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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63화 (6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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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은 김은주의 배웅을 위해 공항에 나왔다.

그녀의 소속사인 숲엑터에서 '은주야, 이제 정말 새 작품 들어가야 해.'와 같은 연락을 4월 중순쯤부터 줄기차게 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연락의 빈도수는 가파르게 늘었다.

6개월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쉰 탓에 배우로 활동을 이어갈 거면 이제는 정말 작품을 다시 들어가야 할 시기가 되었음을 인지한 김은주는 숲엔터에게 시놉시스를 펙스로 붙여 달라 부탁했다.

"여기서 시놉시스 확인할게요. 제 앞으로 들어온 거 다 보내주세요."

5월 초부터 영화 시놉시스와 드라마 시놉시스가 펙스로 배달되었다.

김은주는 그녀의 앞으로 온 시놉시스를 하나하나 검토하며 신중히 선택했다.

'프라하식 연애.'

김은주가 선택한 작품은 훗날 로코물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은혜 작가의 세 번째 작품이었다.

본인의 행보로 생겨난 또 다른 파장, 나비효과를 확인한 정호준은 뭔가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또 이렇게 흘러가네. 김은주가 찍는 '프라하식 연애'라…. 그건 그렇고 장도연한테 미안해서 어쩌지?'

충무로 대표 여배우로 칸의 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수상을 하며 칸의 여왕이라 불릴 장도연의 대표적인 성공작 중 하나를 빼앗은 꼴에 정호준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제발 찜찜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찝찝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정호준은 김은주를 보며 당부의 말을 전했다.

"답답하고 기분 전환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 놀러 와도 되니까 나쁜 생각하지 마요. 알았죠 누나?"

수배한 정신과 의사로부터 상태가 많이 호전됐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지만 그래도 1회차 때의 기억 때문에 누누이 강조했다.

뛰어난 외모 탓에 학생 때부터 남자들에게 시선을 받아왔던 김은주는 시선에 민감했다. 어떤 감정을 갖고 바라보는지 느껴진다고나 할까.

'얘는 끝까지 나를 여배우로 안 보네.'

노출까지 감수하며 찍은 '주황글씨'는 기대했던 것만큼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자신은 불새를 통해 확실하게 스타덤에 오른 여배우였다. 자신에게 어떤 것도 바라는 게 없는 정호준이 편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다.

"알았다니까!"

그것도 아주 많이.

"혹시 아저씨 만나면 안부도 전해주시고요."

"그건 그냥 네가 전화하면 되잖아!"

남 주기 아까운 떡 대우조차 안 하는 정호준의 태도에 김은주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틱틱대는 김은주와 이야기를 이어갔고 출국 수속을 위해 이동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뜨르륵!

김은주는 헤어질 때가 다 되어 옆에 놔두었던 가방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는 움직임을 보였다.

'여권을 가방에 넣어뒀나?'

정호준의 예상과 달리 김은주는 가방에서 꺼낸 건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된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자였다.

"정말 여러모로 고마웠어. 부자인 네게 내 선물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냐만, 너무 기대하지 말고. 잘 써줘."

"선물에 크고 작고가 어디 있어요? 그냥 그 마음이 고마운 거지. 뭔지 모르지만 고마워요. 지금 풀어 봐도 돼요?"

"아니 안 돼! 나 출국심사장 들어간 뒤에, 그때 풀어 봐. 별거 아니라서 쪽팔린다고!"

"알았어요. 그러니까 목소리 좀 낮춰요.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정호준의 말마따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인지한 김은주는 황급히 모자를 푹 눌러 썼다.

"공부 열심히 하고. 얼마 안 남았다고 들었는데 끝까지 힘내. 그리고 시간 괜찮으면 내가 출연하는 드라마도 봐주고."

"언제 방영하는지 알려주면 찾아보긴 할게요."

그 말을 끝으로 김은주는 공항 카트를 끌고 출국심사장으로 이동했다.

배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선물을 풀어 본 정호준은 걱정부터 들었다.

'자넷집에서 며칠 자고 왔을 때 만들어 둔 건가?'

선물 상자에는 품질보증서가 붙은 롤렉스사의 서브마리너와 김은주가 만든 게 분명해 보이는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서브마리너가 롤렉스 시계 중 그나마 값이 저렴한 제품이지만 롤렉스 브랜드 제품이기에 미래에는 천만원을 가볍게 상회했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정호준이 김은주를 위해 베푼 것들을 생각하면 아주 과분하다 말할 수는 없지만 경제 사정은 상대적인 법이기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무리한 거 아닌가 모르겠네? 롤렉스 시계는 가격이 좀 있는 편인데. 잘 나가는 여배우니까 괜찮겠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호준은 김은주가 선물로 남기고 간 시계를 손에 차봤다.

'조이지 않고 잘 맞네.'

