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그래서 내 마음은 어떤데? (6)
클로에가 뷔욘의 에스코트를 받아 마차에서 내리자, 정원에 나와 친교를 나누고 있던 사교계 인사들의 이목이 그편으로 집중되었다.
내어놓고 쳐다보는 그 관심에 클로에는 자못 당황했다.
‘지난번 그 마차도 아닌데 왜……?’
일전에 저를 초대한답시고 보냈던 그 호화로운 마차라면 이해가 갔다. 정말 뷔욘의 부왕이 스칸다르의 부를 과시라도 하고 싶었던 건지, 작정하고 사치스럽게 만든 마차였으니까.
‘왕자님하고 온 게 이렇게 주목받을 일인가……?’
그 추측은 기실 정확한 것이었지만, 클로에는 그 이면의 상황까지는 전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클로에와 뷔욘의 사이가 최근 사교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은 라크루아의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댁에서 유일하게 사교클럽에 드나드는 에티엔 앞에서조차 모두가 쉬쉬했으니까.
농브르의 보고를 받은 궁정백부인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수면 아래의 일이었고.
“자, 그럼.”
뷔욘이 팔꿈치를 내밀어 보였다. 거기에 깃드는 어떤 기시감…….
스칸다르의 예법으로는 손을 맞잡곤 했던 것이지만, 여하간 수없이 받았던 그의 에스코트였다.
클로에는 익숙한 듯 낯선 손길로 뷔욘의 팔에 손을 올린 뒤 윈제르 백작부인이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 백작저의 현관으로 들어섰다.
“어머, 왕자님, 정말로 와 주셨군요? 오신다는 답신을 받고 제가 어찌나 놀랐던지요.”
오늘 살롱의 주인답게 양껏 화려하게 차려입은 윈제르 백작부인이 낯을 밝히며 그들을 맞이했다.
클로에 또한 오늘 소개될 제이크 콜린스를 발굴한 사람으로서 응당 중요한 손님이었지만, 아무래도 스칸다르의 왕자보다는 밀리는 모양이었다.
그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니, 이쪽을 흘끔거리는 영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아이코, 역시 다들 경계하는 눈치네.’
클로에는 이전에도 이번의 윈제르 백작부인의 살롱에 참석했었지만, 그날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클로에에게 함께 가 달라 앓는 소리를 냈던 것이 무색하게도 혼자 참석한 뷔욘에게는 기꺼이 호의를 베풀 영애들이 한가득 몰려들었던 것인데…….
‘나 지금 공공의 적, 뭐 그런 거겠지……?’
저와 뷔욘을 두고 퍼진 소문을 알았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을, 클로에는 한가하게도 생각하며 속으로 작게 웃음 지었다.
“라크루아 영애, 오랜만이야. 이렇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워요.”
“부인, 좋은 오후입니다. 잘 지내셨죠? 초대해 주심에 감사드려요.”
“오늘 살롱의 일등 공신이 영애인걸. 콜린스 씨가 안에 있으니, 시작하기 전에 꼭 인사하러 가 줘요.”
“제가 무슨 일을 했긴요. 다 부인과 크레벨 공작부인께서 너른 마음으로 재인을 알아보신 거죠.”
“말도 참.”
윈제르 백작부인의 보랏빛 눈동자가 따스하게 빛났다.
살롱의 운영자로서 제가 소개하는 신인이 크레벨 공작부인과 같은 사교계 권력자의 눈에 드는 것만큼 큰 영광이 어디 있으랴. 클로에가 제이크 콜린스의 그림을 선물한 덕에, 윈제르 백작부인은 이미 크레벨 공작부인의 마음에 든 화가를 소개할 기회를 얻어낸 것이었다.
곁에서 두 사람의 살가운 인사치레를 지켜보던 뷔욘이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영애께서 화가를 발굴하신 건가요?”
“어머, 그걸 모르셨나 보지요? 두 분이 그리 친밀하시다더니.”
윈제르 백작부인이 조금 장난스런 눈빛을 보내어 왔다.
친밀하다고? 저와 뷔욘의 사이가 친밀하다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어서 클로에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애께서 오늘의 화가를 크레벨 공작부인께 소개하셨어요. 공작부인 컬렉션 중에서 제가 그걸 발견했고요. 라크루아 영애가 이리도 팔방미인이에요.”
