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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팀에 동반 하에 인천공항의 게이트를 통과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정호준과 달리 조나단과 자넷은 부하 직원 몇을 대동해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정호준과 함께 인천공항 로비로 나오는 대신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 12월쯤 일본에 주식투자를 진행할 생각입니다. 제가 12월에 일본 주식 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JHJ Capital 일본 법인을 설립해주십시오.
오너인 정호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오랜만에 이소영 변호사와 만날 계획을 세워두었던 자넷은 일정을 변경해야만 했다.
미리 준비해둔 검은색 차량 5대에 정호준을 포함 경호원들이 탑승했다. 정호준이 탄 차를 제외한 남은 4대의 차량이 전후에 일렬로 위치함으로써 위협을 최소화한 채 인천공항 고속도로를 타고 영종대교를 향해 이동했다.
평상시 정호준에게 붙어 있는 경호팀의 팀장 브리안은 이번 한국행에서도 경호 책임자가 되었다. 정화준이 탑승한 차량의 조수석에 탑승해 경호팀을 통솔했다.
- 예약해둔 호텔로 이동하면 되겠습니까?
- 아뇨,
목적지를 묻는 브리안의 질문에 정호준은 고개를 저었다.
- 일단 먼저 목동으로 갈 겁니다.
브리안을 포함 경호팀들은 목동이 어디에 위치한 지역인지도 잘 몰랐지만 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설치돼 있었다. 무역으로 먹고살며 미국에 영향을 받는 나라답게 영어로 입력해도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익숙한 소파, 침대, 식탁을 포함 가구 배치와 인테리어. 40년 넘게 봐 온 익숙한 풍경에 정호준의 마음속에서 그리움이란 감정이 샘솟았다.
사람의 손길 없이 방치된 집 청소를 직접 한 뒤에 호텔로 이동하려는 계획을 세워두었지만.
막상 집을 방문하니 며칠이라도 이곳에 머무르고 싶었다.
- 예약해둔 호텔 말고 여기서 머무르려 합니다. 여기 머무르고 싶습니다.
그래서 브리안을 보며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끄덕.
- 알겠습니다.
한국에 방문하기 전부터 세워두었던 경호 계획을 완전히 엉클어트리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브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호준은 작게는 그들의 고용주였고 크게는 회사의 오너였다. 정호준이 원하면 그에 맞춰 계획을 수정하며 정호준이 바라는 대로 하는 게 당연한 이치였다.
- 단, 혼자 이곳에 머무르시겠다는 건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저를 포함 3명이 이곳에서 함께 머무르겠습니다.
- 장정 넷이 머무를 정도로 집이 넓지는 않은데요. 브리안 팀장님이랑 대표로 하나만 남는 걸로 하죠.
골프 포함 이런저런 운동을 이어간 정호준의 체격도 평범한 성인 남성보다 좋았는데, 브리안을 포함 경호원들의 체격은 정호준보다 훨씬 더 건장했다.
- 안 됩니다. 경호 계획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곳에서 머무르겠다고 한 건 오너십니다.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하시죠,
이 이상은 타협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내는 브리안의 말에 정호준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 하아, 어쩔 수 없죠. 받아드리겠습니다.
먼저 고집을 부린 건 다름 아닌 정호준 본인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본인의 고집으로 인해 생긴 불편함은 감수하는 게 맞았다.
- 청소해야 하니 잠깐 밖으로 나가 있어요.
- 사람을 부르시죠. 아니, 저희도 돕겠습니다.
- 도움은 거절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손을 타는 게 싫어서 제가 직접 하는 거니까요.
자신과 함께 목동 7단지에서 생활하겠다는 장정 셋을 잠깐 바깥으로 쫓아낸 정호준은 집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해줄 사람을 수 십은 부릴 재력을 소유했지만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기에 본인이 직접 했다.
*****
박남정과 연락해 약속을 잡은 정호준은 쇼핑을 나오는 길에 겸사겸사 중앙은행을 방문해 주택을 담보로 받았던 대출금 4억을 정리했다.
- 네가 이렇게 큰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네 아비도 정말 기뻐할 거다.
도움을 받았던 부친의 친우를 만나 식사 자리를 가지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말 뿐인 감사가 아닌 백화점 상품권을 함께 전달했다. 처음에는 안 받겠다고 거절했지만 계속된 권유로 종국에는 정호준의 성의를 받아주었다.
그 후로 압구정의 한식집에서 갈비찜과 나물들을 구매하고는 감자샐러드와 신선한 채소에 드레싱을 부은 샐러드, 보쌈, 치킨, 그리고 스테이크까지 준비하며 음식 세팅을 마쳤다.
정호준이 준비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박남정이 정호준의 집에 방문했다.
- 참 오래간만이다 호준아.
- 그러게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 나야 잘 지냈지, 너도 잘 지내는 것 같더라? 비범한 녀석인 건 계속 인지하게 되기는 했다만, 네가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두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박남정이 먼저 정호준을 보며 성공에 대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정호준 또한 웃으면서 축하로 대꾸했다.
- 늦었지만 영화 흥행을 축하드립니다. 박감독님. 그리고 다시 한번 무례한 부탁이었을 텐데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낯뜨겁게 무슨 박감독님이야! 아저씨라 불러라.
- 45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를 찍으셨는데, 당연히 박감독님이라고 불러야죠.
능구렁이처럼 웃으며 말하는 정호준의 발언에 박남정은 다시 한번 소리쳤다.
- 하지 말라니까!!
- 알겠습니다, 아저씨.