*****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WTI 원유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정호준이 선물 계약을 했을 때와 비교해 무려 10불이나 상승했다.

'선물 계약의 10불은 10불의 의미가 아니지.'

WTI 원유 선물보다 크기가 작은 WTI 마이크로 원유 선물은 배럴당 100불. WTI 원유 선물의 경우 배럴당 1,000불에 해당한다. 즉 각 선물 계약을 체결한 숫자에 유가 변동 값인 10불을 곱하고 다시 마이크로는 100불 WTI 원유 선물은 1,000불을 곱해 나온 값이 정호준이 현재 선물을 매도할 경우 보게 될 수익이 되리라.

계약 규모 자체가 작은 만큼 WTI는 더 많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으니 결국 종국에 얻게 될 이득은 똑같았다. 그저 자본금이 적은 데 선물 계약에는 참여하고 싶은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게 마이크로 선물이이었다.

'내가 누구 좋으라고 지금 선물을 정리하겠어.'

선물 계약에는 만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처음 선물을 매수할 때 그것을 고려해 만기가 긴 상품을 매수했기에 만기까지 기한이 많이 남았다. 카트리나가 닥칠 시기에는 유가가 65불도 훌쩍 넘어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정호준이 지금 원유 선물을 정리할 이유가 없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법인마다 다 증거금도 따로 지불해야 해서 증거금으로 초기 투자금이 제한된 게 아쉽네.'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기 위해 법인을 수십 개를 만들고 자금을 나누고 이리저리 이동시키면서 선물 계약을 체결한 탓에 하나의 법인으로 선물 계약을 체결한다 가정했을 때 내야 할 증거금보다 더 많은 금액을 증거금으로 잡아야 했다.

*****

사람이 든 자리는 못 느껴도 떠난 자리는 금방 느낀다는 말처럼 3개월을 함께 한 이가 떠나니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호준은 고개를 흔들며 머릿속에 든 생각을 지웠다.

'정신 차리자, 내가 허전함을 느낄 때냐? 한 글자라도 더 봐야지.'

정호준이 치를 수 있는 SAT 시험은 이제 다음 달 6월에 보는 게 마지막이었다. 이번 시험을 마지막으로 작년과 올해 상반기 동안 치러온 SAT 시험 점수에서 잘 본 것을 선택해 대학입시를 진행해야 한다.

정호준은 그렇게 공부에 열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어느덧 6월이 성큼 다가왔고, 성큼 다가온 6월도 빠르게 지나갔다.

- 정, 1년 동안 수고 정말 많았어요. 오늘은 일단 다른 생각하지 말고 푹 쉬죠.

자넷과 경호원들에게 덕담을 전해 받으며 그렇게 마지막 SAT 시험을 마쳤다.

시험을 마쳤다고 정호준의 할 일이 모두 끝난 건 아니다. 다들 알다시피 원서를 넣는 일로 한창 바빴으니까.

- 경호회사 인수 건은 어떻게 돼가나요?

- 리스트를 추리는 중이에요.

이번 유가 선물을 성공리에 마치면 그때는 수조를 굴리는 부호가 된다. 정호준은 안전불감증에 걸린 사람처럼 지금까지 본인의 안전과 보안에 신경을 덜 쓴 것 같다 판단했다. 돈도 들어오겠다 정호준은 경호 회사를 하나 통째로 인수하기로 결심했다.

- 우리 이번에 정말 큰 돈 벌었잖아요? 이제는 정말 안전을 살필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가격 상관하지 말고 최고로만 추려요.

*****

2005년 3월. SAT 시험의 유형과 제도가 바뀌었다.

'이것도 한국과 좀 다르네. 시험을 여러 번 치르고 자기한테 유리한 성적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준 거에 대한 반대급부려나?'

한 학년의 입시가 끝나기 전까지는 시험 유형을 바꾸지 않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아직 한 학년들의 입시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제도와 유형을 바꿨다.

SAT은 'CR', 'WR', 'Math'으로 나뉘었다.

정호준은 시험 유형과 제도가 바뀌기 전인 8월, 10월, 11월, 12월과 바뀐 제도로 3월, 5월, 6월. 총 7번의 시험을 치렀다.

원서를 작성하며 만든 성적란을 보며 정호준은 생각했다.

'어떻게 난 바뀌었을 때 성적이 더 잘 나왔네?'라고

영어에 확실히 눈에 익게 시간이 누적된 덕이 아닌가 싶었다.

3월, 5월, 6월에 받은 SAT 성적 중 가장 잘 나온 점수들만 모아 원서에 적었다.

CR: 780

WR: 740

Math: 790

Math 2c: 800

World history 800

Language(Japanese): 790

적고 나니 위와 같이 SAT1 점주는 2,400점 만점에 2,310점이 나왔다. SAT1도 SAT1이지만 SAT2 점수는 더 훌륭한 한 편의 예술 작품처럼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이 성적이면 원하는 학교로 골라갈 수 있겠지?'

