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23)
백악관에서 나와서 준비된 차량에 탑승한 정호준은 조용히 득실을 계산했다.
‘인수합병을 묵인하는 걸로 빚을 청산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손해 보는 거래인데.’
오리하가 대통령이 된 후 정호준이 돈을 따로 가져다 바치거나 한 건 아니지만, 보고 온 미래를 참고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는 것 또한 빚이다. 그것도 어떻게 계산하냐에 따라 돈을 직접적으로 준 것보다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는 빚.
하지만 정보와 방향 제시는 돈과 달리 주고받는 게 명확하지 않다는 단점을 갖고 있었기에 손해인 것 같아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앞에서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고, 그거로는 모자란다고 개기기엔 직접적으로 돈을 가져다 바친 게 없었다.
백악관을 나와 경호팀의 경호를 받으며 전용기 내부로 돌아온 정호준은 그를 기다리고 있던 전략팀 직원들과 비서들에게 백악관을 방문 후 결정된 사안들을 이야기했다.
“일단 시간은 번 셈이군요.”
오리하가 자신이 백악관의 주인으로 있는 동안은 독과점을 눈감고 넘어가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말을 들은 전략팀 직원들은 하나같이 중얼거렸다. 전략팀 직원들의 말마따나 JHJ Capital은 짧게는 3년, 오리하가 재선에 성공한다면 7년이란 시간을 번 셈이다.
‘1회차 때 재선에 성공했으니 이번에도 재선에 성공하겠지?’
미국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변화를 일으켰지만, 그러한 방향이 반드시 오리하에 대한 지지로 치환되지는 않는다. 동전의 양면처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더라도 피해를 입는 이들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을 알고 있기에 괜히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이내 털어 냈다. 1회차의 삶을 포함해 정호준이 보고 듣고 겪은 릭 오리하는 정치력과 친화력이 뛰어난 남자였기 때문이다.
정호준이 쓸데없는 걱정을 정리했을 무렵, 전략팀 직원 중 에드워드란 이름을 가진 직원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와 주변에서 질문을 던지는 게 들려왔다.
“오리하가 재선에 성공하면 최악의 경우에도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BNSF와 NS에서 연마다 지급하는 배당금으로도 이번에 두 회사를 인수하는 데 사용한 비용을 충당할 것 같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침체되었던 경기가 풀리고 다시금 성장세로 돌아설 겁니다. 경기가 성장하면 자연스레 회사의 주가도 뛰겠죠.”
합리적인 의견에 직원들은 그저 조용히 에드워드의 말을 경청했다.
“7년은 긴 시간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주가가 2.5배는 뛸 겁니다. 해체 후 한쪽을 매각하란 명령이 통과된다 해도 우리 JHJ에게 손해가 될 건 없습니다. 배당금으로 두 회사의 인수금을 다 뽑고, 회사 하나를 인수가보다 2.5배 이상 받고 매각할 테니까요.”
주가가 2.5배가 아닌 5배나 올랐다는 사실 제외하면 1회차 때의 에릭 버핏의 행보를 그대로 읊고 있는 직원의 말에 정호준은 남자의 이름을 기억하고자 속으로 되새겼다.
‘에드워드라, 눈여겨봐야겠네.’
다만 정호준은 눈여겨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에드워드의 의견에 태클을 걸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으면 곤란한데요? 당장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제가 Class 1으로 분류되는 철도회사를 두 곳이나 인수한 건, 훗날 필요해질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인수금보다 3배를 더 번다고 가정해도, 인수하고 합병한 회사가 정부에 의해 찢기고 매각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JHJ에는 손해입니다.”
인수금은 이미 배당금으로 충당했으니 인수한 금액의 3배를 받고 나오면 4배의 이득을 본 셈이다. 400억 달러라는 거금의 300%의 수익률을 기록해도 손해라는 정호준의 말에 직원들은 의문 서린 시선으로 정호준을 바라봤다.
“기회비용을 생각해야죠. 철도회사를 인수하지 않고 그 돈을 내가 7년 동안 굴렸다고 가정하면, 과연 300% 수익에서 그칠까요?”
자신이 그 돈을 쥐고 굴렸다면 더 큰돈을 벌었을 거란 정호준의 말에 전용기에 타고 있는 직원 일동은 동의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재수가 없을지는 몰라도 정호준은 투자에 실패한 적 없는,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 금융업계에서 단기간에 거대한 성체를 이룩한 남자였다.
“죄송합니다.”
“오리하 정부의 바통을 이어받은 신정부에서 해체 후 매각 명령이 떨어진다면,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손해입니다. 명심해 주세요.”
정호준의 질책성 발언에 에드워드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고, 동료에게 질책성 시선이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전략팀 직원 중 하나가 재빨리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럼,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독과점이 폐해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경영으로 책잡힐 요소를 줄이는 게 전부입니다. 하나 더 덧붙이면, 로펌의 힘도 빌려 가며 준비하는 정도가 최선이겠죠. 로펌 수배 시작할까요?”
전략팀 직원의 물음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재판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곳으로 수배해 주세요. 그리고 공화당과 민주당의 중진들에게 로비를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로비스트도 따로 수배해서 보고해 주세요.”
* * *
한국의 대통령은 제왕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반만 맞는 이야기였다. 대통령이 소속되었던 정당이 대통령의 옆이나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야만 제왕적인 권한을 행사한다는 말이 제대로 성립될 수 있는 거였다.
김명호 정부의 임기 초는 여당인 보수당보다 야당인 진보당의 의석수가 많은, 여소야대라는 말이 어울리는 형국을 띄고 있었다. 152석을 가진 진보당 때문에 진보당 쪽 목소리가 국민에게 더 잘 전달돼서 광우병 소고기 사태가 선동이란 말이 붙을 정도로 확대된 거였다.
