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19화 (319/335)

31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19)

정호준은 큰 것을 얻어 냈음에도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고 완벽하게 표정 관리를 하며 아베 료스케와 사담을 이어 갔다.

중요한 안건이었던 ‘펀드 모집’, ‘펀드 모집에 대한 대가’와 관련한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타협점을 찾은 만큼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는 한결 가벼워졌다.

아베 료스케와 정호준은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는데, 주제는 실로 다양했다. 일본의 지진 극복 현황을 시작으로 세계 경기의 흐름과 그리스 경제 위기가 얼마나 지속하는지 등 이런저런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은 중국이었다.

“핵심 기술과 관련해서 기술 탈취를 조심하십시오.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좀 그렇잖습니까?”

일본 기업의 기술을 털어 간 기업들이 한국 기업이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정호준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정호준은 개의치 않았다.

‘뭐, 난 이제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니까.’

정호준은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정호준의 뻔뻔함에 기분이 상할 만도 하건만 아베 총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잖아도 중국의 희토류 제재 후부터 기업들에게 따로 언질을 해 두었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우리 일본은 중국 의존도를 많이 줄였는데, 한국이 걱정이네요.”

중국은 값싼 인건비, 거대한 시장, 세제 혜택 등을 미끼로 중국에도 공장을 설립하게 꼬신다. 그런데 웃기는 게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는 중국의 공산주의 이념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법(외국인투자법: Foreign Investment Law) 때문에 외국 법인은 단독으로 부동산 소유가 어렵다.

특히 공장과 같은 시설은 더 그렇다.

외국인이나 외국 법인이 중국에서 공장을 소유하기 위해선 중국 현지에 있는 기업과 합작하는 형태를 띠어야만 했고, 이 말은 즉 공장의 주인이 둘이란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 말은 즉 도둑과 사업을 함께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대놓고 기술을 도둑질하겠다는 말과 뭐가 달라?’

한 손이 열 손 못 막는다는 말마따나 보안이란 분야는 조심한다고 조심해도 끝까지 목표를 수행하는 게 어렵다. 그런데 공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이 도둑놈이다? 기술이 탈취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다.

중국이 어느 정도 기술적 자립을 이룩한 2010년 중후반쯤부터는 법이 조금씩 완화되고 중국 정부에서 외국인의 중국 투자를 촉진하고자 몇몇 ‘특정 산업’ 분야를 제외하고는 단독으로 공장을 설립하여 공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020년대나 돼야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중국이란 나라의 특성상 언제 또 바뀔지 알 수 없고.’

‘믿을 놈을 믿어야지.’라는 말이 그 어떤 상황에서보다 잘 어울리는 상황이다.

리스크가 이렇게 막대하건만 한국 기업은 물론이고 유럽이나 미국의 기업들도 중국에 합작회사를 세워 공장을 올렸다. 믿을 만한 국가도 족속도 못 되는 중국에 기업들이 합작회사를 세워 공장을 올린 건 중국의 값싼 인건비와 중국의 거대한 시장이 주는 메리트가 너무 달콤했던 탓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아베 료스케도 아쉬운 소리를 입에 담았다.

“중국 시장과 중국의 막대한 노동력을 대체할 곳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글쎄요. 전자에는 동의하지만, 후자는 동의하기 어렵겠네요. 중국의 인건비는 값싸지 않은 걸로 기억하는데요.”

80년대나 90년대, 00년대의 중국이 아니다. 경제를 개방하고 공산당의 주도하에 빠르게 성장한 중국인의 인건비는 경제가 성장한 만큼 상승하진 않았지만, 꾸준하게 오르긴 했다.

“동남아로 공장이 옮겨 가고 있는 추세라는 걸, 총리께서 모를 리 없을 것 같네요.”

“하하, 물론 그렇긴 하지요. 하지만 공장을 새로 설립하는 비용이나 중국으로 물자를 이동시키는 물류비용까지 고려하면, 기업들 입장에서는 아직은 중국에 공장을 두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우리 JHJ Capital은 보고듣는 귀가 많습니다. 일본이 동남아 국가들과 접촉 중이란 사실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빼지 마시죠.”

“JHJ Capital의 정보력과 미래를 보는 눈이 세계 최고라더니, 허명이 아니었군요.”

기분 나쁠 수 있는 발언에도 아베 료스케는 정호준을 지켜세웠다.

‘정 대표가 미국인이 된 건 우리에겐 참 잘된 일이야.’

아베 료스케는 정호준을 칭찬하면서도 속으로 정호준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선택해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정호준이 미국에 귀화한 건 배가 아플 일이지만 만약 한국인이었으면 배 아픈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아베 료스케가 마지막까지 자신을 두고 견적을 쟀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정호준은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다시금 본제로 돌아와, 일본이 중국 견제를 위한 행동에 동참해 주길 요청했다.

“오리하 대통령도 슬슬 행동에 들어갈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잘됐네요. 미국이 앞장서 준다면 일본은 그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본래라면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크게 지었을 하이스트 반도체가 중국에 공장을 짓지 않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오성전자도 정호준의 충고를 듣고 반도체 공장을 확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성 그룹, 미래 그룹, 은성 그룹은 핵심 기술은 최대한 보호하는 형태로 공장을 운영했다.

늦었을 때가 정말 늦은 거란 말도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다. 잠에서 깨어난 중국이란 용을 다시 잠재우기란 불가능하지만, 승천하지 못하게 주저앉힐 수는 있었다.

중국이란 용이 승천을 하지 못하도록, 혹은 승천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거래가 그렇게 베일 속에서 하나둘 체결되었다.

