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73화 (173/335)

173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73)

평화와 화합의 장이라는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개막했지만 JHJ Capital에 소속된 직원들은 축제를 즐기지 못했다.

“아프리카에서 자원 탐사하는 ……와 작게나마 연이 있습니다. 시간을 주시면 그쪽에도 선을 대보겠습니다.”

“칠레 쪽에 구리 광산이 터졌다는데, 그쪽과 미팅 잡아 보겠습니다.”

“밴쿠버 중심가에 빌딩을 건축하던 회사가 서브프라임 디폴트 때문에 건축을 중단했습니다. 빌딩 인수에 대한 운을 떼 보겠습니다.”

정호준이 따로 보너스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음에도 JHJ Capital에 적을 둔 직원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능력을 발휘해 정호준의 지시를 이행하느라 바빴다.

‘JHJ에 뼈를 묻는다.’

‘지금 나가면 갈 때도 없다.’

21세기는 신분도 직업의 귀천도 없는 세상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권력에 얼마나 가까운지, 가진 재산은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새로운 신분이 생겨났다.

그리고 직업에 귀천 또한 존재했다.

누군가는 선생님 소리를 들으면서 존경까지 받는데, 누군가는 인식이 안 좋은 직업을 갖고 있다고 사람들로부터 무시 받는다.

똑같은 직업을 가졌더라도 소속되어 있는 회사의 명성과 규모가 얼마나 큰지, 연봉은 얼마나 주는지, 회사가 휴일을 얼마나 보장되는지에 따라 같은 직업을 가졌어도 또 한 번 급이 나뉘는 게 정호준이 살아가는 21세기였다.

이러한 급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생겨난 기준이지, 특정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정해 놓은 게 아니다.

JHJ Capital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모두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나기 전 그것도 정호준이 중국과 일본, 싱가포르에서 원유 선물로 한탕 크게 벌기도 전에 스카웃 된 이들이다. 그 당시 월가 금융인들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정호준의 ‘JHJ Capital’은 파산해 버린 베어스프링스는커녕 베어스프링스가 운영하는 펀드만도 못한 레벨 정도에 불과했다.

명성이나 규모, 워라벨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돈만 보고 온 이들이다.

‘본래 받던 연봉보다 50%를 더 받기로 협상을 마쳤으니, 은퇴 계획이 1년 이상은 당겨지겠지?’

통계에 따르면 월가 트레이더들의 평균 은퇴 연령은 40대 초반.

월가 트레이더들은 스포츠 선수들처럼 젊을 때 일하고 벌어둔 것으로 은퇴(40대) 이후를 살아가는 인생이었다. 트레이더들은 고연봉을 받는 대신 밤낮 구분치 않고 십수 년을 열심히 살았다. 은퇴 이후의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 말이다.

그런 삶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건강이 나빠지고 정신적으로 지치게 된다.

‘몸이 못 버티거나 정신이 못 버티거나. 둘 중 하나지.’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성공 가도를 이어 가 임원이 되지 않는 한, 체력이 버텨 줘서 몇 년 더 근무할 수는 있어도 쉰을 넘어서도 업계에 남아 있는 이는 무척 드물다.

정호준이 ‘JHJ Capital’을 설립했을 초창기에 함께 한 경우가 아닌 한 직원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은퇴하고 싶어서 혹은 은퇴할 때까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서 JHJ Capital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인 거다.

직원들이 돈만 보고 JHJ Capital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였다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명예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걸 원했다.

보안 유지 각서 때문에 따로 밖에다 자랑하지는 못했지만, JHJ Capital이 성공적으로 투자를 마칠 때마다 소속된 직원들의 가슴속에는 자부심과 같은 감정들이 조금씩 서리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전설과 함께 하는 느낌이 이런 게 아닐까?’와 같은 생각을 품었고. 그러한 생각은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더 커졌다.

JHJ Capital은 파산이 얼마 남지 않은 중견급 은행을 4개를 인수했고, 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연방 정부, 연준과 협상해 파생 상품으로 진 빚을 모두 떨궈 낸 후 하나의 대형 은행으로 몸집을 불렸다.

그에 더해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내기까지 했다.

JHJ Capital에 근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시하던 동기들의 시선이 선망이나 질시로 바뀌었다. JHJ Capital은 직원들에게 금전욕에 이어 명예욕까지 성취시켜 준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본인이 다니는 회사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인수 포함)을 싫어할 직원은 없다.

다만 JHJ Capital가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고 명성이 널리 알려진 게 꼭 좋은 일만 가져다주는 건 아니었다.

