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58)
정호준이 비서팀에 사장단의 정보를 알아 오라고 지시한 간토전력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일본 전력회사 중 가장 큰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였지만,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일으키며 악의 축처럼 여겨지게 된다.
이를 증명하듯 간토전력은 2012년에 세계 최악의 악덕 기업임을 기념하는 상인 ‘공공의 눈’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간토전력은 동일본대지진으로 터진 원자력 발전소 사태 이전에도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기업이었다.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딱 저들에게 어울리는 말이지.’
정호준을 포함해 나이가 어린 청년들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1990년대에 러시아가 그들의 영해인 동해안에 방사성 물질을 버리는 바람에 동아시아 삼국(한국, 일본, 중국)에서 이슈화된 적이 있다.
‘러시아가 60년대부터 동해를 비롯한 오호츠크해에 방사성 폐기물을 투기해 왔었다지?’
당시 일본에서는 대다수의 일본인이 러시아를 욕했고, 정부 차원에서도 나서서 러시아에게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물론 정부까지 나서서 비난을 가한 일본의 행보에도 러시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1993년에도 동해안과 가까운 그들의 영해에 방사능 물질을 투기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다음에 벌어지게 된다.
러시아가 방사성 폐기물을 바다에 버렸다고 그렇게 비난하고 깎아내렸던 일본에서 활동하는 기업. 일본 최대 매출을 자랑하는 간토전력이 동해에 4천억 베크렐에 달하는 방사성 폐기물을 버렸던 것이 알려졌다.
해양에 투기한 횟수도 러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한두 번이 아니었고, 하물며 매번 버릴 때마다 러시아가 바다에 버린 것의 10배는 많은 양을 바다에 투기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 것보다 못한 상황이지. 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는 뻔뻔한 족속들이야.’
간토전력의 사고 이력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2002년 원자력 발전소 관련 검사 기록 변조가 발각되어 가동 중이던 원전 17기의 운용이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점검이 시행되었는데, 결과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충격적이었다.
정부 차원에서 실시된 대대적인 점검은 간토전력의 회장, 사장, 부사장과 같은 간토전력 책임자 모두가 옷을 벗는 사태로 번졌다.
‘악의 축이라는 밈이 틀린 것 하나 없다니까!’
간토전력 경영진들이 원전 가동을 시작한 1975년도부터 2002년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은폐해 왔음이 들통났고, 간토전력이 은폐한 사건·사고의 수는 무려 200건이 넘었다. 심지어는 원자로 노심에 금이 간 사실마저 문제없다고 허위로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 일본을 넘어 국제 뉴스의 일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이후 새 사장이 취임한 후 관리 기준을 강화하고 원전들도 2005년도부터 다시 재가동했지만, 2007년에 또다시 은폐 사실이 대거 적발되며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개가 똥을 끊는다고, 일본인의 유전자에 왜곡과 은폐가 아주 몸에 밴 이들이야.’
이 이외에도 2007년 7월 16일에는 카시와자키-카리와 원자력 발전소가 6.8의 지진으로 변전소에 화재가 발생해 소량의 방사능이 바다로 유출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만만한 게 바다 투기네, 진짜.’
높은 위치에 올라 평범한 소시민은 겉으로만 알고 있던 정보를 하나둘 확인하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 * *
동일본대지진 때문에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일본뿐 아니라 인접국인 한국에도 피해가 가는 일이다. 그가 죽기 전까지도 뚜렷하게 결판이 나지 않은 사건·사고인 만큼, 정호준은 조기에 좋게 해결할 수 있을 때 해결하고자 했다.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을 몇 가지 궁리해 봤는데, 정호준이 생각한 첫 번째 방법은 미국을 이용하는 거였다. 가장 쉽고 빠르게 떠올린 방법이지만 현실이란 장벽에 금방 막히고 말았다.
‘그런데 무슨 이유를 대고 움직이지?’
미래를 보고 왔다고 말할 수 없는 만큼 그가 미국 정부를 움직일 명분이 마땅치 않았다.
지진이 발생하는 걸 예측하는 것부터 무리수가 섞인 선택인데, 지진 때문에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터진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명분을 떠나 미국 정부를 움직인다는 건 정호준에게도 여러모로 부담이 가는 일이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오리하 정부가 내 부탁을 들어주면 나도 언젠가 오리하 대통령이나 오리하 정부 관계자의 부탁을 들어줘야만 한다.’
명분이 마땅치 않은 부탁일수록 나중에 되갚아줘야 할 빚의 무게가 무거워질 게 안 봐도 훤했다. 이미 한 번 덜미를 잡힐 뻔하지 않았던가?
‘정부 관계자나 정치인에게 큰 빚을 지는 건 백지수표를 내미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야. 무리할 필요는 없어.’
기지를 발휘하고 운이 따라줘서 ‘SM 모터스’라 폭탄 떠넘기기를 회피하긴 했지만 두 번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믿음을 주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만약 미국 정부가 그의 말을 믿고 움직여도 골치 아픈 문제는 존재했다.
반신반의하며 움직이던 미국 정부가 정호준의 말대로 구현되는 상황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대지진 때문에 터진 원전 사고는 예측했다는 말로 납득하고 넘어가기엔 무리가 있는 사안이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 뒤에도 후쿠시마 지역을 포기하지 못한 일본 정부가 벌이는 만행 때문에 그의 모국이었던 한국은 여러모로 피해를 받고, 또 미래진행형으로 피해가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지만.
본인에게 큰 부담이 갈 게 뻔한데도 움직일 만큼 간절하지는 않았다.
