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31화
두 팀의 대결은 박빙이었다.
뼈억 ~!!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삼진!! 레이건 선수 5번째 탈삼진을 기록하면서 3회를 마감합니다!]
레이건이 이닝을 마감하면,
빠각!!
[배트 부러지면서 타구 높게 떠오릅니다!!]
"아웃!!"
[루카스가 전진하면서 안정적으로 타구를 처리합니다! 오늘 경기 4개의 배트를 부러트리며 이닝을 마감하는 정신우 선수!!]
신우가 배트를 부러뜨리며 상대 타자를 압살했다.
[오늘따라 정신우 선수가 내츄럴 커터를 자주 사용하면서 배트가 부러지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네요.]
[파이리츠 타자들은 오늘 배트값으로 지출이 제법 되겠네요.']
[하하! 그렇겠군요.]
9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두 투수의 피칭은 완벽 그 자체였다.
[스타일이 같으니 재밌누.]
[컨트롤+c, 컨트롤+v]
[그런데 羔?커터를 주구장창 던짐?]
'제 배트가 부러졌으니까요.'
신우는 선발이 된 이후 다양한 구종을 던졌다. 하지만 커터는 여전히 그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았다. 그리고 오늘 경기에서는 더욱 커터를 활용했다.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눈눈이이커커임?]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요걸 모르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커터에는 커터. 라는 뜻이지.]
정말 별걸 다 줄여서 이야기하시네라는 말이 목젖을 때렸다.
'맞습니다.'
[너 방금 속으로 욕했지?)
[눈으로 욕한 듯.]
[너보고 꼰대라고 생각한 거 같은데?]
[솔까 좀 오버긴 했지.]
[뭐라고?!]
투기장이 열리고 있을 때.
앤더슨이 다가왔다.
"두수 놈들이 너무 잘 던지니까, 우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없네."
"이럴 때 한 방 날리면 오히려 집중되지 않을까?"
"오~ 나랑 생각이 같네."
앤더슨의 말에 신우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자존심이 상했던 만큼 녀석 역시 그랬을 거다.
"그럼 어디 스포트라이트를 뺏으러 가볼까."
타석으로 걸어가는 녀석의 모습에 신우는 기대를 가졌다.
앤더슨은 좋은 타자다.
그가 타선에 합류하면서부터 투수들이 얼마나 까다로워하는지 직접 봤었다.
'레이건의 컨디션은 최상이다. 그런 레이건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리듬을 깨야 하는데."
[정답이다. 그런 리듬을 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
[앤더슨이 어떤 방법을 쓰는지 보면 도움이 될 듯.]
신우는 집중해서 앤더슨의 타격을 바라봤다.
[4회 초 타순이 한 바퀴 돌고 다시 1번타자 앤더슨부터 공격이 시작됩니다.]
[사이클이 한 번 돌았으니 충분히 레이건의 공에 익숙해졌을 겁니다.]
[그럼 이번 이닝에서 뭔가 보여줄 수 있겠군요.]
[기대해볼 만할 겁니다.]
타석에 들어선 앤더슨은 묘하게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타격을 할 때마다 타석에서 물러나 보호장비를 고쳐 착용하는 식으로 시간을 지연시켰다.
'역시 저런 방법으로 가는 건가.'
[저게 정석이긴 하지.']
[특히 투수가 나이가 어리고 광속구 위주로 던지면 저게 잘 먹힘.]
[나이가 어릴수록 흐름을 타기 쉬움.]
[그 흐름이 깨지면 반동도 커지고.]
'광속구를 던지는 건 무슨 상관이 있나요?"
[간단함. 광속구 던지면서 정면승부를 주로하면 승부욕이 강한 타입이 많거든.]
[님도 그렇잖슴.]
신우는 잠시 생각했다.
자신이 승부욕이 강했던가?
그때 한 줄의 채팅이 올라갔다.