‘내 자리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서브프라임 디폴트 사태를 예견하고 천문학적인 수익을 내며 은행을 인수, 창립한 JHJ Capital에 들어오는 이력서는 쌔고 쌨다. 은행 쪽에서 지주회사인 JHJ Capital로 건너오고 싶어 하는 이들도 많았고 말이다.

분위기를 읽는 눈치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업종인 만큼 의욕과 일의 태도를 업시키며 자신을 어필하는 데 힘썼다.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만큼 정호준에게는 기회가 모였다. 그리고 정호준이 세운 투자 계획들을 시행하느라 바쁘게 움직인 조나단은 사무실에서 보고를 올렸다.

“지시하신 대로 엔플 대주주들에게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의사를 비췄고, 대주주 중 다섯이 지분 매각의 뜻을 밝혔습니다.”

“다섯이라. 다른 대주주들은 거절한 겁니까?”

“거절을 밝힌 곳은 둘 뿐이고, 다른 곳들은 아직 명확한 의사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은 주주들에게 중국이 인수했던 리만 브라더스가 곧 파산을 선고할 거라고 알려 주시죠.”

찰스 로슬러가 리만 브라더스를 중국에 매각한 덕분에 리만의 채무를 연방 정부가 부담할 필요가 없어졌다. 정부가 짊어질 부담이 줄어든 것.

하지만 리만의 파산은 정부나 연준이 짊어져야 할 부담 외에도 다른 의미가 존재했다.

‘리만의 파산은 더 이상 모기지론과 모기지론을 기초 자산으로 한 파생 상품이 버티지 못할 거란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지.’

파생 상품이나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되지 않는 선에서 숨통을 틔워 보려고 발버둥을 치며 인공호흡을 이어 갔던 연준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게 되는 거였다.

이러한 흐름은 연준이 나섰으니 위기가 곧 종식될 거라 믿고 있는 낙관론자들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는 일이었다.

경기 침체를 막고자 어떻게든 사회에 희망을 불어넣으려 했던 행보가 끝장나면 자연스레 남는 건 공포뿐이다. 조금 진정되는 기미를 보였던 시장은 공포로 잠식될 거고, 당연히 주식시장이나 주택 시장의 폭락을 가져올 거다.

‘부채를 짊어지게 될 곳이 바뀌었다고 의미가 변하지는 않겠지?’

리만이 먼저 망했을 뿐 다른 곳의 사정 또한 리만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던 정호준은 조마조마했으나 변화가 없기를 바랐다.

“리만의 파산이 주식시장에 불황을 야기시키리란 것쯤은 알고 있겠죠?”

“그럴 겁니다.”

정호준의 질문에 조나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엔플의 대주주들은 다른 주식에도 투자를 감행한 큰손들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배울 만큼 배운 똑똑한 직원들을 보유하고 있었고, 월가에서 구를 만큼 구른 회사들이 그러한 흐름을 모를 리 없었다.

“다만 대표님을 의심하긴 할 것 같습니다.”

“의심이라뇨?”

“주식시장이 폭락할 것을 알면서, 주식을 매입하겠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손해 보는 것을 달갑게 여기는 인간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정호준이 지금 대주주에게 접근해 주식을 사들이는 건 사서 손해 보는 거나 마찬가지인 행위다.

‘JHJ Capital’은 남들이 전부 오른쪽이 올바른 길이라고 말할 때 왼쪽이 올바른 길이라며 소신껏 움직인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둔 곳이다. 지금껏 상식상 통용되던 것들을 부정하며 베팅한 것을 생각하면, ‘주식시장에 폭락장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와 같은 흐름 자체를 의심하는 이가 생겨날 수 있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그럼 우리 JHJ Capital이 유니톡의 최대주주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 주세요. 엔플의 앱스토어 갑질이나, 우리 애플리케이션이 기본 앱에서 제외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하고자 주식을 매입하는 거라고 설득하면 될 겁니다.”

“그렇게 정보를 전부 오픈해도 괜찮겠습니까?”

조나단의 목소리엔 염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정보를 오픈해 버리면 협상에서 꺼낼 카드가 없어진다. 속을 다 보여 준 채로 시작하는 협상에서 어떻게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겠는가?

“큰 손해를 보면 주식을 정리하는 대신 주식을 쥐고 있을 겁니다. 그걸 걱정해서 정보를 오픈했다고 해 주시면 됩니다.”

엔플이라는 회사가 망하지는 않을 테니 언젠가는 주가를 회복할 거다. 그렇게 믿고 주식을 매각하지 않고 버티면 JHJ로썬 대주주가 보유한 주식을 사들일 방법이 없다. 주인이 안 팔겠다고 버티는데 대체 무슨 수로 주식을 사들이겠는가?

