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로 메이저리거 228화
뉴욕 양키스,
명실상부 메이저리그 최고의 팀이다.
이런 양키스에게는 전 세계 야구팬이 아는 별명이 있었다.
The Evil Empire. (악의 제국)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표현할 때 사용했다고 알려진 표현이다.
양키스가 이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앙숙인 레드삭스의 래리 루지노 사장이 양키스를 비아냥하기 위해 '악의 제국의 촉수가 라틴아메리카로 뻗치고 있다.' 라고 말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양키스가 오히려 좋은 별명이라고 말하면서 인정하는 바람에 그들을 상징하게 되었다.
하지만 양키스는 2010년 후반에 들어 악의 제국이란 명성에 맞지 않는 행보를 걸어왔다.
지를 때는 지르지만, 예전처럼 막 지르지는 않고 나름 합리적인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양키스의 모습에 팬들은 실망했다. 그들이 돈 지랄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양키스가 다시 악의 제국이되어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런데,
[몬트리올 갤럭시는 새로운 제국이 되었는가?]
다른 구단이 그 자리를 픽하니 차지했다.
[몬트리올 갤럭시의 크리스토퍼 단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승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투자도 할 것이다. 라고 밝히며 투자는 올 한 해에 끝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양키스가 했던 것처럼 스스로 악의 제국임을 자처한 것이다.
[단장이 저렇게 이야기할 정도면 위에서 이야기가 내려왔다는 거네.]
'그렇겠죠?'
[00 단장이라 해도 결국 운영비는 위에서 결제를 하는 거니까.]
[신생구단이니 아직 제대로 된 수입원도 없을 테고.]
[양키스도 결국 모기업의 지원이 없었다면 제국이 될
수 없었겠지.]
메이저리그 구단은 자생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예산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것을 초과할 때는 구단주의 입김이 강하다. 그렇기에 구단주가 어떤 타입인지에 따라 구단의 움직임이달라진다.
[확실히 널 데리고 온 이유가 있었어.]
빌 헤리스 구단주의 확실한 의지는 선수단에게도 전해졌다.
"피츠버그랑 드디어 동률이 됐네."
"녀석들과 시리즈가 언제 붙지?"
"다음 시리즈일걸?"
"이제 녀석들을 이기면 우리도 포스트시즌에 가는 건가?"
"최소한의 조건은 만족시키는 거지."
과감한 투자가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클럽하우스에서 가을야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구단주의 과감한 투자는 그의 의지를 알게 해주었다.
[거기에 에이스인 네가 앞장 서면서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된 거다.]
이제 선수들 역시 우승을 노리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피츠버그 파이리츠 1882년 창단한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스몰마켓 중 한 곳이었다.
전성기였던 1990년 이후.
피츠버그는 꾸준히 약팀으로 시즌을 보내왔다. 스몰마켓이다 보니 선수가 크면 트레이드하고 또 성장하면 트레이드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올해 피츠버그에 기적이 찾아왔다.
[루키 해적들의 목에 일제히 현상금이 한 언론에서 그들의 활약을 한 줄로 표현한 제목이었다.
과거 해적들이 실력을 얻고 명성을 쌓으면 현상금이 걸리는 걸 야구에 비유한 것이다.
한 마디로 피츠버그의 루키들이 포텐셜을 터뜨리고 있었다.
거기에 북부지구라는 신생지구에 소속되면서 단숨에 상위권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피츠버그 지역언론은 올 시즌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수 있을 거란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미라클 플레이어는 해적선을 침몰시킬 것인가?]
중요한 대목에서 갤럭시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에서 미라클 플레이어라 표현한 그 선수는 3차전에서 마운드에 오를 예정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그는 경기에 나선다.
타자로서 말이다.
[파이리츠와 갤럭시의 북부지구 정상을 놓고 붙는 시리즈! 6회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까지 박빙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양팀 모두 홈런 2방씩을 주고받으면서 4점씩을 냈습니다. 동점인 스코어에서 난타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죠.]
[아직 중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두 팀 모두 세번째 투수를 마운드에 등판시킵니다.]
파이리츠는 6회 초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그리고 6회 말.
갤럭시의 마운드 역시 교체됐다.
[갤럭시는 미구엘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올 시즌 마이너리그에서 콜업된 이후 안정적인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미구엘 선수, 오늘 경기에서도 1이닝을 잘 막아주길 바랍니다.]
