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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4일. 정호준은 쉐보레 코르벳 C5 컨버터블을 타고 Nevada State High School-Henderson Downtown에 방문했다.
나름 미국산 슈퍼카(?)인 C5 컨버터블이기에 잠깐 시선을 주목 받기도 했지만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중국 부자들이 사유재산을 얼마나 밖으로 빼돌렸으면 학생들이 정호준을 보는 시선은 그저 '뭐야, 중국인이야?'와 같았다.
'중국인 아니고 한국인이거든'이라고 당장이라도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어차피 저 꼬마 녀석들에겐 정호준이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별다를 게 없었으니까.
정호준이 차를 끌고 다운타운까지 나온 이유는 단 하나. 오늘이 바로 SAT 시험을 보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치르는 시험이다. 중요한 시험이기도 했기에 긴장이 되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모의고사라고 생각하고 부담 가지 말고 보자.'
미국의 SAT은 1년 동안 몇 차례나 시험을 치르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1년 동안 응시한 시험에서 받은 성적 중 가장 좋은 점수가 나온 것들만 자신의 성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번에 본 시험 성적을 입시에 반영할 수도 있으니 모의고사보다는 중압감을 갖고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반대로 오늘 시험을 망쳐도 다음에 또 기회가 있는 것도 확실한 펙트였기에 부담을 줄였다.
'오늘은 시험은 경험 삼아 본다고 생각하자.'
중간에 잠깐 휴식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총 3시간 45분 동안 시험을 치렀다. 쉬는 시간임에도 시험장 안에서는 물도 못 마시게 하는 게 어색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마따나 SAT은 미국 대학입시 시험이지 않은가. 미국 시험을 보면서 한국 수능 규칙을 생각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끝났다. 수험 시간이 이것밖에 안 된다는 게 좀 어색하네.'
답안지를 제출해가는 과정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차에 타니 시계는 어느덧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차에 시동을 걸고 근처의 맥도날드로 이동해 빅맥을 먹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리링.
시험을 마치고 교실 밖을 나온 걸 알았는지, 자넷은 귀신같이 전화를 걸었다.
삐익
한국으로 출장 나가 있는 상태에서 걸려온 통화라 국제 발신이라 요금이 더 나오고 반을 부담하게 된다는 안내 음성이 울려 퍼졌다.
- 정, 오늘 시험은 어땠나요? 잘 치렀어요?
- 수학은 쉬웠는데, 다른 건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네요. 점수가 나와 봐야 알 것 같아요.
- 오오, 점수 기대해도 되겠는데요?
난이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수학은 꽤 쉬웠으니까. 그가 대학입시 때 봤던 수학 시험과 비슷하거나 그보다는 조금 어려운 정도의 난이도였다. '물수학'이라고 평가 받는 6차 교육 과정의 수학과 비슷하니 수학은 정말 어렵지 않았다.
거슬리는 게 하나 있다면 그저 지문이 한글이 아닌 영어로 되어있어 한국이었으면 대충 훑어 봐도 될 걸 집중해서 두 번은 봐야 한다는 거였다.
- 한국은 새벽이지 않나요? 피곤할 텐데, 시험 본 게 뭐 특별한 일이라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전화까지 했어요?
네바다주와 한국은 무려 16시간이나 시차가 난다. 전자시계에 1시 40분이라 적혀 있으니 한국시간은 오전 5시 40분이란 이야기다.
시차 적응하는 것도 힘들 텐데 이렇게 신경 써주는 게 고마웠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은 퉁명스러웠다.
- 첫 시험인데 당연히 전화해줘야죠. 그리고 원래 전 이쯤 일어나니까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시차 적응이 안 돼서 좀 불편한 건 있는데. 그거야 뭐,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자국도 아닌 타국으로 출장을 나왔으니 불편한 건 당연했다. 불편한 게 없으면 출장이 출장인가? 관광 나온 거지.
- 그리고 과외선생(Private Teacher)이 자기가 가르친 학생에게 시험을 잘 봤는지 묻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아닌가요?
'고마운 사람.'
정호준이 미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말까지 예쁘게 해주는 걸 보면 우리네의 정을 아는 한국 사람 같다. 회귀나 복권 당첨이란 행운 이전에 자신에게 인복(人福)이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 이런다고 월급을 더 주진 않아요.
입에서 나오는 말은 츤데레 기질이 가득했지만 말이다.
- 그건 조금 아쉬운 소리네요. 사실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전화한 거에요.
- 뭔데요?
- 정은 정말 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하세요? 그 사람의 연구와 논문은 미국과학진흥협회(AAAS)에서 발간하는 저널에도 실렸다고요! 정, 설마해서 묻는 건데, 사이언스지가 뭔지 모르는 거 아니죠?
- 모를 리가 없잖아요. 네이처, 셀과 함께 삼대 저널로 뽑히는 학술지잖아요?
태연하게 되묻는 정호준의 말에 자넷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 다 알면서도 틀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 일단 사이언스지는 물리학, 천문학, 화학 쪽에서 공신력이 강하지 생명과학 쪽은 그렇게 공신력이 있지 않잖아요. 정말 줄기세포를 배양하는데 성공했다면, 생명과학 분야에서 공신력 높은 네이처에 논문을 투고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디다 투고해도 조명 받을 논문이잖아요? 나라면 최고라고 평가 받는 곳에 투고할 거 같네요.
