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59)
욕망. 인간이 가진 욕구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자기 계발의 원동력이 되는 요소로,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성향이다.
‘아기가 무슨 욕망이 있다고?’
아기가 무슨 욕망이 있냐고 물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정호준은 말을 못 하는 아기가 우는 이유는 욕망에서 비롯됐다고 대답할 거다.
그렇지 않던가?
배고프니 밥 달라고 식욕에서 비롯된 울음, 졸리니 자고 싶다고 부리는 땡깡, 똥오줌을 싸서 불편하니 편해지고 싶다는 욕망에서 울음 등 말을 못 하는 아이조차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다.
욕망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난 성향이 하나 더 있는데, 이는 바로 무리를 이루려는 사회성이다. 셋만 모여도 둘과 하나로 편이 나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게 이를 증명한다.
‘외부의 위협이 줄어들고 현대에 들어서면서 이게 조금 변하긴 했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외부 환경 탓에 DNA 깊숙이 존재하는 사회성이 무뎌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도 인간은 무리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기업이란 집단은 사회성과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이 수익 창출을 위해 모인 곳이었다.
“아시아권은 해 먹지 못해서 안달이 난 건가? 뭐 이렇게 많이들 해 드셨데?”
정보기관들과 트리오플 정보부에서 조사한 정보를 규합해 올린 보고서를 읽으며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기업이란 곳이 돈이 몰리고 욕망을 가진 사람이 몰린 곳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보고서를 읽어 보면 그야말로 비리투성이였다. 떡고물을 받아먹는 건 너나 할 것 없이 전부 받아들 드셨고, 한국의 윗선들이 그랬던 것처럼 납품업체 명단에 본인의 일가친척이 운영하는 곳을 끼워 넣은 이들도 수두룩했다.
간토전력 자회사 하청업체를 넘어 자신의 입김이 닿는 거래처에 친척이 운영하는 회사를 하청업체로 두도록 만든 경우도 존재했다.
“와! 대단도 하셔라.”
해 먹을 수 있는 것은 알차게 다 해 먹은 내역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정호준은 감탄사를 내뱉곤 했다.
정호준은 사진과 이름, 가족관계,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적 등이 모조리 적혀 있는 보고서를 쭉 훑었다.
-요시다 겐이치로(비서팀과 전략팀, 정보팀의 추천 대상)
정호준에게 조사를 지시받은 이들은 정호준이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진상은 모른다. 하지만 눈치껏 정호준이 간토전력에 사람을 심으려 한다는 것쯤은 파악했기에 그들은 본인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코맨트를 남겼다.
‘요시다 겐이치로라.’
직원들의 추천이 들어간 인물인 만큼 좀 더 집중해서 읽었다.
* * *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사회 구조는 언제나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리가 적어지는 삼각형의 피라미드 구조를 띤다.
밑에서는 계속 치고 올라오려고 압박감을 주는데, 위에는 자리가 몇 개 없다. 그 몇 개 없는 자리를 쟁취하고자 회사 내에서 다툼이 시작됐고, 다툼은 이윽고 파벌로 심화되었다. 밑의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임원 자리에 앉은 이는 자신을 밀어줬던 부하들을 끌어올려 주며 보답을 한다.
이런 구조가 정착화되면서 기업 내부에서 사내 정치가 일어나는 게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정치력 없이는 이사 자리에 못 올라가게 된 거지.’
개인의 인권과 권리, 개성을 중요시하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권에서는 정말 본인이 뛰어나다면야 정치력이 부족해도 임원이란 자리에 올라서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집단주의가 자리 잡은 동양권에서는 정치력이 부족하다면 본인이 암만 뛰어나도 그냥 묻혔다.
모난 정이 돌 맞는다는 옛 속담만 봐도 그런 뉘앙스를 풍기잖은가?
직원들이 매수하면 좋겠다는 평가를 내린 요시다 겐이치로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회사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은 한 내후년에 정년퇴직이 예정된 이로 젊었을 적 능력이 상당했고, 임원직을 이어 갈 만큼 정치력 또한 뛰어난 남자.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보신주의가 강해지는 인간의 성향 때문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여 주긴 하나, 다른 이들과 비교해 비교적 덜 부패했다.
