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49)
트리오플의 CEO 맷 메이슨과 톰 캐터스의 주도하에, 이사들은 테러와의 전쟁에 참여했던 회사들을 찾아가 인수 의향을 타진했다. 트리오플의 임원들이 바쁘게 움직였지만 트리오플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인 곳은 단 한 곳밖에 없었다.
트리오플이 인수 절차를 진행하는 경위는 당연히 정호준에게 꼬박꼬박 보고가 올라왔다.
‘최소 두 곳 이상은 인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보고서를 확인한 정호준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보고서에는 남미에 위치한 국가들이나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에서 내전과 전쟁, 갱단끼리의 다툼이 끊이지 않기에 일거리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다르네.’
안전에 관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결정한 만큼 정호준은 가격을 후려치지 않았다. 후려치긴커녕 트리오플이나 JHJ Capital 직원들이 매긴 가치보다 20~30% 정도 더 높여 불렀다.
값을 더 쳐 주겠다고 했음에도 정호준의 인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단 한 곳뿐이 없었다.
지금 제대로 된 가치를 인정받으며 익시트 하는 게 피로 점철된 진흙탕에서 구르는 것보다 낫다고 판단했으나 PMC, PSC 오너들은 생각이 달랐나 보다.
‘하긴,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피를 봤는데, 이제 와 피 보는 게 꺼려진다는 건 말이 안 되긴 하네.’
정호준은 서면으로 보고받은 뒤 트리오플 CEO들과 화상통화를 나누며 한차례 대화를 나눴다. 화상통화를 이어 가며 정호준의 표정을 읽은 맷 메이슨 정호준이 지금의 상황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곤 조심스레 물음을 던졌다.
-인수가를 더 높여서 다시 제안서를 넣어 볼까요?
“아뇨, 됐습니다. 일단은 여기서 만족하는 걸로 하죠. 굳이 호구 잡혀가면서까지 규모를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껏 트리오플에 쏟아부은 돈만 해도 수천억 원이 넘는다. 안전에는 돈을 아끼는 게 아니란 생각에 트리오플을 성장시키기 위해 꾸준히 돈을 투자해 왔지만 눈탱이를 맞으면서까지 회사를 사들일 필요는 없었다.
‘과해서 나쁠 게 없긴 한데, 그것도 어느 정도지.’
게다가 정호준에게는 트리오플 외에도 로슬러라는 비호 세력이 함께했다. 본인의 안전을 로슬러에게만 맡길 수 없기에 자구책을 구한 것일 뿐, 정호준은 이미 로슬러는 물론이고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가 차원 보호를 받고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기에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창고 경비 잘 부탁드립니다. 앞으로 2년간 트리오플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주십시오. 직원들에게 수백억 달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고지시켜 주십시오. 화재가 발생하지 않도록 흡연은 확실하게 지정된 구역에서만 이뤄지도록 통제 부탁드립니다.”
“예, 최선을 다해 지키겠습니다.”
고래를 끄덕이며 다짐하는 두 CEO를 보며 정호준은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제가 말씀드렸던 주의사항 강력하게 어필해 주십시오. 만약 위의 사안을 어겼을 시 감봉과 함께 올해 평가에 마이너스 점수가 들어갈 겁니다. 만약 사고가 나면 그건 책임 소지를 분명하게 밝힌 뒤 손해배상 소송을 걸 겁니다.”
빈털터리, 빚쟁이가 되고 싶지 않으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룰을 지키라는 경고였다.
“예, 반드시 주지시키겠습니다.”
자금은 물론이고 법과 정계에도 인맥을 쌓은 정호준의 말은 미래에 반드시 실현될 일임을 알았기에 트리오플의 CEO들은 경각심을 갖고 대답했다.
* * *
정호준이 트리오플의 확장에 신경을 쓰고 있을 무렵 JHJ Capital 선물매입팀은 팀장 지미 딕슨의 주도하에 선물 매입을 시작했다.
“평균가 430포인트에 선물계약 체결 진행 중입니다.”
