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216화 (216/335)

216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216)

릭 오리하는 루즈벨트, 케네디, 힐링턴과 함께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꼽혔고, 퇴임 지지율 또한 60%를 기록하며 프랭클린 루스벨트(71%), 힐링턴(65%), 로널드 레이건(64%)의 뒤를 이어 역대 4번째로 높은 퇴임 지지율 보유자가 되었다.

릭 오리하는 미국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나름 미국을 잘 이끌었다고 평가받았지만 누군가 정호준에게 릭 오리하가 대통령으로서 미국을 잘 이끌었냐고 묻는다면 정호준은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오리하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렇게 박한 평가를 내린 이유는 간단하다. 패권국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중국의 부상을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소한 오리하 때는 중국을 견제해야 했어.’

공부에도 때가 있다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듣거나 본인의 입으로 말한 적이 있을 거다. 부모나 친척, 혹은 선생들이 자식이나 친척, 제자를 보며 밥 먹듯 되풀이하는 말이니 말이다. 그런데, 사실 때가 있는 건 공부만이 아니다.

세상만사 모든 일에는 시기가 존재한다. 국가와 국가 간의 일 또한 마찬가지다. 오리하 임기 끝물, 트럼프 임기 초부터 미국은 중국을 대대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하지만 그땐 이미 늦은 뒤였다. 다 자란 맹수를 잡아다가 사육에 성공한 사례는 고금을 통틀어 없었으니 말이다.

‘미국도 자신들이 너무 늦게 움직였다는 걸 알아챘지.’

문제는 늦었다고 생각됐을 때는 정말 늦은 거란 거다. 경제 규모가 커질 대로 커진 중국은 미국의 규제를 버틸 체력을 갖게 되었고, 밀리기는 하나 똑같이 규제를 때리며 보복을 가할 정도로 무시 못 할 국가가 되었다.

‘지금 보니까 오리하가 그것까지 신경 쓰기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긴 하지만.’

모기지론 디폴트로 인해 시작된 경기 침체, 미국 제조업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자동차 업계 빅3 중 SM의 정상화, 아프가니스탄 정부 체력 기르기, 이라크에서 발을 빼는 것, 이윽고 북한 핵 개발까지. 국내외로 오리하가 신경 써야 할 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오리하의 정보 공유로 중동 사태가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정호준의 평가는 여전히 박했다.

‘전부 전 정부가 싸질러 놓은 똥이긴 하지만, 그거야 정권을 탈환한 야당 출신 대통령이 치러야 할 짐이잖아?’

전 정부가 싸지른 똥을 정리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고 정호준은 생각했다. 야당 출신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는 현상 자체가 애초에 대통령과 여당이 못했기 때문에 심판하는 의미가 강하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구별했어야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빼지 않고 그들이 세운 정부가 자립할 수 있게 도왔던 1회차 때와 달리 신경 쓰지 않고 발을 빼기로 결단한 만큼 중국을 신경 쓸 여력이 존재할 것이다.

“환율조작국 의심부터, 중국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하는 등 미국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술 탈취에 대한 페널티도 확실하게 가하셔야 합니다.”

정호준이 계속해서 오리하나 미국이 중국을 주시하도록 피력해 왔고, 백악관에 찾아온 지금도 중국을 주시할 것을 충고했다.

“북한 핵 개발과 관련해 중국이 무언가 역할을 해 줄 거라는 생각은 버리시는 게 좋을 겁니다.”

미국은 중국이 북핵 개발을 막는 데 한 손 거들어 주기를 바랐지만 중국은 그저 시늉만 할 뿐,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2010년대 정호준이 어쩌다 우연한 기회로 친분을 갖게 된 중국인들은 모두 북한에 호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었다. 미국의 어그로를 끌어주며 중국이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대신해 주고 미국과 날을 세우는 북한을 중국인들이 싫어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 * *

처음 시카고에 사무실을 낼 때 JHJ Capital은 시카고 중심 상업구역인 70 웨스트 메디슨가에 위치한 60층짜리 건물에 사무실을 냈다. 55층, 56층, 57층. 총 3개 층을 임대해 사용했다.

‘사무실을 좀 더 확장할 필요가 있겠는데?’

JHJ Capital은 모기지론 디폴트로 경매에 나온 부동산을 사들이는 행보를 이어 갔고, 100층을 넘기는 S급 빌딩들을 다수 소유하게 되었다. JHJ Capital이 소유한 S급 빌딩 목록에는 시카고 위치한 빌딩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간이 필요하면 아예 이번에 경매로 사들인 S급 건물 중 하나로 이사를 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정호준은 사무실을 이전하는 선택을 내리지 않았다.

‘지금 쓰고 있는 사무실이면 충분하지, 귀찮게 뭘 이사까지 해.’

이사라는 행위는 번거로운 행사였다. 본인들의 손으로 포장이사를 하는 게 아니니 당연히 업체를 불러다 쓸 거고, 계약을 맺은 업체가 알아서 짐을 싸 주고 대신 풀어 주며 모든 일을 다 처리해 주겠지만, 부가적인 일들을 사람을 써서 해결한다 해도 이사라는 행위 자체가 번거롭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데가 나쁜 것도 아니고.’

굳이 익숙한 환경을 놔두고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할 만큼 사무실의 환경이 열악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정호준은 JHJ Capital이 세를 든 건물을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경매에 나오지 않은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모기지론 디폴트로 법인들이 줄줄이 파산을 이어 갔지만, JHJ Capital이 사무실을 낸 건물의 건물주는 사정이 나쁘진 않았는지 건물이 경매에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건물주와 직접 접촉해 건물을 사들였다.