조국이었던 한국이 좀 더 나은 환경을 마련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맞이했으면 해서 부리는 오지랖이지만, 그게 본인의 삶을 망치면서까지 돕겠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난 두 번째 안이 바로 돈으로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를 매수해서 조치를 취하는 거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인재(人災)라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전문가들은 사태를 인식하자마자 해수를 붓는 결정을 내렸으면 오늘날처럼 사태가 커지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원자로에 해수를 붓는 건 원자로를 못 쓰게 만드는 일이었고, 수조 원짜리 원전을 폐기하는 건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쉽사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책임지지 않으려는 일본 관료주의의 단점이 섞였지.’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려는 속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습성인지라 어디는 다를까 싶긴 하지만, 일본은 보신주의가 다른 나라보다도 더 심한 나라에 속했다. 어쨌든 간토전력에서 권한을 가진 이들은 모두 자기 대신 다른 누군가가 선택을 내려주기만을 기다렸고. 이 때문에 무려 30시간이란 시간이 붕 떠 버렸다.
1분 1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30시간은 정말 무지막지한 시간이다. 30시간을 허비한 대가는 간단하게 수습됐을 문제가 일본의 존망을 걱정할 정도의 문제로 격상하도록 만들었다.
포기하고 도망치면 간토전력을 날려 버리고 그들의 인생을 날려 버리겠다는 당시 일본 총리의 강경한 대응 탓에 어떻게든 수습하긴 했지만, 이후 남은 결과가 바로 2020년까지 정호준이 1회차의 삶 동안 보고 겪은 일본이었다.
‘원전을 버려 수조 원의 경제 피해로 끝날 걸 괜히 망설여서 수백 조를 들여 수습하게 됐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 셈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와 인연을 맺고 위기 상황에 재빠르게 움직이도록 유도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정호준 본인이 선물 소득에서 일부를 기부하는 걸로 물어줄 테니 원전을 버리게끔 하려 했으나 이 또한 몇 가지 방해 요소가 존재했다.
가장 큰 방해 요소는 간토전력이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일본이 한국보다 더 정부의 힘이 강력한 나라라지만 사기업, 그것도 거대한 덩치를 가진 대기업에게 대놓고 손해를 보도록 강요할 수는 없었다.
‘아니 그게 가능하다 쳐도, 그럴 힘을 가진 고위직은 일본에 몇 없다.’
그들은 매수하는 데 대체 얼마가 자금을 쏟아부어야 할까? 아마도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을 쏟아부어야 하리라.
‘가장 편한 건 간토전력의 고위직을 매수하는 건데, 기회가 없네.’
간토전력 사장단을 매수해 동일본대지진 발생 후 직접 사태를 해결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게 가장 편한 선택지였으나, 보는 눈이 많아 직접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정부 관계자가 자신을 찾아온 상황은 간토전력과 접촉할 기회를 노리던 정호준에게는 기회였다.
* * *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를 포기하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존재한다.
후쿠시마현에서도 나카도리와 하마도리 지방 같은 내륙 지역은 평야가 많고 땅이 비옥해서 쌀이 잘 자랐고, 해안 지역은 전통적으로 어업과 해산물이 많이 잡혀 먹거리가 풍부했다. 이런 환경 덕에 산업화로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후쿠시마현은 일본 역사를 통틀어 전통적으로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다.
일본에서 가장 큰 평야라 알려진 간토평야에서 도시화가 진행됨에 따라 농사를 짓는 곳이 이바라키현, 치바현 정도로 축소됐고, 간토평야에서의 식량 생산량 감소는 후쿠시마현에서 생산되는 수산물과 농산물이 일본의 식량 자급자족률을 높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곳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정부 차원에서 방송사들에 이야기를 전달해 연예인들이 후쿠시마에서 출하되는 농산물과 수산물을 먹으며 안전성을 홍보하는 예능을 찍게끔 했다.
‘결과는 동원된 연예인들만 불쌍해졌지.’
가장 열심히 음식을 먹었던 MC가 백혈병 발발로 하차하는 꼴을 보여 줬다. 일본 정부가 발 벗고 나서 MC의 백혈병 발발이 후쿠시마 농산물 때문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누가 봐도 꺼림칙한 상황이었다.
그 지X을 덜할 수 있도록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을 무렵 비서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희소식을 알려 주었다.
“일본 정부 관계자가 미팅 날짜를 잡자고 연락을 해 왔습니다.”
“우리가 제시한 조건은요?”
“간토전력 측에 양해를 구해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날짜를 정해 주시면 그날에 맞춰 사장단과 함께 오겠다고 합니다.”
“흐으음?”
비서의 보고를 들은 정호준은 침음성을 흘린 뒤 말했다.
“간토전력 사장단이 용케도 받아들였네요.”
‘내가 간토전력에 돈을 투자할 거라 여긴 건가?’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시피 부호들은 자산을 현금으로 들고 있는 걸 선호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자금을 굴리는 부호의 심리를 간토전력 사장단이나 일본 정부 관계자가 모를 리 없었다.
JHJ Capital이 주식을 정리하면서 간토전력을 찾자 재투자를 위한 정비로 본 것 같았다.
‘PPT를 준비해서 오겠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미국행을 선택했는지 예측을 마쳤기에 그에 맞는 행동지침을 짜기 시작했다.
“동양 속담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 했습니다. 미팅 전에 정보를 확인하고 싶은데, 사장단에 대한 정보는 준비가 끝났나요?”
“모레 중으로 정리가 완료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미팅 날짜는 다음 주로 잡도록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