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64화 (264/335)

26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64)

쓰나미가 원전을 강타해 변전 설비도 침수되자마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는 백업용 비상 배터리를 가동했다.

간토전력에서 원전을 설계할 때 설정한 백업용 비상 배터리의 용량은 약 8시간.

‘긴급으로 가져다 달라고 강조했으니 금방 도착하겠지. 비상용 배터리가 가동된 건 오후 2시 52분. 8시간이면 충분할 거야.’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책임지는 야마다 소장은 그렇게 사태를 낙관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정부든 회사든 지금 사태를 수습하는 것을 가장 우선순위로 둘 거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말이다. 야마다 소장은 현재 일본이 얼마나 큰 패닉에 빠졌는지, 바깥의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쓰나미로 인한 잔해 때문에 본래의 길이 아닌 열악한 길로 이동해야만 했고, 그 탓에 배터리는 6시간이 지난 뒤에야 후쿠시마연구소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실 후쿠시마 연구소에 존재하는 백업용 비상 배터리가 정말 8시간을 가동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다는 사실이다.

“1호기 원전에서 DG트립이 발생했습니다.”

첫 번째 쓰나미로 1호기가 정전되며 DG트립이 발생했고, 이후 3시 41분 2호기 냉각수 순환시스템(RCIC)에도 정전과 DC트립이 발생했다.

냉각수의 온도를 유지해 줄 전력이 투입되지 않으니 노심의 수위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이윽고 4시 36분에는 긴급노심냉각장치마저 고장이 났다.

“소장님!! 1호기 건물 외부 비상냉각탱크(이소콘)에서 소량에 증기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오후 4시 44분, 비상대책본부 인원 중 1명이 원전 1호기에서 증기가 발생하는 것을 확인했으나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었다.

‘대체 배터리는 언제 오는 거야?!’

그저 속을 태우며 굼뜬 회사의 일 처리에 노심초사할 뿐.

그때였다.

띠리리링~!!

야마도 소장의 핸드폰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요시다 이사

전화 통화를 건 인물은 근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찾아와 밥을 사 주고 직원들을 위로해 주며 관심을 쏟았던 인물이었다.

* * *

워낙 강력한 지진이다 보니 훗날 집계에 피해가 전혀 없던 지역 중 나라로 꼽힌 토야마(도야마)현에서도 흔들림은 느낄 수 있었다. 흔들림을 감지한 요시다 겐이치로는 곧장 호텔 방으로 돌아와 TV를 켰다.

-이와테현,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에서 대해일 경보가 발령되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배가 쓸려 나가는 것을 확인한 요시다 겐이치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마치 나를 미리 피난시킨 것 같다.’

가족을 구원해 준 것은 물론이고 본인의 생명까지 구했다. 본인의 취임지에 있었다고 그가 목숨을 잃었을 거란 단정은 할 수 없지만, 리스크 자체를 차단해 준 것만으로도 정호준은 그에게 있어 은인(恩人)이었다.

-삑! 삐비빅!

요시다 겐이치로가 정호준에게 감사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무렵, 그의 상념을 깨는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JHJ Capital 정호준 회장

소문을 듣고 험담을 하면 험담한 사람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했던가? 옛말처럼 정호준의 험담을 한 건 아니지만 자신이 그를 생각하고 있을 때 전화를 걸어오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귀신 같구먼 정말.’

후우~!

심호흡을 내뱉으며 떨리는 마음을 최대한 진정시킨 뒤 전화를 받았다.

“예, 대표님 전화받았습니다.”

-뭘 그렇게 공손하게 받으십니까?

“가족과 제 목숨을 구원해 주신 분인데, 당연히 공손해야지요.”

-그렇습니까?

정호준의 되물음에 요시다 겐이치로는 입을 꾹 다문 채 침묵했다.

요시다 겐이치로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정호준은 자신이 전화한 용건을 밝혔다.

-제 개인 소식통을 통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어떻게, 야마다 소장과는 친분을 좀 쌓아 두셨습니까?

정호준의 질문을 통해 정호준이 무엇을 지시할지 예상한 겐이치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몇 차례 만나서 술을 마시며 연을 쌓긴 했습니다. 하지만 얄팍한 연입니다.”

어쩌다 몇 번 만난 사이로 흉금을 털어놓거나 충고를 듣고 진로를 결정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야마다 소장이 직접 움직이길 원하는 게 아닙니다.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싶고, 야마다 소장의 입에서 튀어나온 진실의 녹음 파일을 원합니다. 그리고 요시다 이사님께서는 야마다 소장에게 잔인한 현실만 일러 주시면 됩니다.

“잔인한 현실이라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연구소의 소장까지 지켜 줄 여력이 있을까?’라는 의심을 심어 주시면 충분합니다.

* * *

정호준의 지시를 받은 요시다 겐이치로는 그렇게 정호준과 1시간가량 전화 통화를 나눈 뒤 오후 5시쯤 전화를 걸었다.

-야마다 소장님. 저 요시다 겐이치로입니다. 그쪽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습니까?

“안 좋습니다. 본사에 배터리를 요청한 게 3시간 전인데, 대체 왜 아직도 도착을 안 하는 겁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3시간은 더 걸릴 겁니다.

“그게 무슨?!”

-도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본사에서 들려오는 말로는 열악한 도로 환경 때문에 운송이 지연되고 있다고 합니다.

쓰나미가 덮친 건 달리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만이 아니다. 요시다 겐이치로는 바깥의 상황을 낱낱이 알려 주었다.