보통 이름 없는 영화 감독이 영화 제작비를 투자받기까지는 큰 어려움이 따른다. 시나리오가 정말 괜찮다면 그나마 그 어려움이 조금 감소하긴 하지만 그래 봐야 오십보백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조명감독 및 조연출 감독으로 살아오며 종종 성공한 작품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조연출과 본인이 직접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감독하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박남정의 감독으로써의 커리어는 자기 영화를 찍겠다고 시나리오를 들이미는 이제 막 머리 올리는 감독들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신임 감독들과 마찬가지인 커리어가 무색하게 박남정은 쉽사리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장도연을 주연배우로 써달라는 요청의 대가로 영화 제작비 전액을 투자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만약 자신의 영화가 실패로 막을 내리면 자신이 주식으로 벌었던 돈을 정호준에게 주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박남정이 메가폰을 잡고 구상한 시나리오로 찍은 영화는 450만 관객 동원했다.
신임 감독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준수한 결과를 내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시청률 31%를 찍고 마무리한 드라마와 45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무엇이 더 이득이려나?'
1회차였다면 시청률 31%를 찍은 드라마에 출연한 것이 더 큰 의미라고 묻자마자 대답하겠지만 지금은 2회차인 2005년이다. 시청률 30%를 넘긴 것은 2005년인 지금도 분명 큰 의미였지만 이 시기는 40%, 50%가 넘는 드라마들이 종종 나오던 시기였다.
게다가 2005년이라는 시기여서 더더욱 고민되었다. 2005년은 '굳세어라 금분아,' '장미길인생,' '내 이름은 이삼순.'과 같이 시청률 40%를 넘긴 드라마가 3개나 나온 해였다.
31%면 분명 대박드라마였지만 40%를 넘긴 드라마가 세 개나 나온 시기라 더더욱 빛이 바랬다.
'이 정도로 커리어 메꿔줬으면 나는 내 할 도리는 다 해준 것 같은데?'
장도연은 '프라하식 연애.'가 아니어도 성공한 드라마에 자주 얼굴을 보인 여배우였다. '청년들의 양지.' '사랑이 질 때까지.' 등 시청률 60%가 넘는 드라마에서도 주연으로 활동했으니 배우로는 이미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영화로는 사실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충무로의 여왕, 칸의 여왕이라 불린 것과 달리 영화계에서는 사실 큰 성공을 못 거뒀지.'
작품성 있는 작품을 다수 찍고, 개중에 한 영화가 칸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내 상을 받긴 했지만 장도연의 커리어에 400만을 돌파하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손익 분기점을 넘기는 선, 돈을 조금 벌어다 주는 선에서 항상 그쳤던 그녀의 커리어에 450만이라는 경력을 남기도록 해주었으면 정호준은 충분히 할 만큼 한 셈이다.
- 그나저나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
- 제 무례한 부탁을 들어주셨잖아요. 사과와 감사, 그리고 축하의 뜻을 담아 차린 거예요. 대부분 사 온 거니까 부담 갖지실 필요 없어요.
정호준이 한 거라고는 샐러드용 채소를 씻고 드레싱을 뿌린 게 전부였다.
- 그래, 잘 먹으마.
- 그나저나 기태 녀석은 군생활 잘하고 있나요?
- 뭐 이야기 들어보면 잘 지내는 것 같더라. 그치만 녀석이 내가 영화 촬영에 한창일 때 100일 휴가를 나와서 제대로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그렇지 않아도 너한테 언제까지 한국에 있을 건지 물어봐 달라더라.
- 12월 초까지 한국에 머무르다 떠날 생각입니다.
박남정의 질문에 답하며 그렇게 술잔이 오갔다.
*****
정호준이 시키는 대로 일본 법인 설립을 완료한 자넷과 조나단을 포함한 일련의 무리는 잠깐의 관광을 즐긴 뒤에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국 금융법에 위반되지 않은 중요 사항들을 명시한 계약서 제작을 완료한 뒤 펀드를 개설해 신청을 받았다.
정호준은 자넷들과 함께 동명이인이 아닌 같은 사람이 중복투자 하는 것을 걸러내며 한창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호준이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정재계의 인사들은 사람을 보내기 시작했다.
하아~, 질리지도 않나! 이 나라엔 뭔 놈의 정치인과 법조인이 이렇게 많아?"
졸부나 초선의원 같은 어중이떠중이는 물론이고 4선 혹은 5선에 성공한 의원까지 섞여 있었다. 물론 그 정도 정치인에게 끌려다닐 정도로 자신이 작은 존재가 아님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단칼에 거절의 의사를 밝히며 경호원들을 시켜 돌려보냈다.
하지만 초대는 끊이지 않고 이어졌고 쉽사리 초대를 거절하기 어려운 거물급 인사들까지 정호준에게 사람을 보내왔다.
오성, 미래, KS, LS와 같은 대기업들 정확히는 오너가문에서 초대장이 날아온 것.
- 제가 일이 바빠서요. 시간을 내드리기가 어려울 것 같네요.
10대 기업의 초대는 어찌어찌 거절했지만 정치 쪽에서는 어쩌면 더 거물일 수도 있는 이들이 사람을 보내왔다.
- 시장님께서 정호준 대표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 누구라고요?
자신이 잘못 들었기를 바라며 되묻는 정호준의 질문에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비서가 다시 한번 자신을 소개했다.
- 서울시장 비서실에서 나왔습니다. 김명호 서울시장님께서 대표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샐러리맨 출신으로 대기업의 대표 자리까지 올라갔던 샐러리맨의 신화이자 그러한 이미지를 살려, 추후 봉황의자라 불리기도 하는 대한민국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이 e될 남자가 정호준에게 초대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 청와대에서 나왔습니다. 노민현 대통령님께서 대표님을 뵙고 싶어 합니다.
차세대 청와대의 주인 뿐이 아니라 현재 청와대의 주인에게서도 초대장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