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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의 JHJ Capital이 달마다 지급해야 할 이자는 2,505,867.49달러. 한화로 환산하면 28억 8천만 원을 넘기는 돈이었다.
'달마다 강남 아파트를 한 채씩 납부하는 거네?'
아직도 소시민적인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숫자를 숫자로만 생각해야지, 체감되는 물질(강남 아파트)로 구체적으로 환산을 시키다니.
그런데 말이다. 마음에 와 닿는 걸로 환산시키니까 아까워도 너무 아까워졌다.
'욕심이 끝이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도둑놈이 따로 없다고 욕 먹어도 쌀 만큼 이자를 내는 것도 아까웠다. 이자를 내야 해서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발생할 금융위기 전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구글 주식을 매도하는 것 또한 아까웠고 말이다.
주당 평균 매도가 145.11불에 17,269주를 매도하고 9월분 이자를 지불했을 때 그 감정은 절정에 달했다.
앞으로도 계속 달마다 강남 아파트 한 채를 은행에 준다고 생각하니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돈 될만한 게 없나 찾아보자.'
그래서 사건 사고를 정리해두었던 노트까지 들추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그게 바로 황우식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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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물품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품귀현상이 발생할 때 그 물건을 대신할 수 있는 물품을 우리는 대체재라고 부른다. 콜라가 비싸지면 같은 탄산음료인 사이다를 마시면 되는 거다.
수요의 증가로 콜라 만큼은 아니더라도 사이다의 값 또한 오르겠지만, 가격이 오르는 건 물이 흐르는 것 만큼이나 당연한 시장의 법칙이었다. 대체재가 존재하지 않은 것이 수두룩한 이 세상에서 대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그런데 대체재가 아님에도 대체재처럼 여겨지고 돈이 몰려 가격이 오르는 이상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업계가 세상에는 존재한다.
바로 주식 시장이란 이름의 마경이었다.
자식이나 친척이 연예인으로 성공했다고 별다른 특이 사항이 없음에도 회사의 주식의 가치가 오른다. 그런데 사실 이건 양반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잖아?'
이 경우는 적어도 핏줄이란 연결점은 가지고 있으니까.
한국의 주식 시장은 호재가 난 기업에 납품을 한다든가 하는 연관성이 전무함에도 그저 같은 업계라는 이유 만으로 혹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주가가 오르는 경우도 빈번했다.
같은 업계라는 이유 만으로 주식이 오르는 경우가 많아 테마주란 용어까지 새로 생길 정도였다.
'이번에도 비슷하지.'
2004년 말. 한국 주식 시장에선 줄기세포 배양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이오 주식에 돈이 몰리며 바이오 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2020년대 코로나 백신 때문에 제약회사의 주가가 일제히 올랐듯 2004년 말에도 바이오 열풍이 분 것.
산성씨앤씨.
정호준이 투자할 주식 중 하나로 코스닥에 상장된 회사로 줄기세포 열풍의 원조로 불리는 대장주였다.
- 산성씨앤씨란 종목입니다. 아저씨도 잘 아실 거예요. 황우식 박사의 줄기세포.
정호준은 박남정에게 10월 말쯤 산성씨앤씨에 진입할 것을 넌지시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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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을 설립하고 정호준의 계획을 듣고 제 나름대로 정보를 수집하고자 한국에 한 달 일찍 입국한 자넷과 달리, 정호준은 이자 내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온 뒤에야 주식을 매도하기 위해 움직였다.
- 어서오십시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10월 22일. 정호준은 주식 매도를 위해 증권사를 찾았다.
이자를 지급하는 돈을 포함해 700만 달러는 필요하겠다는 계산을 마쳤다.
증권사에 방문한 정호준은 구글 주식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확인했다.
'어? 뭐지?'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구글의 주가는 저번 달 그가 매도한 가격에서 무려 25불이나 올라 있었다.
- 지금 당장 매도하지 말고, 장 마감 3시간 전부터 팔아주십시오.
정호준의 요구대로 폐장까지 3시간 남았을 때 트레이더는 매도를 시작했다. 트레이더가 매도를 하는 순간에도 구글 주식은 계속해서 값이 상승했다.
