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66)
3월 12일. 아침이 밝았다. 대지진 발생으로부터 17시간 이상 시간이 흘렀음에도 일본의 상황은 크게 나아진 게 없었다.
심심하면 한 번씩 발생하는 여진으로 인해 잔해 복구나 피해자 구조, 사망자 집계와 관련한 일들이 전혀 탄력을 받지 못했고, 지금에 와서는 가장 큰 폭탄으로 떠오른 원자력 발전소의 문제도 해결했다거나 개선됐다는 소식이 없다.
이는 일본을 털어먹고자 움직인 헤지펀드들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는 희소식이었고, 반대로 헤지펀드들의 외환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일본 정부나 금융 관계자들에게는 비참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 왔음에도 헤지펀드들은 일본 외환시장을 두드리지 못했다.
공격을 왜 못 했냐고?
답은 간단했다. 2011년 3월 12일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함께 국민이 부지런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일본이지만,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있는 만큼 주말에는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이 열리지 않았다.
일본에는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맹공을 이어 갔어야 할 헤지펀드들에게는 아쉽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헤지펀드들이 손 놓고 놀고 있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제법 몸집을 가진 이들은 손을 잡고 함께 움직이기로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일본 금융 관계자들은 그들이 모인 사실조차 어느 정도 파악 중에 있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외환을 지닌 나라!
-아시아를 선도하는 금융 강국!
-동남아의 큰손!
세계 금융 업계에서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곳저곳에 돈을 뿌려 두고 관리해 온 일본인 만큼, 심어 둔 눈과 귀는 실로 다양했다. 오랜 기간 준비해서 들이닥치는 게 아닌 갑작스런 자연재해에 기회다 싶어 찌른 공격인 만큼 암중에 은밀히 만났다 해도 어설펐다.
아니, 개중 몇몇 헤지펀드는 그냥 숨기는 기색 없이 대놓고 만나기도 했다.
문제가 있다면 알고 있어도 딱히 어떻게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거였다.
“팀장님! 이대로라면 월요일 장이 열렸을 때 환율에 얼마나 큰 타격이 갈지 예측조차 어렵습니다.”
“일단 돈은 계속 쏟아부어야지. 어떻게든 80선은 지켜 내야잖냐? 재무성에도 따로 이야기를 해 둘 생각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할 일만 똑바로 하자.”
“예!!”
일본은행 관계자들은 주말임에도 환율 방어를 위해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바쁘게 움직이는 건 ‘일본은행’ 관계자만이 아니었다. 증권사, 기관, 대기업 구분할 것 없이 일본은행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외환시장이 방어에 성공해내느냐 마냐에 따라 닛케이 지수의 하락세의 낙폭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이사님 헤지펀드들이 월요일에 총공세를 펼칠 것 같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닛케이 지수가 10,000 밑으로 내려갑니다!!”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기에 보고를 올리는 직원의 얼굴에는 공포감이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사에게도 직원의 얼굴에 서린 공포를 지울 만한 뚜렷한 묘수가 없었다.
그저 재무성이나 일본은행에서 잘 대처해 주길 바랄 뿐.
‘원전만 큰 사고 없이 마무리돼도 정도가 좀 덜할 텐데.’
* * *
3월 12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일본 정부는 일본은행의 환율 방어에 조금은 보탬이 될 소식을 발표했다.
기자들을 불러 모은 기자회견 자리에서 하토야마 유시로 총리는 준비해 둔 연설문을 읽었다.
“정부는 후쿠시마 발전소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최초 보고를 들은 뒤부터 간토전력 사장단과 후쿠시마 발전소의 책임자 야마다 소장의 의견을 꾸준하게 전해 들으며 상황을 주시했습니다……. 여러 의견을 종합한 결과 원자력 발전소를 살린 채 사고를 수습하는 건 불가능하다 판단, 오후 2시부로 후쿠시마 발전소에 해수 투입을 지시합니다.”
긴급명령을 발동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렸으나 하토야마 총리가 준비한 연설문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원자로 폐로와 관련해 미국과 협조 중에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동맹국으로써 신의를 지켜 준 미국에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호준의 1회차의 삶에서도 그리고 이번 2회차의 삶에서도 미국은 지진이 발생한 직후 위성으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주시했다. 위성을 통한 관찰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긴 것을 캐치하자마자 미국은 일본에 원자로 냉각을 위한 기술적 지원 의사를 알려왔다.
미국이 일본을 돕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존재했는데,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환경 오염을 염려해서였다.
바다는 순환하기에 후쿠시마 원전에 문제가 생겨서 오염수를 방류하게 되면 세계 어느 곳이든 문제가 발생하겠으나 가장 튼 타격은 태평양일 수밖에 없다. 가장 큰 타격을 받는 태평양은 미국의 영역이었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움직이는 건 정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일본이 이번 사태로 회복 불가 상태에 빠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매년 미국 정계에 큰돈을 뿌리며 로비를 이어 가고 나라가 힘들 때 아쉬운 소리 좀 하면 미국 국채를 사 주는, 미국에게 있어 일본은 참으로 좋은 친구(?)다. 패권을 다투던 소련의 후신(後身) 러시아가 점차 회복하고 있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이들을 견제하기에 있어 일본은 참으로 활용하기 좋은 패였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일본은 미국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니 미국이 발 벗고 나서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박수가 쳐진다는 말처럼 정호준의 1회차의 삶에서 일본 정부는 미국 정부의 호의를 거절했다.
일본 정부가 미국 정부의 호의를 거절한 이유는 미국 정부의 기술 지원은 원자로 폐로를 전제로 한 기술 지원이었기 때문이다.
