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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에게 전화가 걸려온 일주일 뒤인 5월 13일 금요일. 박남정은 정호준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주식을 매도했다.
빨간불투성이로 급격하게 가치가 상승 중인 것을 보면 좀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미 많이 벌었다. 쥐뿔도 모르면서 욕심부리지 말자. 그러다 다 잃는다.'
눈을 딱 감고 매도를 눌렀다.
- 매도
- 매도
본인과 아들인 박기태의 이름으로 보유 중인 평단가 5,742원에 매수한 SY엔터 주식 51,047주를 무려 19,780원에 매도했다. 보유 중인 진아제약 주식 26,695주 또한 평단가 9,045원에 매도했고 말이다.
박남정과 박기태의 계좌에는 매매 수수료와 세금을 공제한 1,198,717,059원이 입금되었다.
- 1,491,832,250원
통장에 적혀 있는 돈은 1,491,832,250원. 정호준이 가르쳐줄 또 하나의 투자처를 기다리느라 투자하지 않고 계좌에 남겨두었던 293,115,191원이 합쳐진 액수였다.
반올림하면 계좌에 무려 15억씩 총 30억에 달하는 돈이 잠들어 있는 셈.
포기했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해줄 돈이 생겼음에도 박남정은 기뻐하기보단 복잡한 눈으로 돈이 든 계좌를 바라봤다.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마냥 기쁘지는 않네.'
기쁘기는커녕 박남정은 회의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가슴 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꼈다.
그도 그럴 게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사별한 뒤에는 그녀와 자신의 사이에서 나온 하나뿐인 자식을 위해 박남정은 자신의 꿈까지 포기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꿈마저 포기하며 지난 20년간 벌어들인 수익보다 최근 반년 동안 주식으로 번 돈이 더 많다.
이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그냥 큰돈 벌어서 행복하다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돈을 위해 꿈마저 포기하며 열심히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다.
자꾸만 우울해져만 가는 기분을 환기하기 위해 박남정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금에라도 돈 벌었으니 됐다 생각하자. 아들 혼수로 강남 아파트를 사줄 능력 있는 아빠가 된 거잖아?'
투자하기 전에 미리 결단을 내려 박기태의 이름으로 돈을 증여한 것도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박기태의 이름으로 된 계좌에 적혀 있는 액수만큼 증여하려면 엄청난 세금을 부담해야 했을 것이다.
박남정은 자신의 영화를 찍기 위한 시나리오를 궁리하기에 이르렀다.
*****
정호준은 골드만식스로부터 222,963,244달러, 메릴리치에게 163,707,540달러. 리만 브라더스로부터 119,644,338달러, 월스&파고에게 91,141,297달러, 씨티은행으로부터 66,772,698달러를 대출받았다.
정호준이 대출받은 돈의 합계는 664,229,117달러로 6억 6,422만 달러가 넘는 돈이었다. 다만 어떤 은행이건 간에 담보로 맡긴 재산을 100% 대출해주지는 않았던 만큼 정호준이 대출받을 당시 메겼던 담보의 가치는 당시에도 정호준이 대출받은 6억 6,422만 달러보다 컸다.
대출을 받을 때 그때그때 매긴 자산가치의 총합은 911,586,520.72달러. 당시를 기준으로 따져도 담보의 가치는 대출받은 돈보다 2억 5천만 달러 정도 더 많았다.
'지금이야 뭐 말할 것도 없지.'
시계태엽을 조금 거꾸로 돌려서 정호준이 자넷에게 일을 시킨 3월 중순을 지나 4월 초 구글의 주가가 처음으로 200불 선을 돌파했다. 4월 12일에 이르러서는 주당 208불을 돌파했다. 애플 주식은 50불 선을 오가며 50불에 정착한 상태였고 말이다.
정호준이 보유 중인 구글과 애플 주식은 5,296,508주와 13,199,172주
정호준의 자산가치는 1,761,082,264달러를 돌파했다.
알아보기 쉽게 표현하자면 17억 6,108만 달러로 한화 2조원을 넘기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회귀한 지 단 2년 만에 2조가 넘는 재산을 이룩해냈다는 것을 인지한 정호준은 감회가 새로웠다.
'미국 국적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외환 금융위기는 겪고 난 뒤에야 이 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
메가밀리언 당첨금도 당첨금이지만 정호준이 재산이 이렇게 크게 불어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그리스의 유료 우승에 베팅한 덕이다. 유료 우승으로 배당받은 2억 달러가 없었다면 재산이 조를 넘기기까진 시간이 더 필요했으리라.
'아, 맞다. 빚도 자산이라지만 일단 대출받은 돈은 갚아야지.'
빚낸 것을 갚았다고 가정하면 진정한 재산은 1,096,853,147달러가 맞았다. 모모홈쇼핑이나 더 페이스북은 아직 재산으로 치기에는 아직 평가 가치가 크지 않아 계산에 넣지도 않았고.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2년 만에 재산이 1조 2천억을 넘겼지만 정호준이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니었다. 그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때보다 그의 자산가치가 849,495,743달러 정도 늘어난 상태라는 거다.
'늘어난 자산을 담보로 다시 한번 돈을 땡길 수 있다는 거지.'