'주가가 한 달 만에 3만 원이나 오른 거네. 주가가 많이 올라줘서 다행이다.'
주가가 가파르게 올라준 덕분에 정호준은 평균 매도가 174.47불에 40,122주를 매도하는 선에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매도를 마치자마자 정호준은 은행을 방문해 이자로 지급해야 할 2,505,867.49달러를 남겨두곤 4,494,227.82달러(5,168,362,000원)를 자넷이 만들어둔 한국법인 계좌로 입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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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황우식과 함께 사기의 주체에 해당하는 나중에는 리디스 코스틱으로 사명을 변경하는 산성 씨앤씨는 자체적으로 주식을 매도하고 매수하며 거래량을 왜곡하고 평균가를 올리는 작업을 실시했다.
자넷은 월요일 장이 열리자마자 산성씨앤씨 주식을 매수했다.
'작은 회사라더니... 주식이 얼마나 오를지는 모르겠는데, 잘 돼도 정의 말마따나 이자나 겨우 벌겠네.'
주식을 매수하면서도 발행주식 수가 너무 적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25일 기준 발행주식 수는 기껏해야 3,860,000주에 불과했다. 발행주식도 적지만 거래량은 더 적었다. 일일 거래량이 1만 단위밖에 안 되는 주식. 미국에서 살다 온 그녀에겐 너무 작게만 여겨졌다.
자넷이 판단하기에는 자신의 인건비나 겨우 나오는 선에서 그칠 것만 같았다.
물량이 너무 적어 25일에는 매수를 얼마 못했기에 자넷은 매일같이 산성씨앤씨를 주시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거래량이 가파르게 늘어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1만 단위에 불과했던 거래량이 하루 이틀 사이에 4~8만 주로 늘어났고, 일주일도 안 됐는데, 거래량이 10만 주를 넘어섰다.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주식을 매입하는데 시간을 쏟아부으면 부을수록 자넷은 정호준의 예측이 틀리지 않을 거 같단 확신을 갖게 되었다.
'대체 정은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아챈 거지?'
자넷은 정호준의 지시대로 20만 주를 매수하곤 손을 뗐다.
- 정이 말했던 대로 20만 주 매입 끝냈어요. 평균 매수가 4,276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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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준으로부터 '10배는 건져갈 수 있을 겁니다.'란 장담을 들은 박남정은 고민을 많이 했다. 정호준의 추천대로 돈을 투자할지, 아니면 한 귀로 흘릴 지를 말이다.
몇 날 며칠 고민을 거듭한 끝에 박남정은 정호준의 권유한 투자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성공할 것이라 장담하며 '태극기 흩날리며'와 '내 신부는 여고생'에 망설이지 않고 자신이 끌어모을 수 있는 돈 전부를 끌어모아 투자했던 정호준의 비범한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영화와 주식은 종목이 완전 다르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다르지만 망설이지 않고 전부를 걸어 돈을 번 정호준의 모습을 믿기로 했다.
"호준이 녀석 말대로 투자에 성공하면, 나도 내 이름을 걸고 영화를 한 편 찍어봐도 되겠지?"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예술은 집에 돈이 없으면 업으로 삼기 어려운 직종이다. 자기 영화를 찍은 적은 없었지만 사실 박남정도 어느 정도 사는 집의 자제였다.
그럼에도 박남정이 자기 영화를 찍지 않은 건 독립심이 남다른 것도 있지만 부모님이 달갑게 여기지 않는 영화계로 제 발로 왔기 때문이었다. 집에 손 벌리지 않고 돈을 모아서 자그맣게 독립영화를 찍으려 했었다.
사별했던 부인이 박기태를 갖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피임에 실수하는 바람에 사귀던 여자친구(사별한 부인)가 박기태를 가졌다. 그 당시는 혼전임신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워낙 나쁠 때라 배가 불러오기 전에 혼인하기 위해 쫓기듯 결혼했다.
그리고 그때 박남정은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
"내 영화를 찍겠다는 생각은 접자."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지면 책임감이 배가 된다는 말처럼 아내의 뱃속에 새 생명이 잉태되었음을 확인한 순간부터 박남정은 자기 영화를 찍겠다는 계획(꿈)을 버렸다.