미국이나 영국은 곡물이나 과일의 무게를 잴 때 부셀이란 단위를 사용한다. 미국에서는 1부셀이 27.216kg, 영국에서는 28.123kg 정도 되었다. 미국의 밀(소맥) 선물계약은 계약당 5,000부셀(136톤) 단위로 체결해야 했다.
“평균가 100포인트에 런던 소맥 선물계약 체결 중입니다.”
영국은 밀 선물은 계약당 100톤 단위로 계약이 체결되게끔 시스템이 짜여 있었다.
“옥수수 선물계약 평균가 360포인트에 체결 중입니다.”
미국 옥수수 선물은 밀과 마찬가지로 5,000부셀 단위로 묶어서 체결되었다.
“대두 선물계약 평균가 550포인트에 진행 중입니다.”
미국 대두 선물 또한 5,000부셀 단위로 묶어서 체결하게끔 되어 있었다.
“대두유 선물 평균가 288포인트에 계약 중입니다.”
미국은 대두유(콩기름)는 콩에서 짜낸 기름으로 액체인만큼 지금까지와는 다른 단위를 사용했다. 미국은 액체를 측량할 때 킬로그램이나 톤, 리터 법을 사용하는 대신 파운드라는 단위 사용했고, 1파운드는 453.59237g에 해당했다. 미국 대두유 선물계약은 60,000파운드(약 27톤) 단위로 묶였다.
“대두박 선물 평균가 38포인트에 계약했습니다.”
다른 선물과 달리 미국 대두박(콩깻묵) 선물은 톤 단위를 사용했고 100톤 단위로 계약하게끔 구성되어 있었다.
“설탕 쪽 파트는 어떻게 됐나?”
“16.27포인트에 계약 체결 중입니다.”
“런던 쪽은 520포인트에 거래 중입니다.”
미국 설탕 선물은 계약당 112,000파운드로 묶이고 영국 설탕 선물은 50톤 단위로 묶였는데, 사실상 112,000파운드를 톤으로 변환시키면 영국과 똑같은 50톤 단위 계약이었다.
선물매입팀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홍콩, 싱가포르, 러시아, 호주, 캐나다, 인도 등 선물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곳이라면 모두 선을 대서 선물계약을 체결했다.
선물매입팀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무렵 정호준은 다시금 여유를 즐겼다.
‘이런 건 참 좋단 말이지.’
결정과 결정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지만, 피 말리고 복잡한 과정을 스킵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한도 무제한으로 선물계약을 체결하라는 지시를 받은 선물매입팀은 곡물과 연관된 온갖 종목의 선물에 돈을 쏟아부었지만 유니버셜 뱅크에서 대출받은 300억 달러라는 거금 중 100억 달러도 채 못 사용했다.
선물계약을 담당하는 부서들 또한 머리라는 것을 달고 있는 걸 넘어 유능한 엘리트들이다. 회사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개인과 달리 정보 수집이 빠삭했고 말이다. 세계 최대 수출국인 러시아의 작황 상황이 좋지 않을 거란 정보를 토대로 올해 곡물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을 거란 결론쯤은 얼마든지 도출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 연유로 곡물과 관련해 신규 선물계약 체결에 제한을 걸었다. JHJ Capital은 신규 계약보다는 이미 체결된 계약들을 사들이는 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신규로 체결한 계약들은 모두 레버리지를 걸고, 눈에 불을 켜고 자잘하게 매각되는 계약들을 모두 쓸어 담았지만.
신규 계약에 제한이 걸린 만큼 사들이는 종목이 많아도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께서 알려주신 익시트 타이밍은 2011년 1월이다. 그전까지는 꾸준하게 주워 담는다.”
사실 선물매입팀이 돈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어차피 하루하루 잔금을 치르는 걸로 대출받은 돈이 나가고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 * *
4.594조 달러를 기록했던 중국의 2008년 GDP는 4.397조 달러를 기록하는 선에서 그쳤다. 중국이 1회차 때보다 못한 성장을 기록한 이유는 간단했다. JHJ Capital에 의해 두 차례나 유가 선물을 털려 한화로 70조 원에 육박하는 큰돈을 뜯겼기 때문이다.