이번 일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최소 3배의 수익은 볼 수 있는 만큼 보장되어있는 일이다. 동원하는 자본금 규모가 크면 클수록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의 크기도 컸기에 정호준은 늘어난 자산만큼 가치를 재평가 받아 대출 받기 위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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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번의 성공은 우연일 수 있지만 세 번째부터는 실력이란 말은 세계인들의 공통적인 의식의 흐름이다. 다만 미국 금융가는 아니 월가는 큰 돈을 벌었다면 남들이 행운으로 치부할 그 한 번의 성공조차 실력으로 봤다.
행운으로 치부하든 실력으로 생각하든 돈을 벌었다는 사실과 행운으로 벌어들인 큰돈은 어디 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 번만 크게 성공해도 어느 정도 대우를 해주는 나라에서 스포츠 베팅, 영화투자 성공, 그리고 빚을 내서 사들인 200불이 훌쩍 넘는 구글의 주가와 애플의 주식분할까지. 무려 네 차례나 성공을 거둔 정호준은 이제 은행들이 가볍게 볼 대상이 아니었다.
자산 규모가 '빌리언 달러' 한화로 1조원을 넘긴 순간부터는 잔챙이조차 아니었고 말이다.
골드만식스는, 메릴리치, 리만 브라더스, 월스 파고, 시티은행에 이르기까지 자산의 재평가에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추가 대출에 이자를 4%만 부르는 건 물론이고 4%보다 높은 이자를 요구했던 리만, 시티, 메릴리치가 정호준이 요구하기도 전에 알아서 이전 대출의 이자율을 4%로 수정해주었다.
'이 나이 때 난 뭘 했지?'
'나이 스물에 빌리언 달러를 벌었다. 그럼 추후에는 얼마나 많은 돈을 벌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정호준이다. 물론 승승장구하다 고꾸라지는 이들은 수영장 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쌔고 쌨지만, 그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호준과 친분을 유지할 필요가 있어 알아서 긴 거였다.
그러한 흐름을 인지한 정호준은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편의를 요구했다.
- 이자를 내는 날이 동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자를 내는데 신경을 두 번이나 쏟고 싶지 않았기에 이자 납기일을 동일하게 변경했다.
근 2년간 늘어난 자산 849,495,743달러의 75%쯤 되는 금액인 637,000,000달러를 대출받았다.
*****
실탄을 그렇게 미리 확보해 둔 정호준은 자넷에게 지시를 내렸다.
-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중국에서 한탕 크게 챙길 생각입니다. 중국 금융당국이 자금의 흐름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작업이 필요합니다.
정호준의 요청을 이행하기 위해 자넷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자넷은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들고 이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홍콩에 페이퍼컴퍼니 수십 개를 만들었다.
물론 이 일을 자넷 혼자 다 해내려면 2개월이란 시간으로도 부족하기에 거대 로펌의 도움을 받았다.
'앞으로는 매달 4,629,607달러의 이자를 내야하네.'
이 과정에서 정호준이 3개월 치 이자와 비상금 명목으로 미리 빼둔 1,700만 달러를 제외한 6억 2천만 달러를 자잘하게 쪼개졌다. 정호준이 원하는 액션을 취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말이다. 정호준이 아니더라도 이미 중국에 이런 형태로 투자를 하고 있는 이들이 많아 그나마 시간 내에 마칠 수 있었다.
정호준은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투자금액을 쪼개서 들어가는 기법은 중국과 미국의 분쟁이 심해지는 2010년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이 방법은 중국에 투자하는 외국 투자사들이 애용하는 방법이었다.
투자금액 축소, 자금추적 회피, 거래루트 다양화, 리스크 분산, 훗날 자금 회수 용이하다는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었다. 회수 때는 해외 거래 대금 송금, 해외 투자 목적, 사업 철수 등 다양한 명목으로 자금을 빼내고 홍콩 페이퍼 컴퍼니의 문을 닫으면 연결고리도 없어지는 셈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애용하는 건 비단 해외 기업만이 아니었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이지만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먼저 부자가 돼도 좋다.'라며 선부론을 외치며 개혁개방을 시행한 덩샤오핑 주석 덕분에 먼저 부자가 된 중국의 부호들이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을 빼돌리는 데 사용되곤 했다.
중국 부호들은 해외 투자사처럼 위장해 해외에 투자했다가 중국에 투자하고 다시 해외에 투자하는 것을 반복하며 자금을 세탁해 공산당의 눈을 피해 해외로 자금을 은닉했다. 그리고 이렇게 빼돌린 돈을 안전한 투자처라 생각되는 해외부동산에 투자됐다.
세계의 땅값을 올리는 주범이 중국인이란 소리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 정이 원하는 대로 작업을 모두 마치긴 했는데, 대체 어디에 투자하려는 거예요?
자넷은 언제까지 비밀로 할 거냐며 이제는 그만 이야기해달라고 정호준을 똑바로 쳐다보며 요구했다. 자넷의 요구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WTI원유 선물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정호준의 답변에 자넷은 골 아프다는 듯 손가락을 머리에 가져다 댔다.
- 하아, 또 모험인가요? 정은 리스크 없는 안전한 투자는 할 생각이 없나 봐요?
'아직 안전을 추구할 때는 아니다. 안전을 추구하는 건 내가 모르는 세상이 됐을 때 가서 해도 충분해.'
지금껏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몰아세웠다.
'지금은 그냥 가만히 있자.'
그런 자넷을 보며 정호준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 정이 모험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가슴을 졸이는지, 알긴 아나요?!
- 지금껏 실패한 적 없었잖아요. 이번에도 성공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정호준은 자넷을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자넷의 히스테리는 좀 더 오랫동안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