* * *

최고, 최강. 패권국. 그 어떤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어울리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란 나라다. 2020년대부터는 그 위용이 조금 죽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2010년대까지 미국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미국의 강대한 영향력을 증명하듯 2013년 1월 21일에 개최된 오리하의 취임식에는 휘황찬란한 면면들이 가득했다.

GDP 세계 3위로 주저앉았지만 어쨌든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영향력을 지닌 일본의 총리 아베 료스케를 시작으로, 2016년 사임하지만 아직은 총리직을 역임 중인 영국의 데니스 카메론, 프랑스의 대통령 프랑수아 시몬 대통령, 여성 총리로 강한 이미지를 가진 독일의 메르첼까지. 서구권에서 강대한 영향력을 뽐내는 국가의 정상들이 모두 참석한 상태였다.

취임식이 시작되었고, 식순에 의거해 하나하나 행사가 진행되어 곧 오리하의 연설 순서가 되었다.

오리하는 2기 정부를 어떻게 꾸려 나갈지 등을 이야기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우리는 희망을 심고 약속을 새롭게 만들기 위해 함께 모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경제를 회복하고 기회를 증대시키기 위한 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달성한 것이 많지만, 더 많은 작업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고, 중간 계층을 지원하며, 부자와 가난한 사이의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모든 취임사가 그렇듯 오리하는 이상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중간중간 오리하가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정호준은 취임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취임식을 코앞에 두고 올라왔던 보고서가 정호준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기태 녀석이 이상한 데 투자하진 말아야 하는데.’

오리하의 연설이 끝나고 준비된 축하 퍼레이드가 진행되었고, 정호준은 아리아와 함께 그 광경을 지켜봤다.

머릿속이 박기태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해 당장이라도 시카고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취임식이 끝났어도 정호준은 시카고로 이동하지 못했다.

정호준은 21세기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거물급 인사로 세계에 그 이름을 똑똑히 알린 정호준이었기에 취임식이 끝났다고 시카고로 돌아올 수는 없었다.

세계 각국의 정상이나 명사들에게 붙잡혀 몇 번이고 같은 말은 반복한 뒤에야 시카고로 복귀할 수 있었다.

* * *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성장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경험은 종종 인간을 자만에 빠지게 하고 과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정호준의 절친인 박기태가 바로 그 케이스였다.

아파트를 담보로 받은 주택담보 대출로 유니히치에 투자해 돈을 벌어 본 경험이 생겨서일까? 아니면 김은주보다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다급함이 생겨 무언가를 시도하고자 해서일까? 박기태는 주식 담보 대출이란 서비스를 떠올렸다.

‘호준이가 짚어 준 것만 사 둬도 은행 대출 이자보단 더 벌 것 같은데.’

레전드컵에 도전하기 위해 팀을 짜서 준비할 때, 정호준은 열심히 하는 팀원들에게 소스를 하나 던져 줬었다. 그리고 얼마 전 월급이나 웃돈 생기면 투자하라고 알려 줬던 종목들의 오름 추세를 확인했다.

‘꽤 많이 올랐지.’

값이 두 배로 뛰거나 그러진 않았지만 평균치를 내면 대략 25% 정도는 오른 듯 보였다.

‘요즘 금리가 저렴하던데, 유니히치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땡길 수 있을 만큼 땡겨서 돈을 투자해 볼까?’

정호준이 짚어 준 종목들의 수익률과 저금리 시대의 개막, 그리고 주식으로 돈을 벌어 본 경험은 박기태로 하여금 모험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주식 담보 대출을 받는 것을 결정한 박기태에게도 걸리는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호준이 녀석이 한탕주의도 정도가 있다고 화낼 거 같은데.’

자신이 대출까지 땡겨서 투자한 것을 알게 된 정호준이 잔소리할 것이 겁이 났다. 본인의 재산이니 어떻게 쓸지도 자신이 결정하는 거였으나, 유니히치 주식을 정호준이 준 일종의 선물로 여기는 박기태였다,

캥기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불붙은 욕망은 박기태로 하여금 정호준의 잔소리를 감내할 용기를 갖게 해 주었다. 다만 정호준이 잔소리를 해도 듣겠다고 용기를 낸 것과 별개로, 박기태는 유니버셜 뱅크에서 주식 담보 대출을 받았다.

정호준이 아는 게 두려웠으면 유니버셜 뱅크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서 대출을 받는 게 맞았지만 박기태는 혹시 모를 만약의 상황을 대비했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했어. 내가 담보로 삼은 주식이 호준이에게 폐가 돼선 안 돼.’

정호준이 투자하라고 짚어 줬던 종목들만 투자할 거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단기적으로 문제가 생겼거나 위즈니악 등과 대화를 나누며 종종 듣던 공매도 세력에 의해 손해를 입어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원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그때는 담보를 지급해야만 한다.

만약, 아주 만약의 일이겠지만 그래도 박기태는 아주 만약의 상황이라도 자신이 담보로 잡은 주식이 정호준을 노리는 칼이 되지 않았으면 했고, 그래서 정호준에게 보고가 올라갈 것을 잘 알면서도 유니버셜 뱅크에서 돈을 빌렸다.

유니버셜 뱅크에서 주식을 담보로 20억 달러라는 거금을 대출받은 박기태는 올해 지급해야 할 이자 2천만 달러를 제외한 19억 8천만 달러로 주식을 사들였다.

유니버셜 히치, 나이크, 구골, 엔플, 코x콜라, 뱅크 아메리카, 스타박스, 아마조네, 칼컴, 미라클, 세미크로소프트. 넷플렉스. 총 12개의 종목에 균등하게 돈을 나눠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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