[눈눈이이커커]
'아예'
저 말을 들으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승부욕이 강하고 정면승부를 즐기는데 흐름이 깨진다. 그렇다면……
레전드들의 설명을 듣고 그림이 그려졌다. 앤더슨은 자신의 구상대로 서서히 레이건의 흐름을 끊어놓았다.
'좋은 타자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영리하게 상대를 요리할 줄이야.'
[너희 감독이 왜 쟤를 1번으로 쓴지 확실해지네.]
[경기를 할 줄 아는 놈임.]
[선두타자가 저렇게까지 영리하면 투수 입장에선 머리가 깨지지]
레이건은 서서히 흐름이 무너졌다.
단번에 일어난 게 아니다.
앤더슨은 이번 공격에서 천천히 레이건의 성질을 건드렸다.
그리고 침착하게 공들을 처내며 7구까지 승부를 끌어갔다.
[다시 파울!! 7구까지 오는 승부에서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레이건 선수의 변화구를 앤더슨이 잘 쳐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앤더슨이 유리해지게 되는 거죠.]
투수와 타자.
둘의 대결이 길어지면 타자가 유리해진다. 두수는 점점 경우의 수가 사라지지만, 타자는 그것을 방어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앤더슨은 기다릴 줄 아는 타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타석에선 무척이나 능글맞았다. 그가 구심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그러자 구심이 손을 들어올렸다.
"타임!!"
[앤더슨이 다시 타임을 요청합니다. 이번 이닝에서 타임 요정이 잦네요.]
[승부가 길어져서 그런 걸 겁니다.]
그게 아니다.
앤더슨은 천천히 대기 다석 쪽으로 걸어왔다. 그 움직임이 무척이나 느긋했다. 앤더슨!!"
뒤에서 구심이 소리치자 그제야 조금 속도를 높였다. 그러고는 토마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송진 좀."
"여기."
토마스가 대기타석에 놓인 스프레이를 던졌다. 그걸 받으려는 순간.
!!
떨어뜨렸다.
[일부러네.']
[속보이누 ㅋㅋ)
수비의 명수인 앤더슨이 스프레이를 놓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백지겠네'
[이미 빡쳤지 ㅋㅋ]
마운드를 바라봤다.
레이건이 스파이크에 묻은 흙을 털어내기 위한 장판을 신경질적으로 밟고 있었다.
[얘는 너무 능글맞고 쟤는 너무 어리네.]
감정표현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 하지만 투수라면 최소한 마운드에서는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신우가 배웠던 거다.
앤더슨! 빠르게 해라!!"
두 번째 경고,
그제야 앤더슨이 타석으로 돌아갔다.
"우우우우~!!"
파이리츠 팬들의 야유가 쏟아졌지만, 앤더슨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FA를 앞둔 베테랑.
그리고 올 시즌 포텐이 터진 신예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승부는,
억~!!
"볼!! 베이스 온 볼!!!"
앤더슨의 승리로 끝났다.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ㅋㅋㅋ 천천히 벗네.]
[마지막까지 신경을 긁어버리누..]
타석에서 천천히 보호장비를 벗어 볼보이한테 건네고는 조경하듯 1루로 달려갔다.
와… 저라도 빡칠 듯.
[그렇게 경기가 말리는 거지.]
[앤더슨 덕분에 토마스는 한결 편하게 치겠네.]
레전드들의 예언은 현실이 됐다. 멘탈이 흔들리기 시작한 레이건은 초구 커터가 실투로 이어졌다.
그리고 토마스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따악~!!
[때렸습니다!! 라인드라이브로 담장을 직격!!! 앤더슨은 3루로, 타자주자는 1루에 들어갑니다!!]
[너무 잘 맞아서 아쉽네요.!
너무 잘 맞은 타구.
딱 맞는 표현이었다.
너무 잘 맞아서 빠르게 날아갔다.
그래서 담장을 바로 때렸다.
문제는 수비들도 뒤에서 수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덕분에 토마스는 1루에서 멈춰야 했다.
