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53화 (253/335)

253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53)

시즌이 끝나고,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시간. 미국 야구계에서 스토브리그라 부르는 시간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생각지 못한 전력 누수를 겪은 리버풀이지만 보드진들이 열심히 날아다닌 덕분에 구멍을 잘 메꿀 수 있었다.

리버풀의 단장 에이든 무어는 정호준에게 마지막 퍼즐을 잘 끼워 맞췄다는 보고를 올렸다.

-카를로 안첼로티의 재계약 잘 마쳤습니다.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를 우승시킨 감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만큼 처음 계약할 때 제시했던 연봉보다 무려 2.5배가 뛰었다. 연봉을 2.5배나 더 주고 붙잡은 것을 잘 붙잡았다고 말하기는 이상했으나, 이는 조금이라도 일찍 재계약을 제시하지 않은 리버풀(정호준)의 책임이 컸다.

‘알론소나 토레스가 1회차 때처럼 팀을 떠날 줄은 몰랐지.’

현재 리버풀에 적을 둔 선수들은 모두가 월드클래스라는 명칭에 걸맞은 실력을 지녔고, 개중에는 그보다 더한 위치까지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이들도 허다했다. 선수들의 재능을 잘 파악하고 있는 정호준은 팀의 전략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걸 원치 않았다.

‘바르셀로나의 그 티키타카도 결국에는 공략당했다.’

리버풀 선수들은 어떤 전술이든 적응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이유로 안첼로티와의 재계약을 뒤로 미뤘었다. 첼시의 레만처럼 계약 기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감독을 갈아치울 생각은 없지만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는 새로운 감독을 데려오려 했었다.

‘다음으로는 무리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론소와 토레스의 이적으로 인해 계획이 바뀌게 되었다. 무리뉴가 뛰어난 감독이란 건 부정할 수 없는 펙트였지만, 무리뉴는 선수선발에 있어 유연하지 못하다는 단점을 지닌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무리뉴를 데려다 쓰면 수아레즈와 즐라탄의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해져.’

이미 즐라탄을 선수로 활용해 본 경험이 있는 무리뉴다. 수아레즈와 번갈아 가며 경쟁을 시키기보단 즐라탄을 중점적으로 써먹을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그러한 방향은 정호준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정호준이 판단하기에 현재 프리로 풀린 감독 중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리버풀을 잘 이끌 수 있는, 전술적인 역량이 충분한 감독은 덕장이라 불리는 안첼로티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처음 계획과 달리 안첼로티와 재계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괜한 돈이 더 나가게 됐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정호준은 속마음을 숨긴 채 겉치사를 내뱉었다.

카를로 안첼로티와 3년 재계약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끝으로 정호준은 구단 일에 관심을 거뒀다. 지금부터는 정호준이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굴러갈 테니 말이다.

* * *

평가가 높은 대학교,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 재수·삼수를 하는 건 마냥 취업에 유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명문이라 불리는 학교의 졸업생들은 사회 곳곳에서 신입이나 중역, 이사진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이게 바로 대학을 가는 진짜 이유였다.

혈연(血緣), 지연(地緣), 학연(學緣)이라잖나?

대한민국에서 대학교는 인맥을 쌓고, 자기도 모르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드는 곳이었다.

회귀한 정호준 때문에 본래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박기태는 변화한 삶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친구인 정호준을 부(富)로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보내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학점 관리부터 동아리 활동이나 어학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공부했고, 어학연수까지 마쳤다. 언론고시에도 당연히 합격했고 말이다.

박기태의 노력은 중소 언론사에 이력서를 넣는 게 고작이었던 1회차 때와 달리 한국에서 메이저로 꼽히는 언론사에 이력서를 넣을 수준으로 만들어 주었다.

대한민국에서 메이저로 꼽히는 언론사들은 모두 코드 블랙이 떴다.

“회장님! 박기태가 우리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 박기태 맞지? JHJ Capital 정호준의 친구라는. 우리 회사에 지원했다고?”

“예, 맞습니다.”

“뭐 하고 있는 거야?! 합격시켜야지!!”

“이미 선조치했습니다.”

“그래? 잘했네.”

포보스지 선정 세계 최고 부자인 정호준과 연관된 정보는 언론사나 기업 모두에게 있어 특급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어느 정도 사이즈를 가진 기업들은 모두 박기태가 정호준의 유일한 접점이란 사실을 꿰고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 기업인 오성은 물론이고 오성의 뒤를 잇는 미래, 은성, 경선 그룹에서 박기태와 박남정의 일보를 주시하고 있었고, 직원들의 가족 중 중앙대학교에 다니는 이들을 통해 박기태가 언론사가 아닌 그들의 회사에 원서를 넣게 은근슬쩍 유도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박기태는 언론고시를 보고 기자의 길을 선택했다.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교육 일정은 추후에 전화로 개별 통보될 예정이오니 안내 문자를 받으시기 전까지 대기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세상에 면접을 하나만 보는 취준생은 없다. 일정이 겹치지 않는 메이저 회사들에 이력서를 찌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었다.

본래 면접 일정을 겹치는 경우도 많았던 메이저 언론사들이 박기태가 취직 시장에 나올 거로 예상되는 3년 동안 공채 일정을 겹치지 말자고 합의를 봤기에 박기태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메이저 언론사에 이력서를 넣었고, 면접을 본 모든 언론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가고 싶은 곳에 골라 갈 수 있는 특혜. 취준생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축복 받은 환경이 박기태에게 펼쳐졌다.

