커녕 만기조차 연장해 주지 않으려는 낌새를 풍겼기 때문.

연이은 채권단의 재촉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강도 자구 계획을 내놓았다.

남부 하이텍, 남부 메탈 등 주요 계열사의 자산을 팔고, 회사까지 매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거기에 더해, 강준호 회장 본인의 개인 자산도 일부(1,000억 원 약속) 출연하겠다는, 3조 원이란 자금을 2015년까지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피력했다.

[동부그룹 3조 원의 자구 계획 제출!]

[큰 결단을 내린 강준호 회장!]

강준호 회장 본인은 나름 단장의 마음으로 내놓은 자구책이었다. 하지만 이 자구책은 50%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문제는 이 자구책도 그냥 휴지 조각이 되지.’

강준호 회장은 자구책을 2013년 11월쯤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과 채권단, 남부 그룹에서 매각 계획이 너무 낙관적으로 잡힌 계획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7개월이 지났을 무렵 남부 그룹이 확보한 자금은 겨우 3,500억 원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 3,500억 원도 그나마 남부 제철이 유상증자를 감행하고, 남부생명, 남부익스프레스, 남부특수강, 남부팜한농의 지분이 매각되어 겨우 나온 성과였다.

“…에서 협상을 엎었습니다.”

“하이스트나 오성에서 따로 연락이 없습니다. 이쪽에서 나서서 제안을 넣어 봤는데, 인수할 마음이 없다고만 되풀이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부 그룹 간부들이나 강준호 회장이 시장에 내놓으면 금방 비싼 값에 팔릴 것으로 기대했던 매물들은 번번이 매각이 무산됐다.

‘상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랄까?’

경기가 침체 중이란 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힘들다는 거다. 덩어리가 큰 기업을 아무렇지 않게 인수할 기업은 대한민국에 몇 없었고, 그 몇몇 기업조차 계산기를 두드린 후 고개를 저으며 인수를 포기했다.

대한민국에 몇 없으면 외국 기업에 매각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극도의 이윤을 추구하는 외국인들이 보기에 아직은 적기가 아니었다.

시장은 자비심 같은 말랑한 감정이 없다.

나한테 소중하다고 남 또한 소중하게 여길 거란 착각에서 비롯된 실책이었다.

결국 남부제철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었고, 나머지 비금융 계열사도 말만 무성할 뿐 매각이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기다릴 만큼 기다린 채권단은 ‘남부체절 경영 정상화 방안’이라는 계획을 알려왔다. 남부제철 경영 정상화 방안 프로젝트에는 남부제철의 원금 상환을 2018년 12월 말일까지 미루고, 6,000억 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보유 지분을 100 대 1로 무상감자를 진행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상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이야기에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 속하는 강준호 회장과 그의 측근은 분노를 드러내며 날뛰었다. 그도 그럴 게, 채권단의 권유를 따르게 되면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가진 남부제철 지분 36.84%가 1% 미만의 지분으로 떨어진다.

지금 이 사달을 만들어 냈음에도 강준호 회장이나 강준호 회장에 붙은 세력들은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채권단이 부당하고 과도한 실사 결과를 근거로 너무 가혹한 차등 감자를 추진하려 한다.”

선이 닿는 곳 모두에 연락을 넣어 과도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실사는 합리적으로 이뤄졌고 차등 감자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오너가 부실 경영에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거잖은가?”

산업은행의 주도하는 채권단은 강준호 회장의 꿈틀거림에 맞서 반박 자료를 내며 강준호 회장을 강하게 압박했다. 개인의 욕심과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세, 채권단은 채권단대로 더는 봐줄 수 없고 손해를 감수할 의지가 없다고 말이다.

2014년 11월 이후 채권단과 남부 그룹은 언론을 동원해 틈만 나면 비난 세례를 퍼부었다. 채권단 측은 강준호 회장이 무책임함을 어필했고, 남부 그룹은 채권단이 채권단 이익만 생각한다며 힐난했다.

‘조금 웃기는 이야기지.’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는 직종에서 종사하다 보니 돈을 빌려준 집단이 제 돈을 돌려받기 위해 노력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남부 그룹은 그 당연한 걸 가지고 그들이 창출하고 있는 고용을 방패막이 삼아 채권단이 욕심을 부린다고 비난했다.

뭐, 누가 옳았든 간에 어쨌든 양측이 줄다리기를 이어 가는 바람에 사전에 교감을 나눴던 기업 매각은 지지부진해졌다.

“회장님!! 심탄에서 남부 발전 당진 건을 없던 일로 하잡니다!!”

심탄에 2,700억 원을 받고 남부발전당진을 매각하기로 했었으나 심탄 그룹의 계약 해제를 통보로 무산되며 절체절명에 놓이게 되었다.

“돈 나올 데가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돈 나올 구석은 없고, 채권단은 돈 갚으라고 쪼아 대고, 정부에서도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정말 회사가 망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강준호 회장을 덮쳤다.

그런데 말이다. 운명이라는 게 참 얄궂고 웃긴다는 게 여기서 증명된다.

기업이 문을 닫을지도 모를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그 위기를 해결해 준 건 다름 아닌 남부 그룹의 발목을 잡으며 위기를 겪게 만든 원흉, 남부 하이텍이었다.

위기를 틈타 헐값에 가져가려는 하이에나들 때문에 협상이 결렬되고, 욕심 때문에 채권단과의 협상도 결렬됐다. 앞이 보이지 않는 2015년, 남부 하이텍이 기적처럼 흑자로 전환되며 1천억 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역시, 역시 내가 맞았어!!”

세간의 평가 또한 금방 뒤바뀌었다. 집착하다가 회사를 말아먹었다는 평가가 미래를 보고 고통을 감내하며 뚝심 있게 버텼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매년 최소 30% 이상 순이익이 증가했고 남부 그룹은 남부 하이텍에서 나오는 자금을 가지고 회사를 정비했다.

‘강준호 회장에게 조금 미안하긴 한데.’

정호준은 남부 그룹을 살려 줄 캐시카우를 노리는 것에 잠깐 감정적이 되었지만 이내 감정을 털어 냈다.

“남부 하이텍 매각 자금으로 다른 기업들을 살리는 게 좋을 수도 있어.”

돈이란 언제 들어왔는지도 중요하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이 존재하듯 기업에게도 가장 최적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존재했다. 1~2천억의 순이익이 매년 찔끔찔끔 들어오는 것보다 한 번에 수천억 원, 어쩌면 1조 원이 될지도 모를 자금을 확보하는 게 남부 그룹 입장에서도 좋았다.

잠깐 약한 마음을 먹고 망설였던 것과 달리 이미 준비는 다 해 두었다.

박정혜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으로 향하는 전용기 내부에서 정호준은 전략팀과 비서팀의 플랜을 재점검했다.

“채권단이나 박정혜 당선인과도 미리 교감을 나눠 놨습니다.”

자구책을 마련할 당시 남부 하이텍은 매각 대상에 올라와 있었지만, 정호준이 인수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고집을 부릴 수도 있다.

강준호 회장이 고집부릴 것을 대비해 세무조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잖아도 채권단의 눈치를 보고 싸우기 바쁠 상황에서 세무조사로 회계까지 털린다? 설상가상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상황이 되리라.

“한국 1세대 창업자들이 나름 고집이 세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당장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고집을 부릴 것 같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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