“지시하신 대로 51층, 52층, 53층, 54층, 58층, 59층, 60층 전부 비우기로 이야기 마쳤습니다.”

“수고했어요. 애로사항은 없나요?”

“처음에는 삿대질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저희가 내건 조건을 들은 뒤에는 반색하며 받아들였습니다.”

계약 기간이 만료된 것도 아니고, 갑자기 사무실을 비우라는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소송이 걸려도 단단히 걸리리라.

가뜩이나 미국은 소송의 나라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에 대한 대비책은 필수적으로 필요했고, 때문에 잡음이 생기지 않도록 경매를 통해 사들인 S급 건물 공실에 사무실을 내주고 3년 동안 여기서 받는 월세와 동일한 월세를 받겠다는 보상책을 제시했다.

추가로 이사비용 또한 JHJ Capital이 부담해주기로 약속해주었다.

같은 돈을 지불하고도 3년 동안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서 머무를 수 있고, 월세 보증금도 따로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런 호구 같은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버틸 이는 세상에 몇 없었다.

‘한국만큼 보증금을 많이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건 목돈이라 불러도 될 규모는 되니까.’

정호준이야 정말 거물급 사람들과의 인맥이 아닌 이상 인맥을 쌓을 필요가 없었지만 다른 사업자들은 인맥 또한 중요한 부분이었다.

인맥을 쌓기에도 정호준의 제안을 받아 S급 건물로 이사 가는 게 맞았다.

좋은 건물에 더 좋은 회사들이 모여 있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잠깐의 귀찮음을 감수하는 게 싫은 정호준 때문에 이래저래 쓸데없는 돈이 나간 셈이지만, 정호준은 개의치 않았다.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되잖아?’

어차피 지금 사들인 건물 또한 시간이 지나면 값이 오를 테니 큰 손해는 아니었다. 월세 손해와 이사비를 지원 등 지출이 꽤 됐지만 본인의 편의를 위해선 지불할 의향이 있었다.

정리를 마쳤다는 보고를 끝으로 추가 지시사항이 있는지 묻는 엘리나 비서의 질문에 정호준은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

미국의 월세 계약은 보통 3개월 치 월세를 보증금으로 묶어 두는 선에서 그쳤다. 그렇기에 보증금 마련이 정말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보증금으로 묶어 둬야 할 돈을 유보금으로 돌려 둬서 나쁠 건 없었다.

“58층부터 60층까지는 제가 개인적으로 쓰려고 합니다.”

“인테리어 업체 선별해 놓을까요?”

“예, 58층만 꾸미도록 하죠. 54층에 직원들 전용으로 만들려고 했던 헬스장 및 휴게시설을 58층에도 개인용으로 만들어 주세요.”

58층을 어떻게 꾸밀지만 이야기할 뿐 59층과 60층에 대해선 아무런 말이 없자 엘레나 비서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59층과 60층은 어떻게 할까요?”

“59층과 60층은 개인적으로 사용하려 합니다. 컴퓨터와 쿨러, 에어컨, 컴퓨터 책상과 멀티탭 등의 주문만 대리해 줘도 충분합니다. 아, 인터넷은 반드시 초고속으로 연결해 놔야 합니다.”

업무적인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정호준은 표정을 굳히며 엘리나가 긴장하도록 분위기를 조장했다.

“그리고 59층과 60층을 사내 일급보안 구역으로 지정할 생각입니다. 직원들에게 59층과 60층에 관심 두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남겨 주세요. 침범할 시 법적인 조치까지 단행할 겁니다.”

철저한 보안을 강조하는 정호준의 말을 들은 엘리나는 잠깐 의문을 품었지만 이내 마음속에서 궁금증을 지워 냈다. 호기심은 독으로 작용할 뿐이란 걸 업계 사람들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예, 사내에 공고 올리겠습니다.”

* * *

59층과 60층을 사용하던 회사들이 이사업체를 고용해 사무실을 나갔다.

59층과 60층이 비자 마자 정호준은 청소업체를 불러 깔끔하게 59층과 60층을 청소했고, 미리 주문해 두었던 최고 사양의 최신 컴퓨터들을 간격을 두고 설치했다. 그리고 컴퓨터 옆에 쿨러도 따로 설치했다.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는 지붕형 에어컨 외에도 에어컨을 추가로 설치하기도 했다.

정호준은 59층과 60층에 코인 채굴을 위한 작업장을 만든 것.

2000년대 혁신의 아이콘이 아이폰이라면 2010년대의 혁신은 전기차와 ‘가상화폐’ 비트코인이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며 데이터를 잡아먹는 가상 쓰레기라고 평가받던 코인은 어느 순간 가치를 갖게 되었고, 인간의 욕망, 범죄자들의 이해관계 등과 맞물리며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다.

‘슬슬 나도 코인 채굴 시작해야지.’

사토시가 첫 채굴로 50BTC를 획득한 게 2009년 1월 3일이다. 6월도 이제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코인 채굴에 뛰어들 필요가 있었다.

경매에 나온 부동산을 매입하고, 바닥까지 떨어진 미국과 한국 주식 줍줍을 마무리해 신경 쓸 곳도 딱히 없었다.

‘작업장치고는 좀 많이 호화스럽긴 한데, 관리가 우선이니까.’

전기세, 월세 등을 고려하면 작업장을 도심에 운영하기보다는 시골에서 운영하는 데 유지비가 덜 든다. 유지비를 최소화하는 게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지만, 정호준은 유지비보다는 관리의 수월함을 중시했다.

‘그리고 어차피 코인은 유지비로 나가는 거에 수천 배의 수익을 올려줄 거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