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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주가 하락은 어느덧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JHJ Capital의 매수 덕분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나갔지. 과대망상이야.'
이미 상승세를 탄 견실한 대기업 주식에 돈을 투자해 버블의 크기를 키우는 건 어렵지 않지만, 오너 리스크와 악재(?)가 함께 터진 기업의 주가 하락을 막는 건 어려운 일이다.
산 하나를 집어삼킨 화마에 기름을 부어 불의 크기와 방향을 확장시키는 건 가능해도 산 하나를 집어삼키며 몸집을 불린 화마를 소방차 둘 셋 출동하는 정도로 막진 못한다.
정호준이 애플에 쏟아 넣은 750억이란 돈이 소방차 둘 셋 정도로 평가할 만큼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정호준의 생각처럼 애플의 주가가 진정세에 접어든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애플의 대주주 중 그 누구도 주식을 매도하지 않았다는 점이 진정세에 접어든 진짜 이유였다.
애플의 대주주들은 애플이 언론에 잡스의 수술을 발표하기 훨씬 전부터 잡스의 건강 상태를 전달 받아왔다. 주식분할 계획도, 취소가 아닌 몇 달 미루는 것임도 모두 전해 들은 상태였고 말이다.
오너 리스크든 주식분할 취소 찌라시든 대주주들이 주식을 매도해야 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현재 애플의 하락장은 어디까지나 개미들과 개미라 불리는 평범한 투자자들보다는 많은 주식을 쥐고 있지만 정보를 공유 받을 정도의 수준은 아닌 어설픈 주주들의 발버둥이 만들어낸 하락장이었다.
'바닥을 찍는 걸 기다렸다가 주식을 매수하려 했거늘.'
정호준의 풀 매수를 뒤늦게 나마 인지한 대주주들이 호준을 따라 주식 매입을 시작했다.
손해가 극심해질까 두려워 주식을 매도하던 중견 주주들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감을 눈치챌 정도의 깜냥은 있는 중견 주주들이 매도를 중단했고, 매도 물량이 줄어들고 매수는 이어지다 보니 주가가 반등을 시작해 주당 70달러 선까지 회복했다.
주가 하락이 진정을 넘어 다시금 70달러 선을 회복했을 무렵 스티븐 잡스가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퇴원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달되었다.
*****
바닥을 찍었을 때 동시에 매집하려던 대주주들의 계획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엉클어트린 정호준은 헌혈센터에 와 있었다.
- 오늘은 되도록 격한 운동이나 음주를 삼가세요.
주삿바늘을 빼고 반창고를 붙여주며 헌혈 확인서를 건네준 흑인 간호사의 말에 정호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네, 알겠습니다.
자신이 기증한(헌혈한) 피가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듣기에 참 아름다운 이야기긴 하지만, 갑자기 엄청난 봉사심이나 인류애가 생겨 헌혈장을 방문한 건 아니었다.
정호준이 헌혈을 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활동 시간을 제외하면 오롯이 성적만으로 학생을 뽑는 한국의 유수한 대학들과 달리 미국의 명문대들은 성적 외의 것(클럽(동아리) 활동, 사교성, 봉사성) 또한 중요하게 여긴다.
'한국계 이민자의 자식 중 하버드 의대에 합격할 성적임에도 봉사에서 걸려 불합격처리 됐다지?'
정말 확실한 펙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충분한 성적을 가지고도 헌혈이나 봉사활동 경력 부재로 불합격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인명을 구하는 봉사직인 의사가 되겠다는 사람이 헌혈, 봉사활동 경력이 부족한 걸 용납할 수 없다'란 이유였던 걸로 기억한다.
성적 때문에 떨어졌으면 그냥 내 실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하고 목표를 위해 다시 노력하거나 타협할 수 있다.
'성적도 아니고 저런 이유로 떨어지면 얼마나 억울할까?'
특히 본인이 내년에 그런 상황을 겪게 된다면 미쳐서 팔딱팔딱 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올해가 아닌 내년 입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재수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는데, 성적이 아닌 다른 이유로 불합격하면 꼴이 너무 우스워진다.
'울화통이 터질지도?'