[하지만 너한테는 오히려 호재지.]
[지
[2, 3루에 있으면 거르겠지만, 1, 3루면 승부하는 게 이득이니까.]
[더블플레이 되면 개꿀]
물론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타석에는 정신우 선수가 들어섭니다!!]
더블플레이라니.
신우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기록이었다. 그것을 안다는 듯 파이리츠 더그아웃이 바빠졌다.
[투수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하네요.]
[볼넷에 이어 안타까지 맞았고 거기에 정신우 선수를 상대해야 하니, 레이건 선수를 침착하게 해줄 필요가 있겠죠.]
파이리츠의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방문해 레이건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하고 있었잖아. 너무 긴장하지 말고."
"아직 공 좋아, 자식아. 1회처럼 저 새끼 배트 분질러버려."
"알겠습니다."
자존심을 세워주고 몸을 돌린 투수코치가같이 내려가는 포수에게 말했다.
"여자하면 고의사구로 내보내."
"알겠습니다."
정신우와 굳이 정면승부를 할 필요 없었다. 차라리 만루를 만드는 게 영리한 대응일 것이다.
[여차하면 고의사구로 내보내라고 했다에 내 전 재산과 오른손을 걸지. 폴리면 뒤지시던가!!]
[폴리면 뒤지는 게 아니라 패가 없자너.]
[뻑하면 백이지.]
[문제는 그걸 투수가 듣냐는 거지.]
[어떨 거 같음?]
신우가 배트를 쥐면서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자세를 잡으면서레이건을 바라봤다.
'저라면 승부합니다.
레이건은 자신과 흡사했다.
그건 단순히 구종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다. 정면대결을 선호하는 성향도 비슷했다. 그리고 앤더슨과의 대결을 통해 한 가지 더 비슷한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
물론 저라면 흥분하진 않았을 테지만요.
[]
짧은 하나의 채팅.
그런데 왜 이렇게 빡이 치는 걸까?
[흥분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던 정신우씨 어디감?]
[바로 흥분하쥬?
[너도 쟤랑 똑같쥬?)
헛기침을 하고 있을 때,
"플레이볼!!"
경기가 재개됐다.
레이건은 예상대로 제구가 흔들렸다. 페억~!!
빼어억!!
[2구 연속 볼이 들어갑니다. 패스트볼도 그렇고 변화구도 조금 밋밋해진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연속안타를 맞은 게 영향이 생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단순히 그게 아니다.
앤더슨이 살살 긁어놓은 신경이 폭발한 것이다. 덕분에 제구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연속안타를 맞고 흔들린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앤더슨 녀석이 너무 흔들어났어.'
파이리츠의 토비 감독이 인상을 구겼다.
'어쩔 수 없지.
토비 감독이 손을 어지럽게 움직였다.
'고의사구로 내보내.'
이미 투볼이 된 상황.
굳이 위험하게 신우와 승부할 필요는 없었다. 고의사구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구심에게 이야기해서 그냥 내보내는 거다. 다른 하나는 아예 포수가 캐처박스를 벗어나서 받게 하는 피치아웃이다.
토비 감독은 두 가지 모두를 택하지 않았다.
'어린 녀석의 자존심도 세워줘야지.'
레이건은 앞으로도 팀을 위해서 던져야 했다. 멘탈이 아예 나가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정상적인 투구인 것처럼 유도할 생각이었다. 포수는 그걸 충분히 할 정도로 베테랑이었고 말이다.
'피곤하다. 피곤해.
어린 애들을 데리고 야구를 하려니 피곤한 토비 감독이었다.
그만큼 돈을 주니 버티는 거지, 그게 아니라면 진즉 그만뒀을 거다.
어쨌건 사인을 끝낸 토비 감독이 다시 경기에 집중하는 사이.
신우는 말없이 상황을 지켜봤다.
'고의사구려나."
[그럴 듯.]
