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64화 (6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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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이 시카고 대학교에 원서를 접수하고 있을 무렵인 7월.

정호준의 조언대로 김해일을 주시하고 있던 강현태는 새로운 움직임을 포착했다.

연예인 마케팅을 시도하겠다고 언론을 통해 발표한 뒤 행동이 뜸했던 김가엔터테인먼트, 아니 고스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해일이 연예기획사를 인수하겠다고 밝힌 것.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을 인수해 엔터사를 우회 상장한 거로 모자라 사세 확장을 위해 엔터 회사를 두 곳이 인수합병하겠다 밝히자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기자 중 한 명이 '너무 무리한 인수 아니냐.'라는 준비된 질문을 던졌다.

사전에 미리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기에 김해일은 연습한 대로 말을 꺼냈다.

"저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래 황우식 박사님의 등장으로 각광 받는 바이오산업처럼, 엔터 산업 또한 우리 한국에게 좋은 먹거리가 되어줄 겁니다."

김해일은 기자들의 말을 멈추고 기자들의 얼굴을 한 번씩 훑어 봤다. 그리고는 다시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류라는 흐름이 왔을 때 치고 나가야 합니다. 제가 황우식 박사님만큼 큰 사람은 아니지만, 부족한 몸이지만, 앞장서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체급은 맞춰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우진엔터테인먼트와 렛츠플레이엔터테인먼트 인수는 그래서 진행하게 된 인수입니다."

원래 남 등 처먹으면서 사는 이들이 말과 분위기는 기똥차다. 깔끔한 옷차림에 신뢰가 가는 외모, 거기에 억양과 표정을 조절해 말을 이어가는 김해일의 모습은 한 명의 뛰어난 경영자처럼 보였다.

[한국 경제를 위해 또 하나의 먹거리를 만들겠다. 김해일 대표의 야심찬 선언.]

[한류 마케팅, 스타 마케팅으로 브랜드화를 노린다.]

미리 돈을 먹여 놓은 기자들이 기사 논조를 긍정적으로 뽑으며 김해일의 행보를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라며 띄워주었다. 기사 중에는 김해일과 세력의 주식 주고받기와 한류에 힘입어 주가는 어느 정도 상승한 주가의 흐름을 시장이 고스트 엔터테인먼트를 높게 평가하는 증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 강의원님. 고스트 엔터 정말 건드립니까?"

- 부탁합니다.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이&박과도 이야기가 잘 끝났습니다.

이&박 로펌 대표 변호사 이영무하고도 이야기가 잘 마무리된 상태로 이제 더는 거리낄 게 없었기에 강현태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이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는 건 분명 우리 대한민국에게 청신호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주변을 바라보며 내실을 튼튼히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호황을 맞이했을 때 사실 속으로는 조금씩 썩어들어갔었던 과거의 일을 국민 여러분께서 기억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한템포 쉬며 호흡을 가다듬은 강현태가 말을 이어갔다.

"저는 고스트 엔터가 동원하는 저 자금, 수십억이 넘는 인수 비용이 과연 어디서 난 것일지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현태는 기자들을 불러 모아 고스트 엔터의 확장 행보를 경계하는 발언을 내뱉었다.

"고스트 엔터의 행보를 응원하기 전에, 자금의 행방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인수합병을 하기에 재무 상태가 건실한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금감원과 국세청에 저들의 재무 상태와 주주명부를 확인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단계를 사전에 잡아낸 강현태 의원. 이번에는 고스트 엔터를 주시한다?]

[강현태 의원, 검증이 필요하다 말하다. 금감원과 국세청에 조사를 요청했다.]

금감원과 국세청에 자신과 연이 있는 사람을 움직였고 이&박에서 힘을 써준 덕분인지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 없다는 말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말이다. 세무조사를 요청했다는 강현태의 발표에 인수합병으로 폭등 중이던 주가가 한순간에 멈춰 섰다.

금감원보다 국세청의 움직임이 조금 빨랐다. 국세청은 강현태가 기자들을 모아 발언한 다음 날 세무조사를 시행했다.

멈칫했던 주가는 아예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강현태의 행보로 브레이크가 걸리자 세력도 세력이지만 서서히 황제주로 평가 받기 시작한 주식을 매수한 개미들이 일제히 강현태에게 비난을 가했다.

⌎ 황제주라고 추천받아서 어제 매수했는데, 이게 뭐죠?

⌎ 왜 잘 나가는 회사에 찬물을 뿌리지?

⌎ 잘한다 해주니까 정말 영웅 놀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 내 돈 물어내라!!

⌎ 괜한 트집 때문에 손해 본 주주들의 손실은 어떻게 책임지려고 저리지?

⌎ re: 국회의원 그만하고 싶나 보지. 왜, 잘 나가는 회사에 찬물을 뿌리는 거지?

⌎ re: ㅋㅋㅋㅋ. 나 부천시 원미구 산다. 이번에 강현태 뽑았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네. 내 돈 어떡할래?

⌎ re: 나도 윗분이랑 똑같음. 진짜 다음에는 강현태 안 뽑는다.

⌎ 문제없는데 괜히 태클 건 거면 의원직 사퇴해라!

⌎ re: 동감 내 돈도 돌려내라.

남 등쳐 먹는 놈, 살인한 놈보다 나쁜 게 내 돈 까먹는 놈이라는 우스갯소리처럼 나름 합리적인 생각을 거친 발언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세무조사가 진행되어 주가가 가라앉게 되자 고스트 엔터 주식을 매수한 이들이 강현태를 향해 온갖 욕설을 댓글로 적어 댔다.

*****

강현태가 정호준을 믿고 자신의 정치 인생을 걸었을 무렵 정호준은 박기태에게 한 가지 이

야기를 전해 듣고 박남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아저씨, 잘 지내시죠?

