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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투자생활백서-54화 (5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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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준비 때문에 공부하기도 바쁜 판국에 악기 배우랴 봉사활동 하랴, 운동하랴 몸을 세 개로 나눠도 힘들 일정을 매일 이어가다 보니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갔다.

12월이 된 것도 어제 일 같은데 벌써 반이나 갔다.

성탄을 준비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와, 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보냈지만 SAT 시험 결과로 인해 11월부터는 쳇바퀴처럼 똑같이 흘러가던 정호준의 일정에 변화가 생겼다.

정호준은 8월에 처음 SAT을 치른 뒤 시험이 있을 때마다 SAT을 치렀다. 9월은 SAT 시험이 실시되지 않는 달이라 건너뛰었지만 10월부터는 연달아서 시험을 치렀다.

10월에는 'SAT2'라 불리는 Subject Test를 봤고, 11월에는 다시 'SAT1'이라 불리는 시험을 치렀다. SAT1의 경우 Reading파트나 문법에 해당하는 Language 그리고 수학은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Writing과 Essay 점수는 기대 이하였다. 특히 Essay 쪽은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SAT2'에서는 세계사는 정통해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미국 역사에 대한 깊이가 부족해 70%를 맞추는 선에서 그쳤다. 물론 SAT2에서도 영어나 수학 시험은 잘 봤다. 제2외국어로 선택한 일본어 또한 개선할 점이 보이지만 괜찮은 점수를 받아냈고 말이다.

다만 'SAT2'에서도 과학이란 변수가 존재해 정호준을 괴롭혔다.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에 입학하려면 좀 더 노력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좀 바꿀 필요가 있겠네.'

문제를 인식했으면 행동에 변화가 있어야 하는 법.

정호준은 공부법에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공부에 시간을 더 투자하기 위해 그동안 쏟아붓던 운동의 가짓수를 줄였다.

'봉사활동을 줄일 수는 없다.'

대충하는 것은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걸 오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정호준은봉사활동을 위해 보육원 같은 곳을 방문해서는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고 일을 찾아서까지 했다. 하지만 정호준이 일을 찾아서 한다고 봉사하는 삶이 주는 충만감 같은 것에 눈을 뜬 건 아니었다.

대학에 어필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봉사란 점은 처음과 다를 바 없었다. 목적은 달라지지 않았다.

'입시를 마칠 때까지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결국 시간을 낼 만한 건 네 종목이나 배우는 운동 파트가 가장 만만했고, 승마와 골프, 테니스를 그만뒀다.

'나중에 입시 끝나면 다시 시작하는 걸로 하자.'

스쿼시는 운동 효과도 좋고 공부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에도 좋은 스포츠였기에 스쿼시를 하는 시간만큼은 남겨두었다.

'공부에는 체력도 필요하니까.'

격하게 몸을 풀어낼 때 솟아나는 엔도르핀과 미래에 '헬창'이라 불리는 이들이 말하는 고통이 주는 쾌감(?)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중독되었음을 정호준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정호준에게 10월부터 자주 국제 발신을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 호준아, 언제 팔면 되는 거니?

바로 박남정이었다. 국제전화 요금은 신경 쓰지도 않는지 처음에는 열흘에 한 번 연락하더니 그 간격은 3일씩 줄어들었다.

- 지금 팔면 안 될까?

- 좀만 더 기다리세요.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1월에 정리하면 된다고, 저도 아직 쥐고 있어요.

중간중간 한 번씩 연락해서 주식을 매도하면 안 되겠냐고 묻는 박남정을 진정시키느라 정호준은 진땀을 잔뜩 빼곤 했다.

- 정말 괜찮겠지?

자신에게 확인을 받고 싶은 사람처럼 전화를 걸어 비슷한 논지의 말을 내뱉고 정호준은 몇 번이나 같은 답변을 주었다. 박남정이 자식뻘인 정호준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정호준도 박남정도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

'돈이 걸렸는데, 어리고 말고 따질 게 있나.'

모르면 묻고, 불안하면 안정을 찾기 위해 도움을 받는 게 당연한 거다. 다만 정호준과 같은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같은 말을 계속하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했건만, 정호준은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지 귀찮은 티나 짜증을 일절 섞지 않고 항상 친절하게 응대했다.

그러기엔 회귀 전에도 그렇고 현생에서도 그렇고 박남정이나 박기태에게 받은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저 박남정에게 투자를 권한 뒤로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아저씨는 주식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였구나.'정도였다.

회귀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된 걸로 만족했다.

정호준은 박남정을 이해했다. 3,363원에 매수를 시작했던 주식이 5천원, 6천원을 오가더니 11월 말에는 1만원을 돌파했다. 더군다나 1만원을 돌파해서도 가파른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듯 11월 30일에는 14,000원을 넘기기까지 했다.

천장을 모른다는 듯 계속 올라가는 주식을 보며 좋아라만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주식을 쥐고 있는 박남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식이 생각이 날 거고 '지금 매도하는 게 맞지 않을까?'란 생각 또한 수십 번은 반복할 거다.

그 고뇌가 얼마나 힘들지 이해했다.

'호준이 녀석이 과장되게 이야기한 거겠지?'

정호준의 말마따나 정호준이 10배를 먹을 수 있을 거라 말해서 투자하긴 했지만 정말 10배나 먹을 거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박남정이 10배를 먹은 자신을 잠깐 상상하긴 했어도 금방 접었다.

자신의 그런 기대가 괜히 실망으로, 조카 같은 아들 친구 정호준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질까 경계했기 떄문이다.

처음부터 박남정은 2배만 먹어도 만족이란 생각을 갖고 투자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4배, 5배. 돈이 몸집을 불려만 가니 욕심과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을 계속됐다.

