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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22화 (322/335)

32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22)

부채 비율이란 용어는 재무구조를 측정하는 대표적인 재무 지표 중 하나로 쓰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자산이란 단어는 풀이하면 내가 가진 돈 전액을 나타내는 말이었고, 부채는 말 그대로 빌린 돈이지만. 그럼에도 일단 빌린 대상이 가지고 사용할 수 있는 돈이기에 자본으로 분류했다.

물론 빌린 돈은 언젠가 갚아야 하는 남의 돈이었고, 때문에 자산 안에서 따로 자본과 부채를 구분하여 표기하긴 했지만 말이다.

부채 비율이 100%를 넘겼는데, 회사의 자본이 없다? 그게 바로 파산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정호준이 인수를 결심한 남부 하이텍은 이 부채 비율이 100%를 넘어 360%에 다다른, 막장 혹은 파국 일보 직전이란 말이 어울리는 회사였다.

그리고 이는 협상에서 당연히 거론해야 할 문제였다.

사전에 계획을 세워 둔 만큼 JHJ Capital 전략팀은 협상에 나서면서 그 점을 노골적으로 파고들었다.

JHJ Capital 관계자들은 협상 테이블에 나와서 2,000억 원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제안을 던졌다.

“너무 헐값입니다!! 어떻게 이런 가격을 제시하실 수 있습니까?!”

시가총액의 6분의 1 가격으로 인수하겠다는 제안에 남부 하이텍 관계자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뭐가 문제죠?”

“남부 하이텍의 시가총액이 1조 2,000억 원을 호가한다는 걸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날이 선 질문에 JHJ Capital 관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겠죠. 남부 하이텍이 정상이라는 가정과 시가총액만 놓고 보면 말이죠. 채권단의 협조를 받아 남부 하이텍의 재무제표와 회계장부를 모두 살펴봤습니다. 부채 비율이 무려 360%를 돌파했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6분의 1로 후려치는 건 상도의가 아닙니다.”

“후려치다뇨? 말을 참 서운하게 하십니다. 부채 비율이 인수가에 영향을 끼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만약 한국 정부에서 우리 JHJ Capital에 부채를 탕감해 주겠다고 약속해 줬다면, 값을 조금은 더 쳐 드렸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약속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은 즉 부채를 감당하는 건 회사를 인수하는 우리라는 거죠.”

JHJ Capital 관계자들은 사전조사와 정호준이 미리 깔아 둔 포석 덕에 남부 하이텍 관계자들이 급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가장 강력한 권한과 힘을 지니고 있는 시기가 임기 초입니다. 이제 막 임기를 시작한 대통령이 남부 하이텍을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압박을 넣었으니, 저쪽은 급할 겁니다.

박정혜 대통령은 정호준이 기자회견까지 하면서 면을 세워 준 것에 고마워했다. 마음에 빚을 졌다며 남부 하이텍 인수와 관련해서 힘을 써 주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밝혔다. 모르긴 몰라도 남부 그룹에 상당한 압박을 가했으리라.

-그리고 이것도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채권단 쪽에서도 우리가 인수해 주길 바랄 겁니다.

대기업에게 돈을 대출해 주는 건 중소기업에 대출해 줄 때보다 낮은 금리로 빌려줘도 단위 자체가 다르다 보니 더 많은 돈을 벌게 된다. 그러니 처음 돈을 빌려줄 때는 좋다고 돈을 빌려줬을 거다.

‘돈을 빌려주는 것에 크게 두려움도 없었겠지. 00년대 남부 그룹은 겉으로 보기에 10대 그룹에 속할 만큼 승승장구를 이어 갔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정도가 있는 법이다. 단위가 누적되어 수천억을 넘어 조 단위에 이른 지금에 와서는 겁이 날 거다. 남부 그룹이 빚을 갚지 못하고 망할 수도 있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말이다.

대기업은 죽지 않는다는 상황을 비유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법칙이 아직도 깨지지 않은 상태라면 그나마 안심이라도 하겠는데.

‘대마불사도 이미 한참 전에 깨졌지.’

1997년 IMF 외환 위기를 통해 대기업도 얼마든지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은행들은 충분히 경험했다. 그렇기에 남부 그룹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사태를 은행들이 달갑게 여길 리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 돈을 날릴 수도 있다는 리스크 때문에 조급함과 두려움이란 감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은 남부 그룹이었기에 남부 그룹이 남부 하이텍의 주인이면 부채를 제대로 갚아 줄 수 있을지 전전긍긍해야 한다. 하지만 JHJ Capital이 주인이라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남부 하이텍 매각 대금으로 자금 사정이 나아진 남부 그룹의 회생 가능성이 늘어난다.

그런 이유로 채권단은 JHJ Capital에 적극 협조했다. 남부 그룹을 빼면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JHJ Capital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확실하게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유리함을 무기 삼는 건, 월가에서 굴러먹은 투자자라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JHJ Capital의 관계자들은 확고한 우위를 점했고, 남부 하이텍 관계자들은 별다른 저항없이 그 가격은 무리라는 말만 반복했다.

“저희는 개인적으로 남부 그룹에서 한국 기업들이 종종 저지르곤 했던 분식회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분식회계라뇨!!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남부 하이텍 관계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강하게 반박했다.

“글쎄요. 그간 분식회계를 저지는 이들 중 그 누구도 자기가 했다고 자백한 사람은 없어서요. 분식회계를 감행했는지 아닌지는 회계감사를 해 보면 나올 내용이니까요. 박정혜 대통령이 우리 대표님께 빚을 진 건 아실 겁니다.”

