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수로 메이저리거 - 138화 >
캐나다와의 3연전이 끝나고 메츠는 뉴욕으로 돌아왔다.
6월 10경기, 올스타전까지는 모두 20경기 가량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라면 신우는 최대 4경기까지 등판이 가능했다.
‘시즌 12승.’
신우는 네이버 사이트에 들어가 자신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러자 MLB.OCM에 올라간 프로필사진과 함께 간단한 신상이 떴다.
그 밑에는 신우의 간략한 시즌 성적이 나타나 있었다.
「12승(리그 1위)」
「110이닝(리그 1위)」
「168탈삼진(리그 1위)」
「평균자책점 0.41(리그 1위)」
그 외에도 1위를 달리는 기록이 수두룩했다.
“흐흐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신이 이룬 성적이지만 믿기지 않았다.
2군의 벽도 넘지 못했던 자신이 메이저리그를 호령하다니 말이다.
[이게 다 우리 덕이지.]
[크허험! 우리에게 감사의 절을 해보거라.]
‘선배님덜, 왜 자꾸 동양식으로 가시려고 하십니까?’
[동양식이 있어 보이더라고.]
[뭔가 확실하게 인사를 받는 거 같잖슴.]
“에혀...”
저런 모습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우리 모습이 뭐?]
[불만있음?]
[담배도 있음.]
[엌ㅋㅋㅋ 아재개그 꿀잼.]
[허니잼-!]
한물 간 개그를 하며 웃어대는 그들의 모습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잉-!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때마침 걸려오는 전화에 신우는 망설이지 않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예, 김 실장님.”
[신우씨,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물론이죠. 무슨 일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방송국쪽에서 취재요청이 들어와서요.]
“취재요?”
[네. 신우씨의 훈련을 체험하는 형태로 촬영도 하면서 인터뷰를 하고 싶다 하네요. 구단측에서는 이미 오케이를 했다던데, 혹시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아직 이야긴 듣지 못했어요. 내일 구장에 나가면 이야기해주지 않을까요?”
[아...하긴 원정이라 마케팅 부서와 연락이 안 되었겠네요.]
원정경기에 동행하는 건 구단직원들 중 일부다.
그중에 마케팅 부서는 웬만해선 따라오지 않았다.
단장이 매니저 역할을 겸하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생기면 통화로 해결을 했다.
“어쨌건 저한테 인터뷰 요청이 들어온 거네요?”
[네. 기획서는 따로 받은 게 있는데, 보내드릴까요?]
“예. 그러면 제가 검토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네. 참, 그리고 저번에 차 한 대 맞추신다고 하셨죠?]
“아, 예.”
[제가 연락처도 하나 보내둘게요. 뉴욕에서 유명한 딜러인데, 매장방문도 필요없고 따로 미팅을 잡아줄 거예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신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내가 방송국 인터뷰라...’
[한국쪽 방송국이 여기까지 와서 찍는 건 처음 아님?]
[스프링트레이닝 때 캠프에서 찍긴 했지만, 메츠 구장으로 찾아오는 건 처음인 듯?]
[우리 시누 출세했네?]
‘정말 출세했네요.’
더 기쁜 건 자신이 이런 일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전이라면 결정이랄 것도 없었다.
그냥 물어보면 해야 했다.
자신의 의지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감독님이 시켜서, 코치님이 시켜서.
혹은 PD의 압박을 받으며 무조건 해야 했다.
기간 역시 자신의 의사는 단 1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모든 걸 결정할 수 있었다.
[좋냐?]
‘좋죠.’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회에선 이 당연한 일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할 생각 없음?]
[거절할 거임?]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촬영을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다.
단지 결정을 하고 싶을 뿐이었다.
“제가 원하는 시일에 하면 그만이죠.”
[정답-!]
[굳이 상대쪽에 맞춰줄 필요는 없지.]
“예.”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여유롭게 기획서를 읽어내려갔다.
* * *
다음 날.
신우는 구장에 나와 훈련을 시작했다.
간단한 웜업으로 체온을 올린 신우는 본격적인 인터벌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했다.
그때 대니얼이 다가와 초시계를 잡았다.
“타임 재줄게.”
그의 제안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
“오케이. 고!”
대니얼의 신호와 함께 신우의 인터벌이 시작됐다.
오늘은 사이클이 중심이 되는 훈련이었다.
사이클의 RPM을 150 밑으로 떨어트리지 않고 1분을 타야 했다.
“더 속도를 올려! 더!”
“헉! 헉!!”
대니얼은 사이클의 계기판을 보며 신우를 독려했다.
혼자 할 때보다 옆에서 누군가 도와주니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계기판을 보거나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오케이! 바로 다음!”
“훅! 훅!”
사이클 1분이 지나자 신우는 곧장 자전거에서 내려 바벨을 들고 스쿼트를 했다.
1초에 1.5개씩.
60초에 총 90개가 목표였다.
자세보다는 개수를 채운다는 느낌으로 진행했다.
이미 사이클을 타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뛰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쉬지 않고 다시 바벨 스쿼트를 하니 심장이 미치도록 요동치기 시작했다.
“속도 느려진다! 더 빠르게!”
“훅!! 훅!!”
대니얼은 그런 신우에게 더 빠르게 하라는 주문을 했다.
[이쉑 저번의 복수하누.]
[그런데 저렇게 하는 게 맞지.]
[역시 우리가 쪼을 때보다 옆에서 트레이더가 있으니 편하긴 하네.]
[얘 정신줄 놓으면 우리 채팅도 못 보잖아.]
‘지금은...!’
“훅!!”
‘보거든요!’
“훅!”
[여유있나 보네?]
[점프 버핏 추가하자.]
‘제에에엔장!’
