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67화 (267/335)

267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67)

지금 당장 포지션을 청산하란 지시를 받은 JHJ Capital 환율 공격팀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싱가포르 쪽 유령회사에서 보유 중인 녹아웃 옵션 정리 끝났습니다.”

“그럼 홍콩 쪽에 붙어서 일을 도와주도록”

“예!”

JHJ Capital 환율팀은 그들의 팀장 주도하에 정호준의 지시로 수개월 전 은밀하게 만들어 둔 유령회사들의 포지션을 정리하며 유령 법인 청산 작업까지 진행했다.

“지루하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하아~ 그러게 말이다. 쟤들만 재미를 보네.”

“우리는 언제쯤 움직일 수 있으려나?”

맡은 분야는 다르지만 함께 움직이고 있던지라 지수 선물팀에 투입된 직원들과 종종 상황을 공유했다. 그 때문에 지수 선물팀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환율팀을 보며 부러워했다. 똑같이 정신없이 바쁘더라도 모니터링을 이어 가며 지루하게 있는 것보다 저렇게 포지션을 청산하며 바쁜 게 낫다.

최소한 돈을 번다는 재미는 보장이 되잖은가?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돈을 벌면서 느끼는 재미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도박을 끊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도박하며 한 번씩 돈을 딸 때 받는 쾌감을 못 잊기 때문이다.

최소 이틀에서 사흘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으나 예상외로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9,589.32

3월 14일 월요일에 9,670으로 장을 마감했던 닛케이지수가 9,589.32로 장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9,589.32, 9,573, 9,549, 9,523

일본 외환시장이 함락됐기 때문에 하락세는 꾸준하게 이어졌다. 일본 시각으로 14시 32분이 됐을 때 기다리던 시간이 도래했다.

9,496.94

“팀장님 지금 9,500선이 깨졌습니다!!”

이제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기쁨이 섞인 외침과 함께 지수 선물팀도 작업을 시작하고자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의 장은 15시에 마감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닫았는데, 물량을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9,488.74

지수 선물팀에 적을 둔 트레이더들은 내일부터 며칠 동안 바쁘게 될 것은 기대했다.

* * *

3월 16일 수요일.

JHJ Capital을 포함한 일본의 외환시장을 공격해 성과를 낸 헤지펀드들이 15일 화요일부터 수익을 내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닛케이지수는 큰 폭으로 낙하했다.

16일 수요일이 됐음에도 그러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9,432.44

올라가긴 힘들어도 내려오는 건 한순간인 인간의 인생을 반영이라도 하는 듯 닛케이지수 9,488.74로 장을 마감했던 일본 증시는 16일 장이 열릴 때부터 하락세를 반영했다.

“포지션 정리 시작하자!!”

“우리의 보너스를 위하여!!”

환호성을 내지르며 작업을 시작하는 부하들을 뒤로한 채 지수 선물 파트를 맡은 팀장 지미 딕슨은 부끄러운 감정을 숨기기 바빴다.

‘결국 이번에도 대표님의 말이 옳았다.’

인간이 자연재해를 예견하는 게 말이 되냐며 너무 무리한 투자라고 비판했던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워졌다. 바쁘지 않았으면 분명 이불 안에서 이불킥을 저질렀으리라.

9,389.12, 9,357.69

경제는 연동되어 있다는 말처럼 환율 파트에서 공격이 쏟아지고 선물 팀에서도 포지션을 정리하니 하락폭은 더 커졌다. 하락을 이어 간 닛케이지수는 9,287.62로 장을 마감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심각할 것 같은 경제 상황에 일본 금융 관계자들이 비관적인 사고를 이어갈 무렵 그들에게 힘이 될 소식이 당도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문제 해결 완료!]

해수를 투입하고 몇몇 애국심(?) 넘치는 이들의 희생으로 후쿠시마 원전은 한숨 놓게 되었다. 물론 해수를 투입한 만큼 제1호기 원전은 예상대로 못 쓰게 됐지만 말이다.