투구폼을 바꾼 이후 미구엘은 안정적인 투수가 되었다.
특히 긴 팔에 사이드암으로 던지면서 특이한 투구폼이 되어 타자들의 눈을 현혹시키고 있었다.
덕분에 그는 콜업 이후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올리는 중이었다.
"후우……!"
뻐억~!!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나가는 미구엘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신우가 중견수 쪽으로 조금씩 자리를 이동했다.
'우타자니까. 맞더라도 우익선상보다는 중견수 쪽으로 오겠죠?'
[오올~]
[이제 혼자서 알아서 하네.]
[우리 시누 혼자서도 잘 해요.]
'제가 무슨 유치원생입니까?"
[우리한테는 아직 그렇게 보이거든.]
에혀…… 언제쯤 선배님들한테 인정을 받을까요?
[네가 지금 성적을 5년쯤 올리면 됨.]
[ㅋㅋㅋ 5년은 너무 짧은 거 아니냐? 10년은 해야지.]
0
레전드라 불리는 모든 선수는 꾸준한 활약을 이어나갔다.
단순히 1, 2년 괴물 같은 활약이 아니라 짧으면 7~8년, 혹은 10년 이상의 활약을 해야지만 레전드라 불릴 수 있었다.
즉, 누적스탯이 충분히 쌓여야 된다는 것이다. 현재 신우의 활약은 누가 뭐라 해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활약들이었다.
하지만 누적되지 않았다.
언제 고꾸라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실제 많은 전문가는 신우가 현재와 같은 스케줄을 이어갈 경우 서른이 되기 전에 큰 부상이 찾아올 것이라 예상했다.
네티즌의 엄청난 질타를 받았지만, 스포츠의학계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정석처럼 받아들여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1~2년 괴물 같은 활약을 펼치다 사라진 선수들이 너무 많거든.]
정론이었다.
괴물 같은 활약이라는 건 결국 몸의 한계를 넘어선 활약을 했다는 소리다.
차로 예를 들면 시속 200km가 넘는 속도로 1년을 달린 차와 80km로 정속주행을 한 차의 상태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신체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리하게 출력을 사용하게 되면 결국 일찍 망가지게 되어 있었다.
현재 신우의 활약은 미친 듯한 활약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이 보기에는 한계를 넘어선 질주로밖에 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질주하다 사라진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중 대표적인 선수가 바로 팀 린스컴이었다. 작은 체구에서 무리한 광속구를 뿜어내다 결국 부상과 함께 사라진 에이스, 실제 그의 사례를 예로 들어 신우의 부상을 염려하는 이들도 많았다.
[적정하지 마라. 너의 신제는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공부해서 얻어낸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강화됐으니까.]
[사실 이런 엄청난 훈련을 견뎌낼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견뎌냈으니 괜춘한 거임.]
'잠깐만요. 만약 견뎌내지 ….'
뭔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질문을 끝낼 수 없었다.
미구엘의 2구를 타자가 받아졌기 때문이다.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타구가 낮고 빠르게 날아들었다. 신우의 발은 반사적으로 타구가 날아오는 곳을 향해 뛰었다.
정상수비를 하고 있던 루카스가 한박자 늦게 달려왔다.
그 사이 이미 타구의 낙구 지점에 도착한 신우는 가볍게 공을 포구했다.
"아웃!!
2루심의 손이 올라갔다.
한 마디로 이번 타구는 중견수가 처리했어야 된다는 소리였다.
[정신우 선수가 뜬공을 가볍게 처리합니다!]
[이번 타구는 잘 맞았는데, 그걸 정신우 선수가 너무 쉽게 처리해 버리네요.]
[최근 정신우 선수의 수비가 한층 안정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이전에는 다이나믹한 허슬플레이를 자주 보여주었는데, 요즘은 어려운 타구도 쉽게쉽게 잡아내고 있어요. 무엇보다 수비범위도 넓어졌고요.]
그 뒤로 어려운 세이버매트릭스 수치들을 이야기했다.
신우의 최근 수비들은 아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수준 높은 수비였다.
문제는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저 쉽게 잡아내는 것이란 점이었다.
