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15)
천변만화(千變萬化)란 말처럼 저마다의 개성을 가진 게 인간이란 동물이지만 그래도 큰 틀에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소유욕을 놓고 봤을 때 인간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사회적 통념으로나 남들이 봤을 때 충분히 가졌음에도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이들과 만족하고 욕심내지 않는 부류로 나뉜다.
이전부터 몇 번이고 언급했다시피 정호준과 만나기 전부터 자식에게 물려줄 것까지 충분히 가지고 있던 위즈니악은 후자에 속한 인간이었다.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가진 것에 만족하고 인생을 즐기는 그런.
더 많은 돈을 추구하기보단 현재를 즐기자는 모토의 인생을 사는 중인 위즈니악이 정호준에게 힘을 빌려준 건 정호준이 추구하는 비전이 그럴듯하고 재미있게(편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편집된 영상이 재밌긴 하지만, 뷔튜브에 올라오는 영상들은 상영 시간이 대개 길잖아요? 이건 딱 1분으로 제한을 두는 거예요.”
이번에도 뭔가 흥미를 끌긴 했다. 하지만 정호준이 가진 모든 사업체를 통틀어 위즈니악은 자기 하고 싶은 말, 자기가 원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언제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고, 그런 이답게 정호준에게 태클을 걸었다.
“좀 전에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그게 경쟁력이 있을지 모르겠어. 뷔튜브랑 카테고리가 꽤 겹치는 것 같고, 뷔튜브에 기능을 추가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야.”
“신세대 중에는 긴 영상을 안 좋아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 긴 영상은 피로하잖아요? 똑같이 편집해서 올리는 영상물일지라도 탁톡은 빨리빨리 다음 것을 즐기길 원하는 이들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키기 위한 서비스가 될 겁니다.”
정호준은 탁톡이 추구하는 바에 대한 설명을 마친 뒤 뷔튜브에 추가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에 관한 반박을 시작했다.
“뷔튜브에 기능을 추가하자는 위즈의 의견은 나도 염두에 두긴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진행하면 뷔튜브의 정체성이 조금 모호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체성이 모호해진다고?”
“예. 우리 JHJ Capital이 스위치를 인수한 건 아시죠?”
스위치 창업자들이 JHJ Capital의 캠스타그램 인수를 파악하고 있던 것이 생각나서 던진 질문인데, 아니나 다를까 위즈니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고 있었다는 티를 냈다.
“굳이 스위치를 인수 안 하더라도 라이브 스트리밍 기능도 원하면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기능을 추가하기보단 정체성을 살리는 쪽을 선택했죠.”
정호준이 원했다면, 하고자만 했다면 뷔튜브에 기능을 추가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거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위즈니악은 그제서야 위즈니악은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는 위즈니악을 보며 정호준은 자신이 계획 중인 플랜을 하나 밝혔다.
“뷔튜브, 스위치, 탁톡을 하나로 묶을 회사를 만들어 상장할 생각입니다.”
“상장? 이건 또 의외인데? 호준은 회사를 상장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상장이라도 해 둬야 반독점법으로 덜 공격받을 거 같아서요.”
메신저나 SNS, 온라인 영상물까지 모두 JHJ Capital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민주당과 오리하, 공화당에 이르기까지 기름칠을 모두 해 놓긴 했으나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알 수 없었다. 변수는 언제든 생기기 마련이니까.
주주라는 이름의 방패막이를 준비해 둬서 나쁠 건 없었다. 주주라는 방패막은 분명 정호준이 판만 깔아주면 알아서 날뛸 테니 말이다.
실제로 오리하 다음으로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트루질로는 민주당 세력과 친한 IT 기업들을 상대로 반독점법을 걸고 넘어지곤 했다. 트루질로가 언급한 기업들이 상장을 마친 기업들인 걸 고려하면 위험했다.
‘상장을 한 기업을 상대로도 주주 시선 개의치 않고 날뛰는데, 상장을 안 한 나를 상대로는 얼마나 막 나가겠어.’
