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174화 (174/335)

174화 회귀자의 투자재벌회고록 (174)

박연희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끝으로. 더 정확히는 은메달을 목에 건 중국 선수에게 야유를 퍼붓는 중국 관중들을 보며 호준은 TV를 껐다.

‘한국도 한국이지만 중국도 참 만만찮네.’

201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열심히 했다는 것도 높게 평가해 주기 시작한 한국과 달리 중국은 1등을 하지 못한 이에게 가차 없었다.

2000년대 후반은 중국이 패권국 자리를 노리고 주변에 강한 억지를 부리는 2010년대와 달리 한중 관계가 원만할 때였다. 그럼에도 중국 관중들은 한국 출신 승자인 박연희에게 박수를 쳐 주지 않았다.

그저 한국인을 이기지 못했다고 야유를 보낼 뿐.

그런 중국 관중들의 모습은 참으로 꼴불견이었다.

대한민국 여자 양궁의 연패(連覇) 역사가 중국에 깨지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한 정호준은 방으로 돌아가 만삭인 아리아를 살폈다.

반면 박연희의 인터뷰 때문에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된 강현태는 사무실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의 습격을 경험해야 했다.

“박연희 선수가 한 말이 사실입니까?”

“강현태 의원님 한 말씀만 해 주시죠!!”

목청을 높이며 여기저기서 질문하는 시장 바닥 같은 행태에 강현태는 기자들을 이끌고 카페로 향했다.

“8월 15일 열린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박연희 선수가 강현태 의원님께서 양궁협회에 소음을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충고해 주셨다 말했습니다. 박연희 선수의 말이 사실입니까?”

“예, 사실입니다.”

“중국 관중들이 소란을 피우며 방해할 걸 예견하신 겁니까?”

이어지는 질문 세례에 강현태는 얌전한 미소를 띠며 겸양을 입에 올렸다.

“허허, 거창하게 예견이란 표현까지 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기를 치르다 보면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는 거잖습니까?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양궁협회에 커리큘럼을 하나 추가하게 힘을 쓴 것뿐입니다.”

자기 어필의 시대가 점점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어필보다는 겸손을 보이는 게 한국의 풍토에 맞았다. 때문에 강현태는 결코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

“제 염려를 쓸데없는 헛소리로 치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훈련 커리큘럼에 추가해준 양궁협회에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덕분에 국민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강현태는 겸손을 유지하며 모든 공을 양궁협회 쪽에 돌렸다. 자신이 겸손한 모습을 보여도 세상이 알아줄 거란 걸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처신이었다.

강현태의 처신은 카메라를 통해 생방송과 인터넷 기사 등으로 배포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인기를 구사하고 있던 강현태는 한국 국민에게 자신을 더 알리게 되었다.

* * *

정호준이 성공을 하면 할수록 그것을 고깝게 받아들이는 이가 있었으니 남자의 정체는 바로 봉황 의자의 주인이 된 김명호였다.

‘대체 저 놈과 내가 뭐가 다른 거지?’

김명호의 인생도 분명 남들에게 존경을 받을 정도로 성공한 인생이었지만, 대한민국 재벌들이 수십 년에 걸쳐 이룩해 낸 성과를 단 몇 년 만에 앞질러 버린 정호준의 행보에 자기도 모르게 열등감에 젖었다.

정호준은 저렇게 거대한 성공을 이룩했는데, 김명호는 대통령 자리에 올랐음에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야당 놈들 때문에 지지율이 이게 뭐야?!’

2022년 대선에서 승리한 보수 정당 소속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선이 깨지면서 국정 동력을 잃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지만 사실 대통령의 힘이 가장 강하다는 임기 초반에 지지율이 나락으로 떨어진 건 20대 대통령인 윤석호가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다.

광우병 소고기 사태로 촛불 시위를 경험한 김명호는 2022년에 대통령이 된 윤석호보다 더 낮은 지지율을 경험해야만 했다. 2008년 4월 말 김명호의 지지율은 35%대로 떨어졌고 5월 들어서면서는 아예 30%를 깨고 20%대로 진입했고, 5월 14일쯤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23.3%까지 떨어졌다.