그리 금칠을 해주며, 윈제르 백작부인이 클로에에게 작게 윙크했다.
뭐지, 띄워 줬다는 건가……?
“아, 크레벨…… 공작부인께 소개를 해 드리셨군요. 역시, 영애께선 안목이 남다르십니다.”
뷔욘은 따스하게 웃으며 클로에를 바라보았다. 클로에도 감사의 인사를 담아 마주 방긋 웃어 보였다.
두 선남선녀의 다정한 모습을 보며 윈제르 백작부인도 흐뭇하게 웃었다. 정말인가 보네, 호호.
그때, 살롱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정원을 거닐고 있던 영애들 중 몇몇이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기실 오늘 참석한다는 뷔욘을 기다린 것이었으리라.
“왕자님, 윈제르의 정원에서 뵙게 되니 참으로 반갑습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짙은 금빛의 머리칼을 우아하게 말아 내린 엘레니아 룩소스가 있었다. 파트너로 보이는 클로에가 옆에 있는데도 그에게만 말을 거는 데엔 일종의 오기가 필요한 것이었으나…….
‘역시 왕자님께서는 인기가 좋으셔서. 그럼 나는 콜린스 씨에게 인사나 하러 가 볼까.’
제게 어떤 소문이 도는지를 모르는 클로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럼 전 이만, 클로에가 뷔욘에게 걸어 두었던 손을 뗄 때였다.
“클로에! 오랜만이야. 요즘 왜 이렇게 보기가 힘들어?”
반대편에서 반가운 목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반으로 묶은 갈색의 생머리가 주는 청순함에 숱 많은 앞머리로 발랄함까지 더한, 클로에의 리도테 시절 친구 멜라니 알로제였다.
“멜라니! 잘 지냈지? 그냥 어머니 취미 활동도 돕고, 가족들하고 지내느라 바빴어.”
“피, 그래, 너는 이제 고티유 사교계 영식들은 눈에 안 찬다 이거지?”
멜라니가 뷔욘에게 눈인사를 해 보이고는, 그녀의 팔짱을 껴 실내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꽤나 멀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멜라니는 눈동자로 현관 쪽을 슬쩍 가리키며 은근한 목소리를 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정말로 너, 저 왕자님하고 뭐 있어?”
“내가?”
“얼마 전에 왕실저에 초대받아 다녀왔다며?”
“응, 그거야…….”
“소문이 파다해. 네가 왕자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뭐라고?”
“아냐?”
“어어, 아닌데…….”
곧 그렇기야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니까.
원래는 이 당시 그들의 사이는 결백했고, 지금은…… 기왕이면 좋은 감정을 노리고 싶었지만, 그것이 그렇게 소문이 날 거리는 아니었는데.
클로에가 고민하는 양을 바라보던 멜라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냐, 그런 거.”
제 고민과 별개로, 클로에는 멜라니의 의구심을 일축했다.
“정말로? 그런데 오늘 왜 같이 왔어?”
“내가 저번에 마담 에투알의 살롱 초대장을 구해 드렸거든.”
그러고 보면 그 답례를 모피 케이프로 받기야 했지만……. 클로에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그런 자신 없는 기색을 애써 지우며 대꾸했다.
“너 그거 알아?”
“뭐?”
“네가 지금까지 어디 오면서 소궁정백이나 크레벨 소공작 말고 다른 사람 에스코트를 받은 게 아예 처음인 거.”
“……그건 그렇네.”
여기서 왜 또 그의 이름이 나오는가. 클로에는 울적해지려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히죽 웃어 보였다.
“아무튼, 아무 사이 아냐.”
“진짜로?”
“그렇다니까.”
“……서운할 뻔했다고. 요즘 코빼기도 안 비추고.”
클로에는 제 팔짱을 낀 멜라니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러고 보면, 이때쯤 가장 절친한 지인이었던 그녀와 만나지 않은 게 벌써 두 달인 것이었다.
훗날 다시 연락이 끊길 사이라는 생각에 사교계의 지인들과 교류를 줄이면서 자연스레 그리되었더랬다.
