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309화 (309/335)

30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309)

미국이란 나라는 통조림을 가지고도 설명에 제시된 용량만큼 들어 있지 않다고 소송을 걸고 정말 기업을 상대로 승소하기도 하는 나라다. 상황이나 가진 증거 그리고 어떤 변호사를 썼느냐에 따라 개인이 기업이나 정부의 기관을 상대로도 얼마든지 보상을 받아 낸다.

개개인이 모여 단체로 집단소송을 거는 경우도 종종 있는 미국은 그 반대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동네였다. 직원이든 팀장이든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면 그들이 회사에 끼친 손해를 책임지게 만들곤 한다.

딱히 정호준이 뭐라 추궁할 생각이 없고, 실제로 압박을 가한 적이 전혀 없었으나 정호준으로부터 직접 언질을 받은 것도 아니었기에 선물을 담당하는 직원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렇기에 지미 딕슨이나 테일러처럼 팀장급이 아니어도 JHJ Capital 선물담당팀의 팀원들은 선물지수가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선물이란 종목이 원래 이득과 손실이 극과 극으로 펼쳐지는 종목인 데다 JHJ Capital이 체결한 계약의 수가 많았다. 지수가 0.1포인트 하락한 걸로 수천억의 손실이 생기니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팀원들이 얼마나 맘고생을 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테일러 팀장은 사무실로 돌아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대표님으로부터 선물 정리하란 오더가 떨어졌다!”

“정말입니까?!”

“오늘 만우절 아닙니다. 테일러 팀장님 이런 장난 용납하기 힘든 거 아시죠?!”

JHJ Capital 선물팀은 테일러의 말을 듣고 반가워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확인차 되물었다.

“대표님 오더 떨어진 거 맞다. 나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어.”

테일러 팀이 곡물 선물 건에 한 손 보태며 선물 팀을 도왔다면, 지미 딕슨은 JHJ Capital에 스카우트 된 후로 처음부터 끝까지 선물계약을 담당하며 자신을 팀을 운용 중이었다.

“좋았어!!”

지미 딕슨의 확인 사살에 소식을 들은 팀원들은 하나같이 기뻐했다.

“너무 기뻐하지 마라. 마음 놓고 기뻐하는 건 성공적으로 선물계약을 모두 털어 낸 후다.”

지미 딕슨은 기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팀원들을 진정시켰고, 감정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확인한 후 정호준의 지시사항을 알렸다.

“대표님께서 선물은 되도록 8월 말까지 정리하라고 하셨다. 아무리 늦어도 9월 초까지는 정리해 달라시더군. 마무리 잘해서 보너스 받고 편하게 쉬자고!”

“예!!”

““보너스를 위하여!!””

지미 딕슨의 격려에 사무실에 있는 모두가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하나 신경 쓰지 않고 휴가를 오롯이 즐길 기회. 곡물 선물계약을 체결한 뒤 줄곧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선물팀이 3년 동안 그 무엇보다도 바라고 또 바라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JHJ Capital 선물팀이 선물계약을 정리하기 시작할 무렵, 미국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이 존재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의 정체는 작년 겨울에 성공적으로 IPO를 마친 클럽폰이었다.

주식을 상장한 회사인 만큼 실적 발표는 당연히 치러야 할 연례행사 중 하나였고, 2012년 7월 무렵 2분기 보고서를 발표했다.

발표된 클럽폰의 2분기 성장 보고서는 클럽폰의 몰락의 서막이었다.

[2012년, 클럽폰 2분기 실적 발표]

보고서에 따르면 1분기와 비교해 매출이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1분기와 비교해 매출이 3천만 달러 정도 줄어든 상태였다.

1분기와 비교해 300억 정도 매출이 줄었다는 것도 문제지만,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경향이 강한 IT의 카테고리에 속한 클럽폰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매출이 꾸준한 상승세를 타도 모자랄 판에 하락세라뇨?!

-상장했다고,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아서 샀는데, 이제 와 이러면 어쩌라고?!

-이럴 거면 JHJ Capital이랑은 왜 다툰 겁니까?

-JHJ Capital이 지분을 쥐고 있으면 미래가 있다는 걸 믿기라도 하지.

돈에 예민한 대주주들은 클럽폰 경영진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고,

[클럽폰 경영진들은 우리 돈을 물어내라. 이건 사기다!!]

소액주주들은 아예 온라인에서 모여 클럽폰을 향해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당연히 지금껏 상승했던 주가는 가파르게 하락했고, 하락세는 주가가 공모가까지 떨어진 뒤에야 멈췄다.

‘뭐라도 해야 한다.’

멍하니 넋 놓고 있으면 공모가 밑으로까지 하락한다는 걸 눈치챈 조던 메이슨 CEO는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확장 정책을 실시할 것을 알리며 구체적인 계획을 설립해 언론을 통해 알렸고, 대주주들과도 따로 만남을 가지며 믿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너무 빠르게 몰락하는 클럽폰을 보며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쌤통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빠르게 나락을 향해 나아가는 클럽폰의 모습을 보니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미안한 감정이 생겨났다. 그러나, 자책하는 것도 잠시뿐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잡스와 진흙탕을 구르는 바람에 생겨난 악명 탓에 클럽폰 경영진이 자연스럽게 정호준을 꺼리게 되었고, 이러한 반응은 좋은 타이밍에 엑시트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자신을 꺼리는 것을 정호준이 이해한 것처럼 엑시트를 한 정호준도 이해받아 마땅했다.

‘조던 메이슨이 JHJ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더라도 주식을 정리하긴 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결국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이다.’