하지만 2008년 4월 9일 열린 18대 총선이 여당에서 비례대표 포함 153석을 가진 거대 정당이 되었고, 진보당은 무소속 출신들에게 표를 뺏겨 81석만 차지하며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자 암울했던 김명호의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여대야소. 김명호는 제왕적 권한을 휘두르기 좋은 환경을 갖게 되었고, 덕분에 1회차 때 김명호 정부는 진보 쪽이 반발해도 별 무리 없이 원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김명호가 야심 차게 계획한 4대강 정비 사업은 정호준이 생방송으로 단점들을 일일이 지적하며 깎아내린 탓에 전국민적인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고, 경상도 낙동강 유역 댐 정비로 사업을 축소하게 되었다.
“전라도도 경상도처럼 태풍 때문에 피해가 많은 지역이잖습니까? 지역감정을 활용해서 한번 엮어 보세요!”
정호준 때문에 방해를 받았다 해도 김명호 정부가 제왕적인 권력을 가진 정부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 현실이었고, 4대강 정비 사업 취소로 국민 여론이 잠잠해지자 스리슬쩍 지역감정을 엮어 전라도 영산강까지 댐 정비 사업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었다.
돈이 엮인 사업을 어떻게든 따내고 확대하려는 불굴의 의지는 알아줘야 했지만 이번에도 정호준이 한발 빨랐다.
정호준이 백악관을 방문해 독과점을 묵인해 주겠다는 답을 들었을 무렵 한국에서는 정호준이 준비해 둔 이를 통해 또 한 번 시끌벅적한 사건이 터졌다.
[부율경저축은행 뱅크런 발생!]
* * *
2009년 5월 말, 더 정확히는 정호준이 4대강 정비 사업을 동시 송출한 후 무소속으로 부산의 어느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강현태에게 서류가 가득 담긴 서류 박스가 하나 사무실로 배달되었다.
확인하는 데 한세월이 걸릴 것 같은 서류 박스를 보낸 사람이 정호준임을 확인한 강현태는 곧장 정호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정호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마자 강현태는 사전에 아무런 고지도 않고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게 분명한 서류들을 보낸 정호준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정 대표님이 보내신 서류 박스가 사무실로 도착했는데, 대표님 이게 다 뭡니까?”
-오늘 도착했나요? 돈을 더 보내고 부쳐서 그런지 빨리 갔네요.
“정 대표님! 제 질문에 아직 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물어본 것은 대답하지도 않고 너스레를 떠는 정호준을 향해 강현태는 다시 한번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고, 그제야 정호준에게서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부율경저축은행 부실에 관한 서류들입니다. JHJ Capital의 회계팀을 통해 부율경저축은행이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있다는 의혹을 확인했습니다. 서류들을 확인해 보시면 알겠지만 의혹이 가는 부분들을 모두 표시해 두었습니다.
부율경저축은행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터져 유동성 위기에 빠진 저축은행(대전저축은행, 부산중앙저축은행, 전주저축은행)을 금융위원회의 지도에 따라 인수했다. 자산총액 4조 원, 자본총계 2,400억 원, 자기자본비율 7.16%(재정 건전성)의 우량 저축은행으로 알려져 자금에 여유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부율경저축은행도 상태가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분식회계로 부정을 감췄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곪을 대로 곪은 후 2011년 2월 17일 금융위원회에 의해 영업 정지 명령을 받고 2012년 8월 16일 부산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는데, 드러난 분식회계 규모는 약 2조 5,000억 원에 이르렀다.
게다가 부율경저축은행은 훗날 대장동 사건에도 연루되기까지 했다.
“그 자료를 왜 저한테 준 겁니까?”
“의원님께서 터트려 주셨으면 해서 말이죠. 저는 부율경저축은행이 저지른 분식회계 규모가 최소 5천억 원은 넘겼을 거라 추측합니다. 어쩌면 조 단위에 이르렀을 수도 있겠죠.”
“일개 의원인 제가 건드리기에는 너무 건수가 큽니다. 차라리 금융감독위에 맡기시죠.”
정호준의 대답을 들은 강현태는 몸을 사렸다. 조 단위가 얽힌 비리는 자신이 감당하기엔 사이즈가 크다고 느꼈다. 장희팔 사건 또한 정호준의 1회차의 삶에서 조 단위 피해를 낸 역대급 다단계 사기였지만 사전에 잡은 덕분에 큰 피해가 없었고, 강현태는 장희팔을 잡범으로 여겼다.
“다단계, 주가 조작 등을 해결하며 쌓은 강현태 의원님의 명성은 의원님이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의원님의 이름으로 쌓인 명성이면 사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겸사겸사 명성도 더 쌓고요.”
“그래도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금융감독원에 맡겼으면 합니다.”
“있습니다. 의원님이 아니면 안 되는 이유.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은 너무 썩었거든요.”
1회차 때의 이야기지만 2010년에 한 번 금융감독원과 감사원 등에서 부율경저축은행을 감사한 적이 있었다. 약 138일 동안 이어진 감사에서 금융감독원과 감사원은 혐의를 찾지 못했다고 이야기했었다.
부율경저축은행 강연호 회장은 정권 실세에 돈을 뿌려가며 로비를 벌였다는 혐의로 입건되는데, 조사 과정에서 2005년 부율경저축은행에서 고문 변호사를 지냈고 2007년 김명호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던 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이 돈을 받고 구명 로비를 벌인 혐의로 구속되었다.
정호준은 김명호 정부와 금감원, 감사원 쪽에 뇌물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하며 폭탄을 떨어트렸다.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해서 뱅크런을 일으켜 주십시오. 금감원이나 감사원은 폭탄이 터진 뒤에야 제대로 일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