그런 이유로 정기적인 헌혈은 물론이고 봉사활동과 악기를 배우는 동호회 같은 곳에까지 얼굴을 내밀며 내년에 있을 입시를 준비했다.
*****
- 정은 적당히 큰돈 만진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더 커지길 바라죠? 커지고 커져서 미국 주류사회에 끼어들고 싶은 거죠?
- 글쎄요?
- 글쎄요는 무슨. 어떻게 알았냐는 생각이 얼굴에 뻔히 쓰여 있거든요. 주류에 들고 싶다면 정이 배워둬야 할 게 많아요. 공부도 공부지만 악기나 운동도 배워둬야 할 거에요.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하나쯤은 있는 게 좋은 거란 자넷의 제안 때문에 시간을 내서 기타를 배웠다. 악기를 배우는 건 큰일도 아니었다. 진짜 고역스러운 건 운동이었다.
악기는 하나만 배우는 걸로 끝났지만. 테니스, 스쿼시. 골프, 그리고 승마까지 정호준은 무려 네 가지 종목을 번갈아 가며 교육 받게 되었다.
테니스와 스쿼시는 요령이 비슷한 게 많아서 배우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팔, 다리, 허리야.'
그저 둘 다 활동적인 운동이라 운동한 다음 날 몸이 쑤신다는 부작용이 있을 뿐 어렵지는 않았다
정호준이 정말 어렵게 느낀 종목은 승마였다.
테니스와 스쿼시 그리고 골프는 도구를 사용하는 운동으로 손의 연장선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든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그러나 승마는 그게 불가능했다. 나중에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초보자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승마는 위의 운동들과는 결이 다른 스포츠였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생명체에 위에 타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말은 간단해 보이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련사의 도움이 없이는 말과 제대로 교감을 나누지도 못했고 본인이 교감을 나누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교감을 나눈 말에게 문제가 있거나 다른 일정이 생길 경우도 존재했다.
예약제로 운영되다 보니 다른 일정이 생긴다는 그런 경우 없는 상황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배운 지 얼마 안 됐음에도 말의 컨디션이 나빠 일정이 취소된 적은 있었다.
'나도 말을 한두 마리 사둘까?'
품종 좋은 말은 BMW, 페라리, 벤츠와 같은 고가 승용차보다도 비쌌지만, 자신의 것을 남이 손 데는 것을 싫어하는 예민한 이 중 돈 좀 있는 이들은 좋은 품종의 말을 사다 승마장의 사육사에게 맡기곤 했다.
승마장의 일정에 맞추는 게 아닌 자신이 원할 때 들러 말을 탈 수 있다. 돈보다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부자들에게 이는 상당한 메리트였다.
'아직, 아직은 아니다.'
내년에 있을 큰일 두 개를 제대로 해냈을 때 자신에게 주는 축하 선물로 주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
정호준이 공부와 봉사활동, 헌혈, 그리고 문화생활(?)을 병행하며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느라 바빴다면 자넷은 오랜만에 법적인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일 처리를 위해 필요한 전화 통화를 마친 자넷은 정호준과의 대화를 회상했다.
- 한국 주식에 투자를 진행하려 합니다. 잡음 생기지 않게 비자를 포함한 법적 조치를 끝내주세요.
- 한국에요?
- 네, 다달이 꼬박꼬박 250만 달러를 은행에 이자로 지불해야 하잖아요? 돈 나올 구석이 있으면 투자해서 벌어와야죠. 한국이 미국만큼 시장 규모가 큰 건 아니라서 큰 돈은 못 벌겠지만, 이자 낼 돈은 이상은 건질 수 있을 거예요. 10월까지 부탁합니다.
정호준의 대답을 들은 자넷은 정호준이 애플과 구글 주식을 최소 1년은 쥐고 있을 거란 결론을 지었다.
- 으으음, 정.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시선과 말투로 눈치를 보며 말하는 자넷의 말에 정호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그럼요.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자넷이 물었다.
- 주식은 언제쯤 매도할 건가요? 얼마나 오래 쥐고 있을 건지 궁금해서요.
