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63화 (263/335)

263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63)

원자력 발전소에 나가 있는 인력들을 통해 상황을 전달받은 간토전력은 곧장 긴급회의를 시작했다. 회의의 주제는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였다.

일각을 다투는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덮고 그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부에 알리고 도움을 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원전에서 사고가 난 것을 알리면 분명 정부에서 간섭이 들어올 겁니다. 우리에게 손해를 강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국민 여론도 빠르게 나빠질 거고요. 우리의 힘으로 해결을 봐야 합니다.”

이 사실을 묻고 자기들끼리 해결하자 주장하는 이들은 정부의 간섭과 회사의 손해, 그리고 누군가 들었다면 비웃음을 터트렸을 더 나빠질 게 있는지 의문일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염려해 반대했다.

“원전은 우리끼리 해결할 수 있는 선을 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빨리 조치하려면 정부에 알리고 지원을 요구해야 합니다. 원전의 문제는 회사 차원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입니다.”

“도로를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통과하고, 조금이라도 많은 예비 배터리를 모으려면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원전의 문제는 회사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다뤄야 할 문제였기에 정부에 알리고 도움을 받자는 쪽으로 의견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저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듯,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아닌 시마즈 쓰네히사 회장의 관심을 끄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가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건 사태가 최악으로 다다라 수습이 불가능한 경우에 면죄부가 될 수 있습니다.”

“면죄부?”

“조금 전 하나자와 이사가 말했던 것처럼 원전 사고는 국가 차원의 문제잖습니까? 정보를 공유했고 권고방침을 따랐는데도 수습이 불가능해지면, 그 책임은 당연히 컨트롤타워인 정부가 나눠지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닙니다. 게이단렌과 자민당이 함께 움직여 준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우라 타카야시 이사의 말은 마음속 한구석에 ‘최악의 경우 체르노빌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라고 염려하고 있던 시마즈 쓰네히사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말이었다.

‘확실히 견적이 나오긴 한다.’

간토전력은 아시아 최대의 전력회사이자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회사다. 그런 회사의 회장으로 역임 중인 시마즈 쓰네히사에게는 당연히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에서도 활동을 이어 나갔고, 여기저기 뿌려둔 친분의 씨앗이 존재했다.

게이단렌을 움직이고 야당이 되어 버린 자민당에서 힘을 좀 써 준다면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정호준의 1회차의 삶에서 간토전력은 동일본대지진 이후 공기업으로 정체성이 바뀌긴 했으나 문을 닫지 않고 계속 운영되었고, 시마즈 쓰네히사를 포함한 간토전력의 경영진들 또한 몇 년의 지루한 법정 공방을 이어 가긴 했으나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태를 수습하고자 백조 이상의 비용을 소모해야 할, 일본 본토를 위험하게 만든 이들치고는 너무도 가벼운 결말이다.

한국에서 종종 이야기하곤 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일본에서도 통하는 법칙이었다.

“정부에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죠.”

간토전력 경영진은 회의를 통해 방침이 정해지자마자 빠르게 움직였다. 물론 그들이 계획한 방침에는 1회차 때와 마찬가지로 원전을 망가트리는 ‘해수 투입’이란 선택지는 없었다.

* * *

한국인도 그렇고 일본인도 그렇고 근면 성실하기로 유명한 족속들이다. 책임에 민감해 결정하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결정된 후의 행동은 빠릿빠릿하기 그지없었다.

간토전력 경영진들은 본인들의 선에서 모을 수 있는 배터리를 모두 긁어모아 후쿠시마로 보내기 위해 움직이면서 총리실에도 직접 연락을 넣었다.

“총리님, 간토전력으로부터 긴급 연락입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대지진에 수습하느라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픈 민주당 출신 총리 하토야마 유시로에게 또 하나의 문제가 당도했다.

“긴급이라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합니다.”

“문제?”

“쓰나미가 방파제를 넘어 발전소를 강타해 변전 설비가 침수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비상 배터리를 투입해 냉각로를 가동 중이지만, 전력 공급이 끊기면 멜트다운(Meltdown)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군요.”

원자력 발전은 자발적으로 핵분열을 일으키는 물질을 연쇄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농도로 농축시킨 후 거기서 생산되는 열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과정이다. 대표적으로 우라늄-235를 농축시켜 사용하는데, 원자로의 중심부인 노심에는 핵연료 물질이 펠렛 형태로 피복관에 싸인 연료봉 형태로 주입되고, 이 연료봉은 냉각수 등 냉각재와 핵분열을 감속시키는 제어봉에 의해 적절한 압력과 온도로 제어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냉각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면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게 된다. 온갖 과학적인 이유로 한 번 올라간 온도는 급속도로 올라가면 올라갈지 내려갈 기미는 보이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연료 집합체나 노심 구조물을 녹여 방사능이 유출되는 최악의 사태로 번진다.

간토전력 측은 총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한 서류를 읽은 후 경악하는 표정을 지었다.

“골치가 아파도 너무 아프군.”

가마이시, 미야코, 오츠치, 야마다(이와테현), 나미에, 소마, 미나미소마(후쿠시마현), 치가하마시, 오나가와 등 쓰나미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지역들을 다독이고 수습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이거늘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났다는 말은 치명적이었다.

불행은 연쇄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를 정도였다.

