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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29화 (229/335)

229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29)

급작스러운 요청이었지만 중동 왕자 만주르와의 만남은 돈 외에도 ‘정호준과의 식사’라는 이벤트의 명성과 가치를 높여 주었기에, 정호준은 흔쾌히 시간을 냈다.

찾아가는 서비스가 아닌 만남을 원했던 사람들이 찾아오는 서비스를 추구했기에 정호준이 아랍에미리트나 영국으로 가는 대신 만주르가 시카고를 방문하기로 이야기되었다.

소비자가 돈도 내고 찾아오게 하다니 무슨 배짱인가 싶지만, 돈을 받고 식사 자리를 갖는 이벤트의 소비자는 전 세계의 부호들이다. 그리고 정호준이 거주 중인 나라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영토를 보유한 미국이었다. 찾아가는 서비스를 진행했다간 비행기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정호준도 만주르도 경호원을 다수 동반해야 했기에 경호상 이유로 시카고의 예약제로 운영되는 고급 레스토랑 건물을 통째로 빌렸고, 경호팀과 비서팀이 일정을 조율하며 서로의 영역(식자재 공수, 개인 셰프, 경호 구역)을 존중하며 협력했다.

만남 자체는 비밀리에 이뤄졌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스물이 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여 준 후에야 성사되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셰이크 자이드 알라인. JHJ Capital 대표 호준 정입니다.”

사전에 간단하게나마 아랍의 격식을 공부한 정호준은 호칭 등에 주의했다.

“그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 없습니다. 이곳은 아랍에미리트가 아닌 미국이니까요. 편하게 만주르라고 불러 주시죠.”

실제로 만주르는 아랍권 사람들의 복장이 아닌 양복 차림을 하고 있었기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JHJ Capital의 호준 정입니다. 만주르 왕자님. 재단에 만남을 요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다른 말 없이 해 달라는 대로 해 주는 정호준의 발언에 잠깐 낯선 감정을 느꼈던 만주르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만주르 왕자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띤 채 만남을 요청한 이유를 풀어냈다.

“영국 언론들이 벌 떼처럼 모인 자리에서 내 편을 들어줘서 고맙습니다.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정 대표님이 내 편을 들어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만주르는 밥그릇 싸움 때문에 프리미어리그 팀들이 자신의 프리미어리그 팀 인수를 반대할 건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했다 해도 반감이 달갑지는 않았다. 정호준의 인터뷰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도움의 대가로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호의(?)에 정호준을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하나 정정해 드릴 게 있습니다. 저는 왕자님의 편을 들어드린 적이 없습니다. 저도 다른 구단주들처럼 왕자님의 맨체스터 시티 인수를 달갑게 보진 않습니다.”

“언론에는 내가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던데요?”

“왕자님께서는 이미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하셨으니까요.”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디폴트 사태로 벌어진 미국발 경제 위기 때문에 자금 수혈이 필요했던 영국 경제에 만주르라는 큰 손의 구단 인수는 바라마지 않았던 일이었다. 유럽에서 축구는 스포츠를 넘어 산업으로 자리매김해 경제에 기여했고, 그런 만큼 만주르의 구단 인수는 영국 정부가 원했던 대로 큰 경제 효과를 불러왔다.

훗날 사우디의 왕세자가 구단을 인수할 때와 달리 2008년에 유럽을 강타한 금융위기에 프리미어리그 구단주들은 제 살길을 찾기도 바빴고, 그 탓에 새로운 오일머니의 진입을 제때 견제하지 못했다.

“쌀이 익어 밥이 됐는데, 이제 와서 비난을 가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를 포함해 다른 팀의 구단주와 팬들이 반대한다고 해서 구단을 팔고 떠나실 것도 아니잖습니까?”

“JHJ Capital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 정도 영향력은 행사할 수 있지 않나요? 듣자 하니 오리하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다던데요?”

가문의 자산까지 모두 합친 아부다비 왕가 전체 자산에 비하면 JHJ Capital이 쳐지긴 했으나, 만주르 본인의 자산보다 정호준이 더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었다. 만주르에게 아부다비 왕가라는 배경이 있듯 정호준에게도 로슬러라는 배경이 존재한다.

만주르는 마음만 먹으면 못 할 것도 없다고 여겼고 실제로 그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이긴 했다.

“저는 쓸데없는 곳에 돈과 노력을 쏟아붓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구단 인수 후 왕자님께서 보여 주시는 행보를 통해 왕자님께서 축구에 애정을 가지고 계신다는 걸 느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을 준수하시면서 구단을 운영하시겠다는데, 뭘 더 어떻게 방해하겠습니까?”

정호준의 질문 아닌 질문에 만주르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살짝 비꼬듯 물었다.

“맨체스터 시티가 리버풀의 우승 경쟁과 챔피언스리그 경쟁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고요?”

0809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만주르가 팀을 인수한 뒤 천억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음에도 겨우 10위권에 안착하는 걸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8위 9위와 승점이 1점 차이였기는 하나, 어쨌든 천억 넘게 쏟아부었음에도 유로파조차 나가지 못한 지금의 상황을 놓고 프리미어리그 팬들은 근본은 돈으로 살 수 없다며 비아냥대고 있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음에도 큰돈을 들였으니 무언가 성과가 있기를 바라는 게 인간의 욕심임을 생각하면 만주르 말속에 숨어 있는 고뇌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오른손을 들어 내저으며 극구 부인했다.