당연하게도 이전의 다이나믹한 수비가 나오지 않아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요즘 시누 수비 너무 얌전해진 거 같지 않음? Loz
-예전에는 허슬플레이도 자주 보였는데,
-허슬플레이 하다 어째 나간다. L 가슴뼈도 박살남.
-야알못들아. 시누 UZR이 몇인지 보고 와라.
세이버 애들 또 왔네.
질리지도 않는다.
-뭐가 됐건 예전의 수비가 그립긴 하다. 팬들이 인터넷에서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 6회 말이 마무리됐다.
[갤럭시의 미구엘 선수가 6회 말을 지우며 이닝은 마무리됩니다.]
경기는 이제 후반으로 이어졌다.
갤럭시와 파이리츠의 대결,
북부지구 1위를 놓고 싸우는 이번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한 건 1차전이다.
전문가들이 이야기하기 전부터 양팀의 감독들은 잘 알고 있었다.
'피츠버그의 나올 수 있는 투수는 3명.'
제이비어는 상대 팀의 투수명단을 확인했다. 불펜에서 나올 수 있는 투수가 세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도 나갈 수 있는 불펜이 그 정도라는 건데…'
이기는 경기에 나가야 할 불펜은 한정되어 있었다. 세 명이라면 7이닝부터 9이닝까지 던질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상황이 동점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경기가 이어질지 아무도 몰랐다.
'내일 경기도 생각해야 한다.
감독 입장에선 2차전 역시 생각을 해야 했다. 오늘 이기더라도 내일 지면 결국 도루묵이 될 테니 말이다.
'이럴 때 점수가 나와주면 딱인데.'
제이비어는 타순을 확인했다.
7회 갤럭시는 9번 타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타석에는 그동안 1번을 맡아왔던 데미안이 들어섰다.
[데미안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앞서 두 번의 타석에선 모두 범타로 물러났던 데미안 선수인데요. 아무래도 타순의 변경이 영향을 끼친 걸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올 시즌 내내 1번에서 뛰었던 데미안이거든요. 갑자기 9번 타순으로 옮겨졌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죠.]
[제이비어 감독이 과감한 타순변경을 단행했는데, 이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갤럭시는 이번 트레이드 시장에서 앤더슨과 토마스라는 특급 타자들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들을 전진배치하기 위해서는 타순의 변경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죠.
특히 9번에 출루 능력이 좋은 데미안을 배치하면서 하위타순에서도 공격이 상위타순으로 이어지게끔 만든 것이 탁월한 선택이라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
그때였다.
데미안이 투수의 3구를 받아쳤다.
딱!!
[데미안 때렸습니다!! 원 바운드 된 타구는 유격수 옆을……! 지나갑니다!! 내야를 가르는 안타! 오늘 경기 첫 번째 안타를 때리고 1루에 출루하는 데미안 선수!!]
처음으로 제이비어 감독이 원했던 시나리오가 나왔다.
[타석에는 갤럭시 유니폼을 입은 앤더슨 존슨이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 첫 번째 타석에서 솔로홈런을 기록했던 앤더슨 선수, 과연 주자 있는 상황에서 어떤 타격을 보여줄지 기대됩니다!]
앤더슨은 본래 3번 타자였다.
장타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제이비어는 그런 그를 1번에 배치했다. 그 이유는 그의 출루능력이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제이비어의 노림수는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퍼억!!
"볼!! 베이스 온 볼!!"
[떨어지는 공에 배트를 참아내는 앤더슨!! 이것으로 무사 1, 2루의 찬스를 맞이합니다!]
앤더슨은 거포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그의 세부스탯을 보면 오히려 출루율이 더욱 눈에 띄였다.
그만큼 선구안이 좋고 자신의 존이 확실한 선수였다.
[타석에는 2번 타자 토마스 에드윈이 들어섭니다! 오늘 경기에서 제이비어는 타순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그리고 7회에 드디어 그 진가를 드러내고 있었다.
딱-!!
[4구 강타!! 중견수 앞에 떨어집니다!! 데미안 선수는 3루에서 멈춥니다! 무사 만루의 찬스를 맞이하는 갤럭시!!]
9번 데미안, 1번 앤더슨 그리고 2번 토마스, 이러한 타순을 꾸린 이유는 단 한 명의 선수를 믿은 것이다.
[그리고 타석에는 갤럭시의 3번 타자! 정신우 선수가 들어섭니다!!]
바로 신우를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