수익을 내고 다시금 성장을 위해 투자됐을 돈이 정호준의 주머니로 들어갔으니 성장이 저조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2008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2009년 중국의 GDP는 훨씬 더 처참했다. 2009년 5.102조 달러를 기록했을 중국의 GDP는 4.689조 달러를 기록하는 선에서 그쳤다. 리만 브라더스 파산시킨 것과 더불어 JHJ Capital과 체결했던 CDS 계약을 물어주는 바람에 중국 6대 은행은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두 가지 요인은 중국 경제에는 치명타로 작용하게 되었다.
중소은행들은 대형은행들로부터 저금리로 돈을 끌어와 고금리로 대출해 주는 식으로 영업을 이어 가기도 하는데, 제 발등에 불이 떨어진 6대 은행에서 만기가 다 된 대출을 연장해 주지 않고 회수하니 당장 예금주들에게 지급할 돈이 사라졌다.
‘지방의 중소은행들이 곧 망할 것 같다는데?’라는 말이 넷상에 돌기 시작했고, 이러한 루머는 중국 시민들이 곧장 은행을 찾아가게 만들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든 제 것을 중요시하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다.
부율경저축은행이 그랬던 것처럼 중소은행들에서 뱅크런은 연쇄적으로 발생했고, 이는 그렇잖아도 세계 경기 악화 등을 이유로 안팎으로 흔들리고 있던 은행들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였다.
그렇게 파산의 연쇄가 시작되었다.
“내 돈 돌려내라!!”
“당은 은행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내 돈을 돌려달라!!”
돈을 잃은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정부에서 책임을 져 달라고 외쳤다.
그런데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 비보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리만 브라더스 파산을 국가가 짊어지며 국가부채를 늘리는 선에서 마무리됐다고 이야기했지만, 부채가 1천조 이상 늘어났는데 작년과 똑같은 예산이 지급될 리 없다.
공적으로는 정부 예산안이 줄어들었고 민간으로 넘어가면 대출의 규제가 빡세졌다. 꽌시를 내세우면 무리한 대출도 가볍게 통과가 됐었는데, 공산당의 방침으로 인해 꽌시를 내세워도 신용이나 비전이 없으면 대출이 불가능하게 바뀌었다.
리만 브라더스라는 폭탄이 터졌음에도 이 정도에서 마무리된 건 거대한 땅덩어리와 수많은 자원을 내포한, 그리고 세계 최대 규모의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문제는 대출 규제 강화는 중국 산업 전반에 걸쳐 성장세 둔화를 가져다주는 선택지가 되었다는 점이다. 돈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으니 성장이 둔화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잖은가?
급격하게 나빠지는 현재 상황을 타파하고자 중국 정부(공산당)는 사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보시위안에게로 돌렸다.
[중국 인민을 팔아먹은 보시위안, 사형집행일 결정!]
보시위안은 민족의 반역자 취급을 받게 되었고, 무기징역에서 끝났던 1회차 때와 달리 사형까지 선고받게 되었다.
‘미안하네.’
형 집행일을 알리는 기사를 보며 상왕정치를 이어 가던 장쉐민 전 국가주석은 보시위안을 애도하는 마음을 품었다. 보시위안의 아버지에게 큰 빚을 지고 있어 여러모로 보시위안을 밀어주었던 장쉐민 전 국가주석은 당의 존속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현재진행형으로 계속되는 위기에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2010년 6월 25일 금요일, 보시위안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보시위안의 사형 집행 기사와 중국 GDP 통계 자료를 확인한 정호준은 그저 냉정하게 지금의 상황을 분석했다.
‘중국이 일본을 추월하라면 앞으로 1~2년은 더 필요하겠네.’
2010년 1분기부터 일본의 GDP 추월했을 중국의 GDP는 3분기가 시작됐음에도 역전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