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30화
[갤럭시의 선공으로 1회 초 시작합니다. 갤럭시 타선이 상대할 두수는 올 시즌 12승을 올리며 본인의 최다승을 갱신한 파이리츠의 레이건 선수입니다.]
[평균구속 90마일 후반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광속구를 던지는 투수 중 한 명이죠.]
평균구속 90마일.
말인즉슨 100마일의 공도 간간이 던진다는 소리였다. 실제 레이건의 최고구속은 101마일이 찍혔을 정도로 엄청난 광속구로 유명했다.
[이런 레이건을 상대로 앤더슨 토마스 그리고 정신우 선수로 타순이 이어집니다.]
[이 막강한 타순을 상대로 레이건 투수가 어떤 피칭을 할지 기대됩니다.]
신우는 더그아웃에서 레이건의 피칭을 유심히 살폈다.
190㎝가 넘는 키에 100kg에 육박하는 체중, 피지컬에서 볼 수 있듯 그의 피칭은 힘으로 찍어누르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그리고 앤더슨을 상대로 그러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
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투스트라이크에서 꽂힌 네 번째 공이 스트라이크가 됩니다! 아쉽다는 듯 타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앤더슨 선수!]
[오늘 구심의 몸쪽 코스가 조금 후한 편이네요. 그것과 별개로 레이건 선수의 패스트볼이 위력적이었습니다. 오늘도 컨디션이 무척 좋아 보입니다.]
레이건의 1회 피칭은 압도적이었다.
앤더슨에 이어 토마스마저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신우를 맞이했다.
신우를 상대로도 그는 공격적인 피칭을 이어갔다.
억 ~!!
"스트라이크!!"
[초구 99마일의 빠른 공이 보더 라인에 걸칩니다!]
[좋은 제구력이에요. 이번 공은 때렸어도 정타를 만들기 어려웠을 겁니다.']
[2구 슬라이더가 존을 벗어납니다. 이건 손에서 좀 빠진 거 같죠?]
[예, 포수의 움직임을 보면 원하는 제구가 되지 않은 듯 합니다.]
따!!
[떨어지는 커브를 받아쳤지만, 라인을 벗어나면서 파울이 됩니다.]
[타이밍은 정확했는데, 떨어지는 각도가 정신우 선수의 예상을 벗어난 거 같습니다.]
순식간에 원볼 투스트라이크가 됐다.
3개의 공을 던지면서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레이건 선수가 조심스럽게 접근을 하는 인상을 주네요.]
[정신우 선수는 따른 공에 강한 면모를 보여왔으니 당연한 선택일 겁니다.]
신우는 타석에서 발 하나를 했다.
그리고 장갑을 다시 착용하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볼카운트가 유리한 상황, 나라면 여기서 승부에 들어간다.
[그게 정답일 가능성이 높지.']
[과연 그의 선택은?!]
[두구두구두구두구!]
채팅창이 시끄러워졌다.
신우는 다시 타석에 들어서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눈을 감으며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의 모든 것들이 어둠으로 물들었다. 보이는 것은 오직 투수 한 명. 녀석이 투구자세에 들어갔다. 와인드업.
킥킹.
동시에 상·하체를 들었다.
힘이 모이는 게 느껴졌다.
녀석의 시선이 3루로 향했다가 들어졌던 하체를 풀었다.
여전히 상체는 닫힌 상태…
과직!!
스트라이드와 함께 스파이크의 징이 마운드에 박혔다.
단단하게 고정된 하체가 돌아감에도 무게중심은 여전히 뒤에 남아 있었다.
힘을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모인 힘을 일순간 폭발시켰다. 마치 로켓이 발사되듯.
녀석의 힘이 폭발적으로 앞으로 쏘아졌다. 리드미컬한 투구폼은 아니다. 가다듬을 곳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약점을 보완할 정도로 강한 힘이 공에 실려 있었다.
쐐애애애액-!
그리고 그 힘을 담은 공이 손을 떠났다. 예상대로 포심 패스트볼이다. 신우는 스윙을 시작했다. 홈런을 때릴 생각은 없었다. 간결하게, 공이 날아오는 결을 따라 배트를 돌렸다.
휘릭!!
그때 공이 변화했다.
홈플레이트 직전에서 움직인 공이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스윙을 바꾸기엔 늦었다.
영역은 집중력을 극도로 끌어올리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게 초능력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슈퍼히어로로 만들어주진 않는다.
이런 공의 변화는 대처가 불가능했다.
후웅-!!
어쩔 수 없이 배트를 돌렸다.
그리고 변화한 공을 때렸다.
빠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뒤이어 배트가 쪼개지는 게 보였다. 약한 손잡이 부근을 맞아 헤드가 날아가고 있었다. 동시에 영역이 깨졌다.
신우는 떠오르는 타구를 보며 깨달았다. 방금 던진 레이건의 구종이 뭐였는지 말이다.
"내츄럴 커터."
[천재가 또 있었..
