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30)
선수와 구단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아니 구단에서 말려도 선수가 강력히 원하면 이적이 성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축구와 달리,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데뷔 후 서비스 타임 6년을 채우기 전까지는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 불가능했다.
서비스 타임을 다 채우고 FA로 풀려나지 않는 한 이적이 불가능한 메이저리그에서 이뤄지는 이적은 모두 선수를 주고 선수를 받아 오는 트레이드 형식을 띠었다.
메이저리그의 FA제도는 선수의 권리보다 구단에게 유리한 시스템이다. 선수 입장에서 불합리하게 느껴질 정도로 폐쇄적이기 이를 데 없는 시스템이지만, 이 시스템 덕에 강팀들이 번갈아가며 우승하는 축구와 달리 자금력이 딸리는 스몰마켓도 우승을 경험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30개가량 존재하는 구단 중 우승을 경험해 본 팀이 스물이 넘는다지?’
우승을 경험한 뒤로 100년 이상 우승을 못 해 염소의 저주에 걸렸다 소리를 듣지만, 정호준이 인수한 시카고 컵스 또한 우승을 경험해 보긴 했다.
자신의 소유가 된 시카고 컵스를 우승시키기 위해 2008년 시카고 컵스를 인수하자마자 다저스의 ‘켄리 젝슨’이란 포수를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켄리 젝슨은 타격 재능이 극악이라는 점과 포수로서 지나치게 큰 신체 탓에 저평가를 받고 있었다.
투자자로 명성 높은 정호준이 시카고 컵스를 인수하자마자 벌인 트레이드였기에 관계자 포함 대다수의 야구팬들이 트레이드에 관심을 보였는데, ‘이해할 수 없는 트레이드다’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정호준은 자신의 계획대로 밀어붙였다.
* * *
시즌이 절반 좀 못 미치게 진행됐을 때 정호준으로부터 자리를 보장받고 탱킹을 시작한 시카고 컵스는 2008년 중간에 조금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아예 바닥을 쳤으면 가슴을 졸일 필요도 없겠으나 어쨌든 2007년 성적은 정호준이 원했던 대로 드래프트에서 LAA(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보다 더 빨리 선수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해 주었다.
“마이콜 트라웃을 지명하겠습니다.”
2009년 드래프트에서 LAA(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는 FA에 대한 보상으로 본인들의 차례에 두 명의 선수를 지목할 수 있게 됐는데, 그때 지목된 선수가 바로 마이콜 트라웃이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코 모를 수 없는 그 이름. 마이콜 트라웃은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2010년대 최고의 외야수(중견수)였다.
정호준의 시카고 컵스는 훗날 클레트 커쇼와 함께 메이저리그 톱스타로 분류되는 마이콜 트라웃을 지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카고 컵스는 2라운드 또한 아주 알차게 활용했다.
“넬슨 아레나도를 지명하겠습니다.”
2010년대 최고의 3루수 뽑을 때 항상 명단에 들어가는 남자. 넬슨 아레나도를 지명하며 훗날 최고로 평가받는 중견수와 3루수를 확보했다.
드래프트가 끝난 뒤 정호준은 데이비드 사장으로부터 드래프트에서 자신이 요구한 이들을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정호준은 데이비드 사장에게 마이콜 트라웃과 넬슨 아레나도를 공들여 키워야 하는 유망주, 트레이드 불가 대상으로 못 박고는 다시 지시를 내렸다.
“인디언스의 커리 클루버를 우리 쪽으로 데려와 주세요. 될 수 있으면 트레이드 카드로 분류한 이들로 데려오시고, 협상이 어려우면 유망주를 내줘서라도 데려오세요.”
“구단주님. 외람되지만 커리 클루버는 우리 유망주를 트레이드 카드로 내주면서 데려올 정도로 가치 있는 선수가 아닙니다.”
1회차 때 축구 쪽에서 제임스 바디가 늦게 핀 꽃으로 불렸다면 메이저리그에서는 커리 클루버가 그랬다.