여기서 덜 부패했다는 말은 주는 것은 거절하지 않고 받았지만 더 많은 돈을 챙기기 위해 스스로 선을 넘으며 비리를 저지르진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능력이 뛰어나고 성품도 좋아 간토전력 내부에서 존경을 받는 편이라 회유하면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 사료됨.
‘으으음? 왜 추천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정년이 2년 남았다는 점만 놓고 보면 회유하기도 좋고 쓰고 버리기에 좋다는 것까지는 이해했으나, 지금까지의 이력만 놓고 봤을 때는 선을 넘지 않은 만큼 매수가 쉬워 보이지 않았다.
‘돈이 아쉬울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데?’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일본이란 나라에서 대기업으로 꼽히는 간토전력의 임원이다. 그것도 정년직이 얼마 안 남은.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이라면 돈 욕심 때문에 회유가 쉽겠으나 요시다 겐이치로는 아니었다.
회유가 어려워 보이는 요시다 겐이치로를 추천한 이유는 뒷장에 나와 있었다.
특이사항: 편모 가정에서 자랐고, 모친은 6년 전 병사(病死). 늦은 나이에 결혼. 2남 1녀를 두었으나 장남 병사(病死). 차녀와 막내(차남)만 생존. 차녀 또한 몸이 약해 병원 신세를 많이 졌다. 차녀가 혼기를 앞두고 있으며 차남은 이제 막 회사 생활을 시작함.
특이사항을 읽어 보니, 다른 임원들과 달리 모은 돈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 아팠다면 이해할 수 있지. 결혼을 앞두고 있고, 막내도 결혼시켜야 하니 목돈이 필요한 것도 이해가 가고. 그런데, 내가 알기로 일본은 한국보다 본인 부담금이 더 적은 걸로 알고 있는데?’
대한민국에 국민건강보험이 있다면 일본에는 ‘국민보험제도(國民皆保険制度)’가 운용 중이다. 한국과 일본 두 국가 모두 의료보장 유형으로서 국민건강보험제도(NHI) 유형을 채택하고 있는데, 일본은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한국보다도 더 본인부담률이 낮은 국가다.
특이사항 2: 오사카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처남 이노우에 하타로가 과거 사고를 많이 침. 처남이 사고 친 것을 수습하는 데 한 손 보탬. 이노우에 하타로가 가게를 차릴 때도 돈을 조금 보태 준 것으로 추정.
‘가족이란 이름의 웬수를 가진 사람이구나.’
자료를 읽으면 읽을수록 회유의 난이도가 낮아질 정도로 요시다 겐이치로는 굴곡 있는 인생을 산 남자였다. 다만 마냥 쉬워 보이지만은 않았다. 선을 넘고자 하면 얼마든지 넘을 수 있음에도 마지막까지 선을 지킨 남자였으니까 말이다.
* * *
정호준이 약속을 잡으라는 D-day를 두고 비서팀과 일본 정부 관계자들 간의 일정 조율이 이어졌다. 줄다리기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오후 2시쯤 일본 정부 관계자와 만나고 오후 5시쯤 간토전력의 PPT를 듣는 걸로 일정이 잡혔다.
“어서 오십시오. JHJ Capital의 정호준입니다.”
“주미대사 시미즈 하나타로입니다. 아시아인도 미국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전설적인 사례를 남기신 대표님을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자존심을 다 버리고 온 듯 자신을 하나타로라고 소개한 남자는 시작부터 달콤한 아부를 해 댔다.
“비행기 태워 주셔도 뭐 안 나옵니다. 부끄러우니 제 얼굴에 금칠은 이만했으면 합니다.”
“비행기라뇨?!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한 겁니다.”
“그런가요? 그래도 조금만 자제해 주십시오.”
남들이 자신을 띄워 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최소한 정호준은 그런 유형에 속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자제를 부탁했음에도 정호준은 몇 차례나 더 자신을 띄워 주는 말을 들어야 했다.
