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62)
강도가 7단위를 넘어섰다는 것은 틈만 나면 발생하는 일본에서도 강진이라 부르기 충분한, 막강한 파괴력을 가진 지진이다. 지진은 앞자리 숫자가 바뀔 때마다 이전 숫자보다 32배는 강력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랬다.
강력한 지진이지만 일본 내륙에서 120km나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덕에 다행히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다.
물론 7.3 강도의 지진인지라 55cm나 되는 강력한 쓰나미가 발견되기는 했다. 쓰나미를 확인한 일본 정부는 해풍 주의보를 발령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그게 전부였다. 일본 본토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내륙에서 120km나 떨어진 곳에서 발생해 준 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정호준과 비밀리에 이야기를 나눴던 요시다 겐이치로 또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긴 마찬가지였다.
‘정호준 대표의 말대로 정말 지진이 나긴 났네.’
-네 개의 판이 만나는 특수한 환경을 가진 일본에서 지진이 빗겨나갈 거라 생각하십니까?
정호준이 예측했던 대로 일본에서 지진이 일어나긴 일어났다. 다만 간토전력이 운용 중인 원자력 발전소의 안위까지 걱정해야 할 만큼 위험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정호준 대표의 꼬임에 너무 쉽게 넘어간 건가?’
조건이 좋았다. 딸의 미래를 위해서나 가족의 미래를 위해서도 밖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정호준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저지르고 나니까 후회가 생겼다. 일적인 후회는 아니다. 계약서에 본인이 나서서 내부 고발을 진행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는 조항을 추가해 회사를 배신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으니까 말이다.
겐이치로의 걱정은 이민과 가족에 관한 염려였다.
‘가족 전체가 움직이는 걸 너무 쉽게 선택했나? 일본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적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너무 독선적으로 움직인 건 아닌지, 가족에게 너무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한 것 같아 혼자 속을 태우고 있을 무렵, 정호준에게서 한 통의 연락이 당도했다.
-3월 10일, 그리고 3월 11일 아침까지 토야마(도야마)현에 머물러 주십시오. 토야마현에서 머무르며 사용한 비용을 증거물로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대지진으로 다칠지 몰라 여파가 닿지 않거나 미약한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조치였으나 그 사실을 모르는 요시다 겐이치로에겐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지시였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을은 그저 위에서 지시하면 따를 뿐이다.
“내일부터 이틀간 간사이 전력 관계자와 미팅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정 조정 부탁해요.”
자신의 스케줄을 관리하는 비서에게 출장을 핑계로 스케줄을 미루고 토야마현으로 이동했다.
* * *
일본에서 도호쿠 대지진이라 불리는 지진이 발생하기 하루 전, 중국 윈난성에서도 지진이 발생했다.
-중국 윈난성 5.5 지진 발생. 사망자 집게 중.
일본에서는 그냥 ‘가볍게 지진이 왔네?’라고 여길 정도를 조금 넘긴 수준인 5.5강도의 지진이지만 중국 윈난성에서는 난리가 났다.
-윈난성 지방정부 20명 사망, 250명 부상으로 발표. 추후 추가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주택이나 아파트가 무너져 내린 것을 찍은 뉴스가 한국과 일본에서 3월 10일 하루 동안 다뤄졌다.
⌎그럼 5.5면 그냥 가벼운 거 아닌가? 왜 저렇게 건물이 많이 무너졌지?
⌎건물을 시공한 건설사가 중국 거잖아. 누가 봐도 날림공사나 부실하게 공사할 애들이야.
⌎통계를 조작하기로 유명한 중국의 통계니, 저기다 하나씩 더 붙여야 맞지 않을까?
⌎5.5 지진에 저렇게나 큰 피해를 입는 거야?
한창 중국과 교역을 이어 가고 있고 관계가 나쁘지도 않은, 지진의 빈도수가 적은 한국의 네티즌들은 그저 중국의 불행을 애도했지만. 일본의 네티즌들은 본인들이 느끼기엔 아무것도 아닌 수준에 불과한 지진에 큰 피해를 입은 중국을 조롱하기 바빴다.
지진 자주 일어나는 게 뭐 자랑할 거리라고. 한 치 앞을 모르는 어리석고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 * *
선물거래는 16세기 말 일본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수확기에 일정량의 쌀을 인도할 것을 약정하는 증서를 오사카의 한 상점에서 거래했다나? 금융계에서는 이를 세계 최초의 선물 거래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물거래의 시작은 아무래도 19세기로 보는 게 맞았다. 선물시장의 메카인 미국 시카고에서 19세기 후반부터 선물거래가 활발하게 진행했다. 시카고에서 선물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진 이유는 당연히 환경과 경제적 요인에 있었다. 당시 미시간 운하가 개통돼 미국 중서부 지방의 곡물 집산지가 된 시카고는 운송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불안을 짊어지고 있었다.
운송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말은 즉 곡물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말이었고, 이는 상인들에게 큰 불편함과 피해를 야기시켰다. 그렇잖은가? 내가 사려는 시점에는 10달러만 주면 됐는데, 교통 환경 탓에 운송이 지연되어 도착했을 때는 쌀이 15달러를 줘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편하게 설명하고자 5달러라고 말했지, 다수의 물량을 사게 되면 피해가 어느 정도로 확산할지는 곡물을 매입하는 당사자 본인을 빼곤 아무도 모른다.
종종 발생하는 운송 지연에서 비롯된 곡물가격의 변동을 해결하고자 상인들은 머리를 모았고, 그게 시카고 상품거래소(CBOT, Chicago Board of Trade)의 기원이었다. 밀, 쌀, 콩, 옥수수, 귀리 등 곡물로 시작했던 선물은 이윽고 범위를 확장시켰다.
