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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87화 (87/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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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생활을 이어간 1회차 때 여가시간을 주로 영화나 드라마, 낚시 같은 것들을 즐기며 살았다. 한국 것부터 외국 영화까지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섭렵하다 보면 몇몇 대사는 머릿속에 남곤 한다.

머릿속에 남는 대사 중 하나는 바로 '정권은 유한하지만 재벌은 본인들이 잘못해서 고꾸라지지 않기 전까지는 무한하다.'라는 대사다.

정호준은 이 말에 상당부분 공감했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인 여당 출신 후보가 대권을 잡는데 성공해 정권을 이어받기도 하지만 실정을 연발해 민심을 저버리면 야당 후보에 의해 봉황의자를 뺏겨 정권이 바뀌는 게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건강한 민주주의일수록 이러한 모습이 두드러지는 법이다.

선출직으로 표심에 따라 언제든 자리를 내줄 위험이 있는 자리와 달리 정말 큰 실태를 계속 저질러 사업이 망하지 않는 이상, 아니 사업이 망해도 종종 살아남는 대기업들이 한국에서는 더 큰 권력이었다.

최소한 정호준은 그렇게 생각했다.

상황이 정말 최악으로 치달아 기업이 완전히 문을 닫는다 해도 미리 빼돌려두었던 비자금을 활용해 해외에서 졸부로 부유한 인생을 살아간다. 자국이 아닌 해외로 나가 졸부로 사는 삶이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것만으로도 한국의 유명 대기업 오너가가 누리는 권세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잖은가.

'어떡해야 하나?'

정권은 유한하다며 깎아내리는 생각에는 동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호준은 이 두 초대에 쉽사리 거절 의사를 밝히지 못했다.

정권이 유한하다지만 유한한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법을 만들거나 수정할 수 있는 힘을 휘두르는 건 물론이고 사법기관인 검찰의 장, 검찰 총장 최종 임명 권한은 대통령의 권한에 해당한다. 게다가 국민연금공단 자금으로 대기업의 지분을 사들인 상태여서 재벌가 경영권 방어나 승계작업에 힘을 실어주거나 방해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한국 재벌가들은 굳이 정권에 이빨을 드러내며 대놓고 개기지 않았다.

'한국의 재벌들과 달리 기반이 모두 미국에 있어 큰 지장이 없지만.'

기반이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란 나라를 등에 업고 있어 사실 크게 위협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으로 살았던 1회차 때의 기억 때문인지 한국 대통령에 대해 와닿는 게 달랐다.

그저 한국의 대통령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어려웠다. 그래서 되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지만 한 분은 초장부터 정호준의 심기를 건드렸다.

김명호 서울시장과 노민현 대통령. 똑같이 만나길 희망한다고 사람을 보냈지만 초대하는 방식에 있어 분명한 차이를 보였다.

"괜찮으신 시간대를 일러주시면 시간을 내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민현 대통령은 정호준을 존중하며 괜찮은 시간대를 알려주면 맞추겠다고 했다.

반면 김명호 서울시장의 비서는 정호준에게 찾아와 조금 고압적으로 말했다.

"시장님께서는 이번 주 일요일 13시 30분쯤, 사랑교회 앞 XX에서 만남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간과 장소 모두 자신이 정하고 정호준에게 따르라는 식으로 말했다. 물론 정호준을 대하는 비서의 태도 자체는 정중하기 그지없었지만. 발언 내용 자체가 정호준을 완전히 아랫사람으로 보지 않는 이상 나올 수 없는 태도였기에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

한 나라의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노민현 대통령이 일개 개인인 예의를 차리며 자신이 시간을 내겠다고 한 것은 김명호 시장과 달리 수면 밑에 숨겨진 정호준의 정보를 완전히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5년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휴전(休戰) 중인 나라다. 한국은 종전(終戰)한 나라가 아니었다. 종전협정을 마쳤다면 북한이 미사일을 쏠 때마다 한국의 증시가 그러게 박살이 날 이유가 없었다.

그런 이유로 휴전 대상인 북한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그리고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이웃나라로 영원한 숙적이라 불리는 일본으로 범위를 한정하면 대한민국 국정원의 정보 수집 능력은 CIA와 같은 유력 정보기관과 비교해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다.

'정호준이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의 주인인 확률 93.28%'

유령법인을 수십 개 만들어 자금을 나누고 자금세탁을 이어가 유가 선물로 돈을 번 것까지는 국정원에서조차 포착하지 못했지만 수호이 로그 금광을 발견한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의 진짜 주인이 정호준이란 것까지는 어찌어찌 도달했다.

'무한하게 커 나갈 수 있는 청년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다니. 이런 안타까운 사태를 보았나.'

한국 나이(Korean Age) 스물하나에 수십 조의 재산을 갖게 된 정호준이 한국을 떠나 미국인이 되었다는 것에 아깝다는 감정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노민현 대통령이 정호준에 대한 정보를 몰랐다면 김명호 서울시장처럼 조금은 자기중심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잡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노민현 대통령은 정호준에게 맞추는 식으로 움직였고 김명호 서울시장은 자신의 스케줄에 정호준의 일정을 맞추려 했다.

