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48)
정호준이 인수한 트리오플은 정호준이 인수하지 않았어도 이라크 전쟁에서 활약해 명성을 높이고 명성을 토대로 몸집을 불려 세계 민간경호 및 군사 기업 순위에서 30위 안에 선별될 정도로 잠재력이 있던 민간군사기업(Private Military Company)이다.
그런 기업을 인수한 후 확장을 원하는 경영진의 요구에 따라 자금을 쏟아부었다.
정호준이 푼 자금의 덕을 보며 본래보다 더 크게 몸집을 키웠던 트리오플은 전장에서 과거보다 더 많은 성과를 거뒀다. 충분한 자금을 토대로 훈련시설이나 S급 장비 등을 추가 도입하고 트리오플보다 몸집이 작지만 실력 좋은 회사들을 인수·합병했기 때문이다.
오합지졸조차 그렇거늘 나름 실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이들이 모였다. 결과물이 따라오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주로 이라크에서만 활동했던 1회차 때와 달리 정호준에게 인수된 트리오플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활약상을 보였다.
공이 크면 그만큼 수입도 들어오는 법. 여기에 더해 미국 정부와 군부 상층부에서 반리덴의 은신처를 트리오플이 발견했다고 알고 있어, 정보 확인을 마친 뒤부터 미 정부와 군부는 트리오플에 여러 가지 특혜를 제공했다.
덕분에 2010년대 년마다 치러지는 평가에서 세계 25~30위 사이를 오가던 회사의 평가가 10~15위를 오가게 됐다. 게다가 오너인 정호준의 권고로 사이버 보안 쪽에서도 몸집을 불리고 있어 미래 성장 동력 또한 확실하게 가지고 있었다.
늘어놓은 이야기만 놓고 보면 앞으로도 승승장구를 이어 갈 것 같은 트리오플이지만 사실 트리오플은 한 가지 위기에 봉착한 상태였다.
위기의 정체는 바로 ‘일거리 부족’이라는 현상이었다.
미국이 쓸데없는 예산을 쏟아붓지 않고 중국 견제와 패권 유지에 신경 쓰기를 바란 정호준 덕분에, 미국은 이라크에서 21개월 일찍 철수를 마치고 종전을 선언했다. 그리고 2020년을 넘긴 뒤에야 철수를 감행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순차적으로 철수를 진행 중에 있었다.
앞당겨진 철수와 종전 선언은 분명 미국이란 국가 자체에는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줬지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며 수익을 냈던 PMC들은 때 이른 철수에 본래 더 벌어들일 수 있었던 이득을 얻어 내지 못하게 만들며 큰 타격을 입혔다.
전쟁에 뛰어들었던 PMC들은 모두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내기 분주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트리오플은 정호준의 대여하고, 지금도 추가로 대여 중인 창고의 경비 업무를 맡으면서 계약을 따내는 것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다른 곳은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항상 이야기했듯 누군가의 위기는 누군가에게는 기회로 작용한다. 정호준에게 하달된 새로운 지시 때문에 트리오플 경영진들은 팀장급들을 모두 동반한 임원 회의를 개최했다.
좌석이 꽉 들어찬 것을 확인한 트리오플의 공동 CEO 맷 메이슨과 톰 캐터스 시선을 마주 본 뒤 맷 메이슨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이크를 잡았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미국인으로서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PMC를 운영하는 입장에선, 이 상황을 마냥 달갑게만 여길 수가 없네요.”
꾸준히 일거리를 가져다주던 전쟁이 끝이 났다는 말은 곧 트리오플을 포함해 전쟁터에서 활동하던 모든 PMC들은 전쟁이 일어나기 전 존재했던 파이를 놓고 경쟁하는 처지가 됐다는 말이다.
이러한 현실은 전쟁에 참전했던 PMC들이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본인들의 업에 충실했던 PMC 모두에게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잖은가? 세상 어느 누가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을 달갑게 여기겠나?