* * *

나스닥에 IPO(기업공개)를 진행한다는 건 여러모로 심력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다.

일단 신청료로만 수천만 원 단위의 돈은 족히 깨졌고, IPO가 성황리에 마치면 한화 수억 원에 달하는 수고비를 지급해야 했다. 뭐, IPO를 성공적으로 마친 오너에게 수억 원이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IPO를 신청하는 것조차 돈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IPO 심사는 다양한 방면에 걸쳐 진행되는데, 심사의 주 내용은 ‘수익’, ‘현금 흐름’, ‘매출’, ‘자산’으로 나뉘었다.

첫째 수익 면을 살펴보면 나스닥에 상장될 기업은 3년간 총 1,1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해야 하며, 2년간 220만 달러 이상의 세전 수익을 얻어야 했다. 그리고 3년간 단 한 해도 순손실이 발생해선 안 됐다.

둘째로 상장 심사를 요청한 회사는 지난 3년간 최소 2,750만 달러의 현금흐름을 가져야 하며, 3년 동안 마이너스 현금흐름이 없어야 했다. 또한 최근 12개월 동안의 평균 시가총액은 5억 5천만 달러 이상이어야 하며 회계 연도의 수익은 최소 1억 1천만 달러를 넘겨야 했다.

셋째로 심사를 주관한 회사가 평가하기에 최근 12개월 평균 시가총액이 8억 5,000만 달러 이상이어야 했다.

넷째로 총자산이 최소 8,000만 달러 이상을 기록해야 했다.

나스닥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위와 같은 최소 상장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만약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나스닥 거래소에서 상장폐지 및 삭제될 위험이 있다.

다만 위의 조건 중 하나를 지키지 못했다고 심사에서 무조건 탈락시키는 건 아니었다. 만약 다른 분야에서 더 큰 최소 금액으로 메꾸는 식으로 페널티를 짊어짐에도 가이드라인을 통과한다면 상장 절차를 밟는 것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이번에 로건 스탠리를 주관사로 놓고 상장 심사를 진행한 ‘유니버셜 히치’는 그 JHJ Capital의 정호준이 최대 주주로 있는 회사다. 상장 요건에서 미흡한 게 있어도 문제 될 게 없었다.

프리패스처럼 여겨질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고.

-유니버셜 히치 2011년 1월 17일 상장 예정.

2010년 10월 상장일까지 결정되었다.

* * *

유니버셜 히치의 상장일이 결정된 2010년 10월의 어느 날 정호준은 실물자산 매입팀의 팀장 테일러를 호출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테일러는 정호준을 보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유니톡 상장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입으로는 고맙다고 이야기했지만 본인이 원해서 상장하는 게 아니었기에 정호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듣기 싫은 소리에 속했지만 표정 관리를 한 탓에 테일러 팀장은 정호준의 표정 속에 숨겨진 감정을 읽어내지 못했다.

“슬슬 시장에 금, 은, 철, 동을 풀어야 할 것 같아서 불렀습니다.”

정호준으로부터 자신을 부른 이유를 들은 테일러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어 정호준을 보며 질문했다.

“2012년 초중반까지는 실물의 가격이 계속 오를 거라고 말씀해 주셨잖습니까?”

“공급량을 갑자기 폭증시켜서 좋을 건 없으니까요. 더 오를 걸 알고 있어도 지금부터 조금씩 정리를 시작해야죠.”

JHJ Capital이 사들인 금, 은, 동, 철과 같은 실물자산들은 모두 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재다.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해당 자원들의 수요는 매년 늘어나지만 필수재인 만큼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늘어나는 수요 이상으로 공급을 늘려 버리면 아무리 실물의 가치가 오르고 있는 흐름을 보여 준다고 할지라도 가격은 하락한다. 그렇기에 일찍부터 조금씩 물량을 털어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금은 좀 더 조심해서 풀어주십시오. 따로 계획하고 있는 게 있어서요.”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에서 채굴 중인 수호이 로그 금광을 중국에 넘길 계획을 구상 중이라 금값이 흔들려선 곤란했다.

“예, 조금 더 신경 써서 물량을 풀겠습니다.”

사장이 아닌 이상 까라면 까야 하는 게 직원의 의무였다. 정호준이 호기심도 채워 준 만큼 테일러는 고개를 숙이며 정호준의 지시를 이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 *

2010년도 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리아는 사람을 써서 집안에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여놨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특수 유리에 씌워 전시되었다.

“파파!!”

들인 수고가 헛되지 않게 아이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좋아해 주었고, 트리를 보며 좋아하는 모습은 그대로 카메라에 찍혀 영상으로 남았다.

처제인 카엘라 로슬러 장인인 주니어가 크리스마스에 맞춰 방문해 식사를 함께하게 되었다. 식사를 함께하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고, 술이 조금 들어갔을 무렵 아리아가 조심스럽게 정호준에게 질문을 던졌다.

“호준, 그 어머님과 아버님을 미국으로 모셔야 하지 않을까요? 호준만 괜찮다면 우리 로슬러 가문의 가족 묘지로 이장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네?”

생각지도 못한 일을 아리아가 갑작스럽게 꺼낸 터라 정호준은 자기도 모르게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정호준이 얼 타는 것을 본 아리아는 따듯한 미소를 띠며 다시 한번 이야기했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신경 쓰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나은 것 같아서요. 다행히 아버지와 할아버님도 가족 묘지에 아버님과 어머님을 묻는 것을 동의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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