‘이렇게 나를 좋아했으면서 어쩜 연락 한번 없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멜라니의 얼굴을 살피니,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스런 기색이 감돌았다.
“다행이야. 막스랑 내기했는데.”
“내기라고?”
“너와 저 왕자님을 두고 요즘 사교계 사람들 모였다 하면 내기다? 고마워, 클로에. 덕분에 막스에게서 좋은 선물을 기대할 수 있겠어.”
막스는 멜라니와 연애 중인 랑엔펠트 백작가의 차남 막시무스를 말하는 거였다. 그들이 클로에가 스칸다르에 간 이후에나 약혼하는 덕에 그들의 약혼식을 못 봤다는 아쉬운 마음이 생길 때쯤…….
“내기를 한다고?”
“믿었어, 클로에. 나한테 얘기도 안 하고 그러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그러니까 날 두고 내기를 했단 말야?”
“……나만 그런 게 아니래도?”
멜라니가 결백하다는 듯이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저보다 반 뼘 작은 그녀의 그런 애교에 클로에는 번번이 넘어가고 말았지만…….
‘아니, 이게 뭔 일이래.’
저에 대해 소문이 그리 돌았다는 것을 이제야 안 클로에는, 어머니만의 것인 줄 알았던 편두통이 도지는 것 같았다.
윈제르 백작저의 집사가 클로에를 안내한 곳은 연회장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한 객실이었다. 제이크 콜린스가 미리 와 대기하고 있는 곳이었다.
똑똑, 집사가 노크를 하고 문을 열자, 말쑥하게 차려입은 제이크 콜린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영애님! 와 주셨군요.”
여전히 그의 낯은 파리했고 그 어깨가 둥그렇게 말리기까지 해 왜소해 보였지만, 백작저에서 단장해 준 것인지 머릿기름을 발라 넘긴 데다 그 표정이 밝은 덕에 신경질적인 멋쟁이 정도로는 보였다.
“얼굴이 좋아지신 것 같소.”
“예, 백작부인께서 살롱에서 최초로 공개하는 그림도 있어야 한다면서 며칠 기거하면서 작업하실 수 있게 해 주신 덕분에요.”
그러고 보니 유화 물감 냄새가 나는 듯도 했다. 둘러보니 손님 방으로 되어 있긴 했지만 여분의 공간이 넓어서, 이젤이나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 여타 화구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영애님께는, 거듭 감사의 말씀을 드려도 참…….”
“그럴 것 없소. 그대의 작품이 마음에 드시니 공작부인도, 윈제르 백작부인도 그대의 그림을 소개하는 것 아니오.”
“그래도 말입니다요…….”
때꾼한 그의 눈동자 아래로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것 같았다.
그래, 그는 생활고가 심했고, 아내와 합심하여 먹여 살릴 자식들도 있다 했으며, 무명 기간도 길었다고 했으니까.
그런 자가 언젠가 얻게 될 부와 명예를 2년쯤 일찍 얻는 것은, 오히려 축복인지도 몰랐다.
클로에는 본 적 없는 그의 식솔들의 미소를 떠올리려 애썼다.
‘잘된 일이야. 또 내가 잘한 일이고.’
원래 오늘의 살롱에서 소개됐던, 앨버트라는 이름의 조각가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는 다음 살롱에서 소개되기를.’
속으로 그렇게 기도하며 제이크 콜린스의 감읍한 낯에 미소 짓던 찰나였다.
반쯤 열어둔 문 너머로, 윈제르의 집사가 다시금 누군가를 안내하는 소리가 났다.
“어머, 클로에 벌써 와 있었니?”
아, 역시 스체르바뇰 말씨는 오리포네만큼 억양이 심하지가 않구나. 클로에의 마음속에 작은 반가움이 일었다.
“부인, 오셨어요?”
제이크 콜린스를 소개한 공동 공로자시니까, 역시 들르러 오신 거구나. 클로에는 크레벨 공작부인에게 인사할 요량으로 반가운 낯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좋은 오후야.”
하지만 그녀의 시야에 먼저 들어온 것은, 크레벨 공작부인을 에스코트하고 들어온 그녀의 큰아들, 데메트리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