전력난이 야기할 혼란이 두려운 정부와 고가의 원자로를 잃고 싶지 않은 간토전력은 ‘미국 측의 제안은 시기상조’라며 거부했다
하토야마 유시로 총리는 미국이 제안을 던진 날로부터 하루라는 금쪽같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이제라도 미국의 호의를 받아들이며 원자로 폐로와 관련해 도움을 받기로 했다.
총리실에서 준비한 브리핑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도래하자 기자들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도쿄 신문의 마에다입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수를 투입하려면 준비하는 데도 한세월이 걸린다더군요. 지금 긴급명령을 발동하셨어도 결국 해수 투입은 2~3시간이 지난 후에야 가능한 것 아닙니까?”
“간토전력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없으면 간토 지방에 필요한 전력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어떻게든 원전을 살릴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시간을 줬습니다. 하지만 일측일발의 상황이기에 총리실의 주도하에 지시가 떨어지면 언제든 해수를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뒀습니다.”
말은 언제나 ‘어’다르고 ‘아’ 다르다. 질의응답을 통해 하토야마 유시로는 이야기를 꼬아 자신과 정부는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반대로 지금까지 해수 투입을 미룬 원인이 간토전력 사장단에게 있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거기에 더해 본인이나 정부 관계자들은 언제든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준비까지 해 둔 것으로 무능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존경하는 일본 국민 여러분. 갑작스러운 대재앙에 당황스럽고 두렵고 고단하시겠지만, 정부를 믿고 여느 때처럼 하루에 충실해 주십시오. 매일에 충실한 것. 그것만이 우리 일본이 재앙을 이겨 낼 수 있는 해결책이라 믿습니다.”
용기를 불어넣고 신뢰와 믿음을 보내 달라고 주문한 하토야마 유시로는 이윽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지금 이 사긴에도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쓸 우리 구조대원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생하고 있는 구조대원들과 봉사활동을 나온 일본 국민들을 위로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 * *
일본 정부의 지시하에 야마다 소장은 1호기, 2호기와 3호기 4호기에도 해수를 투입했다.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할 거라는 상황까지 초래했던 1회차 때와 달리 하루나마 빠르게 투입한 해수는 수습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냈다.
12일 토요일. 해수 투입을 완료한 뒤부터 복구팀이 달라붙어 복구 작업을 계속 이어 갔다. 복구팀은 우선 전력 복구를 시작했다. 복구 작업은 일요일을 넘어 주식시장이 열린 월요일 아침이 돼서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이는 환율지수와 닛케이 지수를 하락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80.91, 80.93, 80.89.
3월 11일 81.71로 장을 마감했던 환율은 주말 동안 쉰 것을 계산에 넣어 장 시작가부터 81의 자리가 깨졌다.
“팀장님, 이대로 가다간 80선이 붕괴됩니다.”
“보고할 시간에 빨리 받으라고!!”
80.92, 80.94, 80.75, 80.34.
일본은행의 반격에 지수가 반등을 보이기도 했지만, 재앙이 현재 진형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현실 때문인지 전체적인 흐름을 막아 내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했다.
“팀장님. 80선 붕괴가 임박했습니다!!”
80.11.
일본은행의 방어에도 불구하고 환율지수는 80.11까지 붕괴한 상태였다.
80.08, 80.10, 80.07, 80.08, 80.09, 80.04.
80선이 깨지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전력을 다해 방어했고, 헤지펀드들 또한 80선을 부수기 위해 마지막 총공세를 펼쳤다.
두 집단은 꽤 오랜 시간 줄다리기를 이어 갔지만 승자는 나왔다.
80.01, 79.96.
긴 줄다리기의 승자는 바로 헤지펀드 세력이었다.
“80선 깨졌습니다!”
비통함이 섞인 보고가 잇따른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당하지 않고자 애를 썼음에도 고베 지진 참사 이후 소로스가 일본에 가져다주었던 충격이 반복되었다.
일본 환율 지수는 79.54로 장을 마감했고, 일본 금융 종사자들은 소로스의 악몽을 떠올렸다.
* * *
주식시장이나 닛케이지수를 관리하는 기관과 증권사는 ‘일본은행’만큼이나 큰 패닉에 빠졌다.
“팀장님! 닛케이 지수가 10,000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장이 쉰 것을 계산에 넣은 듯 3월 11일 10,101으로 장을 마감했던 닛케이지수는 장이 열릴 때부터 9,798포인트로 시작했다. 환율보다 더 큰 낙폭이었다.
자신이 만들어 낸 변수에 대처하기 위해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던 정호준은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계산했던 것보다 좀 빨리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일본에서 금융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두려움을 갖기 충분한 낙폭이지만 원전 사고가 수습 가능할 것처럼 여겨져서 그런지, 닛케이지수는 1회차 때보다는 작은 낙폭이었다.
3월 14일 닛케이 지수가 9,575에서 시작됐다는 걸 고려하면 확실히 낙폭이 줄어들었다.
9,798, 9,732, 9,688.
물론 변수는 있었다. 일본의 기관들과 정부의 움직임 덕에 9,600선까지 회복하는 움직임을 가졌던 1회차와 달리 꾸준하게 하락을 이어 가던 닛케이지수는 9,670선에서 장을 마감했다.
일본에서 장이 마감된 것을 확인한 정호준은 이번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이들을 불러 모았다.
“환율팀은 화요일부터 포지션 청산 시작합니다. 녹아웃 옵션 발동하시고, 외화 정리하세요.”
“예!”
“지수 선물팀은 닛케이 지수가 9,500대가 깨지는 순간 정리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