상여금을 주며 애플에 투자하는 게 어떻겠냐는 추천을 받은 자넷은 정호준이 상여금으로 준 200만 달러 중 100만 달러를 애플 주식에 투자했다. 정호준이 확률 낮은 도박에 성공해 큰 돈을 벌었지만, 그 한 번의 성공을 믿고 받은 상여금 전부를 투자하기엔 무리였다.
자넷이 애플에 100만 달러를 투자한 것도 정호준을 믿어서라기보다 애플이 이름 있는 기업이어서였다.
자넷은 JHJ가 애플 주식을 매수할 시점에 같이 들어가 평균 매수가 40.12불에 24,926주를 매수했었다.
"이름 있는 기업이니 한 번에 바닥으로 훅 꺼지진 않겠지."
'대마불사'란 말마따나 손해를 보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을 거란 계산하에 이뤄진 투자였다.
그리고 현재 자넷은 정호준의 조언을 반만 따른 것을 뼈저리게 후회 중이었다.
'그때 200만불을 다 투자했어야 했는데.'
애플 주식은 그녀가 매수한 매수가에서 2배나 올랐다. 중간에 잡스의 건강이상과 주식분할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는 찌라시 때문에 10불이 넘게 빠지는 하락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다시금 반등 중이었다.
현재까지만 보면 정호준의 투자는 전부 옳았다.
애플 주식을 아예 고려대상에 제외하고 구글 주식만 가지고 평가해도 이미 예전에 1년 치 이자를 벌었다.
'이쯤 되면 정이 브루클린 브릿지를 판다 해도 믿어야지.'
자넷이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정호준은 웃으면서 말했다.
- 구글 주식도, 애플 주식도 웬만하면 1년은 더 쥐고 있을 겁니다. 저번에 드린 상여금을 투자할지 말지 고민 중인 거라면, 지금이라도 애플에 투자하세요.
아직 늦지 않았다며 투자하라 대답해주는 정호준의 말에 자넷은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고 돈(욕심)은 돈(욕심)이었기에, 정호준과 대화를 마친 다음 날 투자 대신 저축을 선택했던 상여금 100만 달러와 학자금 대출과 부동산 대출을 갚고 재작년 중순쯤부터 저축해 모은 26만 달러를 애플 주식에 투자했다.
자넷은 평균 매수가 71.16불에 애플 주식 17,707주를 매입할 수 있었고 정호준과 자넷이 보유한 애플 주식을 합하면 발행주식의 2%가 되는 순간이었다.
*****
자신의 몸 상태가 더 나빠져 죽음에 이를 때까지도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워커홀릭이 바로 스티븐 잡스란 인간이다.
암 수술을 마치고 최소한의 몸조리를 마친 그는 퇴원하자마자 회사와 관련된 소식을 전부 전해 들었다.
- JHJ가 지분을 또 늘렸다고?
- JHJ만이 아니라 다른 대주주들도 조금씩 지분을 더 사들였어. JHJ가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어 준 덕에 그나마 대주주들에게 지분이 덜 갔어.
덧붙이는 짐 쿡의 말을 들은 잡스는 침묵했다.
- 잡스, 자네가 예민했던 거 같네. JHJ는 애플이 아닌 구글에 빚까지 내서 큰 돈을 투자했어. 우리가 주식분할을 할 걸 알았다면 ,왜 구글의 주식을 샀겠나? 어떻게든 우리 주식만 주워 담았겠지.
- JHJ가 우리 주식을 매수했다며? 근데 구글 주식을 샀다니. 쿡, 말을 자르면 어떻하나? 무슨 말인지 제대로 설명해.
애플의 지분을 담보로 돈을 빌려 구글 주식을 매수하고 매수한 주식을 담보로 다시 돈을 빌리고 또 빌렸다는 말을 들은 잡스는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사내에 스파이가 있었다면 주식분할이 취소됐다는 애플의 주식을 계속 쥐고 있기보단 매도하고 구글 주식을 매수했을 테니까.
그랬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구글 주식을 보유할 수 있었을 거다.
"내가 애플에 투자한 건 다름 아닌 잡스 당신 때문입니다."
자신을 존경하고 자신 때문에 투자했다면서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진실을 말하지만 전부를 밝히지는 않았던 정호준이란 꼬마(?)의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