“간토전력 사장단을 동반해 달라는 제 요구까지 들어주면서 만남을 청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제 얼굴에 금칠은 그쯤 하시고 용건을 말씀해 주시죠. 별다른 용건이 없으신 거라면 미팅은 여기까지입니다.”
정호준이 정색을 한 뒤에야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JHJ Capital 일본 법인이 주식을 모두 정리하고 나가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 이렇게 미팅을 청했습니다.”
하나타로가 꺼내 든 본론은 정호준과 비서팀 등이 예측한 그대로였다.
“주식을 정리하든 말든 일본 정부가 신경 쓸 일은 아닐 텐데요?”
“JHJ Capital이 평범한 투자회사라면 그렇겠지요.”
일본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GDP를 기록 중인 나라로 경제 규모가 거대하다지만, 17조 원에 상당의 주식이 줄줄이 시장에 나오는 건 주식 시장에 공포를 형성하기 충분했다. 게다가 그 유명한 JHJ Capital이잖은가?
그리고 14억 달러가 한 번에 일본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문제였다.
주식을 정리하는 것부터 달러가 빠져나가는 것까지 모두 일본 경제에 큰 타격이 갈 사안들이었다.
정호준은 그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려주었다.
“수익 실현을 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정리한 겁니다. 정리를 마친 뒤에 다시 재투자해야죠. 2007년에 일본 정부와 약속했던 계약을 잊지 않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호준의 말을 들은 시미즈 하나타로의 표정이 밝아졌다.
“일본의 개인 투자자들부터 외국인 투자자들까지 JHJ Capital의 행보를 지켜보느라 투자를 망설이고 있어서요. 정호준 대표님! 혹시 지금 하신 말씀을 언론을 통해 다시 한번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대표님께서 번거로워하지 않으시도록 세팅은 저희 쪽에서 하겠습니다.”
조금은 무리할 수도 있는 요청이었지만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간토전력 사장단을 대동했으면 한다는 제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셨으니, 저도 선물을 하나 드리는 셈 치죠. 단! 시간을 길게 내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질문도 사전에 논의가 된 내용만 답할 거고요.”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그렇게 시미즈 하나타로와의 만남을 마쳤고 잠깐 휴식 후 간토전력과 미팅을 가졌다.
“PPT 시작하겠습니다…….”
정호준의 자금을 투자받기 위해 간토전력은 준비해 둔 PPT를 진행하며 회사의 비전을 설명했지만, 간토전력에 투자할 생각이 전무한 정호준은 그들의 PPT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물론 정호준이 건성으로 듣는 것과 달리 JHJ Capital 투자 담당팀 직원들은 그들의 PPT를 열심히 들었지만 말이다.
정호준 본인이 그들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한 만큼 함께 식사 자리를 가지면서 추가로 대화를 나눴다. 식사 자리는 미국에서 연회를 벌일 때처럼 파티 식으로 진행됐다. 일부러 안무팀이나 연주팀도 준비시켰고 말이다.
간토전력 사장단은 식사할 때도 투자팀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고, 정호준이 만들어 둔 이러한 환경은 비밀리에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도록 직원을 통해 저녁에 따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달했다.
‘왜 나에게만 이렇게 따로 이야기를 하는 거지?’
자신만 따로 만나고 싶다는 말에 의문이 서렸지만 갑은 JHJ Capital이었다. 어떻게든 투자를 따내야 하는 입장인 요시다 겐이치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사람을 따로 불러내는 것을 일본 관계자나 간토전력 관계자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기에 정호준은 비서팀에게 간토전력 사장단과 주미대사 하나타로의 방을 조금씩 띄워 두도록 지시했다.
호텔 측의 도움을 받아 정호준과 요시다 겐이치로가 밤늦게 호텔의 컨퍼런스룸에서 개인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어서 오십시오.”
미리 와서 자리에 앉아 있던 정호준은 요시다 겐이치로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누가 봐도 못된 일을 꾸미는 흑막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