정호준이 잠깐 샛길로 빠졌을 무렵, 미리미리 사전에 준비하는 정호준의 모습을 보며 위즈니악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참 대단해. 호준은 항상 앞을 생각하네!”
“그래야 살아남는 거죠.”
샛길로 빠졌음에도 기계적으로 겸양을 내뱉은 정호준은 이내 정신을 차리곤 위즈니악에게 가장 알고 싶은 것을 물었다.
“그래서, 어플리케이션 출시까지 시간은 얼마나 필요할 것 같나요?”
“글쎄, 시작해 봐야 알겠지만 짧으면 6개월, 길면 1년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위즈가 필요하다 생각되는 만큼 사람을 데려와도 되니까, 개발 시일을 최대한 당겨 주세요.”
정호준의 말투에서 서두르는 듯한 기색을 느낀 위즈니악은 정호준은 보며 물었다.
“경쟁사가 있는 거야?”
“당장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생각했다면 누군가도 분명 생각했을 테니까요. 선점 효과가 얼마나 중요한 건지는 위즈도 잘 알 거라 믿어요.”
탁톡이란 어플리케이션 출시된 건 2016년이다. 하지만 탁톡을 개발한 회사는 이미 문을 연 지 오래다. 아직은 뮤직비디오 플랫폼을 개발 중이지만, 역사대로라면 1회차 때처럼 탁톡을 개발해서 출시할 거다.
‘중국인의 인구 버프에 선점 효과 버프까지 추가되면 끔찍할 거다.’
구골 앱스토어든 엔플의 앱스토어든 다운로드 수는 그저 몇 명이 다운로드했는지 통계만 내릴 뿐, 누가, 어느 국가에서 다운로드했는지 등은 엔플과 구골이 직접 밝히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이 말은 즉 중국인의 인구에서 비롯될 이점이 강력하다는 거다.
‘최소한 선점 효과는 우리가 가져와야 해.’
미래에 탁톡을 개발했을 ‘비트윗댄스’는 이제 막 창업한 작은 회사에 불과하다. 그들이 사세를 확장하고, 경쟁사로 자리 잡기 전에 전 세계의 파이를 먹을 계획이었다.
표현의 자유와 개인 정보 보안을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중국 시장을 포기하겠다는 경영 방침을 세상에 천명한 만큼 중국인의 다운로드수까지 욕심내진 않을 거다. 하지만 중국 쪽 파이를 포기한 만큼 중국 외의 것은 이쪽이 가져와야 수지가 맞았다.
‘물론 우리가 업계 1위를 차지하면 유행과 인기에 민감한 중국인들은 VPN을 통해서라도 사용하겠지만 말이야. 어쩌면 비트윗댄스는 그저그런 회사로 끝날 수도 있겠네.’
JHJ Capital에서 출시한 탁톡이 높은 점유율을 점하면 아예 이쪽 방면으로는 경쟁을 포기할 수도 있다. 탁톡이 성공하지 않으면 비트윗댄스는 JHJ Capital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는 그저그런 회사에 불과했다.
‘만약 저쪽이 출시하면 짝퉁이 허다하고 기술 탈취가 일상인 중국의 이미지를 이용해 공격할 거지만.’
21세기는 저작권이나 특허와 같은 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상이다. 중국이 워낙 큰 나라다 보니 특허와 저작권 등을 이유로 걸린 소송 등은 어떻게든 무마하고 있지만, 온라인에서 한번 짝퉁으로 박힌 이미지를 지울 방법은 딱히 없었다.
그들만의 메신저, 그들만의 SNS가 될 뿐이다.
“최대한 서두르도록 하지. 너무 걱정하지 마. 지원이 빵빵하면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니까.”
정호준의 진지한 기색을 읽은 위즈니악은 최대한 서두르겠다며 정호준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부탁할게요.”
이후 지분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니다 다를까 욕심 많지 않은 양반답게 10%만 가져가는 걸로 이야기를 마쳤다.