김명호는 자신의 지지율이 무너진 것을 야당의 공작이라 여겼다.

야당에게 발목 잡혀 지지율이 나락으로 떨어지며 힘이 가장 강력할 때 주춤할 수밖에 없게 된 본인과 달리 200조에 가까운 수익을 내며 은행의 주인이 되어 버린 정호준에게 질투했다.

“한국인 출신이 저렇게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하이넥스를 인수하는 게 어떻냐고 권해 보면 어떨까요?”

반면 그저 질투만 하던 그와 달리 비서실에서는 나름 좋은 의견을 제시했다.

* * *

8월 24일 베이징에서 올림픽 폐막식이 개최되었다. 개막식 때 화려한 공연을 펼쳤던 것처럼 폐막식 때도 중국 당국이 준비한 화려한 공연이 이어진 뒤 성화가 꺼졌고, 올림픽기가 런던시장 훗날 영국의 총리가 되는 가레스 존슨에게 넘겨졌다.

성황리에 폐막식이 끝나자마자 보시위안 숙청을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창홍타흑(唱紅打黑)을 외쳤던 보시위안의 진실된 얼굴!]

[보시위안의 부인 구이라이, 다롄 방송국 인기 아나운서 장웨이 살해 혐의!]

[보시위안, 후민타오 주석 도청 혐의!]

부정하기 힘든 증거까지 제시하며 뉴스와 기사에서 보시위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런 기사를 올리고도 무사할 것 같소? 내가 누군지 몰라!!”

보시위안은 자신의 비리를 가득 적어 기사화한 언론들에 전화를 걸어 협박을 가했다.

공산당 8대 원로의 자식이자 17기 당 중앙정치국 위원, 충칭시위원회 서기로 역임해 결과물을 내고 있는 보시위안의 권력은 한낱 언론사들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미약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언론사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변명으로 일관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입니다.”

“위?! 무슨 위!! 누군지 제대로 이야기를 하라고!!”

지시한 이가 누군지 불으라는 압박을 가했지만 보시위안에 대한 기사를 적어 내는 언론사 중 그 어떤 언론사도 보시위안에게 진실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충칭시 공안부장 장리쥔, 구이라이가 장웨이 아나운서를 살해 증언!]

본래 배가 기울어지면 함께 가라앉기보단 탈출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태자당 내 보시위안 세력은 보시위안은 모른척했고, 사이가 나빠져 배신했던 1회차 때와 달리 보시위안의 심복 장리쥔은 살기 위해 직접 구카라이의 비리에 증인으로 나섰다.

“이…… 이 미친 새끼가!!”

2회차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뒤통수를 맞게 된 보시위안은 어떻게든 수습하려고 애를 썼지만, 사진원과 사진원을 따르는 태자당의 일부 세력을 제외한 공산당 관계자 모두가 나서서 공격하니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공안부 제1국에서 나왔습니다!”

정치안전보위경찰(政治安全保卫警察)이라 불리는 이들은 보시위안과 그의 아내인 구카라이를 구속하기 위해 보시위안의 집을 찾았다.

‘하아~.’

한편 보시위안의 부친인 보이찬에게 큰 은혜를 입어 암중으로 보시위안을 도와주고 밀어주었던 장쉐민 전 국가 주석은 보시위안의 집에 경찰을 보냈다는 보고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네.’

장쉐민이 보시위안의 사건을 덮어 주기엔 사건의 사이즈가 너무 컸다.

* * *

올림픽 폐막식을 진행한 지 나흘이 지났을 무렵 보시위안 사건 외에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이 세상에 공표되었다.

[중국 중앙은행, 리만 브라더스 파산 신청!]

1회차 때 9월 14일 파산을 선고했던 리만 브라더스는 시일이 조금 앞당겨져 8월 28일에 파산 신청이 이뤄졌다.