* * *

클럽폰이 집단 소송을 당하며 궁지에 빠진 순간에도 JHJ Capital 직원들은 모두 자기 할 일에 최선을 다했다.

CEO인 조나단 또한 선물계약을 정리하는 작업에 한 손 보탰고, JHJ Capital 선물팀은 총 세 개조로 갈라졌다.

일조는 대두와 대두유를 담당하는 팀.

이조는 옥수수와 대두박 선물을 정리하는 팀.

팀장급인 테일러와 지미 딕슨, 그리고 정호준 다음이라 봐도 무방할 JHJ Capital의 CEO 조나단이 직원 3명과 함께 가장 덩어리가 큰 밀(소맥지수)과 짜투리로 사들였던 귀리 선물을 담당했다.

“유령회사 SL위너스가 가지고 있는 옥수수 선물 7.72에 정리 중입니다!!”

“xx가 가지고 있던 대두유 선물 56.84에 정리 중입니다!!”

“……귀리선물 4.57에 정리 중입니다!!”

“대두 17.58에 정리 중입니다!!”

“대두박 400.48에 정리했습니다!!”

……

……

……

“밀 선물 8.12에 정리했습니다!!”

JHJ Capital은 미국, 일본, 홍콩, 런던, 파리 등 선진국에 다수의 유령회사를 설립했다. 세 개의 조로 나뉜 선물팀은 유령회사가 체결한 선물계약 중 각자가 맡은 부분을 하나둘 정리해 나갔다.

JHJ Capital 선물팀 직원들은 정호준이 일을 맡긴 7월 중순부터 천천히 선물을 정리했다. 결코, 서두르지 않고 선물지수에 영향이 최대한 덜 가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밀 선물 소맥지수 8.01에 정리 끝마쳤습니다.”

평균을 냈을 때 소맥지수 5.17에 계약을 체결했던 JHJ Capital은 8.01에 정리를 마쳤다.

“옥수수 선물계약 7.66포인트에 정리 마쳤습니다.”

“대두 선물 16.74에 정리 끝났습니다.”

“대두유 정리 마쳤습니다. 평균 매도가는 55.83입니다!”

“대두박 410.10에 정리했습니다!”

“귀리 4.28에 정리 마쳤습니다.”

정리를 끝마친 직원들은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올렸다.

대두유나 귀리는 2011년에 팔았다면 더 큰 이득을 가져다줬겠지만, 정호준이 하나하나 단가를 다 기억하는 건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2011년에 선물을 정리하는 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거지, 2012년에 매각한다고 손해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밀, 옥수수, 대두, 대두박은 2011년보다 2012년인 현재가 더 높은 선물지수를 유지 중이어서 2011년과 2012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2012년에 매각하는 게 맞았다.

‘전부 완벽할 수는 없지.’

2012년 9월 초, 올라온 보고서들을 모두 취합한 최종 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되었고, 이는 곧바로 정호준에게 보고되었다.

총수익: 783억 5,380만 달러.

또 한 번 JHJ Capital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기록하게 되었다.

원금까지 포함하면 무려 903억 달러라는 거금이 JHJ Capital 계좌에 입금되었다.

* * *

JHJ Capital이 또 한 번의 대박을 거두고 있을 무렵, 정호준이 밀어주는 강현태 서울시장은 끝끝내 진보 진영 경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대통령 권좌를 향해 한발 다가갔다.

다만 경선에서 84%에 달하는 표를 받으며 압도적으로 대선 후보의 자리를 굳힌 박정혜와 달리 민재민은 끝까지 접전이 이어졌다.

아니, 경선이 끝난 뒤에도 골칫거리는 더 있었다.

“김철수 의원이 참 골치를 썩이네.”

훗날 보수로 당을 갈아타는 김철수지만 2012년에는 잘나가는 진보 진영의 대권 주자 중 하나였다. 민재민에게 표를 줘야 할 진보 진영에서조차 김철수라는 인간을 좋아해 그에게 표를 던지고 싶어 하는 국민들이 꽤 많았다.

진보 진영의 표심을 하나로 모으고 중도의 표심까지 가져와도 모자랄 판에 제 본진이나 다름없는 진보 진영의 표마저 나눠 가지는 지금의 상황이 달가울 리 없었다.

박정혜와 청와대 봉황의자를 걸고 제대로 맞붙기 위해선 단일화라는 과정이 꼭 필요했고, 이를 위해 민재민은 김철수와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신수가 훤해지셨습니다.”

“선거 유세 활동이 많이 힘드셨나 봅니다. 경선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선거인데, 이 정도 고생도 안 하는 이가 어디 있겠습니까?”

5분 정도 의례적인 대화를 이어간 뒤에야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단일화라. 하나를 주면 하나를 받는 게 정치라고 했습니다. 단일화로 제가 받을 수 있는 대가는 무엇입니까?”

김철수는 민재민을 똑바로 쳐다보며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민재민의 태도가 조금 껄끄러웠지만 김철수는 강현태와 사전에 약속했던 것을 요구했다.

“단일화 제안을 수락해 민재민 의원님께 힘을 몰아드렸는데 패배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셨으면 합니다.”

“강현태 서울시장님과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군요. 미리 이야기된 게 있나 봅니다?”

강현태와 똑같은 것을 요구하는 김철수의 요청에 민재민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한 게 있어서 김철수 의원님을 밀어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누구를 밀어줄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뒤로 빠져 주길 부탁한다는 겁니다.”

강현태도 그렇고 김철수도, 그렇게 자꾸만 자신의 패배를 입에 담는 것이 기분 나빴지만 어쨌든 당장은 강현태와 김철수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민재민은 김철수의 요구를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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