[02]
커터를 누가 최초로 던졌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커터의 대중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선수는 알 수 있었다.
바로 마리아노 리베라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무리투수로 남은 투수.
그의 커터는 특별했다.
패스트볼과 별다른 차이가 없을 정도의 구속. 홈플레이트 앞에서 일어나는 변화. 무엇보다 딜리버리가 포심 패스트볼과 다를 바 없다는 강점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커터에 내츄럴 커터란 이름을 붙였다.
부자연스런 변화가 아닌 자연스런 변화가 일어난다는 뜻이었다.
[그런 내츄럴 커터를 또 던지는 놈이 있노.]
[구속은 오히려 시누보다 빠른데?']
[지렸다.]
이번에는 신우도 동의했다.
영역에 들어간 상태에서도 공의 변화를 간파하지 못했다.
녀석의 내츄럴 커터는 자신의 것과 비슷했다. 즉, 홈플레이트 앞에서 변화를 일으켰다는 소리다.
'까다롭네요.'
[0]
[조슈아만 문제가 아니었누.]
[ㅋㅋㅋ 적이 한가득이네.]
채팅을 보며 마운드에 올랐다.
연습투구를 끝내고 마운드를 고르는 사이. 타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1회초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감한 갤럭시의 수비가 시작됩니다!]
레이건의 환상적인 피칭.
그것은 신우를 주눅들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리고 재밌어요.'
[재밌다고?]
[승부욕 불타누]
그들을 만나고 오른손으로 폼을 바꾸었다. 그리고 내츄럴 커터를 던졌다. 새로운 투구폼에서 던진 최초의 구종이 커터라는 소리였다.
의식하고 던진 게 아니다.
그냥 던졌다.
마지 처음부터 던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에도 내츄럴 커터는 그의 주무기가 되었다.
처음에는 불펜에서 데뷔를 하다 보니 포스트 리베라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이야길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내게 커터는 특별하지."
그런 커터로 삼진을 당했다.
그것도 배트가 부러지면서,
승부욕이 불타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1번 테즈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출루율이 4할 육박할 정도로 선구안이좋은 선수입니다. 타율 역시 3할 2푼을 마크하고 있고요.]
신우도 알고 있는 정보들이다.
눈이 좋은 타자.
토마스가 사인을 냈다.
'정면으로 붙자'
같은 생각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미트를 내밀었다.
코스는 바깥쪽.
"플레이볼!!"
구심의 콜과 함께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뒤이어 몸을 틀면서 킥킹과 함께 상하제를 비틀었다. 힘을 모은 신우는 그 힘을 뒤에 두면서 스트라이드를 했다.
콰직!!
스파이크의 징이 마운드에 꽂히는 순간. 신우의 몸이 토네이도처럼 회전했다. 하체, 허리, 상체로 이어지는 회전은 리드미컬 했다. 상체가 앞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레 무게중심이 앞으로 향했다.
신우는 그 힘을 모두 손 끝에 집중시켰다.
"흐아앗!!"
빼애애액~!!
[1구 던졌습니다!]
빠르게 날아오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돌았다. 신우의 패스트볼은 빠르다.
그렇기에 변화구를 생각하고 배트를 돌리다가는 타이밍이 늦는다.
즉, 모든 스윙은 패스트볼에 맞춰야 했다. 만약 변화구가 날아온다면 거기에 맞춰 스윙을 바꾼다.
그것이 신우를 상대하는 모든 타자들의 기본 마인드였다.
하지만 타자가 변화를 인식할 수 없다면? 최소한 공을 때리기 직전까지 그 변화를 간파하지 못한다면 스윙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말이다.
휘릭~!!
빠각!!
[때렸습니다!! 하지만 빗맞은 타구! 3루 라인을 타고 힘없이 흐릅니다!!]
3루수 제이슨이 대시하며 공을 맨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몸을 점프하며 상체만을 이용해 1루를 향해 공을 뿌렸다.
쐐애애애액-!
"아웃!!"
[환상적인 러닝스로우~!! 제이슨이 첫 번째 아웃카운트를 잡아냅니다!]
[타구가 워낙 느렸기에 달려오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1루로 던졌어요. 그리고 이 선택이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낸 것과 같습니다.]
그때 화면에서 배트보이를 비추었다.
정확히는 소년의 손에 들린 두 동강 난 배트를 비추고, 있었다.
[아! 테즈 선수의 배트가 부러졌었군요.]
[마지막 순간에 살짝 휘면서 떨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때 부러진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도 배트 브레이 거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는 정신우 선수입니다.]
하나의 공.
하나의 아웃카운트,
투수 입장에선 가장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신우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승부욕을 불태웠다. 뒤이어 두 번째 타자가 들어섰다. 이번에는 신우가 사인을 냈다. 토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구심의 콜이 떨어졌다.
신우는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와인드업의 뒤를 이어 킥킹을 했다.
첫 타자를 상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신의 힘을 담아 공을 뿌렸다.
빼애애애애~!!