그렇기에 정호준은 노민현 대통령의 초대를 수락하고 김명호 서울시장의 초대는 거절했다.

'아직 당내 경선조차 이기지 않은 시기인데, 왜 이렇게 오만해?'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정호준은 대통령인 노민현도 자신을 배려하는데 서울시장밖에 되지 못했으면서 자신을 완전히 아래로 보는 김명호를 속으로나마 비난했다.

*****

날짜에 맞춰 청와대에 들어가면 되겠다 싶었지만 일은 그렇게 간단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정호준의 경호팀이 청와대 경호팀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는 식으로 의사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통수권자가 초대한 자리에서 일이 생길까 싶어 브리안 팀장을 만류하며 양보할까 고민했지만 말리기보단 브리안 팀장과 경호팀의 손을 들어주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애쓰는 이들의 의견을 무시할 이유는 없었다. 다 본인의 안전을 위해 열심히 주장하는 거였으니까.

- 그쪽 경호팀과 의사 타진을 해보시죠.

그 결과 수행원 자격으로 정호준과 함께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만나서 반가워요. 나 노민현이예요. 갑자기 사람을 보내 초대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정호준 대표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기자가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질문들을 자유로이 던졌던 시대를 앞서 나가는 참여정부를 지향했던 이답게 그의 소개에는 친근함이 묻어났다.

그러나 정호준은 노민현이 보이는 친근함에 속지 않았다.

아무리 친근한 모습을 보여도 그가 이 나라의 통수권자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정호준입니다. 살다 살다 대통령님을 뵙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많이 부담스럽네요."

고슴도치가 가시를 잔뜩 세우는 것처럼 경계심을 바짝 끌어 올리는 정호준의 태도에 노민현은 최대한 편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나 그렇게 어려운 사람 아니니까."

노민현은 편하게 하라고 말했지만 정호준의 반응은 처음과 달라지지 않았다.

대기업 계열사의 회식자리에 회장이 찾아와 편히 하란다고 그 자리가 편하겠는가?

군부대에 장성이 부대를 방문해 병사에게 말을 걸며 군생활 어떠냐고 편히 있으라고 말한다고 편하게 있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최소한의 눈치가 있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 상황에 편하게 있을 수 없다. 노민현의 말은 위에 언급한 사안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말이었다.

정호준이 평범한 일개 대중이 아닌 막대한 자산을 가진 자산가라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어렵지 않을 리 없었다.

하아~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정호준의 기색을 읽은 노민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냥 본론부터 이야기하죠. 정호준 대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습니까?"

정호준은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눈빛으로 되물었다. 그에 노민현은 천천히 설명했다.

"언론에서 정호준 대표에 대해 알리기 전에 이미 국정원으로부터 정대표에 관한 정보를 받았었습니다. 전도유망한 청년이 한국을 떠나 미국의 품에 안긴 걸 듣고 얼마나 안타까워했는지 모릅니다."

"과찬이십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한국에는 잠재력이 큰 청년들이 많습니다."

정호준의 겸양에 노민현은 못 들은 척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번에 수호이 로그에서 발견된 금광을 소유한 빅토리아 라이온 마인사의 주인이 정호준 대표라는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수호이 로그 금광의 주인이 본인임을 알고 있다는 말에 정호준의 시선에는 한층 더 강한 경계심을 피어났다.

정호준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노민현은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수호이 로그 금광에서 나오는 수익도 수익이지만, 그보다도 돈을 불리는 재능을 대한민국을 위해 써줬으면 합니다. 정대표의 능력이면 우리나라를 좀 더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인이라면 가슴속에 품고 있는 애국심에 기대는 노민현의 부탁에 정호준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왜죠?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답하는 정호준의 대답에 노민현은 정호준의 대답을 듣자마자 이유를 물었다. 처음부터 타국인도 아니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과거를 갖고 있으면, 보통 대통령쯤 되는 이가 이렇게 부탁하면 고민하는 척이라도 하기 마련이다.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 한국 기업에 투자할지언정, 제가 다시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미국에서도 이미 저에 대해 잘 알고 있거든요. 미국이 과연 저를 놓아주겠습니까?

대답하지 못하는 노민현을 보며 정호준은 마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금융과 관련된 일을 하기에 미국 국적이 더 좋습니다. 한국 국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미국 국적은 가능하게 하니까요.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없는 건 아니라서 미국과 같은 힘을 지니게 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국이란 국가의 역량이 부족해서 미국을 선택한 거라는 정호준의 대답은 말끝에 여지를 주는 것처럼 말했지만 이는 노민현이 찔러볼 틈조차 주지 않는 발언이었다.

만찬을 즐기며 대화가 좀 더 오가긴 했지만 딱히 무언가 수확은 없는 그런 만남으로 마무리되었다.

정호준이 노민현 대통령을 만나 한국 국적 회복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무렵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정호준에게 영주권이 아닌 시민권을 수여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 이게 정말 일개 개인이 벌어들인 돈이라고?

정호준이 벌어들인 수익과 관련한 정보를 눈치채고 있었던 미국 국세청인 IRS(Internal Revenue Service)와 합작해 백악관에 보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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