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52)
레만 아브라히모비치 쪽에서 토레스의 에이전트와 비밀리에 접촉한 것 같다는 에이든 무어 단장의 추측이 이어졌다. 정호준도 무어 단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레만 아브라히모비치가 원래도 이렇게 계속 찔러 봤었나?’
정황상 비밀리에 만난 게 분명해 보였지만 리버풀은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다.
“만약 그렇다 해도 증거가 없는 이상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잖습니까?”
사전에 접촉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호준은 1회차의 기억 덕에 파란 유니폼을 입은 페르도 토레스가 얼마나 수준 낮은 선수였는지 알고 있었으나 선뜻 매각하자는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
‘시기가 너무 빨라.’
정호준이 기억하기로 빨강 토레스가 파란 토레스로 변신한 시기는 월드컵이 끝난 다음 해였다. 이 1년의 차이는 리버풀에게 독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걸리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호준의 개입으로 리버풀은 1회차 때와 달리 뛰어난 스쿼드를 보유한 팀이 되었다. 공격진은 물론이고 2선까지 강력한 공격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 말은 곧 토레스에 가해지는 위험도가 분산되었다는 말이고, 세어 보지 않아 모르지만 아마 부상을 덜 당했을 확률이 높았다. 부상으로 죽은 폼이 끝까지 올라오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얼마든지 폼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결국 결론을 내렸다.
“결정했습니다. 토레스 보내는 걸로 하죠.”
-구단주님!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의 공세에 맞서 이미 몇 차례나 주급 체계를 수정했습니다. 선수들을 위한 시설도 최고로 맞춰 줬고요. 구단의 주급 체계를 잘 알면서 그런 요구를 했다는 건 이미 마음이 떠났다는 겁니다.”
선수들이 둥지를 바꾸는 데는 이유가 여럿 존재한다. 우승 커리어를 쌓고 싶거나 더 큰 무대에서 뛰고 싶다는 야망이 이적을 원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고, 더 많은 돈을 원해서 이적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팀에서의 입지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에이전트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자신이 선수를 꿈꿀 때부터 마음속에 담아 뒀던 드림 클럽이어서 이적을 시도할 수도 있다.
선수가 팀을 바꾸는 데는 이처럼 여러 이유가 존재했지만 하나 확실한 건 마음이 떠난 사람을 잡는 건 지극히 어렵고 의미도 없다는 거였다.
구구절절 옳은 말만 이야기하는 정호준의 말에 무어 단장은 대답 없이 침묵했다.
“물론 그냥 보내 줄 생각은 없습니다. 보낼 때 보내더라도 몸값은 최대한으로 뜯어내야죠.”
-얼마를 부를까요?
“못해도 8천만 파운드는 받아 내야죠. 일단 협상을 뒤로 미루며 시간을 끌다가 협상을 더 끌 수 없으면 1억 파운드를 불러 주세요.”
계약서를 적을 때 따로 바이아웃을 설정해 두지 않은 만큼 토레스의 몸값을 정하는 건 리버풀이었다. 1회차 때 페르도 토레스는 5,000만 파운드, 당시 환율로 한화 약 888억 원의 이적료를 리버풀에게 남겨 주며 첼시의 유니폼을 입었었는데, 정호준은 1회차 때보다 3,000만 파운드(약 532억 원)를 더 불렀다.
무어 단장은 정호준이 제시한 금액을 듣고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
똑같은 침묵이지만 의미가 조금 달랐다. 이전의 침묵이 펙트 폭격에 할 말이 없어 생긴 침묵이라면 지금의 침묵은 막대한 이적료를 요구해 어이가 없어 생긴 침묵이었다.
“에이전트가 우리가 정해 둔 선을 넘으면서 난리 치고 선수의 마음이 떠나서 보내 주는 거지, 돈을 벌고 싶어서 선수를 보내는 게 아니잖습니까? 분탕질하는 게 자존심 상해서라도 내 자존심 값을 챙겨야겠습니다.”
사전 접촉까지 하면서 내 팀이 싫다고 떠나겠다고 하는 상대를 굳이 더 존중해 줄 필요는 없었다.
‘내 자존심 값으로 3,000만 파운드면 적은 거지.’
기름 부자들이나 독재자 왕가를 제외했다지만 포보스 선정 세계 최고 부자에 등극한 이의 자존심 값이다. 3,000만 파운드(532억 원)도 적었다.