정호준의 말이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거나 논리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었기에 자넷은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 게다가 사이언스지는 이미 큰 실태를 겪은 적이 있죠. 한 번 일어난 일이 두 번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
- 만약 정이 정말 그가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진실을 알려야 하지 않아요?
- 불가능해요. 직접 까발리기엔 내 힘이 미약하고 평판이 나쁘거든요. 대세에 지장을 줄 수 없다면 돈이라도 버는 게 좋지 않겠어요?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는 자넷의 질문에 정호준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관철했다.
*****
2004년 2월, 3월에 AAAS에서 발간하는 사이언스지에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발표와 연구 내용을 담은 논문이 실렸다.
논문의 주인은 한국 최고 대학이라 평가받는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황우식'이란 이름을 가진 한국인이었다.
세계 3대 과학학술지에 이름이 실렸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영광된 일이었고 '황우식'이란 과학자(?)를 배출한 한국 과학계에도 기쁜 소식이었다.
옆 나라 이웃이자 모든 이겨야 직성에 풀리는 나라 일본과 달리 노벨상 수상자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아 좌절하곤 했던 대한민국 과학계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사였다.
- 서울대학교 '황우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이 미국의 3대 주간지 사이언스지에 실렸습니다.
한국의 국민들 또한 이 소식을 뉴스로 전달받고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줄기세포와 관련된 기술은 주춤해진 경제성장률을 다시 끌어 올려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평가받았으니까.
열광의 도가니에 빠진 건 한국 사람만이 아니었다.
- 전 세계 난치병 환자들의 희망!
줄기세포란 연구는 난치병 환자들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줄 수 있는 기적의 산물과도 같았기에 전국을 넘어 세계의 이목이 황우식이란 남자에게 쏠리게 되었다.
'참 대단한 사람이지. 장희팔은 그냥 한국 사람들만 속였지, 저 인간은 세계를 속였잖아?'
여기서부터는 정호준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황우식도 사이언스지에 자신의 연구가 실릴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을 거 같다.
"'사이언스지에 투고했는데 최종 심사에서 반려되었다.' 정도가 황우식이 원했던 진짜 그림 아니었을까?"
정호준은 '사이언스지에 투고했는데 최종 심사에서 반려되었다.'를 이용해서 큰돈을 만지고 해외로 내빼는 시나리오가 황우식이 처음 계획했던 시나리오일 거란 생각을 했다.
사이언스지에 실려 버리는 바람에 자신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졌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는 것처럼 유명세에 취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황우식은 계속 거짓을 일삼게 된 배경이리라.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사실 그래서일 텐데.'
연구비 지원이나 전문 인력 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한국 대신 미국으로 오라는 스카웃 제의가 몇 번이나 있었지만 황우식은 한국에 남는 길을 선택했다.
'그래서 문제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개인주의 기색이 강해지지만 아직까지는 개인보다 단체를, 단체보단 국가를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성향이 짙은 한국의 대중들이 보기에 스카웃 제의(부귀영화)를 걷어차고 한국에 남는 황우식의 행보는 애국자 그 자체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호준이 백날 황우식이 사기꾼이다 이야기해 봤자 한국 정부와 과학계, 대중들은 귀담아듣지도 않을 거다.
큰 돈을 벌었다고 군역의 의무를 저버리고 쪼르르 미국에 붙어 미국인으로 살기를 선택한 정호준과 위대한 성과를 이룩하고도 돈을 쫓지 않고(?) 한국에 남아 한국과 한국 과학계를 선도하고자 하는 황우식.
대중이 누구의 말을 믿을지는 누구에게 물어도 똑같은 답이 나올 거다.
'귀담아듣지 않는 걸로 끝나면 다행이지.'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비난과 욕설이 본인에게 향할 거라는 걸 확신했다.
'욕과 비난이 나에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 어차피 난 이미 검은머리 외국인이니까.'
정호준 개인에게만 욕설을 날렸던 과거와 달리 신상이 샅샅이 파여 그와 친분이 있던 박기태나 박남정에게까지 향할 가능성이 높다.
얻는 것 하나 없이 위험부담과 잃을 것만 가득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자넷이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을 다시 한번 알리는 것으로 전화 통화를 마친 정호준은 다 식은 햄버거를 꾸역꾸역 입에 넣고는 집으로 복귀했다.
식사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와 설거지와 집안을 정리했고, 저녁 먹을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울려 퍼지는 중년 남성의 굵은 목소리에 정호준은 웃으면서 말했다.
- 아저씨 저 호준입니다. 잘 지내시죠?
정호준이 전화를 건 대상은 다름 아닌 박남정이었다.
- 나야 잘 지내지. 너는 어떻디? 외국 놈들이랑 살 부대끼며 사는데, 살만하냐? 음식은 먹을만하고?
- 저도 잘 지냅니다. 여기도 사람 사는 덴데요. 음식도 조금만 찾아보면 한국 음식 파는 곳이 많더라고요.
- 그래, 어쩐 일이냐?
정겹게 안부를 묻으며 이야기를 이어가기엔 국제 통화비가 만만찮았기에 박남정은 곧바로 전화한 용건을 물었다.
- 큰 돈 쥐고 있다 보니 요즘 투자 정보가 많이 굴러 들어와서요.
시중 은행보다 훨씬 많은 이자를 챙겨줬지만 지분을 주지 않은 욕심 많은 자신의 행보를 죄책감을 갖고 있기에 정호준은 박남정에게 정보를 공유하고자 했다.
- 얼마나 여유가 있으신지는 모르겠는데, 2천만 원 정도 동원하실 여유 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