대한민국에서 아빠라 불리는 이들은 언제 어디서든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들이었다. 박남정 또한 자식을 위해 모든 지 할 수 있는 흔하디흔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한 명의 아빠였다.
"몸조리 잘하고, 이건 살림하고 애 교육하는 데 보태 쓰거라."
예술 한다고 나돌던 자식이 평범한 한 명의 가장이 되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며 박남정의 부친 박일정은 앙금을 풀었고, 박기태를 출산했을 때 500만원씩 박기태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아내와 박기태의 명의로 1천만원씩 증여해주는 슈가그랜파더가 되었다. 덕분에 박기태의 계좌에는 박기태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입금해준 돈까지 합쳐 2,500만원이 잠들어 있었다.
박남정은 2,500만원이 잠들어 있는 은행 계좌에 3,000만원을 추가로 증여해 5,500만원을 맞췄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계좌에 5,500만원을 입금했고 박기태의 이름으로 만든 주식 계좌에 5,500만원을 입금했다.
평균 매수가 3,512원에 29,898주를 매입했다.
정호준의 장담대로 10배가 올라 5,500만원이 5억이 되면 집을 살 밑천을 마련해준 게 된다. 그 정도 해줬으면 부모로서 할 도리는 다한 거 아니겠는가?
정호준의 말대로 흘러가면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꿈을 꿔 볼 기회였다.
다만 박남정은 정호준처럼 전부를 걸고 베팅하지는 못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저축해둔 돈을 투자하는 선에서 투자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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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씨앤씨는 발행주식 수가 적어 20만 주를 매입하는 선에 끝났다. 줄기세포 때문에 시작된 바이오 열풍으로 주가가 급등하게 될 제약회사는 많았다. IT 버블 때처럼 IT 타이틀만 걸어 놓으면 거품이 끼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주 못 미친다고 말할 정도 또한 아니었다.
- 정이 말했던 대로 20만 주 매입 끝냈어요. 평균 매수가 4,276원이네요.
자넷의 보고를 들은 정호준은 수고했다는 공치사를 내뱉은 뒤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 수고 많이 했어요. 이제 남은 돈은 전부 진아 제약에 투자해주세요.
정호준은 나중에도 산성씨앤씨와 함께 언급되고는 했던 회사를 매수하고자 했다.
- 375만 달러 전부를요?
- 네, 전부요. 단 이번에는 직접 만나서 투자를 제의해야 할 거예요.
산성씨앤씨와는 달리 정호준이 매수하라고 지시한 진아제약은 규모가 꽤 컸다. 발행주식 수가 무려 20,219,370주에 달했다. 현재 진아제약이 머무르고 있는 주가에 375만 달러를 전부 투입하면 무려 10%의 지분을 인수하는 꼴이 된다.
그 어떤 기업도 지분의 10%를 매수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보지는 않는다.
바이오 열풍 때문에 주가가 폭등했다가 고꾸라지지만 그럼에도 진아제약은 2020년대에도 명맥을 이어가는 기업이다. 폭발적으로 성장할 껀덕지는 없어도 망할 정도로 무기력한 기업도 아니란 이야기다.
전화를 끊은 자넷은 친구인 이소영 변호사를 통해 진아제약 임원의 연락처를 알아냈고 투자 제의를 건넸다.
일주일 뒤 자넷으로부터 주식 매입을 완료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 375만 달러에 200만 주 넘겨 받았어요. 더 필요한 거 있을까요?
- 아뇨, 그게 전부에요. 1달 넘게 한국에 있느라고 고생 많았어요.
정호준은 자넷의 노고를 치하하며 1주일의 휴가를 지급했다. 한국에서 놀다 와도 되고 미국으로 복귀해서 쉬어도 된다고 자넷이 원하는 대로 즐기라 말하며 정호준은 전화를 끊었다.
- '황우식' 박사와 같은 인물이 배출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 한국의 제약 주식들은 과소 평가 되고 있다 판단했고, 진아제약에 우리가 돈을 투자한 이유다.
외국계 회사의 자금을 받으며 호재를 만들어낸 진아제약의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주가에 기름을 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