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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62화 (62/335)

< 62 >

앞으로 3개월 뒤인 2005년 8월에는 미국 남동부에는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중 6번째로 강력했다고 기록될 허리케인이 발생한다.

카트리나라고 명명될 이 허리케인은 마이애미데이드, 브로워드 군의 육지에 상륙하기 전에 1등급 허리케인으로 몸집을 키워 플로리다를 가로질러 남서쪽으로 움직인 후 멕시코만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2005년 8월 28일 그곳에 쭉 머무르며 몸집을 키운 뒤 2005년 8월 29일 시속 225km의 강풍과 함께 3등급 허리케인으로 루이지애나 버라스-트라이엄프 육지에 다시 상륙했다. 북으로 전진을 이어가 8월 31일 오후 11시, 캐나다 국경에 이른 후에야 소멸했다.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강 삼각주와 미시시피 해안가가 가루가 되어버렸고,앨라배마와 플로리다 해안가도 큰 피해를 입었다. 카트리나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미국 뉴올리언스주의 경우 8월 30일 허리케인으로 인해 폰차트레인호 제방이 붕괴해 이 도시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물난리가 일어났다.

'사태가 오죽 심각했으면 북한까지 방송에서나마 위문을 했을까?'

북한이 참 대단한 게 마지막 선은 넘지 않고 지킨다는 거다. 깡패 국가가 무슨 선을 지키냐고 헛소리하지 말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북한은 나댈 때와 나대면 안 될 때를 구분하긴 했다.

"북한은 최소한 상처 입은 맹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은 하지 않지."

최소한의 눈치도 없는 국가도 있는 판국에 북한은 미국이 놀아줄 기분이 아님을 재빨리 인지하고 미국에 위문을 전했잖은가?

카트리나로 피해를 입은 지역 대부분이 미국 남부의 주요 정유시설인지라 유가가 급등하기 시작했고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재난을 틈타 상당한 이득을 챙겼다.

그냥 거기서 그쳤으면 그나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거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는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을 복구하느라 바쁜 미국을 향해 도발을 날렸다.

"미국 니들 거렁뱅이 다 되었는데 진짜 불쌍하다. 우리가 지원금 좀 보내줄게"라고.

이전에 한 번 이야기한 적 있잖은가. 전 세계에서 자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큰 건 아마 미국인일 거라고. 우고 차베스의 도발을, 잔뜩 상처 입은 상태에서 받은 도발이 미국인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지 2010년대 중후반에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완전히 망가트린 것만 봐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정유시설이 타격받은 탓에 유가가 상승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허리케인으로 인해 유가가 잠깐 폭증했을 뿐 사실 유가는 그 이전부터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기억이 정확하진 않은데, 5월 중순쯤 유가가 바닥을 찍었던 것 같은데?'

정확히 언제인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았자만 정호준은 5월 중순쯤 유가가 바닥을 찍고 상승과하락을 반복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상승세를 쭉 이어가게 될 거란 걸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이 정말 좋은 타이밍이지.'

미국에서 선물투자를 해도 될 것을 굳이 홍콩까지 가고 자금 추적을 피하기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어서였다.

첫째는

"자연재해를 틈타 돈을 쓸어 담는 것을 좋게 보지 않을 테니까."

잃는 놈이 바보고 돈을 번 사람이 능력이 있는 이라고 보는 미국의 금융계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금융계의 사고방식이다.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미국에서 살겠다는 동양계 이민자가 국재(國災)를 틈타 돈을 버는 것으로 보일 거다.

'내가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

두 번째 이유는 복수의 의미가 컸다. 회귀 덕분에 회귀 전보다 더 여유 있고 멋진 인생을 살게 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중국발 COVID에 괴로웠던 과거가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그리고 경제가 궤도에 올라온 뒤로 너무 당연하다는 듯 주변 국가들에 민폐를 끼친 것도 기억한다.

"중국계 자금을 털어먹을 수만 있다면 탈탈 털어먹자."

이번을 포함해 앞으로 있을 몇 번의 기회에 정호준은 중국 자본을 털어먹기로 결심했다. 정호준이 한국 국적을 갖고 있었다면 소국이라고 무시하며 이런저런 태클을 걸며 돈을 제대로 지급 안 할 수도 있지만 미국을 상대로는 그럴 수 없다.

나중에는 미국에도 배짱을 튕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최소 10년은 그럴 일 없다.

조단위 돈을 털어먹어도 GDP가 1경일 때 조단위 돈을 털리는 것과 2천, 3천조일 때 조단위의 돈을 털리는 건 체감의 정도가 많이 달랐다.

'내가 털어먹는 중국 자본 덕에 그 기간이 좀 더 길어지면 더 좋고.'

혹시나 경제 성장에 영향을 끼쳐 성장 속도를 둔화시킨다면 이는 더 바랄 게 없는 최고의 결과였다.

그렇게 중국 자금을 털어먹을 첫 번째 시도를 계획 중이지만 정호준은 잘 알고 있다. 중국 놈들이 속 좁고 쪼잔한걸.

'아마 그 분야에서 세계에서 제일을 다투지 않을까?'

그래서 웬만하면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3월부터 자넷이 바쁘게 일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

2005년 5월 12일 수요일.

정호준은  CITIC(중신증권), Haitong(해통증권), GF(광발증권), Guotai Junan(국태군안증권), Huatai(화태증권), Guosen(국신증권). 중국의 거대증권사 6곳에 계좌를 트고 WTI 원유선물과 단위가 WTI 원유선물보다 10배 작은 마이크로 WTI원유 선물. 두 종류의 선물을 매수를 시작했다.

'앞으로도 유가가 5불에서 6불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 계속 반등을 이어갈 거에요.'