역시 뭐든 시험은 잘 치고 볼 일이다.

*****

돈을 권력이나 영향력 같은 무형의 힘으로 바꾸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부자는 돈이 얼마가 있든 졸부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자본의 축적을 이어가 국가급 예산에 달하게 되면 그땐 또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말이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아는 정호준에게는 돈을 모으든 사회에 전반에 영향력을 키우든. 무엇을 선택하든 간에 그렇게 만들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대학교를 골라갈 수 있는 상황을 놓고 정호준은 고민을 거듭 이어갔다. 학력은 접점을 만들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조건이었으니까.

미국 최고의 권력자 백악관의 주인이 될 남자들과 작게나마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선택지는 총 넷, 하버드 대학교, 컬럼비아대학교, 시카고 대학교.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이었다.

선택지를 나열한 후 하나씩 후보군에서 제외하는 방법을 선택한 정호준은 가장 먼저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후보지에서 제외했다.

'도날드가 대통령이 될 때쯤이면 나도 많이 큰 상태일 테니까 펜실베이니아는 후보군에서 제외하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어렴풋이나마 꿰고 있는 정호준에게 10년은 특히 컸다.

'릭 오리하와는 접점을 만들 필요가 있어.'

최초의 흑인 대통령 '릭 오리하'는 컬럼비아 '국제 관계학과'를 나와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리고 1992년부터 2004년까지 시카고 대학교 로스쿨의 교수로 역임하며 학생들에게 헌법학을 가르쳤다.

하버드, 시카고, 컬럼비아.

이 세 가지 선택지 중 무엇을 선택하는 게 가장 최선일지 정호준은 심사숙고를 이어갔다. 남이 들으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따지겠지만 정호준은 진지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정호준의 선택은 '시카고 대학교'였다.

현재 어느 학교가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냐 같은 사실은 정호준에게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대학이란 건 인맥과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정호준은 그런 직장을 사도 몇 개는 살 자산을 보유 중이었으니까.

정호준이 미국 대학에 다시 입학한 건 어디까지나 남에게 무시 받지 않고, 상류층과 연을 이어갈 껀덕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호준이 시카고 대학교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거리'였다.

하버드와 컬럼비아대학교는 모두 미국 동부에 위치한 학교들이다. 그것도 거의 동쪽 끝이라 봐도 될 정도로 동쪽 끝에 있다. 그런데 정호준의 기반은 모두 미국의 서부인 네바다주에 있었다.

전화 통화나 메일, 팩스를 활용해 일을 진행하는 게 가능하다지만 기반이 있는 곳과 너무 멀리서 생활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너무 멀어.'

워낙 땅덩어리가 커 국내선 잘 되어 있다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도 3시간 30분 비행하면 될 걸 5시간을 비행해야 한다. 편도일 때야 1시간 30분 차이지만 왕복하게 되면 무려 3시간 이상 차이가 난다.

업무 때문에 한 번 서부로 향할 때마다 3시간은 더 허비해야 하는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금보다 소중한 게 시간이라잖나?

"그런 면에서 시카고는 좀 낫지."

시카고 대학교도 하버드, 컬럼비아대학교처럼 동부권에 위치하긴 했다. 하지만 위의 두 학교만큼 극단적으로 동쪽에 치우치진 않았다. 중부에서 막 벗어난 동부. 딱 그 정도였다.

두 번째는 추후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릭 오리하가 시카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릭 오리하는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한 뒤로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카고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한 뒤에도 졸업하고 나서 다시 시카고로 돌아왔고 말이다.

뉴욕, 워싱턴, LA, 샌프란시스코 등 많고 많은 쟁쟁한 도시 중 시카고로 돌아왔다는 건 그만큼 시카고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는 말이다.

'물론 시카고도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오리하의 정치 기반도 일리노이주에 있지.'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 전까지 그는 일리노이주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2005년 현재는 일리노이주 상원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대선 때 후원하기도 할 거지만 그 전부터 적당히 선을 댈 필요가 있다 느꼈다. 시카고 대학이 일리노이주를 대표하는 학교인 만큼 재단을 통해 오리하와 관계를 갖기 편할 거란 계산이 깔렸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오리하의 재임 기간만 안위를 보장받으면, 그 뒤로는 문제없다.'

물론 문제없다는 말이 백악관의 주인의 뜻에 정면으로 대항하겠다거나 그런 말은 아니다. 남들이 이미지를 위해 선거에 나간다고 생각하며 가볍게 받아들일 때 선수 쳐서 선거 자금도 지원할 생각이니까.

그저 이민자 출신이면서 큰돈을 쥐고 있다고 불이익을 받지 않고 미국의 거대 자본의 일각이 되어 그 힘을 등에 업을 수 있을 거란 거였다.

그런 이유였다.

정호준이 시카고 대학교를 선택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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