가뜩이나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말이 나도는 0년 차인데, 정호준이 기자들을 불러다 가진 기자회견까지 겹쳤다. 일본의 아베 료스케와 박정혜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 사실을 언급하며 친분을 활용해 세무조사를 부탁할 수 있다는 말에 남부 그룹 관계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 * *

남부 그룹 관계자들은 매각 대금으로 최소 7천억은 받아야겠다고 사전에 계획하고 방문한 거다.

입장의 차가 워낙 컸기에 첫 번째 협상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정호준이야 보고를 받은 뒤 마지막까지 협상을 잘 마무리해 달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을 뿐이지만 남부 그룹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왔다.

“3,000억이라니!! 대체 나가서 어떻게 했길래 그따위 가격을 그딴 가격을 제시받는 거야!!”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대체 뭐한 거야?!”

강준호 회장의 분노에 협상 자리에 나간 관계자들은 협상 자리에서 있었던 일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이야기했다.

“허.”

처음에는 인수가로 2,000억을 제시했다는 말에 강준호 회장은 어이가 없다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박정혜 대통령에게 언제든 세무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는 협박을 했다는 말을 듣고는 뭔가 체념하는 기색을 지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이 없다는 말처럼, 대기업이다 보니 남부 그룹에는 이런저런 먼지가 많이 묻어 있었다. 상태와 상황이 좋은 상태로 겪게 돼도 피해를 입는 게 세무조사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상황에서 세무조사를 받는 건 거의 사망을 확정 짓는 치명타라 할 수 있었다.

“아주 더럽게 얽혔군.”

1세대 창업자답게 미래를 보는 안목이나 판을 읽고 짜는 능력이 뛰어난 강준호 회장은 정호준이 짜놓은 판에 완전히 얽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펀드를 개설한 것조차 하이텍을 가져가기 위한 포석이 아닐까?’

중간에 자기 객관화가 안 된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어쨌건 뒷짐 쥐고 물러나 있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박 실장. 그쪽에 연락해서 내가 만나고 싶다고 전해! 그리고 정호준 대표가 어딨는지 알아봐.”

혹시나 정호준이 만나주지 않을 경우 직접 찾아라도 가기 위해 정호준의 위치를 수배했다.

강준호 회장은 위기의 순간에 빠르게 결단하는 1세대 창업자들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 * *

남부 그룹의 강준호 회장에게 미팅 요청을 받은 정호준은 전략팀에게 권한을 내어주었단 이유로 미팅 요청을 거절했다.

정호준은 그저 계획한 대로 하이스트 반도체 주주총회를 소집했다.

안건은 당연히 ‘남부 하이텍 인수 및 시설 투자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유상증자’였다.

인수대금은 당연히 JHJ Capital의 주머니에서 나오지만, 남부 하이텍을 인수하는 주체는 JHJ Capital이 아닌 하이스트 반도체다. 반도체 공장을 증설할 때 필요한 자금을 조달했을 때처럼 말이다.

‘이 기회에 하이스트 반도체 지분을 좀 더 확보해야지.’

세계 경기가 회복되어 2011년 4분기부터 다시금 흑자로 전환됐지만 메모리 반도체 분야 기술 개발과 자동차 반도체와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 확보 등에 자금을 쏟아붓느라 자금 사정이 메마른 상태였다.

그리고 하이스트 반도체 주식은 정호준을 포함한 기관들이 달라붙어 사들인 탓에 유동성이 완전히 죽은 상태였다.

“주식 신규 발행으로 1조 원을 조달하고자 합니다.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남부 하이텍을 인수와 시설 확충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주주총회를 거치긴 했지만 정호준이 지분의 절반 이상을 확보한 상태라 주총의 의미는 딱히 없었다. 정호준이 하이스트 반도체를 인수할 때부터 이미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까보나 마나 한 투표였지만 투표를 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었기에 표결에 들어갔고, 당연히 유상증자안은 통과되었다.

JHJ Capital이 만들어 둔 유령회사를 통해 새롭게 발행된 주식의 인수를 마친 정호준은 연이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미팅을 요청하는 강준호 회장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 * *

예정에 없던 만남이다. 굳이 시간과 심력을 사용하면서까지 만날 이유는 없었기에 정호준은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호텔로 강준호 회장을 불렀다.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나, 남부 그룹의 강준호요.”

완전한 존대보단 반존대에 가까운 어조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인수 협상은 협상단 측에 맡겼습니다. 저를 이렇게 찾아오셔도 결과가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정호준은 강준호가 매달리지 않도록 사전에 미리 선을 그었지만 강준호는 개의치 않고 고개를 숙였다. 본능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정 대표님, 남부 하이텍은 나와 우리 그룹의 꿈이 담긴 기업입니다. 남부 하이텍을 여기까지 이끌고 오는 바람에 남부 그룹이 흔들리고 있어요. 내 꿈을, 미래의 먹거리를 가져가는 만큼 조금만 더 값을 쳐줬으면 좋겠습니다.”

은성 그룹 창업자들처럼 강준호는 전형적인 맘씨 좋은 조선의 만석꾼 같은 외모를 가졌다. 그런 외형에 나름 존경할 면모가 있는 1세대 창업자가 자존심을 버리고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자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부 그룹을 다시금 궤도에 올릴 기업을 인수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얼마를 원하십니까? 딱 한 번만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면 그냥 자리를 파하겠다는 기색을 읽은 강준호 회장은 조심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불렀다.

“LED까지 해서 5,000억에 가져가 주었으면 합니다.”

5,000억. JHJ Capital이 사전에 맥시멈으로 정해 두었던 가격이었다. 훗날 120억 원 정도에 인수되는 LED를 끼긴 했지만, 어쨌든 한계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에 정호준은 속으로 감탄성을 내질렀다.

‘확실히 인물은 인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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