“축구는 개인 스포츠가 아닌 팀 스포츠입니다. 아무리 좋은 선수들이어도 팀으로 완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장이라도 개입하고 싶으실 텐데 꾹 참고 지켜보시는 왕자님이 저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한번 언급했었는데요.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 같다고.”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잘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그것을 인정하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거였다. 자신이 꽂힌 선수는 팀에 필요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레만 아브라히모비치와 달리 만주르는 전문가에게 돈 보따리를 쥐여 준 채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한 구단 운영 철학이 맨시티를 챔스 경쟁을 넘어 언제나 우승 경쟁을 하는 팀으로 만든 거라 생각했다.

사람을 데려다 쓰는 게 주요한 업무인 만큼 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람이 가식적인 가면을 쓰고 말하는지, 진심을 담았는지를 구별하는 데 능했다. 만주르가 느끼기에 정호준의 말은 진심이었다.

축구를 즐겨 본다는 취미를 가진 정호준과 만주르는 축구와 관련된 대화나 구단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가며 식사 자리를 가졌다.

* * *

대화를 나누는 동안 만주르는 권위 의식을 일절 드러내지 않아 대화를 방해하는 요소가 없어서일까?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웠다.

점심 식사 자리를 함께하는 걸로 만남을 가졌는데, 저녁 먹을 때가 되어서야 축구와 관련된 이야기가 끝이 났을 정도로 두 사람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주르는 돈 많은 박기태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박기태와 성격이 비슷했다.

아리아와 절친인 박기태를 제외하면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정호준은 처음으로 긴장을 살짝 내려놓고 이야기를 나눴고, 왕자로서 어느 정도 처신을 조심하고, 사람을 조심해야 했던 만주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형이라 부르기에는 나이가 많은 삼촌뻘이긴 하나 서로에게 크게 바라는 게 없어서인지 부담이 적었다.

‘연결고리를 하나 남겨 두고 싶은데.’

“JHJ Capital은 투자금을 받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제 말이 맞습니까?”

이야기가 잘 맞았던 정호준과 끈을 남겨 두고 싶었던 만주르가 먼저 한 발 내디뎠다. 만주르의 물음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제 투자 방식은 리스크를 동반하는 투자가 많습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이해가 안 가는 투자가 빈번하죠. 다른 자산 운영사들처럼 돈을 받았다가 일일이 납득시키는 게 귀찮습니다.”

자금운영 권한이 JHJ Capital에게 있다는 점을 계약서를 통해 명시한다 해도 그 누구도 아닌 내돈내산이기 때문에 본인들이 위험하다고 느끼면 결국에는 연락이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웬만하면 다른 이들과 수익을 나누고 싶지 않습니다.”

남의 돈을 받아서 자산을 운영한다는 건 즉 운영에 대한 수익을 나눠야 한다는 말이었다. 본인의 자금이 충분하지 못할 때야 체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시도하기도 하지만, 본인 자산만으로도 개발도상국 정도는 휘청거리게 만들기 충분한 부를 이룩한 정호준은 굳이 남의 돈을 끌어올 필요가 없었다.

“정 대표님께서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수락한다면 어떻습니까? 저는 은행 이자보다 조금만 더 쳐주시는 걸로도 충분합니다.”

돈보다도 정호준과 좀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길 원해 던진 만주르의 제안에 정호준은 구미가 당긴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자금이 조금 필요하긴 했기 때문이다.

‘겸사겸사 얼굴마담도 해 주면 더 좋고.’

“왕자님의 사람이 만든 법인을 제가 운영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왕자님의 제안 받아들이겠습니다. 수익은 맡긴 자금의 20%를 약속하겠습니다.”

만주르의 자금으로 세운 법인을 정호준이 운영한다는 건 즉 만주르의 법인을 방패막이로 세우겠다는 이야기다. 돈도, 사람도, 법인까지도 제공해 놓고 수익 난 것의 80%를 가져가겠다는 욕심 가득한 정호준의 말에 잠깐 멈칫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정 대표님의 요구를 받도록 하죠. 대신 어디에 투자를 하려는 건지, 간략하게나마 듣고 싶습니다.”

“종목을 지금 말씀드릴 수는 없고, 어쨌든 일본의 대기업을 공격할 생각입니다.”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일본의 대기업을 상대로 공매도를 진행하겠다고 말하는 정호준의 선언을 들은 만주르의 얼굴에 호기심과 흥미가 서리더니, 사람을 불러 계약서를 가져왔다.

“50억 달러를 맡기겠습니다.”

만주르는 5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그들은 레스토랑에서 계약서까지 작성했다.

* * *

0809시즌 결과를 동반하지 못했으나 어쨌든 정호준의 구단 인수 후 챔피언스 리그 우승, 미니 트레블 등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둔 리버풀과 달리 정호준이 인수한 시카고 컵스는 정호준의 인수 후에도 내내 죽을 쒔다.

2008년, 6월쯤부터 시카고 트리븐을 인수해 겸사겸사 구단주가 되겠다고 결심한 정호준이 스리슬쩍 단장에게 접촉해 자신이 구단주가 된 뒤에도 3년의 임기를 약속하고 탱킹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축구보다 야구가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나라입니다. KBO가 메이저리그만큼 높은 레벨은 아니지만, 한국에서 야구를 보고 자라 야구를 보는 눈은 키웠습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카고 컵스 전력으로는 우승 경쟁을 할 수 없다고. 리빌딩을 진행하겠습니다.”

정호준이 탱킹을 지시한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 프로야구가 그런 것처럼, 메이저리그 또한 꼴찌팀에게 드래프트 우선권을 주기 때문.

2008년 시카고 컵스는 역대급이란 수식어는 사용하지 못해도 최소한 나름 잘 나가고 있었기에 패배를 주문했음에도 꼴찌는 못 했다. 시카고 컵스는 중간만 못 한 성적으로 2008년 시즌을 끝냈고, 2009년에 들어서야 꼴찌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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