“그리고 무어 단장님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레만 아브라히모비치가 욕심낸 이상 첼시는 토레스를 데려가게 될 겁니다.”
이건 인간의 소유욕과 연관된 문제다. 인간은 모두 소유욕 지니고 태어나는데, 형편에 따라 욕구를 충족하기도 포기하기도 한다. 돈이면 거의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21세기에서 돈을 가진 부호들은 열이면 열 소유욕이 들면 반드시 가지고자 움직였다.
확신이 가득한 정호준의 말을 들은 무어 단장의 눈동자에 의문이 서렸다.
“인간의 욕망은 때때로 이성을 흐트러트리니까요.”
눈앞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영상통화로 표정을 확인하지 않았음에도 정호준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에이든 무어가 품은 의문을 해결시켜 주었다. 이성적이었다면 페르도 토레스를 영입했을 리가 없다. 1회차 때나 지금이나 첼시라는 팀은 공격수보다는 수비수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레만 아르바히모비치는 축구를 좋아하며 축구를 볼 줄 아는 구단주로서 팀의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레스를 영입했었고, 영입하고자 한다는 건 레만 아브라히모비치 또한 21세기의 부호로써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는 증명이었다.
“토레스를 대체할 선수로 아약스의 루카스 수아레즈와 바로셀로나의 즐라탄을 영입해 주십시오.”
과거와 스쿼드가 다른 만큼 수아레즈가 헤맬 수도 있고, 본래 공격 옵션은 많아서 나쁠 게 없었기에 정호준은 인간계 최고라 불리는 즐라탄과 수아레즈의 동시 영입을 추진했다. 수아레즈야 본래 리버풀에 오게 될 이였고, 즐라탄은 바르셀로나의 감독 펩과의 불화로 몸값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동시 영입이 불가능하지 않으리라.
“토레스 문제는 그렇게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혹시 제 결제가 필요한 일이 더 있습니까?”
-그…… 다비드 알론소도 이적 요청서를 냈습니다.
골치 아픈 일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정호준이 신경 쓸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 * *
선수 생활이 끝나면 결국 남는 건 돈과 기록(우승 커리어)뿐이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댜게 더 많은 돈을 주는 팀을 찾아 떠나거나 우승할 수 있는 강팀으로 향한다.
토레스의 에이전트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사실을 토레스에게 주지시켰다.
“리버풀에 있어 봐야 제라드의 입지를 넘어서지 못해.”
제라드는 리버풀 유스 출신으로 한국의 표현을 빌리면 골수 성골이었다. 팀에서 푸쉬를 한다면 외인인 토레스보다는 골수 성골인 제라드를 밀리라. 페르도 토레스의 에이전트는 2010년 발롱도르가 제라드에게 갈 확률이 높다며 더 많은 연봉, 그리고 발롱도르 도전을 위해 첼시로 이적하자고 설득했다.
“토레스, 나는 네가 최고가 될 잠재력이 있는 선수라고 믿어. 1년 정도는 드록바와 주전 경쟁을 해야겠지만 1112시즌부터는 분명 네가 첼시의 주전 스트라이커일 거야.”
한국 운동선수들과 달리 서유럽 유스 시스템은 어린 선수들이 공부에 소홀하지 않도록 환경을 조장한다. 그렇지만 그래 봐야 한길 외골수들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에이전트들이 맘먹고 속삭이는 달달한 말을 분별해 낼 냉철한 이성을 가진 선수는 몇 없었다.
토레스는 물욕과 야망을 부추기는 에이전트의 꼬드김에 넘어갔다면 다비드 알론소는 다른 유형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알론소 선수의 드림 클럽이랍니다.
‘바르셀로나 FC’와 ‘레알 마드리드 FC’는 축구 구단으로써 리버풀 FC보다 더 큰 명성을 지닌 구단들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 외에도 두 클럽은 스페인 국적을 가진 선수들에게 특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선수들이 바이에른 뮌헨이란 팀에서 뛰기를 선망하듯 스페인 국적을 가진 선수들은 바르셀로나 아니면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는 게 꿈이었다.
리버풀이 더블을 기록한 0910시즌에 다비드 알론소를 영입하기 위해 오퍼를 전달했던 레알 마드리드는 리버풀이 거절하자 선수를 직접 공략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2009년 회장직에 복귀한 페드로 회장은 꾸준하게 알론소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알론소 선수 당신은 호날두와 함께 갈락티코스(Galácticos) 2기의 핵심이 될 겁니다.