“간토전력 측에 빨리 연락 돌리게.”

* * *

쓰나미로 농지가 잠기고 차와 배, 건물이 쓸려내려 간다. 거기가 계속되는 여진 때문에 피해 규모를 합산하거나 수습하는 활동에 제약이 걸렸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말로도 수식 불가능한 재앙이었고 재해였지만, 자본가들에게는 위협이되 기회였다.

기업들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란 타이틀과 일본 기업의 수익률, 점유율 등을 어필하며 최대한 이탈을 막고자 노력했다. 기업 차원에서 대주주에게 따로 연락까지 돌리며 주주가 떠나는 것을 어떻게든 붙들어 잡았으나, 그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는 소식이 도래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발생했다. 최악의 경우 멜트다운이 우려스럽다?! 후쿠시마 제2의 체르노빌이 돼나?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을 종종 들어 봤을 거다.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다는 건 투자자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기 충분한 소식이었고, 일본에 적을 두고 있는 기업들에게 있어 치명적이었다.

공포는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팀장님 어떡하죠?! 해외 자본들이 일제히 주식을 던지고 있습니다.”

“뭘 어떻게?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키요타 모터스, 닌탄도, 미츠바시와 미츠이나 등 일본에서 위세를 떨치는 대기업의 대주주들 모두가 주식을 던졌다. 나중에 다시 매수하더라도 지금은 일단 최소 절반은 정리할 매도세를 보였다.

“주가 폭락을 막으려면 정부에 도움을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진 피해 수습하기 바쁘고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까지 터졌는데, 지금 정부에서 기업들 신경 쓸 겨를이 있을 거 같아?”

“그건…….”

갑작스럽게 찾아든 재앙, 그리고 그 때문에 시작된 탈출 러쉬는 기업들에게 무력감을 선사했다.

* * *

일본 경제의 불행은 결코 주식시장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주식시장 외에도 선물이나 환율 등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 참으로 빛나는 명예다. 미국이 소련과 경쟁할 때조차 결코 1위를 놓치지 않았다면 일본 또한 수십 년 동안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을 지켜왔다.

그런데 말이다. 일본이 지키고자 노력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은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일본에 뜯어먹을 게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 2위라는 경제력에서 비롯된 자금력 때문에 일본을 노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사례가 아예 없던 건 아니다.

‘리처드 소로소가 대표적인 예지.’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리처드 소로소’에 의해 크게 털린 기억이 있었고, 이후 일본은 헤지펀드에 두 번은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덤비면 가만 안 놔둔다는 경고했으나 헤지펀드들은 일본의 엄포를 겁에 질린 개가 짖는 거라 생각하며 무시했다.

그렇잖은가? 세상은 처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몇 차례 헤지펀드들이 손을 잡고 일본을 털어먹으려는 일이 몇 번이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3년에 벌어진 사건이다. 이라크 전쟁의 발발과 다른 몇 가지 이유로 일본의 엔화 가치가 상승한 적이 있는데, 당시 엔화 가치 급등을 감지한 전 세계의 헤지펀드 수천 곳이 수십조의 자금을 쏟아부으며 일본의 외환시장을 털어먹으려고 덤볐었다.

전 세계의 상당수의 헤지펀드들이 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환율시장에 개입하여 온 나라를 실컷 털어먹은 기억을 때문에 이번에도 쉬울 거라 생각한 것.

그러나 일본 정부가 천명했던 대로 저항은 실로 격렬했다.

‘일본은행’은 매분 단위로 10억 엔씩 매도-달러 매수를 개시하며 헤지펀드가 매도한 외환을 받아 냈다.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 주며 일본을 공격했던 헤지펀드들에 큰 손해를 입힌 뒤로 일본에 대한 공격은 현격히 줄어들었다.

제2의 소로소가 되고자 했던 이들이 피눈물을 흘렸지만, 지금은 당시와 마찬가지로 기회였다.

돈을 움직이는 이들은 누가 다쳤고, 누가 죽었고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피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지.’

일본의 위기로부터 돈 냄새를 맡은 헤지펀드들은 하나둘 손을 잡고 일본의 환율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원전에 위기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외환을 던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던 말던 신경 쓰지 않는다.

“헤지펀드들이 외환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쿠소!! 도리를 모르는 이누치쿠소(개같은 새끼들)!!”

자연재해라는 재앙을 겪고 있는 나라를 공격하는 상도리가 없는 놈들의 행태에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이를 갈며 외쳤다.

“받아. 남의 불행을 이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 주자.”

3월 11일 장이 시작될 때만 해도 82.92로 시작했다.

82.86, 82.68, 82.44, 82.17.

82.20, 82.22.

일본은행의 대응에 환율이 다시 상승하기는 했지만. 일본이 자연재해를 겪고 있는 것도, 후쿠시마 원전에 문제가 발생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82.16, 82.08, 81.99.

게다가 만주르 왕자를 내세운 공매도 때 키요타 모터스가 탈탈 털렸던 것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헤지펀드들이 일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81.86으로 장을 마감했을 환율이 81.71이 돼서야 그쳤다.

JHJ Capital은 직접 나서서 흐름을 주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공격에 맞춰 외환시장을 공격하기는 했다.

‘알아서 판 깔아 주는데 들어가지 않을 이유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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