“여러분을 이 자리에 불러 모은 이유는, 트리오플의 오너이신 정호준 대표님께서 하달하신 오더를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창업자 본인이나 창업자의 가족들조차 회사가 커지면 전문경영인인 CEO를 임명하고 뒤로 빠져 있는 경우가 많은 미국 풍토에 따라, 정호준은 큰돈을 들여 트리오플을 인수하고 규모를 키운 후에도 되도록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별개였다.
멧 메이슨이 말을 뱉자마자 톰 캐터스가 말을 이어받았다.
“기존에 있던 파이를 놓고 경쟁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은 건 우리 업계 사람들 모두가 동일하게 느끼는 바일 겁니다. 이사님들은 전쟁에 참가했던 PMC들과 접촉해 주십시오.”
트리오플에서 이사 직함을 달고 있는 이들은 내부에서 승진한 경우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수합병 후 인수한 PMC의 고위층들에게 이사 직함을 들려준 경우가 많았다. 국토가 워낙 넓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인 경우가 대부분인 대한민국과 달리 몇 다리를 걸쳐도 일면식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나마 PMC 업계의 경우 업계가 좁다 보니 간간이 친분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수합병입니까?”
자리에 참석한 이사진 중 하나가 질문을 던졌고 톰 캐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오너께서는 이번 기회에 몸집을 더 키우길 바라시더군요.”
* * *
정호준은 자신이 원인이 된 업계의 불황조차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하고자 했다. 전문경영인을 고용하든 아니든 뚜렷한 해결책이 없는 지금의 상황은 오너들에게 있어 특히나 부담스러운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매각은 나름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고 정호준은 판단했다.
그렇잖은가? 지금 정당한 가치를 받고 회사를 넘기면 가격 경쟁을 벌이며 매년 조금씩 손해를 감수하다 도태되는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 자금적으로 손해를 볼 일이 없고 경영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 애착을 가진 경우는 어쩔 수 없지만, 고난이 예견된 상황에서 회사를 매각하는 건 합리적인 선택지였다.
굳이 쓰지 않아도 될 돈까지 써 가면서 규모를 확장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큰돈을 벌었다는 것.
특히 금융을 통해 돈을 벌었다는 건, 누군가는 반드시 잃었다는 말과 다름없다.
돈을 잃은 사람이 돈을 따간 사람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원유 선물을 사들일 때 정체를 숨기기 위해 노력을 기하긴 했지만, 정호준은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라는 말을 믿었다. 그리고 그 건을 제하더라도 이미 그는 중국과 일본, 한국까지 털어먹었다.
정호준의 활동 반경이 국가에서 총기를 통제하는 한국이었다면 그나마 조금은 위험도가 덜해 마음을 놓았을 거다. 하지만 그의 활동 반경은 누구든 쉽게 총기를 구할 수 있는 나라, 미국이었다.
이는 술에 취한 미친놈, 정신병에 근거한 원한 살해 등으로 위장해 언제 어디서든 킬러를 보내 살인을 시도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나라라는 말이었다. 지금껏 트리오플의 경호를 받으며 총기 사고까지 간 일은 없지만, 트리오플 직원들이 판단한 위험 포인트에 진입하려는 경호상의 문제는 몇 번 생겼었다.
‘쉽지 않겠지만 Top 10, 아니 업계 Top 5 이내로 성장시키자.’
본인과 가족의 안위와 안전을 위한 일이다. 얼마가 사용되든 돈은 아깝지 않았다. 원래 건강과 안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거라지 않나. 정호준은 그 격언을 충실하게 따랐다.
* * *
인수합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거였으면 이사진들만 불러 회의를 개최해도 충분했다. 각 팀의 팀장들까지 이 자리에 불렀다는 건 인수합병 외에도 추가 안건이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 이유로 팀장들은 자리에 앉아 맷 메이슨과 톰 캐터스, 이사진들이 접촉할 대상을 나누는 과정을 지켜봤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네요.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해서 미안합니다.”