커리 클루버는 2007년 드래프트에서 4라운드 픽(전체 134번)으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합류한 남자로 야구의 꽃이라 불리는 선발투수 포지션으로 뛰었다. 그러나 가장 주목받기 쉬운 포지션에서 뛰는데도 불구하고 클루버는 마이너리그에서조차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
야구판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이들은 주로 복권을 긁는 느낌의 트레이드 카드로 쓰였다.
“나이가 많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어리다고 볼 수도 없는 나이입니다.”
메이저리그는 KBO처럼 고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드래프트가 이뤄진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고교 야구에 더 집중하기 시작한 KBO와 달리 미국의 드래프트는 2000년대에 들어선 뒤에도 대학에서 나온 선수들이 1라운드에 뽑히는 경우가 많았다.
1~3라운드에 뽑힌 선수들과 4라운드 이후로 뽑힌 이들에게 보이는 관심(계약금 포함)과 푸시가 달랐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미국 고교생들은 고등학생 때 1~3라운드에 뽑히지 않으면 대개 대학에 들어가 좀 더 실력을 키우며 다음을 노렸다.
다만 커리 클루버는 고교생 신분이 아닌 대학생 신분으로 2007년에 드래프트에 나온 만큼 나이가 어느 정도 찼다. 스포츠에서 어리지 않다는 말은 웬만해서는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말이었다. 미래를 보고 온 정호준을 제외하면 커리 클루버란 선수에 대한 인식은 그러했다.
‘커리 클루버야 말로 저평가된 주식이지.’
투수는 구종(변화구)을 추가해 본래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보직이다. 물론 이러한 진화에는 리베라 하면 커터를 떠올리듯 변화구(브레이킹볼)가 그 선수에게 잘 맞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말이다.
커리 클루버는 그게 되는 선수였다.
“저는 커리 클루버가 큰 성공을 거둘 거라 믿습니다.”
“성공 가능성을 제로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큰 성공을 거둘 선수였다면 이전에 두각을 드러냈을 겁니다.”
한 번씩 복권이 터지는 곳이 야구판이라 성공 가능성이 없다고 딱 자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데이비드 사장은 몇 번이고 정호준을 만류했다.
2007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었는데, 2008년부터 다시 나락으로 치닫기 시작한 팀의 상황에 팬덤이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단주인 정호준이 사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약속했으니 여론을 신경 쓰는 걸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정호준은 데이비드가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이해했다.
구단의 단장(사장)직이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과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기에 단장이란 전문가를 둔 거지만, 사실 구단주에게 쏠릴 욕을 나눠 받게 만드는 시스템이기도 했다.
‘자리가 아닌 진짜 본인의 목숨을 걱정하는 거지.’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팬덤이 존재한다. 각기 다른 종류의 팬덤이어도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팬이라고 지칭하는 집단 안에 과격한 이가 없는 팬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스포츠와 연관된 팬덤은 다른 팬덤에 비해 특히 과격분자들의 비중이 높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미국은 어디서든 쉽게 총기를 구할 수 있는 나라다. 급박한 성향을 지닌 팬이 언제 어디서 팀의 운영에 앙심을 품고 총구를 들이밀지 알 수 없었다.
“제가 소유하고 있는 경호 회사에 따로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데이비드 사장과 그의 가족에게 무상으로 경호팀을 파견해 주겠다는 말을 덧붙인 뒤에야 데이비드의 반대가 조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반대를 이어 갔다. 그에 정호준은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플랜을 공유해 주었다.
“투수는 잘 맞는 브레이킹볼이 추가되면 차원이 다른 선수가 되기도 하죠. 저는 커리 클루버가 그럴 거라 믿습니다. 커리 클루버에게 투심을 장착시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레벨의 선수가 될 겁니다.”
2010년 삼각 트레이드의 희생자 중 하나인 커리 클로버는 인디언스로 이적한 뒤 코치의 권유를 받고 투심 구종을 습득했다. 투심이 잘 맞았던 것도 있고 커맨드가 하나 늘어남에 따라 투구 운용도 더 절묘해졌다.
