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72화 (172/335)

172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72)

인간은 자신과 다른 것을 차별하는 동물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발전의 필요성을 인지하기 전까지만 해도 ‘천재’라고 불리는 족속들은 주변으로부터 강한 시샘과 차별을 받았다.

차별받았던 천재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인 19세기 초부터였다. 주목을 넘어 대우를 받기 시작한 건 20세기가 들어서면서였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천재라 불리는 이들의 중요도는 커져만 갔다.

‘한 명의 천재가 십만 명을 먹여 살리고, 소수의 천재가 국가를 선도한다.’

1997년 벌어진 IMF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를 차지하고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공고히 한 오성그룹의 회장 김건희의 생각이다.

정호준은 천재 경영을 외치며 경영 철학으로 삼아 오성그룹을 이끈 김건희 회장의 생각에 동감했다. 한국에서는 김건희가 천재들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역설했지만 사실 김건희 회장 이전에도 천재에 대한 인식은 존재했다.

‘제조업만 그런 게 아니라 어느 분야 건 천재가 먹여 살리는 거지.’

‘천재’라는 존재들은 어느 분야 건 두각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컴퓨터를 운영하거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소프트웨어 업계는 유독 천재에 대한 의존도가 강했다.

정호준이 참가 자격에 큰 제한을 두지 않고 해킹 대회를 개최하고 두각을 드러내면 연령 관계없이 신분만 확실하다면 고연봉으로 채용하겠다는 조건을 단 것도 그래서였다.

“실력 좋은 사람들이 많이 지원해야 할 텐데.”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한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브라질, 멕시코, 인도까지. 똑똑하다는 말이 자주 돌아다니는 국가들이나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 그리고 미국 주변에 위치한 국가의 언론의 도움을 받아 본인이 개최하는 해킹 대회를 홍보했다.

“대표님 지원자가 1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부동산 디폴트가 야기한 위기가 세계를 강타하는 시기, 위기 속에서 가장 큰돈을 번 JHJ Capital이 준비하는 행사여서인지 개발자 및 프로그래머들의 관심이 JHJ로 향했다.

* * *

사람이 셋만 존재해도 파벌이 나뉘는 정치적인 생물이 바로 인간이란 동물이다. 공산당이라는 하나의 당이 독재하는 중국 또한 공청단, 태자당, 상하이방으로 파벌이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같은 파벌이라 할지라도 사람인지라 생각하는 게 모두 같지는 않았다.

“올림픽이 끝나고 움직입시다. 이번 올림픽, 반드시 성공시켜야 합니다.”

사진원을 미는 이들이 있으면 중도파나 사진원의 경쟁자인 보시위안을 미는 이들도 존재했다. 공산당 전당 대회에 초대된 원로들 또한 이러한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보시위안과 친분이 있는 원로들조차 후민타오의 결정에 반기를 드러낼 생각을 갖지 못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로 정호준에게 지급해야 할 1,000억 달러와 리만 브라더스가 갖게 된 부실자산 8,644억 달러에 대한 책임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1조 달러 조금 못 미치는 자산이 미국으로 빠져나가게 될 이 상황은 책임 소재를 묻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각 가정에 컴퓨터가 보급되고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화 사회라고 불리기 시작한 21세기임에도 공산당에 의해 철저하게 언론검열이 이루어지는 게 중국이란 나라였지만, 그런 중국일지라도 책임 소재 없이 물에 술 탄 듯 넘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둘째로 후민타오의 지시로 정호준이 건네준 자료를 중국의 ‘국가안전부’와 ‘공안부’가 비밀리에 조사했고, 비리가 전부 사실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정호준이 건넨 서류에 적힌 보시위안의 비리가 모두 사실이라는 확언은, 보시위안을 아끼는 원로들이 보시위안의 편을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상황, 명분 모두 완벽하다.’

사진원을 지지하는 것도, 보시위안을 밀지도 않는 중도파 원로들이 모두 보시위안을 정리하는 것으로 생각의 가닥을 정리한 지금 상황에서 반발하며 들고 일어나 봐야 함께 숙청될 뿐이었다.

‘가라앉을 배에 의리를 지킬 필요는 없다.’

위와 같은 이유로 보시위안 숙청과 관련한 정보는 밖으로 새지도 않았다.

원로들과 국가 주석만이 참여한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보시위안의 숙청과 숙청을 시행할 길일(吉日), 그리고 정호준이 사들인 CDS 스와프를 중국 정부가 사들인 미국 국채로 사들이는 것이 결정 났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되는 날, ‘JHJ Capital’은 중국 정부로부터 918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를 양도받았다.

* * *

정호준 때문에 1회 차 때와 달리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된 중국이었지만 2008 베이징 올림픽은 1회차 때 겪은 것처럼 똑같은 날 개막식이 열렸다.

‘중국 공산당은 어떤 악재가 생겼던 무사히 치러내는 게 체면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나 보지?’

정호준은 아리아와 함께 그의 저택에서 개막식 이벤트를 관람했다.

1회 차 때와 마찬가지로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식은 8월 8일에 화려하게 개최되었다. 올림픽이라는 이벤트가 평화와 화합을 상징했고, 중국의 국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만큼 각국의 정상들이 중국의 체면을 치켜세워 주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했다.

이제는 식물인간, 식물 정부 취급을 받는 아들 뉴먼과 헌법에 규정된 삼연임에 대한 제한 때문에 오른팔인 메르베조프를 대통령직에 올리고 총리직을 선택한 푸틴 또한 2008년 8월 8일 개최된 개막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푸틴이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뉴먼의 표정이 저렇게 나빠진 걸까요?”