보시위안의 구속으로 중국이 시끌벅적해질 무렵 중국 정부는 중앙은행이 인수했던 리만 브라더스 파산을 알렸다. 파산 선고가 늦어져 모기지가 바닥을 치면 칠수록 미국에 물어 줘야 할 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중국 언론사들은 1,200억 달러를 주고 사 왔던 리만 브라더스는 8,644억 달러 상당의 똥 덩어리로 변모한 사실을 숨기지 않고 알렸다.

그리고.

[보시위안, 상무부에 재임 중일 때 리만 브라더스 인수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확인!]

보시위안이 구속되어 수사를 받고 있을 때 리만 브라더스 인수와 관련된 책임들이 보시위안에게 씌웠다. 중국 내 상공업무 및 중국의 무역업무를 담당하는 상무부에 역임해 있던 경력을 들이대면서 말이다.

보시위안 일가가 중국 밖으로 재산을 빼돌린 것을 두고 그 안에 미국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조작 증거를 첨가했다.

언론사들이 내보낸 기사엔 공산당이 실수한 게 아닌 미국 자본가들이 음모를 꾸몄고, 상무부 부장을 역임 중인 보시위안이 뇌물을 받고 미국 자본가들의 음모에 동참한 것처럼 쓰였다.

⌎ 떳떳했다면 해외로 자본을 빼돌렸을 리 없지.

⌎ 어떻게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가 있지?

⌎ 천하에 둘도 없는 매국노다!

⌎ 저 개자식을 살려 둬선 안 돼!!

⌎ 완전 호부견자(虎父犬子)네. 부친은 중화민족과 당을 위해 싸웠는데, 자식은 중국을 팔아먹어? 너만 잘 먹고 잘살면 다냐!!

⌎ 귀축영미가 중화의 잠재력을 깨닫고 견제를 시작한 건가?

⌎ 분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오늘 일을 잊지 말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자!

차기 주석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강력한 권력을 지닌 정치인의 인생이 한순간에 망가졌다.

그렇지 않아도 살인죄에는 사형으로 일관하는 중국이다. 전체주의가 성행하는 중국에서 나라를 팔아먹은 걸로 포장된 보시위안에게 당장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여론이 급부상했다.

장쉐민 전 국가 주석이나 8대 원로 중 하나인 보이찬과 친분이 있던 이들 덕분에 사형을 면하고 무기징역이 선고됐던 보시위안에게 무기징역을 넘어 사형이 선고될 위기가 닥쳤다.

* * *

리만 브라더스가 파산해 모기지론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고 파생상품이 만들어 놓은 똥을 단기간에 수습할 수 없음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뒤 미국의 위기는 세계적인 위기로 진화됐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사건이 커졌을 때 중국 또한 알게 모르게 위기를 겪었다.

중앙은행이나 거대 은행들도 잠깐이나마 흔들렸지만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이유로 몸집을 불리는 기회가 되었고, 피해는 사정상 무리한 대출을 진행해야 했던 지방의 중소, 중견 은행이 입게 되었다.

지방 은행 상당수가 파산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한국과 비슷했다. 언제든 은행을 문 닫게 만들 힘이 있는 군부 정권 인사가 기업에 대출해 주라고 압박을 넣는데, 어느 은행이 개길 수 있겠는가? 중국의 지방 중소 은행들도 상황이 비슷했다.

꽌시를 활용하는 중국 기업들에게 지방 은행들은 대출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중앙 정부나 각 성의 정부 인사 혹은 당 차원에서 압박이 오는데 대출을 안 해 주고 어떻게 배길까? 문제는 은행이 가진 역량 이상을 대출해 주라고 압박했으면서 결코 책임은 함께 져 주지 않는 데 있었다.

[연준 새로운 구제안 검토!]

중국 중앙은행의 리만 브라더스의 파산 선고로 모기지론 파생상품들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자 미국 은행들은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 금융계에 투자를 이어온 선진국들 또한 함께 흔들렸다.

중앙은행이나 6대 은행에 큰 문제가 없었던 정호준의 회귀 전 인생과 달리 리만 브라더스라는 거대한 똥과 JHJ Capital의 CDS 구매로 큰돈을 물어 준 중국 또한 크게 흔들렸다.

세계 금융 위기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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