후쿠시마 일대 모두가 방사능에 오염되고, 막대한 비용을 사용해 폐수를 저장하며 상황이 나빠지지 않게 막고, 천문학적인 처리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1회차 때의 상황을 피하게 된 것만으로도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었다.

일본 정부는 언론의 협조를 받아 이 사실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새운 작업에 들어갔다.

무슨 작업이냐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사고 등급을 낮추기 위한 작업이었다.

일본은 이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건을 사고 등급 4등급(연간 허용 제한치 정도로 일반인이 피폭 받을 수 있는 비교적 소량의 방사성 물질 사고로 음식물의 섭취 제한이 요구)에서 끝내고 싶어 했다.

4등급과 5등급의 차는 일반 시민과 세계 시민들이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어 심각하게 작용했다.

반대로 국제 원자력 기구(IAEA)와 세계 핵 권위자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5등급으로 규정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일본 정부의 새로운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9,300.21

장이 끝날 때 9,287.62로 끝났던 17일 장이 열리자마자 닛케이지수는 원전 사고 해결이라는 희소식에 힘입어 반등을 시작했다. 그리고 77.5달러까지 떨어졌던 환율도 78.12달러로 반등에 성공했다.

물론 그렇게 경제 지표들이 반등을 시작했어도 이미 JHJ Capital은 큰 이득을 본 상태였고, 예전 수준까지 회복하지 않는다면 이득의 크기만 줄어들 뿐 손해를 볼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 * *

현재 JHJ Capital은 현재 일본을 주시하는 지수 선물팀과 환율팀, 그리고 매달 똑같은 업무를 반복하며 건물을 관리하는 부동산 투자팀, 현물자산 관리팀으로 나누어져 활동 중이다.

맡은 업무는 다르지만 모두 밤샘이 일상화되어 있을 정도로 바쁜 일상을 살아간다. 정호준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현물자산 관리팀 팀장 테일러를 사무실로 불렀다.

“현물자산 정리는 얼마나 진행됐나요?”

“30~40% 정도 정리 완료했습니다.”

“금괴와 은괴는요?”

“67% 정도 정리한 것 같습니다.”

현물자산의 정리를 지시했을 때 금과 은의 매각 비중을 다른 것보다 좀 더 높여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았던 만큼 정리한 비율이 높았다.

“수호이로그에서 채광해 가공한 금괴까지 포함하면요?”

“수호이로그의 금광까지 계산해 포함하면 금괴의 정리 비중은 45%쯤까지 떨어질 것 같습니다.”

테일러 팀장은 엘리트답게 이 자리에서 즉각 계산해 나왔다.

“따로 이야기해 둘 테니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이 보유 중인 금괴도 넘겨받아 정리해 주세요.”

본래라면 온스당 1,500달러 정도 했을 금값은 2회차인 현재는 1,890달러에 이른 상태였다. 금값이 300달러 이상 뛴 데는 당연히 JHJ Capital이 한몫을 톡톡히 했다.

아니 톡톡히 했다는 말로도 모자라리라. 그냥 금값을 올린 주범이 정호준이었으니 말이다.

채산성이 부족하다 판단해 폐광된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에서 100km 떨어진 푸에블로에서 발견될 ‘비에호 금광’, 콩고민주공화국 ‘키빌리 금광에서 새롭게 발견될 막대한 금맥’, 말리 룰로 ‘고운코토 금광’이 위치한 지역의 탐사권과 채굴권을 소유하고 있는 JHJ Capital은 금광을 개발하지 않고 묵혀 두었다.