금과 은, 철, 동과 같은 금속부터 희토류와 같은 희귀금속들, 석탄이나 기름, 가스 같은 인간이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필수 에너지원까지 확장했고.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가치를 넘어 국가 지수, 환율과 같은 무형적인 가치까지 선물시장에 등록되었다.
정호준의 지시를 받은 JHJ Capital 직원들은 일본의 니케이 지수와 엔화에 포지션을 잡고 선물을 사들였다.
수확을 거둘 시기는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일본을 발칵 뒤집어 놓을, 정호준이 밖으로 알릴 수 없었던 대지진이 시작되었다.
쿠르르릉!!
두두두둥!!
높이 지은 건물, 튼튼하게 지은 건물, 스타디움 할 것 없이. 아니 땅에 서 있는 모두는 진동을 감지했다.
-미야기현, 이와테현, 후쿠시마현, 아키타현, 야마가타현에서 긴급 지진 속보입니다. 지진을 관측한 시민들께 알립니다. 진정하십시오. 침착하게 행동해 주세요. 우선 위에서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도쿄의 스타디움도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건물 붕괴와 산사태에 유의해 주십시오.
생방송으로 뉴스를 진행 중이던 앵커는 지진이 발생했음을 인지한 뒤 보고를 받고는 이 뉴스를 시청 중인 시민들이 패닉에 빠지지 않도록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이와테현 연안 남부, 이와테현 내륙 북부…… 등에서 진도 6의 지진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주의 말씀드립니다. 시민 여러분께서는 위에서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시길 바랍니다.
정말 대단한 프로 정신이었다.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에서 대해일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에서 대해일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이와테현 3m, 미야기현 6m, 후쿠시마현 3m입니다. 해안이나 강 하구 부근에는 절대로 접근하지 마십시오!! 고지대로 회피하시기 바랍니다!!
지진을 감지하고 3분이 지났을 무렵 대해일 경보가 발령되었다.
-다음으로 해일 경보가 발생한 지역입니다. 해일 경보가 발령된 곳은 훗카이도 태평양 연안 중부, 아오모리현 태평양 연안, 아바라키현, 치바현 쿠주구리, 이즈 제도입니다. 2m에서 1m의 물결이 도달한다고 예상 중입니다.
뉴스에서는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했지만, 해당 지역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급박한 상황이었다.
“꺄아아악!!”
“뛰어! 뛰라고!!”
연안은 이미 물에 잠긴 곳이 존재했다. 그리고 뒤이어 차나 요트는 물론이고 건물도 하나둘 쓸려나갔다. 쓰나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해일경보가 발령된 지역의 논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망치지 못한 사람 또한 쓰나미에 휩쓸렸다.
“으에에엥!”
“엄마~!!”
“괜찮아!! 괜찮아!!”
그나마 고지대로 대피해 성공했어도 아이들은 울음을 터트리기 바빴고,
“하즈카!! 하즈카!!”
“야히코!!”
“사토시!!”
중간에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들은 아이의 이름을 간절하게 외쳐 댔다.
그래도 대피에 성공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대피에 실패해 급류에 휘말린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힘내세요~!!!”
“구조원이 올 때까지 조금만 버텨요!!”
파도에 쓸려나가는 인간을 보며 시민들은 조금만 힘내라고, 조금만 버티라고 외쳤다. 남을 구하러 뛰어들기도 뭐 했고, 뛰어들어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지대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거나, 어떻게든 버텨 보라고 응원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재산 피해는 둘째치고 사람이 죽어 나가는 생지옥이 일본에서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었다.
* * *
불행은 연쇄된다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을 거다. 그 말을 증명하듯 쓰나미에 이것저것 쓸려 나가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도 일본에서는 진행되고 있었다.
대지진보다 더 큰 불행의 시작은 도호쿠 지방에 일본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여 15m에 달하는 쓰나미가 원전을 덮친 것에서 시작되었다.
원자력 발전소 설게상 지진을 감지한 원자로는 안전을 위해 자동적으로 셧다운된다. 그리고 이를 대체할 비상 발전 체계가 작동되었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으나 몇 분 지나지 않아 원전을 덮친 15m에 달하는 쓰나미가 문제였다.
콰아아아앙!!
3시 27분에 첫 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했다. 이때 수전선로가 파괴되어 외부 전원이 차단되자, 디젤발전기로 전원을 공급하여 냉각을 시작했다.
곧이어 3시 46분에 15m짜리 2번째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했다.
원전 앞을 가로막고 있는 5.7m 높이의 쓰나미 방호벽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비상 발전기 자체는 고지대에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침수 피해를 봐도 안전했지만, 발전기로부터 전기를 받아들이는 변전 설비를 건물 지하에 설치해 놓은 바람에 변전 설비의 침수를 막지는 못 했다.
그리고 이 점이 후쿠시마 원전에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변전 설비가 침수된 탓에 냉각수를 공급하는 순환 펌프에 대한 전력 공급이 중단되었다.
노심 냉각을 위한 필수적인 전기가 끊겼으므로 노심 온도는 시시각각 계속 올라갔다.
“비상! 비상입니다. 일단 비상 배터리를 가동시키긴 했지만, 조금만 늦어도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의 온도가 위험 수치에 도달할 겁니다!!”
“본사와 정부에 요청해!! 이동식 발전기와 여분의 배터리를 있는 대로 가져다 달라고. 이대로 가다간 원자력 발전소가 위험해!!”
원자력 발전소를 관리하는 책임자는 간토전력이 원자력 발전소를 포기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원자로를 망가트리는 해수를 들여와 냉각시키는 선택지는 아예 고려도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는 그렇게 보조 배터리를 통한 냉각로 재가동이란 선택지를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