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10화 (310/335)

31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10)

노민현 대통령의 사망으로 인한 사후 버프와 후계자라는 후광을 가지고 손쉽게 진보정당 내에서 입지를 굳혔던 회귀 전과 달리, 민재민은 강현태를 끌어들이는 노력(?)을 기하고, 강현태에게 각서를 써 줬던 것처럼 김철수와 만나 각서를 써 주는 담판을 지은 뒤에야 진보 진영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완성했다.

이런저런 노력을 기해야만 했던 민재민과 달리, 오리하 대통령은 재선에 나가겠다고 천명하는 것만으로도 당내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정치적 부담을 듬뿍 짊어진 민재민으로선 억울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미국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니까.’

백악관의 주인이 된 이가 연이은 삽질을 저질러 국민에게 비호감으로 찍히거나 지지율이 극단적으로 낮은, 사람을 바꾸는 게 나은 지극히 드문 예외의 상황이 아닌 이상 대통령이 재선에 나가는 데 당내 경선이 까다로울 일은 없다.

‘만약 재선에 실패했다가 다시 재선을 도전하는 경우라면 또 모르겠지만.’

4년이라는 시간은 나름 긴 시간이다. 그때는 없었던 쟁쟁한 경쟁자가 4년 후에는 얼마든지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

어쨌든 오리하는 4월쯤 어렵지 않게 당내 경선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난 4월부터 본격적인 선거 운동에 돌입했다.

오리하 선거캠프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방문한 지역은 오하이오주로 18명의 선거인단이 자리매김한 지역이었다. 선거인단이 18명이 된다는 건 한 손에는 꼽히지 못해도 두 손 안에는 꼽힐 정도로 중요한 주란 이야기였다.

오리하 선거캠프는 오하이오주를 방문한 후 그들이 계획한 일정에 따라 미 대륙을 횡보했고, 시카고가 위치한 일리노이주에 당도한 건 선물이 정리된 9월 말쯤이었다.

오후까지 선거 유세를 이어 가던 오리하 캠프는 해가 진 뒤 정호준의 저택과 지근거리에 있는 호텔에 신세를 졌고, 어쩌다 보니 정호준은 오리하와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정호준과 JHJ Capital은 시카고 하면 떠오를 기득권 세력이 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정치권을 꺼리는 정호준에게는 기회라고 표현할 만큼 반길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배가 불렀다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말이지.’

프로답게 미소 속에 속마음을 숨긴 정호준은 오리하 캠프의 행보를 보며 품었던 의문을 해소하고자 질문을 던졌다.

“생각보다 일리노이주 방문이 늦으셨네요?”

일리노이주는 20석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주로 선거에 있어 핵심 지역 중 하나다. 일리노이주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55석의 선거인단이 존재하는 캘리포니아주, 38석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텍사스주, 그리고 29석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뉴욕주와 플로리다주 다음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다시 말하면 일리노이주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주란 이야기다.

‘민주당이 강세를 띠는 지역이라 그런가?’

일리노이주는 주지사도 상원의 의원도 모두 민주당 쪽 인사가 차지한 상황,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지 않은 꼴이다.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러다 놓치는 경우도 종종 봤기에 정호준은 너무 안심해선 안 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러나 오리하로부터 들려오는 대답은 정호준이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다.

“일리노이주에 온 김에 정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서 일정을 조금 변경했습니다. 정 대표님께서 구단 운영과 한국행 때문에 여러모로 바빴잖아요? 그래서 조금 텀을 드렸습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 일정을 수정했다고 말하니 괜히 불길함과 귀찮음이 몰려왔다.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이 일정까지 수정하면서 자신을 보고자 한다는 건 분명 뭔가 귀찮은 일이 생길 징조였다.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할까요?”

귀찮음이나 손해를 감수하고 싶지 않았기에 정호준은 오리하가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능청을 떨었다.

“호준에게 몇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정호준은 일부러 모른 체한다는 걸 알아챘음에도 오리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용건을 꺼냈다. 정대표 대신 이름을 부르며 친분까지 드러내면서 말이다.

‘이렇게 친분까지 들이대는 걸 보면 들어주기 쉽지 않은 부탁이겠네.’

불안을 감지한 자신의 육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한탄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야기해 보시죠. 듣고 난 뒤에 어떻게 할지 심사숙고하겠습니다.”

본인이 친분까지 내세워 가며 부탁했음에도 계산기를 두드린 뒤에 이야기하겠다고 답하는 정호준을 보며, 오리하는 새삼 정호준이 이제 정말 미국 상류층의 한 축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정호준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한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아마추어 같은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고 말이다.

“일단 첫 번째 부탁부터 하겠습니다. JHJ Capital에서 ‘SM 벨라스키스’의 주식을 매입해 주셨으면 합니다.”

“으으으음.”

첫 번째 부탁부터 쉽지 않은 부탁이었다. 그래서인지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뱉었고, 정호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오리하는 설득을 시작했다.

“…….”

* * *

과거 모기지론 디폴트로 미국 경제가 흔들렸을 때 오리하 정부는 SM모터스와 벨라스키스를 상장 폐지한 뒤 부패한 부분과 적자가 나는 생산 라인을 과감하게 잘라냈다. 수술을 진행하면서도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 회사와 접촉해 염가에라도 생산 라인과 라이선스를 팔며 뭐라도 건지기 위해 애썼고, 실제로 조금이나마 건져 내기도 했다.