‘가장 비싼 선수가 실제로는 가장 싼 선수이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슈퍼스타 마케팅을 시작한 레알 마드리드 FC의 선수 영입 정책을 별들이 모여 은하수가 된다고 해서 스페인어 갈락티코스라 칭했다.
-갈락티코스에 합류해 우리 구단과 마드리스타들이 소원하는 라 데시마(La Décima: 챔피언스리그 10번째 우승)를 달성해 주십시오.
레알 마드리드 회장 페드로가 발롱도르 위너인 호날두만큼이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열띤 구애를 보내는데 흔들리지 않을 스페인 선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나 확실한 건 다비드 알론소는 흔들렸다는 거다.
“하아~ 일단 알론소 연락처 좀 넘겨주시죠. 제가 설득해 보겠습니다.”
연이은 전력 누수에 정호준을 한숨을 내쉬곤 무어 단정에게 연락처를 받아 알론소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버풀에 모드리치가 있기는 하나 맨체스터 시티 FC가 더블 스쿼드를 운영하는 것처럼 알론소와 모드리치가 주전 경쟁을 이어 가는 구도를 바랐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구단주님께서 이렇게 연락해 주신 것 참으로 영광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성의를 보여 주시는데, 안 좋은 소식을 전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알론소는 당당한 태도로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블랑코스 유니폼을 입는 건 제가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그렸던 꿈입니다. 제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이적 요청서를 허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2008년에 주급 체계 수정을 이유로 재계약을 한 번 맺은 터라 리버풀이 보내지 않겠다고 버티면 앞으로 최소 2년은 더 리버풀에 발이 묶여 있어야 했기에 알론소는 간곡한 태도로 부탁했다.
“우리 리버풀도 알론소 선수가 필요합니다.”
“제 빈자리는 모드리치가 충분히 메워 줄 겁니다.”
0405시즌부터 무려 6년을 뛴 클럽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드림 클럽이라면 리버풀은 자신이 실력과 훌륭한 커리어를 쌓게 도와준 클럽이다. 대체자가 없었다면 이렇게 단호하게 이야기하지 못했으리라.
“혼자보단 둘이 낫습니다.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거칠고 많은 경기를 치르는 리그입니다.”
“구단주님! 저는 리버풀에서 이룰 수 있는 모든 걸 이뤘습니다. 제가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FA컵 우승 한 번, 챔피언스리그 우승 한 번. 5년을 한 클럽에서 뛰며 단 두 번의 우승만 경험했던 1회차와 달리 알론소는 챔피언스리그 우승 3회, 프리미어리그 우승 2회, FA컵 우승 2회를 경험했다. 무관으로 끝난 적도 있지만 더블이나 미니 트레블을 달성하며 유럽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
“하아~”
더 이룰 커리어가 없어 떠난다는 말에 달리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알론소 선수의 이적 허락하겠습니다. 단 몸값은 제대로 받아 내야겠습니다. 6,000만 파운드. 우리 리버풀이 알론소 선수에게 매긴 몸값입니다. 한 푼도 깎아 줄 생각이 없으니, 알론소 선수를 데려가고 싶으면 제값 치르고 데려가라고 전해 주십시오.”
[다비드 알론소 6,000만 파운드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6,000만 파운드. 한화 1,064억 원에 달하는 이적료로 미드필더의 몸값으로는 과한 액수를 불렀지만 레알 마드리드의 페드로 회장은 에누리 없이 정호준이 제시한 6,000만 파운드를 모두 지불하고 알론소를 데려갔다. 1회차와 비교하면 2,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더 남겨주고 떠난 셈이엇다.
[페르도 토레스 8,000만 파운드에 첼시행!]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 다비드 알론소와 페르도 토레스를 동시에 보내는 리버풀의 행보에 콥들은 들고 일어나려 했으나 구단 보드진의 일 처리가 한발 빨랐다.
[리버풀, 아약스의 신성 루카스 수아레즈 2,700만 유로에 영입!]
[인간계 최강자 즐라탄 리버풀의 품으로!]
리버풀은 바르셀로나와 아약스에서 각각 2,700만 유로(한화 480억 원)를 지불해 토레스의 빈자리를 메꿨다. 알론소와 비교해 조금 모자랄지 몰라도 모드리치의 폼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콥들은 수아레즈라는 신성과 즐라탄이라는 거물의 영입에 불만을 누그러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