홍콩의 페이퍼 컴퍼니들은 지불해야할 증거금과 약 6불 정도의 유가 하락을 버텨낼 여유자금을 뺀 돈으로 선물 계약을 매수했다.

'선물은 사흘에 걸쳐 천천히 매수합니다.'

바닥을 찍었을 당시 유가가 배럴당 46불 언저리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던 정호준은 매수를 서두르지는 않았다.

정호준이 WTI 원유 선물을 매수하는 움직임을 중국의 증권사들은 알아차렸다. 하지만 딱히 조처하지는 않았다.

이틀 전인 10일 월요일 종가는 배럴당 52.07달러였고 11일 화요일 종가는 50.45불을 기록했다. 누가 봐도 하락세가 분명해 보이는데 이런 상황에서 선물에 투자한다?

"돈을 던져준다고? 이번 달 보너스를 기대해도 되겠는데?"와 같은 말이 증권사마다 빈번하게 나왔다.

3월부터 꾸준하게 유가 하락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가 선물을 매수하는 움직임은 그저 그들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것으로만 보였다.

실제로 정호준이 선물을 매수하는 순간에도 급등과 하락을 반복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하락세를 이어가는 중이었고 12일인 수요일에도 결국 48.54불을 기록하며 하락세로 장이 마감되었다.

13일, 16일, 17일에도 시간차를 둬가며 정호준은 선물 매수를 이어갔다. 선물 평균 매수가는 대략 48.97불에서 정리됐다.

선물이 왜 무서운지를 알려주듯 매수하는 순간순간에도 천문학적인 손해가 이어졌다. 지금이라도 그냥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포기할 거면 처음부터 포기했어야 했다. 이제 와 그만두는 건 제일 멍청한 짓이다.'

정호준은 자꾸만 고개를 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꾹 누른 채로 WTI 원유선물 매수를 마쳤다.

*****

18일에는 배럴당 47.25불까지 값이 하락했고 19일에도 하락세가 이어져 배럴당 46.92불까지 원유값이 하락했다.

중국 증권사에서는 하루하루 회식하며 이번 달에 지급될 보너스를 기대하는 시간이었고 정호준과 자넷에게는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유가는 20일에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공부를 봐주는 자넷의 안색이 너무 창백했기에 정호준은 웃으면서 말했다.

- 자넷. 돈을 잃은 건 난데 왜 자넷이 더 괴로워 보여요?

- 그 큰 돈을 허공에 날리고도 웃음이 나와요?! 며칠 사이에 돈을 얼마나 잃었는지 제대로 일긴 하냐고요!! 그러니까 그냥 주식에 더 투자했으면 좋았잖아요!!

- 말했잖아요, 6불까지는 하락세를 견뎌야 할 거라고.

- 왜 이렇게 냉정한 거에요? 나는 내 돈이 아닌데도 속이 터질 것 같은데.

- 예상하고 있었으니까요. 열 내고 인상 찌푸려 봐야 자넷 얼굴만 못나져요.

5월 20일 유가는 배럴당 46.80불을 기록하며 장을 마감했다.

'더 떨어질까? 아니면 이제 오를까?'

정호준이 기억하는 저점 46불 선에 진입했다.

*****

저점을 찍고 주말을 보낸 뒤 다시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이 밝았다.

[보수 강경파인 아흐마디 네지드의 당선으로 핵협상 악화로 접어들다.]

[시아파와 수니파 간의 대립 양상이 심화!]

중동의 불안이 다시 한번 유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노후화된 시설, 정비 부족 등을 이유로 석유정제 시설이 가동을 멈추다.]

시설은 노후화되어 휴식 시간과 정비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중국의 원유 수요 급증으로 국제원유 수요량은 급격하게 증가만 했다. 쉴 새 없이 돌리던 정제 시설들에 문제가 생겼다는 기사도 제출되었다.

- 정!! 정!!

정호준이랑 같은 뉴스를 본 건지 자넷이 그의 집 문을 따고 들어와 정호준의 성을 외쳐댔다.

- 이럴 거란 걸 다 알고 있었던 거에요?

- 알긴 뭘 알아요. 운이 좋았던 거지.

- 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하잖아요.

자넷이 소란을 부린 탓에 아직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은 김은주도 나와서 정호준과 자넷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지켜봤다. 영어 실력이 아직 미천해 대화 내용까지는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지만 말이다.

- 걱정하느라 고생했을 텐데,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갈까요? 내가 살게요.

- 당연히 정이 사야죠. 오늘만 해도 얼마를 벌었는데.

5월 23일 월요일. 국제 유가는 반등을 시작했다. 시장이 문을 닫았을 때는 이미 배럴당 유가 49.16불까지 반등한 상태였다.

- 그래서 산다니까요. 뭐 먹고 싶어요?

"저녁 먹으러 나갈 건데, 은주 누나는 먹고 싶은 거 있어?"

김은주와는 어느 순간 말을 놓고 누나라 부르게 되었다.

경제 성장을 이어나가는데 석유는 필수다. 중국은 산유국이기는 했지만 수출이 아닌 수입을 하는 나라다. 증산을 하든 말든 석유 가격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말.

'이제 어쩔 거냐?'

유가가 오르면 오를수록 증권사들은 천문학적인 피해를 보게 될 거다. 그리고 원유 선물을 담당했던 이들은 모두 인체의 신비를 경험하지 않을까 싶다.

'뭐 내 일 아니니까.'

한국인에게 동정심을 덜 갖게 되는 나라 국민이 둘 존재한다. 하나는 당연히 한국의 숙적 일본이었고, 다른 하나는 욕하고 보니 중국인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 중국인이었다.

미국 국적을 갖겠다고 했지만 알맹이는 한국인인 그대로였기에 인체에 신비를 경험할지 모를 중국인들에게 동정심을 품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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