본래라면 시장에 쏟아져야 했을 금들이 시장에 풀리지 않았고, 앞에 언급한 세 금광을 대신해 이른 타이밍에 발견된 대형 금광 수호이로그 금광에서 쏟아지는 금광석 물량도 법으로 정해진 러시아 정부 몫을 제외하면 지극히 일부(대다수는 한국행)만 시장에 나왔다.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에 몫을 떨어지는 금광석들은 러시아 기업에 맡겨 금괴로 가공해 호주나 미국 등에 위치한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의 창고에 적재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디폴트 사태로 달러의 신용이 떨어져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금으로 시선을 돌린 부호들 때문에 수요는 폭증하는데, 시장에 풀리는 물량은 1회차와 비교해 극도로 줄어든 상태다.

정호준은 원래는 풀렸어야 하는 물량을 풀지 않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JHJ Capital 또한 금괴를 사들였다.

위와 같은 환경은 도저히 금값이 안 오르고는 못 배길 환경이었다.

금값이 온스당 1,890달러 수준에서 머무른 것조차 2010년 후반쯤부터 JHJ Capital이 보유 중인 금괴를 시장에 내놨기 때문에 가파른 상승세가 꺾여 가능한 가격대였다.

“예,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테일러 팀장은 정호준의 지시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이행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사무실을 벗어났다.

* * *

테일러 팀장이 사무실에서 나가자 정호준은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의 CEO 페레즈에게 연락을 넣었다.

-예. 대표님. 페레즈입니다.

“오랜만에 연락드립니다. 잘 지내시죠?”

-저야 뭐,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육아는 어떠십니까? 아이들이 아기일 때도 돌보기 힘들지만 크면 크는 대로 고단할 텐데요.

“따로 봐주는 사람을 고용해서 크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까? 그거 다행이네요.

메일로 올라온, 혹은 서류로 올라온 경영 보고나 감사 보고를 통해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만 확인할 뿐 직접적인 연락은 오랜만이었기에 정호준은 인사를 나누며 본격적인 일에 앞서 먼저 회포를 풀고자 했다.

“페레즈도 손녀를 봤다면서요? 허니문 베이비라죠? 축하합니다.”

페레즈의 아들이 결혼할 때 결혼식장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축의금을 두둑하게 내고 신혼여행을 위해 전용기까지 따로 빌려줬었다.

-감사합니다.

잡담이 한 10분 정도 이어졌고, 그 뒤에 본론이 시작되었다.

-대표님! 이쯤 하셨으면 충분히 회포는 푼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하신 이유를 말씀해 주시죠.

“올해 4분기에 수호이로그 금광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금값이 솟구친 상황인데요?

“언제까지고 계속 오르지는 않을 테니까요. 무릎이 아닌 발바닥에서 샀으니 어깨쯤에서 팔면 충분히 이득입니다.”

정호준의 대답에 페레즈는 아무런 말 없이 침묵했다. 그 침묵이 회사 직원들의 생계와 관련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정호준은 웃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일자리를 잃어버릴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프리카나 동남아 쪽에 이미 금광을 발견한 상태니까요.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의 활동 영역을 상대적으로 미국의 입김이 덜 닿는 러시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일 뿐입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한 뒤로 서방세계는 러시아에 제재를 가한다. 정호준은 미국에 적을 둔 기업인이다. 정부의 지침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고, 그때 가서 허겁지겁 나오느라 제값 못 받고 정리하는 것보다 지금 정리하는 게 맞았다.

정치적 이유를 제하고 경제적인 이유만 놓고 봐도 미래를 보고 온 정호준이 판단하기에 광산의 가치는 2013~2014년보다 현재가 더 높다.

경제적 정치적 요인 모두가 지금 광산을 정리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가리키고 있으니 매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금값이 천정부지로 솟구쳤고, 세계 최대의 금광입니다. 매수자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중국 쪽과 접촉할 생각이라서요.”

-중국이 과연 수호이로그 금광을 매입할까요?

“금에 대한 중국인의 집착은 상상 이상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과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금에 대한 중국 부호들의 집착은 놀라운 수준이었기에 페레즈의 염려는 쓸데없는 염려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