처음부터 꿍꿍이속을 전부 털어놓고 협상을 벌이는 게 훨씬 나았다.

‘배당 욕심도 있지만 그건 나밖에 모르는 진실이니.’

잡스 사망 이후 CEO로 등극하는 짐 쿡은 주주에게 배당금을 주지 않는 잡스와 달리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한다. 어떤 방향으로 결정이 나든 정호준과 JHJ가 아쉬울 건 없었다.

“그나저나, 매각 의사를 보내온 대주주들의 지분을 합치면 얼마쯤 됩니까?”

“11.38%입니다.”

“많지는 않네요,”

밑에 직원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 이상으로 조나단은 발에 불이 나라 뛰어다녔고, 정호준은 지시한 대로 대주주들에게 정보를 흘리며 협상을 벌였다.

결과만 이야기하자면 JHJ Capital은 엔플 주식 37%를 확보하게 되었다.

더불어, 엔플 주식 외에는 한 번 더 폭락이 이어질 때 구매하기로 계획을 세워 둔 터라 대주주 명단을 확보한 채로 기다렸다.

* * *

취직부터 승진에 이르기까지 실력 외에도 혈연, 지연, 학연 등 여러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게 바로 사회라는 정글이다.

체육계 또한 위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경향을 띠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한국야구위원회, 한국배구연맹, 한국축구협회 등 대한민국에서 협회라 불리는 집단들이 온갖 비리와 추문에 휩싸여 잡음을 만들어 냈다.

온갖 추문에 시달리는 여느 협회들과 달리 양궁협회는 깨끗함과 실력 모두를 뽐냈다.

양궁이라는 종목 자체를 한국이라는 나라가 석권하고 있는 느낌이 강했는데, 그중에서도 여자 양궁은 세계 최고로 군림하고 있었다. 1988 서울올림픽부터 도쿄올림픽까지 여자 단체전을 모두 석권했고, 개인전의 경우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제외하면 1984년 LA에서 개최된 올림픽에서부터 도쿄올림픽까지 모든 대회에서 금메달을 석권했다.

대한민국 여자 양궁이 유일하게 금메달을 따내지 못한 올림픽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 관중들의 극심한 방해가 함께한 탓이었다.

- 다섯 번째 화살, 9점, 9점입니다. 박연희 선수 9점을 쐈어요!! 네 번째 화살에 이어 다섯 번째 화살도 9점을 쏩니다!!

- 박연희 선수 훌륭합니다. 관중들의 노골적인 방해에도 불구하고 평정심을 잘 유지하고 있어요.

양궁이란 종목은 시위를 당기기까지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중국 관중들은 자국의 선수가 활을 쏠 때는 침묵으로 집중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한국 선수인 박연희가 활을 쏠 차례만 되면 온갖 소음을 유발해 집중력을 흐트러트렸다.

경기를 구경하는 관중들의 노골적인 방해 탓에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여덟 번째, 열한 번째 화살에서 8점을 쐈던 1회차 때와 달리 박연희는 열한 번째 화살에서만 8점을 쏘고 다른 화살들은 모두 9점을 쏘았다.

- 왕 쥐안위안 흔들렸습니다. 아홉 번째 화살에서 7점을 쐈어요!!

관중의 편파 응원 속에서도 제 기량을 발휘하는 박연희 때문에 초반에 잠깐 흔들렸다가 안정을 찾았던 중국의 ‘왕 쥐안위안’은 조바심 때문에 중반에 무너지고 말았다.

10점을 쐈던 1회차 때와 달리 7점을 쏘는 데 그쳤다.

- 박연희 선수가 이번 화살에서 8점 이상만 쏴 주면 크게 앞서 나가게 됩니다.

- 9점!! 9점을 쐈습니다!!

- 이걸로 박연희 선수의 우승이 거의 확정됐다고 봅니다.

박연희가 열한 번째 화살에서 잠깐 삐끗해 8점을 쏘긴 했지만, 총합 스코어 112점으로 왕 쥐안위안을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응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소음에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협회에 충고해 주신 강현태 의원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정호준으로부터 중국이 어떤 부정행위를 벌일 수 있는지 전해 들었던 강현태가 양궁협회에게 염려 사항을 그대로 전했고, 한국 양궁협회는 강현태의 염려를 받아들여 소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시행했다.

결과적으로 회귀한 2회차의 인생에서 대한민국 여자 양궁은 개인전 부문에서도 우승을 거두며 연패 기록을 이어 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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