허울만 총리일 뿐 독재를 이어 가는 중인 푸틴은 뉴먼 대통령에게 바짝 달라붙어 귓속말을 했고, 귓속말을 들은 뉴먼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정말 무슨 일 있는 거 아닐까요?”

미국 군복을 입고 있는 중년 남성이 뉴먼에게 다가가 속삭이는 것을 TV로 확인한 아리아의 표정 또한 심각해졌다.

‘저게 바로 유명한 그 짤이구나.’

평화와 화합의 장인 올림픽 개막식에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우방인 중국이 개최하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우리 지금 조지아 공격했어.’라고 선전포고를 날리는 장면이다.

‘러시아란 나라는 대체 우방의 체면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역사적인 사건을 또 한 번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정호준은 참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미국 본토가 위협받는 일은 없으니까, 긴장하지 마요. 깊게 생각해 봐야 아리아와 우리 아이들한테 좋을 게 없어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다 알고 있지만 아리아에게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진 않았다.

‘사망자를 생각하면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어차피 금방 끝날 전쟁이다.’

2014년 러시아가 벌인 크림반도 침공처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끝나는 전쟁임을 잘 알고 있는 정호준은 그저 아리아의 멘탈을 잡아 주기 위해 힘썼다.

* * *

개막식은 성대하게 치러졌고,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은 속보로 세간에 전해졌다.

자국에서 평화의 축제인 올림픽을 개최하는데, 조지아를 침공한 러시아의 행보는 올림픽 개최국인 중국의 얼굴에 똥칠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중국은 정치적 역학관계 때문에 비공식적인 라인으로 유감을 표명할 뿐 다른 서방 국가들처럼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이러한 정국은 미국의 몇몇 과격분자들에게는 기회처럼 보였다.

“차라리 잘됐습니다. 이참에 러시아와 전쟁을 시작하는 게 어떻습니까?”

부통령인 딕 케니를 포함 ‘네오콘’이라 불리는 세력들은 이참에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자는 의견을 냈다.

그들은 부동산 디폴트 사태가 뉴먼 정부의 실태 때문이라는 여론이 모이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전쟁을,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봤다.

딕 케니와 공화당 출신 네오콘들의 틀린 게 아닌 것이 희생양을 세우고 빠져나가는 꼬리 자르기처럼 국정 운영의 실수를 전쟁으로 틀어막는 것 또한 고금부터 종종 사용되어 온 면피책 중 하나였다.

‘전쟁 중에 달리는 말의 기수를 바꾸는 법은 없지.’

대한민국의 진보당이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건 대선에서 패배한 보수당이 정신 못 차리고 삽질을 이어 간 탓도 있지만, 팬데믹 상황을 전쟁으로 보고 장수를 바꾸지 않는 탓도 존재했다.

그렇다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진보당이 잘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군대에서 막 전역해 다시 취업 준비에 힘쓰느라 상황을 잘 몰랐지만 릭 오리하의 당선은 어떻게 보면 우리 시대의 평화를 지킨 거나 다름없다.

* * *

천재라 불리는 이들을 아예 별개의 인종으로 여기며 이번 대회에 많이 참석해 주길 바란 정호준 또한 세간으로부터 천재라 불리기 시작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남들은 파산을 면하기만 해도 당해인 암울한 상황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은행들을 인수해 중견급을 넘어선 은행을 창립했기 때문이다.

[JHJ Capital 일본계 은행을 상대로 357억 달러]

[JHJ Capital, 중국 6개 은행을 상대로 한 CDS를 공매도로 918억 달러 수익 기록!]

[JHJ Capital, CDS로 1,740억 달러를 벌다!]

[JHJ Capital, 서브프라임 디폴트 사태로 총 2,000억 달러 수익!]

정호준은 이번 사태로 자신이 큰돈을 벌었다는 것을 직접 언론사에 정보까지 뿌려 가면서 전부 드러냈다. 기사에는 정호준이 한국과 일본에서 선물로 벌어들인 수익까지 적혀 있었다.

‘금융업은 신뢰다. 주인이 바뀌었고 은행을 네 개를 하나로 합쳤다지만, 누가 휘청거렸던 은행을 신뢰하겠어?’

기회를 틈타 새롭게 거대 은행을 창업한 건 분명 대단한 일이었지만 유니버셜 뱅크에게는 명성도 역사도 없다. 이 말은즉슨 기존의 고객들이 돈을 그대로 놔두게 할 힘도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힘도 없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모두는 아니지만 몇몇 미국인들의 머릿속에는 인종차별적인 사고까지 주입되어 있어 ‘동양인(노란 원숭이)이 운영하는 은행을 어떻게 믿어?’와 같은 생각을 하고 돈을 뺄 사람이 다수 존재한다 것을 정호준은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이번 사태에서 자신이 돈을 번 사실을 숨김없이 전부 드러낸 거다.

‘인종차별을 하든 역사가 없든 간에 돈 앞에서 정확히는 돈 욕심 앞에서는 모든 것이 평등할 거다.’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며 능력을 입증해 재정적으로 여유가 충분한 유니버셜 뱅크를 두고 굳이 다른 은행으로 이동할 이유는 없다.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마따나 인종 차별자들조차도 정호준의 은행에서 돈을 빼지 않으리라.

오히려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이들이 더 공격적으로 투자도 받으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재주를 곰(원숭이)가 부리게 두고 나는 돈만 챙기면 된다.’와 같은 생각으로 정호준을 이용한다고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물론 정호준은 다른 헤지펀드들처럼 돈을 투자받을 생각은 없었다.

유니버셜 뱅크의 지주회사나 다름없는 JHJ Capital은 어디까지나 정호준 본인의 회사로 남아야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