-그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야 본사에 들어가서 말이라도 한 번 더 꺼내 보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 오후 4시 44분경 원전 1호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관측했소…….”

야마다 소장은 이대로 상황이 악화일로를 걸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이 정도까지 최악이었나?’

비관적인 내용이 끝없이 흘러나오자 요시다 겐이치로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간토전력이 JHJ Capital로부터 투자를 받으려 했던 것도 사실 노후화된 설비를 교체할 자금이 부족한 이유가 컸다. 요시다 겐이치로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만약 이 사태가 커져서 야마다 소장님이 말씀하신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면, 책임은 야마다 소장님이 뒤집어쓰실 확률이 높습니다. 얕은 친분이지만 친분을 쌓았기에 충고드립니다. 이런 말씀 드리고 싶지 않지만 사태가 끝나고 있을 소송에 대비할 자료를 마련해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일개 소장일 뿐입니다.”

-국민들의 분노를 잠재울 희생양이 필요할 테니까요. 회사 입장에서도 본인들에게 쏟아지는 원망을 전가할 대상이 필요합니다. 짧은 생각이지만 저는 소장님이 그 재물로 뽑힐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지진 때문에 분노한 일본인들은 조선인과 중국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학살을 자행했다. 이후에도 일본에서 외국인이라는 약자에 대한 혐오는 항상 존재했고 책임질 일이 필요할 때마다 그들을 소모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1회차 때의 이야기지만 실제로 간토전력 경영진들은 쏟아지는 언론의 질문에 마에도 소장이 답하도록 움직였다. 사태 해결만으로도 바쁜 이를 불러다 질의응답까지 시키니 해결이 잘될 리가 있겠나?

요시다 겐이치로는 그렇게 야마다 소장의 마음속에 불안이라는 씨앗을 심었다.

* * *

원전에 해수를 쏟아부으면 사태는 해결되지만 원자로를 사용하지 못한다. 간토전력에게는 크나큰 손해로 작용하는 한 수다. 다만 경제적인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만으로 후쿠시마 발전소에 마지막까지 해수 투입을 지연시킨 건 아니다.

2011년 간토전력의 전기 공급은 원자력 발전소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망가지면 전기 공급에도 차질이 생긴다.

‘현대에서 전기 공급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잖아도 갑작스러운 재해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거늘 여기에 정전까지 겹치면 여러모로 패닉이 가중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일본 정부는 해수 투입이란 선택지를 뒤로 미루는 간토전력을 두고 봤다.

1회차 때는 말이다. 이번에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현재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일본 망할지도wwww]

정호준이 요시다 겐이치로부터 받은 통화 녹음 파일을 편집해 일본의 넷상에 뿌렸기 때문이다. 넷상에 올라온 파일에 요시다 겐이치로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해수 투입이라는 뚜렷한 해결책이 있는데도 지금 그 해결책을 안 쓰는 건가?

⌎체르노빌 사태 같이 상황이 악화될 수 있는데 뭐 하는 거야? 정부는 대체 뭐 하는 거지?

반응은 실로 뜨거웠다.

일본의 넷상 외에도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미국의 커뮤니티에 이 녹음 파일이 올라왔다. 그것도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에 대한 번역이 충실하게 된 상태로 말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당장 해수 투입을 지시해야 합니다.”

원전 사고는 국가 차원의 사고고, 더 나아가 세계가 관심을 쏟는 분야다. 미국, 한국, 중국, 러시아의 전문가들이 빠르게 등판에서 지금이라도 빨리 해수 투입을 지시할 것을 권고했다.

* * *

국가의 경제는 독립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다. 현대에 와서는 온갖 요소들이 모두 한 발씩 걸쳐 있는 괴물이 되었다. 얼마나 복합적이냐면 인간이 평생을 공부해도 경제에 통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소위 전문가라고 불리는 이들의 예측이 틀린 것보다 맞는 것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수준이라는 게 이를 뒷받침했다.

그 누구도 제대로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게 바로 경제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

바로 하락세가 한 번 시작됐다면 그 흐름을 막는 건 쉽지 않다는 거다.

갑작스러운 대지진으로 농업, 어업 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전에 문제가 생겼고, 그 사실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탈출 러쉬로 주식시장이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헤지펀드들의 환율 공격으로 환율이 떨어졌다.

10,350, 10,320, 10,305, 10,284, 10,250.

장이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10,350으로 시작했던 닛케이 지수는 거듭된 악재에 큰 폭으로 하락했다.

10,101.

장이 마감되었을 때는 무려 10,101까지 내려가 있었다.

1회차 때와 비교해도 훨씬 큰 하락보다 더 큰 폭의 하락이었다. 그런 가운데 일본 증권가에서는 한 가지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닛케이 지수와 연동된 닛케이225 지수 선물에 물린 금융 기업이 한둘이 아니래.”

“나도 그 소문 들었는데. 들었네. 2008년처럼 미츠바시와 미츠이나, 그리고 나카무라와 다이쇼 증권도 물렸다던데?”

장이 끝난 뒤여서 당장 3월 11일에는 지장이 없지만, 3월 12일 더 큰 폭으로 낙하할 거라는 건 생각을 할 수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일본의 쟁쟁한 금융 기업들이 닛케이 지수 선물에 물렸다는 펙트와 함께 주식시장이나 외환시장에 타격을 줄 소식은 또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 붕괴까지 64시간?!]

[제2의 체르노빌 사태가 터지는 건가?]

[하토야마 유시로 총리가 해수 투입을 명령하지 않는 이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을 다룬 녹음파일이 돌자마자 일본의 경제는 더 깊은 나락으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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