* * *
위즈니악이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소문은 금방 실리콘밸리와 스탠퍼드대학교 등에 퍼졌다. 덕분에 인력을 충원하는 건 어렵지 않게 해결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뽑은 직원들은 뷔튜브에서 지원 나온 인력들의 지도하에 제 몫을 하는 개발자로 커나갔다.
시카고로 복귀해 이러한 경과를 직접 보고받은 정호준은 새로운 일거리를 안겨 주기 위해 조나단을 불렀다.
“계약 연장을 안 한다고 했더니 아주 마음껏 부려 먹으시는 것 같습니다.”
조나단은 정호준이 내려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쉴 새 없이 일거리를 던져 대는 것에 불평을 내뱉었다.
“오른팔이 잘리기 전에 하나라도 더 마무리해 놔야죠.”
정호준은 부정하기보단 그 사실을 인정했다.
“오른팔이라뇨. 너무 저를 과대평가하시네요. 저는 그저 대표님이 지시하신 일을 처리했을 뿐입니다.”
그러곤 반격을 가했다.
“사적인 감정 없이 지시대로 말이죠. 동양인 이민자 출신인 제게 조나단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조나단은 모르실 겁니다. 그리고 사실 이번 일만 잘 마치면, 이제부터는 크게 할 일이 없는데 아쉽습니다.”
“그런 사탕발림에 속지 않습니다. 그만 저를 놔주세요.”
정호준이 감정팔이를 시작하자 조나단은 웃으면서 여지를 잘라냈다.
“안 통하네요.”
진심이 가득한 말이긴 했지만 싫다는 의지를 계속해서 드러내는 이를 상대로 붙잡는 것도 예의는 아니었기에 장난이었다는 투로 말했다.
“이게 제가 JHJ Capital에서 처리할 마지막 일이겠네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조나단은 정호준이 건넨 서류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투자 계획에 적힌 기업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한 조나단은 서류의 다 훑어본 뒤에 입을 열었다.
“이번에 투자할 분야는 반도체인가 봅니다?”
전부 반도체 기업들만 적힌 건 아니다. 하지만 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기업 중 다수가 반도체를 다루는 회사들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 산업의 쌀이 철이었다면, 반도체는 21세기의 쌀이 될 테니까요.”
반도체 기업은 생산 공정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뉘게 된다. 공장을 통해 직접 생산하지 않고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설계에 관여하지 않고 팹리스 업체로부터 오퍼를 받아 공장을 돌리는 파운드리(Foundry), 그리고 자사 브랜드의 반도체를 설계하며 팹(Fab)을 가지고 생산하는 종합반도체(IDM).
오성전자와 하이스트 반도체는 IDM으로 분류된다.
‘뭐, 개인적으론 하이스트 반도체도 반쯤 IDM 같긴 하지만.’
반도체 칩 설계에 필요한 IP 개발만 전문적으로 하는 IP(Intellectual Property).
팹리스 설계를 통해 칩 설계가 된 부분을 파운드리에서 생산할 때 용이하도록 설계 도면을 파운드리용으로 전환해 주는 디자인 하우스(Design House).
생산된 반도체가 실제로 사용이 가능한지 그리고 사용하면서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는지 등을 테스트하는 OSAT(Outsourced Semiconducotor Assembly and Test)도 존재하긴 하지만.
어쨌든 크게는 팹리스, 파운드리, IDM으로 분류된다.
“제가 한국의 하이스트 반도체를 인수한 건 아시죠? 파운드리 쪽을 좀 키워 볼 생각입니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설계 쪽에도 돈을 쏟아붓긴 할 테지만 파운드리 쪽에서 조금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대주주가 가진 공장에 오퍼를 나눠 줄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직접 요구를 하거나 할 생각은 없다. 지분을 20%쯤 쥐고 있으면 굳이 먼저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쪽에서 알아서 기지 않겠는가? 미국도 사람 사는 곳이었고 그 정도 센스는 발휘할 수 있으리라.
주가 상승과 배당금으로 돈도 벌고 겸사겸사 회사도 키우는 일석삼조(一石三鳥)를 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