박남정이 정호준에게 연락해 계속 묻는 건 갈등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12월 중순, 정확히는 12월 13일 주가가 2만원의 고지를 넘어 3만원 대에 진입하자 박남정의 불안과 갈등은 극에 달했다.

- 호준아, 이제 팔면 되지 않니? 네가 이야기했던 10배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욕심부리다간 정호준의 말대로 10배를 벌었으니 이만하면 됐지 않은가?

- 1월에 매도한다 말씀드렸잖아요.

- 하지만 네가 말했던 수익까진 얼마 안 남았는걸?

돈을 좀 더 벌게 해주고 싶어 안 된다고 좀 더 버티라고 이야기하려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정호준은 1월 말에는 주가가 5만원 대 후반까지도 갈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내 조건부로 매도를 허락했다.

- 저는 아저씨께 말씀드렸던 대로 1월 24일부터 정리할 겁니다. 아저씨께서 정 불안하시면 반만 매도하시는 게 어떨까요? 지금 반 팔아도 이익 실현은 충분히 한 거잖아요? 16일에 반은 정리하시고, 남은 반은 저를 믿고 좀만 더 쥐고 계세요.

돈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데다 목표에 도달했으면 이익을 실현시키는 건 당연한 이치였기에 매도를 허락했다. 특히 반을 매도해 번 수익이면 박남정이 가진 불안감을 지우는 데도 효과적일 거라 판단했다.

12월 16일. 장이 열리자마자 박남정은 주식을 박기태와 그의 계좌에서 7,830주씩 총 15,661주를 매도했다.

평균 매도가는 40,890원.

본인과 박기태의 이름으로 된 계좌에는 각각 320,189,145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

매도가 박남정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정답이었는지 16일 이후로는 박남정의 연락이 뜸해졌다.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정말 코앞으로 다가왔다.

미국에서 아니 서양에서 크리스마스는 의미가 남다르다. 기독교를 믿든 믿지 않든 크리스마스는 모두(연인 및 가족들)에게 행복한 날이었다.

'돈이 있으면 뭐 하나? 크리스마스에 혼자 있는데.'

라스베가스의 중심가는 크리스마스라고 엄청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아직 당일이 아닌 이브인데도, 아직 밤이 아닌데도 거리에는 연인들로 가득했다. 연인 아니면 크리스마스를 맞아 가족끼리 여행 온 무리였다.

정호준이 거주 중인 라스베가스 중심가는 특히나 관광 온 연인들로 붐볐다.

자넷은 새로이 사귄 남자 친구와 크리스마스를 보냈고, 동호회 친구들 또한 저마다의 스케줄(?)로 바빠 정호준은 호화로운 침대 위에서 결국 케빈과 함께 보내고 있었다.

뭔가 씁쓸하고 외로운 밤이었다.

*****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1월, 2월에는 SAT 시험이 따로 없어서 일정 없이 다시 챗바퀴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다 1월 중순, 정확히는 1월 19일에 자넷을 한국으로 출장 보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확의 시간이었다.

20일이 되어 한국에 당도한 자넷은 법인으로 넘어가 주가를 확인한 뒤 깜짝 놀랐다.

산성씨앤씨 [45,890]

3.5불 정도에 매입했던 주식이 37불 38불을 왔다갔다 했다. 아니 지금 정확히 말하면 이시간에도 주가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었다.

- 정은 이렇게까지 주가가 올라갈 걸 알고 있었던 건가요?

- 이야기했잖아요. 줄기세포란 소재를 재료로 세력이 붙었다고.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죠. 거짓임이 밝혀지기 전까지 아마 몇 탕 더 해 먹을 겁니다. 증자하겠다는 말이 오가고 있는 걸 알고 있거든요.

- 대체 정에게 그런 정보를 제공해주는 사람이 누구죠?

미국에서 자기 할 일을 처리하기에도 바쁜 사람이 한국에서 일어난 일을 세세히 꿰고 있다. 정호준의 정보력과 저 판단 능력은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하고 날카로웠다.

- 비밀입니다. 비밀이 많은 남자가 매력적이란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거든요.

-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애인 없는 남자가 씨부린 헛소리일 거예요.

알려줄 듯 뜸 들이다 장난기 섞인 말로 뒤로 뺀 정호준의 말에 자넷은 냉혹한 일침을 내뱉었다.

- 그런데 어쨌건 증자한다는 소식을 알았으면 좀 더 기다려도 되는 거 아니에요?

-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니까요. 돈 필요한 데가 또 생길 거거든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황우식이란 이의 논문이 조작됐다고 이야기할 때부터 자넷은 정호준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자넷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정호준은 자넷에게 지시를 내렸다.

- 여독 풀 거 풀고 24일부터 오후 2시부터 나흘 동안 물량 다 털어주세요.

- 알겠어요.

자넷과의 통화를 끝낸 정호준은 박남정에게도 연락해 1월 26일에 남은 주식을 매도하라 일렀다.

*****

1월 26일 아침이 밝자마자 박남정은 남은 15,661주를 매도했다.

- 56,643 매도 체결.

- 56.839 매도 체결.

그가 시장에 주식을 던지는 그 시각에도 주가는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였다.

박남정은 평균 매도가 58,930원에 15,661주를 매도했다.

- 461,451,365

- 461,451,365

박남정과 박기태의 이름으로 된 계좌에는 각각 이전에 주식을 매도했을 때 벌어들인 수익을 포함한 781,640,510이란 숫자가 찍혀있었다.

- 평균 매도가 58,680원에 매도 마무리했어요. 축하해요, 1천만 달러의 수익을 벌어들였네요.

정호준은 산성씨앤씨로 11,736,000,000란 거금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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