[포수가 구심한테 이야기하지 않는 걸보면 피치아웃식으로 가려나 보네.]
[그것도 아닌 듯?)
[앉아 있는 걸 보면 정상적인 투구로 고의사구를 하겠네…
[ㅋㅋㅋ 에이스가 어리니 자존심 세워주기 어렵누.]
레전드들의 채팅을 보며 그림이 그려졌다. 그리고 다시 레이건을 바라봤다.
'그렇게 될 거 같지는 않은데.'
[무슨 소리임?]
'파이리츠가 자기네 에이스를 너무 모르는 거 같은데요.'
[8?)
'너무 어리게 봐서 그런가. 너무 단순하게 판단했네요.' 채팅에 물음표가 쭉 이어졌다.
'선배님들 말씀대로라면 레이건의 자존심을 살려주기 위해 앉아서 고의사구를 유도한다는 건데. 그렇게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선 투수가 그걸 몰라야 되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걸 모르면 레이건이 바보라는 소리죠."
그럼?]
'그건 오히려 자존심을 세워주는 게 아니라 건드는 거죠.
[오~]
[일리가 있네.]
[정답일 듯.]
[레이건이 오히려 반발심에 정면승부 들어올 수도 있을 듯?]
신우의 생각도 같았다.
만약 자신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든 타자를 잡고 싶을 것이다.
'그 뒤에 찾아올 일은 생각하지 않겠지.'
아직은 어리니까. 눈앞에 있는 일만 본다.
"플레이볼!!"
경기가 재개되고 파이리츠 배터리가 사인을 교환했다.
사인은 길어졌다.
몇 번이나 고개를 흔들고 다시 사인이 나갔다.
[사인이 길어지는군요.]
[뭔가 잘 안 맞는 거 같네요..]
하지만 결국 레이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세트포지션에 들어갔다. 그 모습에 신우는 확신을 가졌다.
'승부를 걸어온다.
뒤이어 레이건이 슬라이드 스텝과 함께 공을 뿌렸다. 빼애애액~!!
공이 그의 손을 떠나는 순간.
토비 감독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건….!
몸쪽에 붙는 패스트볼이었다.
신우는 그걸 놓치지 않고 배트를 돌렸다. 그 순간.
홈플레이트 앞에 도달한 패스트볼이 몸쪽으로 더 휘었다.
거의 동시에 신우의 발도 오픈이 되면서 스윙의 각도를 만들어냈다.
첫 번째 대결과 거의 흡사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따아악~!!
"와아아아~!!"
경쾌한 소리와 함께 관중석이 들썩였다. 그리고 날아간 타구는 단숨에 담장밖으로 사라졌다. 쓰리런이었다.
'젠장!'
토비 감독이 신경질적으로 더그아웃의 펜스를 내려쳤다.
'내 실수다. 레이건이 아직 어리다는 걸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차라리 포수가 마운드에 방문해 설득시키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피지아웃을 하거나.
어쨌건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결국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후회가 남았다. 하지만 더 경악한 것은.
'마치 레이건이 승부를 걸어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스원했다. 그것도 커터를 처음부터 노리고.'
그렇지 않으민 그런 오픈스탠스가 나올 수 없었을 거다.
'설마 모든 걸 예측한 건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딱 하나 그럴 수도 있다.
십 년 이상의 경력이 쌓인 베테랑이라면 투수의 성향을 읽고 그럴 수 있지만, 이제 갓 타자를 시작한 녀석이 그런 통찰력이 있을 리가 없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만약 예측한 게 맞다면…… 뱃속에 능구렁이 수백 마리가 들어가 있는 거겠지."
자신의 생각에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사실 토비 감독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능구렁이 수백 마리가 아니라 백 년이 넘는 세월을 야구만 보고 산 레전드들이 들어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레전드들은,
[완승이누.]
[1회에 당한 커터를 그대로 받아치면서 복.수.성.공!!]
[요번 건 멋졌다!]
[지렸누!!]
신우에게 열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