- 그래 호준아. 나야 잘 지내지.

- 김은주 배우는 잘 케어해서 보냈어요.

- 그래 정말 수고 많았다. 네가 사람 하나 살린 거다. 은주 걔는 여리여리하게 생기고 성격도 조용한 애가, 왜 그렇게 독한 건지 모르겠다.

- 원래 그쪽 업계가 독하지 않고는 못 버텨내는 곳이잖아요.

- 그건 그렇지…. 그나저나 어쩐 일이냐?

박남정의 물음에 정호준은 담담하게 말했다.

- 아저씨 이번에 영화 찍으신다며요. 남의 작품 말고 아저씨 작품으로. 정말 축하드립니다.

- 기태 녀석한테 들었구나?

- 예.

- 네 덕에 이번에 돈을 좀 벌었다. 기태 녀석 결혼할 때 장만해줄 아파트하고 영화 하나 찍을 예산 정도. 그걸로 찍는 거야. 제작사는 박감독의 박제균필름에서 제작하기로 했다.

- 그래서 말인데요. 아저씨께 부탁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 부탁? 뭔데?

- 조금 건방지고 어려운 부탁입니다.

본론은 이야기하지 않고 계속 밑밥을 깔자 박남정은 불안하다는 듯 말했다.

- 무슨 부탁을 하려고 그렇게 서론을 길게 까냐? 불안하게.

- 아저씨 영화에 제가 돈을 투자하고 싶습니다. 전액을 투자도 괜찮으니 한 가지 부탁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아저씨 작품에 장도연 배우를 써 주실 수 있나요?

김은주가 이은혜 작가의 '프라하식 연애.'를 찍게 됐다는 걸 들은 뒤로 장도연의 필모가 망가진 게 심히 걱정되었다. 김은주를 사람을 살려 발생한 나비효과로 혹시나 다른 사람이 죽게 된다면 그건 정호준 본인이 죽게 만든 거나 다름없었다.

너무 과한 억측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정호준 본인의 생각은 확고했다.

공부하면서도, 시험을 치르면서도, 원서를 작성하면서도 김은주를 배웅한 이래로 계속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을 품고 있던 정호준에게 박남정이 지금껏 고이 간직했던 각본 중 하나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는 박기태의 근황 전화가 걸려왔다.

'이거다. 기태 녀석은 항상 나를 도와주는구나.'

박기태의 전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한줄기 동아줄처럼 느껴졌다.

정호준은 이게 기회란 생각을 했다.

박기태가 BJ로 성공한 미래, 앞으로 10년은 더 시간이 흘렀을 무렵 박남정은 결국 자기 영화를 찍었다. 그것도 두 편이나. 두 편 모두 손익 분기점은 가뿐하게 넘겼다. 박남정은 천만 감독은 못 됐지만 업계 관계자나 투자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감독이 되었다.

박남정은 정호준의 말을 듣기만 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무거운 침묵을 오래 이어가고 싶지 않았기에 정호준은 서둘러 설득을 이어갔다.

-저는 지금껏 영화를 투자하면서 어떤 배우를 써 달라는 부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감독이나 제작사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요.

박남정은 시나리오를 보는 눈도, 편집 능력도, 흥행 감각도 탁월한 이었고 그러한 미래의 평가를 기억하고 있던 터라 박남정의 영화에 장도연을 캐스팅시키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거 같았다.

- 그걸 다 알면서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하는 거냐? 너 혹시 스폰이라도 한 거니?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기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목소리였지만 박남정이 지금 화를 꾹 참아 누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 무슨 스폰이예요. 그런 일 없어요.

- 그럼 장도연과 아무 접점 없는 네가 왜 장도연을 챙겨주는데?

- 제가 장도연의 커리어를 망친 꼴이 됐으니까요.

- 네가 무슨 장도연의 커리어를 망쳤다는 거야?

죄책감이 가득 서린 정호준의 말에 팬심이나 스폰 같은 그런 개인적인 욕망 때문이 아님을 눈치챘다.

- 어쨌든 저는 장도연이 아저씨 영화에 출연했으면 좋겠습니다. 투자금을 받기 위해 움직이신다고 들었는데, 영화 제작비라면 제가 다 대겠습니다. 홍콩 법인을 통해 돌아서 투자할 테니까 제가 투자했고 욕먹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영화 제작비는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다. 박남정의 영화가 망하지도 않을 거고 사실 망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은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의 위안, 이 찜찜함을 벗어 던질 수만 있다면 말이다.

십수억,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도 마음이 편해지면 그걸로 됐다.

세상에서 가장 낫기 힘든 병이 심병(心病)이라지 않은가?

이미 돈은 넘치게 가지고 있었기에 마음의 평안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

입학에 축하한다는 우편물을 받으며 다음을 위해 준비하고 있을 순간에도 유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60불을 돌파했다 다시 50불 후반대로 내려 왔다를 반복하던 유가는 8월에 들어서며 완전히 60불에 안착했다.

그리고 8월 중순에 이르러선 60불을 넘어서 어느새 65불까지 오른 상태였다.

'이제 슬슬 정리해야겠네.'

아직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불어 닥치기 전이었지만 정호준은 이쯤에서 천천히 정리를 시작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8월 11일부터 정호준은 선물 정리를 시작했다.

현재 유가는 66.56불 인근.

서두르지 않고 유가가 상승폭을 그릴 때만 선물을 매도했다.

정호준은 매도가 66불을 넘길 때만 매도를 이어갔다.

'나는 급할 게 없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이 쥐고 있는 선물 가치는 올라갈 거란 걸 정호준은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그의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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