1시간이라는 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팀장들은 맷 메이슨으로부터 그들이 이 자리에 불려 나온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팀장님들도 들었다시피 우리 트리오플은 전쟁에 참가했던 PMC들을 인수합병할 예정입니다. 오너께서는 인수 합병하는 회사 직원들의 고용승계를 약속하셨죠.”
“고용승계라면?”
“사망하거나 은퇴해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는 경우가 아니라면 7년 동안의 고용을 약속한다고 하셨습니다.”
OECD에 이름을 올린 나라 중 사람을 고용과 해고가 가장 자유로운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이란 나라는 고용인에게 결격 사유가 없어도 그 목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고용의 유동성이 매우 자유로운 만큼 미국이란 나라에서 고용 보장은 하나의 혜택이었다.
“그런데 말이죠. 이런 특혜를 외부에서 합류하는 사람들에게만 부여하면, 우리가 많이 섭섭하잖습니까?”
함께 동고동락한 건 본인들인데, 외부 사람을 더 챙겨주는 모습을 보이면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다. 맷 메이슨의 질문에 팀장들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너께서는 저들과 똑같이 우리 직원들에게도 7년간의 고용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맷 메이슨의 말에 팀장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단, 합류하는 이들이건 우리건 구분 없이 지급하는 연봉에 기준을 두겠다고 했습니다.”
“기준이요?”
“테스트를 보고 그 결과에 맞춰 연봉을 지급하는 시스템입니다.”
고용주의 안전을 위해, 고용주의 목적을 위해 본인의 목숨을 내놓는 것조차 일의 일환인 만큼 PMC에 소속된 이들의 연봉은 군인이나 서민의 연봉과 비교해 배 이상 높았다.
“오너는 체력검정, 사격, 작전 수행 능력 등을 평가해 등급을 매기고, 등급별로 연봉을 지급하겠다고 했습니다.”
맷 메이슨의 말이 끝나자마자 톰 캐터스가 문 앞에 서 있는 직원에게 손짓했고, 그 손짓에 직원은 준비해 둔 서류를 팀장들에게 한 장 한 장 나눠 주었다.
등급별로 나뉜 연봉을 확인하고 있는 팀장들을 보며 맷 메이슨은 이야기를 이어 갔다.
“오너가 제시한 연봉 체계는 연차가 적어도 본인의 능력이 좋다면 더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체계입니다. 반대로 단련에 게을러지는 순간 본인들이 본래 받던 연봉보다도 적게 받게 될 겁니다.”
“테스트를 매년 보는 건 너무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 같습니다.”
“오너의 말을 전달하자면 ‘배부른 돼지가 되라고 고용을 보장해 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트리오플의 CEO로서 저와 캐터스 또한 오너의 말에 동의하는 편이고요.”
PMC에 소속된 이들은 하나하나가 살인 병기라 봐도 무방한 이들이다. 그런 이들을 섭섭하게 해서 좋을 건 없기에 차별받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똑같이 고용을 보장해 줬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직장인의 배 이상의 연봉을 받는 이들이 게을러지게 놔두는 것도 정호준에겐 좋을 게 없는 일이었다.
돈이 아까운 걸 넘어서 PMC 직원들의 역량 하락은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다. 본래보다 돈을 더 주는 한이 있더라도 퀄리티를 유지 및 상승시킬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2년 정도 전장에 나가지 않고 경비업에 집중하게 될 겁니다. 팀장님들은 부하들이 나태해져 감을 잃지 않도록 관리해 주십시오.”
팀장이나 직원들이 동의를 하건 말건 결정된 사안이고 시행될 일이었다. 채찍만 존재하는 게 아닌 본인이 노력하면 더 많은 돈을 타갈 당근도 있었기에 반발이 아주 심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