투심 장착 후 성적이 좋아지자 공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한 클루버는 말 그대로 전성기를 맞이했다. 클루버의 전성기는 클레튼 커쇼처럼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알아?’라고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었지만, 까라면 까는 게 데이비스 사장의 업무였기에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게다가 백업 포수로도 사용하기 어려웠던 켄리 젝슨을 데려다가 마무리로 보직 변경을 지시한 이해할 수 없었던 정호준의 지시는 잭팟이 되어 현장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마이너리그 코치들로부터 그 사실을 전해 들었기에 제발 이번에도 정호준의 선택이 맞기를 기도하며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다만 데이비드 사장의 협상력은 정호준의 기대와 달리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커리 클루버를 데려오는 데 시카고 팜에서 키우고 있던 외야 유망주를 하나 소모했다.
마이콜 트라웃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분명해 보였기에 외야 유망주를 내준 것이긴 하나 볼품없는 선수를 데려오기 위해 키우던 유망주를 내준 트레이드를 팬덤은 매우 못마땅해했다.
쌓이고 쌓였던 시카고 컵스 팬덤의 분노가 슬슬 폭발할 기미를 보였다.
* * *
정호준은 폭발 임박이라는 팬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방법으로 뷔튜브를 선택했다. ‘스마트폰 판매량 = 유니톡 신규 가입자 수’라는 공식이 세워지며 승승장구를 이어 가고 있는 유니톡처럼 가파른 성장까지는 아니어도 뷔튜브는 제 나름대로 조금씩 조금씩 성장을 이어 가고 있었다.
정호준은 뷔튜브의 성장 속도에 조금이나마 가속도를 붙여 주고자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시카고 컵스의 팬덤 규모는 빅마켓이라고 분류될 정도로 큰 편이다. 컵스 팬이라면 뷔튜브를 찾아와 정호준의 해명을 볼 것이고, 정호준의 해명 영상이 입소문을 타면 타팀의 팬들도 궁금해서 한 번쯤은 찾아오리라.
‘이게 바로 일석이조인 거지.’
아이들의 성장을 기록 중인 카메라팀의 협조를 받아 정호준은 영상을 제작했다. 영상은 논란거리가 되는 것들은 묶어다가 자막으로 질문하고 정호준이 대답하는 QnA 형태로 제작했다.
-대게 신임 구단주들은 팬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초창기는 투자를 감행하는데, 투자는커녕 리빌딩을 선언한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포스트시즌 경쟁까지는 어떻게 해 볼 만하지만, 그 이상을 바라기엔 스쿼드상 무리가 있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2007년 우리 팀에 FA로 합류한 알폰소 소리아노 선수의 역량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게 보였습니다.”
정호준의 구단 인수로 메이저리그의 문제아 ‘밀튼 브래드’와 봄쿠도메로 불린 ‘하카도메 고스케’의 컵스 합류는 막았지만 8년간 1억 3,6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계약을 맺은 소리아노가 문제였다.
2007년에는 잘해 줬지만 2008년부터 먹튀의 대명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앞으로 있을 드래프트에 나올 선수들의 잠재력이 막대해 보인다는 거죠.”
2009년부터 약 3년 동안 대어들이 줄지어 나온다.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이들을 값싸게 쓸 수 있고, 시카고 컵스의 프랜차이즈로 만들 찬스를 눈앞에 두고 고만고만한 전력으로 우승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았다.
-켄리 젝슨과 클루버는 대체 왜 데려온 거냐?
이 질문에는 마무리로 보직을 변경한 켄리 젝슨의 투구와 젝슨에 관한 투수 코치들의 의견을 먼저 보여 준 뒤 이야기했다.
“저와 컵스의 스카우트팀은 젝슨의 거구와 강한 어깨에 주목했습니다. 포수라는 맞지 않는 옷 대신, 강한 어깨와 거구를 100% 활용할 수 있는 마무리 투수로 활용해 보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계획은 성공적으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정호준은 리버풀 팬덤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10년 내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약속했고, 우승을 못 시키면 구단을 매각하고 떠날 것을 약속했다.
정호준쯤 되는 이의 공언은 아무렇지 않게 날리는 공수표와는 무게감이 달랐고 터질 것 같았던 팬덤의 분노는 진정세에 접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