[2구 던졌습니다!!]
이번에도 타자는 공격적으로 배트를 돌렸다. 몸쪽으로 붙어오는 공을 낚아채려는 듯 배트가 매섭게 돌아갔다.
하지만,
오히려 급소를 공격당했다.
빠각!!
둔탁한 소리가 그라운드를 울렸다.
공은 힘없이 떠올랐다.
배트는 반으로 쪼개져 그라운드 위를 뒹굴었다.
"아웃!!"
[두 개의 공!! 두 개의 아웃카운트!! 그리고 부러진 두 개의 배트!!! 정신우 선수가 배트 브레이커다운 모습을 보여주네요.]
신우가 몸을 돌려 로진을 손에 묻히고 있을 때.
"와아아아아!!"
관중석이 들썩였다.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라틴게 사내가 들어서고 있었다.
[파이리츠의 돌격대장! 조슈아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피츠버그에서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는 응원입니다.]
조슈아가 배트를 들어 자신의 루틴을 밟았다. 의외로 얌전한 루틴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알고 있었다.
저 안에 담긴 녀석의 파워가 얼마나 대단한지.
'전에는 신세 졌다.
콰직!
마운드의 흙을 고르면서도 시선은 조슈아에게 향했다.
조슈아 역시 그런 신우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만큼은 내가 이긴다.'
여전히 서로가 졌다고 생각하는 두 사람. 한 가지 확실한 건 두 선수의 대결이 이번 시리즈의 승패를 결정지을 가능성이 컸다.
'공격적으로 오겠지?'
타격자세에 들어간 조슈아가 신우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날 피하진 않을 거야. 그렇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신우는 맹수다.
자신과의 대결을 피하지 않을 거다.
문제는 코스다.
'몸쪽? 바깥쪽?
어디로 날아들지 알 수 없다.
제구력이 워낙 좋기 때문이다.
앞서 던졌던 두 개의 공이 각각 바깥쪽과 몸쪽을 찌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플레이볼!!"
신우가 상체를 들자 구심이 콜을 외쳤다. 조슈아는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변화구는 오지 않을 거야.'
신우의 공격적인 성향을 생각하면 정면승부를 걸어올 거다.
초구 변화구가 아닌 패스트볼일 확률이 높았다.
'커터는 아닐 거다. 이미 두 번이나 던진 공을 나한테까지 던지진 않을 거야.'
조슈아는 확신을 가졌다.
설마 3구 연속 커터를 던질 가능성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에게 말이다. 자만심이 아니었다.
리그 홈런 전체 1위라는 성적이 있으니 자신감이라 말할 수 있었다.
[정신우 선수, 와인드업!!]
킥킹을 하는 신우를 보며 조슈아는 결단을 내렸다.
'포심이 온다.
커터와 포심의 구속은 확연히 다르다. 만약 커터를 노리고 스윙한다면 포심에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앞에서 두 번의 커터를 던졌다. 이 이상 커터를 던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었다.
빼애애애액~!!
[던졌습니다!!]
신우의 손을 떠난 공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공의 궤적을 본 조슈아의 몸이 반응했다. 좌앗!!
다리를 디디고 허리를 돌렸다.
머리는 고정되었고 시선은 공의 가상의 궤적을 따랐다.
'포심이다."
확신을 가진 순간.
부웅~!!
상체를 돌렸다.
굉장한 소리가 토마스와 구심의 귓가를 때렸다. 배트는 마치 매처럼 먹이를 사냥하듯 공을 낚아채려 했다.
그 순간.
휘릭!!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공의 변화가 일어났다. 쥐처럼 정면으로 돌진하던 먹이가 갑자기 한 마리 뱀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송곳니로 매의 목덜미를 물었다. 빠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손에 충격이 주어졌다. 그의 시선의 끝에 덜렁거리는 배트의 헤드가 보였다. 부러지진 않았지만, 언제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부러졌다.
'젠장!!
조슈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예상밖의 공격에 당황했지만, 그대로 배트를 돌렸다.
후웅-!!
!!
배트가 돌아가고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던 헤드가 날아갔다.
조슈아는 그런 헤드를 보지도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날아가는 타구를 확인하고 있었다.
[배트 부러졌습니다! 하지만 조슈아 선수!! 끝까지 스윙을 이어가 공을 날려 보냅니다!!]]
타구는 유격수 방향으로 날아갔다.
앤더슨은 날아오는 공의 속도에 맞춰 땅을 박찼다.
"아웃!!"
[앤더슨, 점핑 캐치로 잡아냅니다!!]
작지한 앤더슨이 글러브에 들어 있는 공을 마운드로 던지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런 앤더슨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신우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1회를 끝내는데 필요한 공은 단 3개에 불과했습니다!!]
[3개의 공으로 3개의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것도 신기하지만, 세 타자의 배트를 모두 부러뜨린 것도 진귀한 장면이네요.]
배트 브레이커.
별명의 이유를 확실히 보여주는 1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