오리하 정부가 SM모터스와 벨라스키스를 놓고 질질 끌며 자금을 수혈하는 대신 파산 절차를 밟게 한 일은 지금에 와서 정말 잘한 일이라고 칭송받을 정도였다.

[SM 벨라스키스 새롭게 재단장을 마치다!]

게다가 재단장을 마친 뒤 나스닥에서의 재상장까지 성공했다. 이러한 성과는 민주당과 대적하는 공화당 정부조차 오리하 정부의 노력과 공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이었다.

다만, 오리하 정부가 생각보다 잘 대처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안 요소는 차고 넘쳤다.

‘나름 과감한 수술을 마쳤음에도 투자자들이 느끼기에 SM 벨라스키스는 불안하기 짝이 없는 종목이다.’

SM 벨라스키스의 재상장은 파멸의 서막에 돌입했던 자동차 업계를 구원한 것 같은 상황을 연출했지만, 나스닥에 재상장했을 당시만 자금이 반짝 몰렸을 뿐, 투자자들은 SM 벨라스키스에 투자를 꺼렸다.

한 번 망했는데, 두 번 못 망하겠냐는 생각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

투자자들의 염려는 이해했지만, 유동성을 고려할 때 이러한 경향이 이어지는 건 결코 좋지 못했다.

릭 오리하는 상황을 자세하게 이야기하며 21세기 들어서 에릭 버펫의 버크셔 이상으로 성공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JHJ Capital이 주식을 매입해서 대주주 공시를 해 주면 투자자의 불안심리를 안심시킬 수 있을 거라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야.’

오리하의 말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게다가.

‘구미가 당기기도 하고. 타이밍이 참 귀신같아.’

이쯤 되면 노리고 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리하의 방문은 참 절묘한 시기였다. 자기도 모르게 작게 감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게, 최근 JHJ Capital은 선물계약을 정리하며 거액을 손에 넣은 상태다. 미리 정해 둔 투자처가 존재했지만 이번에 얻은 수익을 다 사용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미국 기업에 투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프랑스 명품 기업들에 돈을 투자했던 것처럼, 결국 어딘가에는 추가로 돈을 투자해야 하는데, SM 벨라스키스 정도면 나쁘지 않은 선택지였다.

‘극적으로 6배 이상 오르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쏠쏠하긴 할 것 같은데?’

정호준은 전 세계가 정부 주도하에 돈을 풀며 저금리 시대가 이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끝까지 쥐고 있지 말고 중간에 반드시 정리하긴 해야 할 종목이긴 했지만 말이다.

“부탁이 하나가 아니라 몇 가지라고 했죠? 다음 부탁은 뭡니까?”

오리하의 제안이 JHJ Capital에도 나쁠 게 없는 제안이란 견적이 나왔음에도 정호준은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혹시 뒤에 이어질 부탁이 무리한 거면 하나만 들어주기 위해서다.

‘다 들어주면 버릇만 나빠지니까.’

오리하는 재선에 성공하며 연임을 이어 간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플로리다주나 오하이오주에서 고용을 창출해 줄 수 있겠나?”

오리하가 언급한 주들은 민주당의 텃밭이라기보단 경합 주에 속하는 지역이다. 당장에는 오리하 본인의 호감도나 지지도가 높기에 대선에서는 자신을 밀어주지만 중간 선거에서도 민주당을 밀어줄지는 알 수 없는 법.

정당이 지지율을 올리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거다. 무슨 의도에서 자신에게 이런 부탁을 했는지 인지했지만 이번 건에 한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유니버셜 뱅크는 그쪽에서도 영업 중인 거로 알고 있습니다. 굳이 규모를 더 키울 생각은 없습니다. 플로리다 쪽은 고민 좀 해 보겠지만, 이것도 추가로 인력을 고용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카고의 날씨를 고려해 올해부터는 겨울에 플로리다에서 지낼 생각이지만, 21세기는, 아니 2010년대는 인터넷이나 핸드폰으로 얼마든지 보고를 받을 수 있는 시대다. 굳이 쓸데없는 인건비를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습니까?”

무리한 부탁이란 걸 알아서 가볍게 찔러 본 건지, 오리하는 끈적하게 달라붙지 않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만 표정이 굳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예, 대신 SM 벨라스키스 주식을 매입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이겠습니다.”

정호준이 첫 번째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뉘앙스를 풍기자 굳어 가던 표정이 풀렸다.

“단! 이거 하나만 확실히 했으면 합니다.”

“말씀하시죠.”

“우리 JHJ Capital은 우리가 원하는 시기에 엑시트를 진행할 겁니다. 그때 가서 정부 차원에서 주식을 팔지 못하게 압박을 넣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정호준이 단서를 달자 오리하도 잠깐 심사숙고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JHJ Capital 정도 되는 회사가 주식을 매입한 지 얼마 안 돼서 엑시트를 진행하면, 이게 공매도와 뭐가 다릅니까?”

오리하의 가정에 정호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JHJ Capital은 당장 주식을 정리할 생각이 없으니까요. 4년 내로 엑시트를 진행할 겁니다. 아마 대통령님 임기가 끝나기 전쯤이지 않을까 싶네요. 저희가 내건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JHJ Capital은 SM 벨라스키스의 지분을 5% 이상 매입하겠습니다.”

툭! 툭!

정호준의 통 큰 제안에 오리하는 잠깐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호준에게 항상 신세만 지내요. 참 고맙습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얻지는 못했지만 이만하면 성공이었기에 오리하의 표정은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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