괜한 소리를 한 덕분에 프로그램에 점프 버핏이 추가된 신우였다.
* * *
“흐억...흐억...!”
신우는 마치 짐승이 울 듯 신음을 토해냈다.
바닥에 큰 대자로 누워있는 그의 주위가 젖어 있다는 게 얼마나 고강도의 훈련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철퍽!
“시누! 이 정도면 개인청소부를 고용하는 게 어때?”
그때 흠뻑 젖은 대걸레를 내려놓으며 젝슨이 말했다.
그는 대걸레로 땅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사람의 몸에서 어떻게 이런 식으로 땀이 나올 수가 있는 거야?”
“너도 이 녀석이 하던 프로그램을 그대로 해보면 나올 걸?”
“어휴, 차라리 죽고 말겠습니다.”
대니얼의 말에 젝슨이 손사래를 쳤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힘든 훈련이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신우는 5분동안 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물 좀 마셔. 탈진 오겠다.”
“때...땡큐...”
감사의 인사를 전한 신우가 대니얼이 건넨 물을 들이켰다.
수분을 어느 정도 섭취하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흐아...죽을 뻔 했다.”
“오늘은 좀 심하게 한 거 아니냐?”
“아아...코치가 좀 사악해서 말이지.”
“응? 무슨 소리야? 코치가 보고 있었어?”
대니얼이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이내 말실수를 한 것을 깨달은 신우가 고개를 저었다.
“어제 통화를 하면서 내가 말실수를 좀 했거든. 이제 훈련이 좀 적응됐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바로 프로그램을 바꾸더라고.”
“그랬군. 그나저나 널 가르쳐주는 코치도 엄격한가 보네. 조금 적응됐다고 말했더니 이 정도로 강도를 높이다니 말이야.”
“네가 생각해도 너무했지?”
“응? 어어.”
“하-!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니까. 진짜 우리 코치 훈련프로그램 짜는 걸 보면 사람인지 악마인지 분간이 안 된다니까? 아마 저승에서 날 어떻게 굴릴지만 연구하던 악마가 나타난 게 분명해.”
대니얼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이 절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신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는 걸 말이다.
그런 대니얼과 반대로 신우의 눈에만 보이는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뭐라고?!]
[와-! 이쉑 은근히 우리 돌려까네.]
[대놓고 까는데?]
[저승에서 우리가 할 일이 없냐?! 널 굴릴 궁리만 하게?!]
[어느 정도 맞말 아님?]
[뭐라고?!]
[반박할 수 없으니까 열 내쥬? 할 말 없어지니까 열폭하쥬?]
[아놔! 이색기가!]
신우는 자신들끼리 싸움이 붙은 레전드플레이어들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런 신우의 모습에 대니얼은 순간 고민했다.
‘얘가 원래 이렇게 이상한 놈이었나?’
예전에는 몰랐는데 눈앞에서 보니 느껴졌다.
신우의 똘끼가 말이다.
순간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뒤로 미루었다.
보여줄 게 있었기 때문이다.
“타임 좀 재줘.”
“어?”
“나도 인터벌을 시작해야지.”
“아, 어.”
고개를 끄덕인 신우가 초시계를 들었다.
그리고 대니얼이 건네준 스마트폰을 받았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대니얼의 몸상태를 체크해주는 어플이 실행되어 있었다.
‘예전보다 심박수가 좀 내려갔네.’
이게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심폐지구력이 올라갔다는 의미였다.
심박수는 한 마디로 심장이 뛰는 횟수를 말한다.
평균적인 심박수보다 현저히 낮으면 몸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평균보다 조금 낮은 상태, 그것도 운동선수가 그런 심박수를 가지고 있다면 조금 다르게 본다.
‘스포츠심장을 만든 건가?’
[가능성은 충분하겠네.]
신우가 만들었던 스포츠심장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누구라도 훈련을 통해서 만들 수 있었다.
물론 그 훈련이 죽을만큼 힘들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고!”
삐빅-!!
신우의 신호와 함께 대니얼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이전과는 전혀 달라진 프로그램이었다.
더 짧은 시간에 강도를 높였다.
분명 신우가 알려주었던 프로그램과는 궤를 달리했다.
[네 예상이 맞는 거 같다.]
[다른 사람이 프로그램을 손봐준 듯.]
[그래도 베이스는 우리가 알려준 게 그대로 남아있네.]
‘역시 불펜투수에게 맞춘 거겠죠?’
[ㅇㅇ 그런 거지.]
[저게 맞긴 함.]
대니얼은 신우가 가르쳐준 것에서 멈춰 있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에게 맞춰 발전시켰다.
베테랑답게 말이다.
“훅! 훅!!”
거칠어지는 호흡만큼이나 많은 땀이 땅에 떨어졌다.
베테랑이라고 훈련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떨어지는 신체능력을 커버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훈련을 진행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란 그런 곳이었다.
“오케이!!”
“흐억! 흐억!!”
자신의 프로그램을 끝낸 대니얼이 방금 전, 신우가 그러했던 것처럼 바닥에 대자로 누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대니얼에게 스포츠음료를 건네던 그때였다.
“시누! 이번에는 내 차례야!”
“어?”
뒤에서 대걸레를 들고 있던 젝슨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넸다.
“뭘 그렇게 놀라?”
“너도 계속 하고 있었어?”
“물론이지! 네가 알려준 훈련 덕분에 요즘 지치지를 않아!”
어쩐지 최근 체력이 붙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젝슨이다.
그 역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젝슨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신우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준비 됐지?”
“언제든지!”
“레디...!”
뒤이어 스마트폰을 터치했다.
“고!!”
트레이닝 센터의 바닥에는 땀이 마르지 않았다.
* * *
뻐어억-!!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게임 셋!!”
[경기 끝났습니다!! 레이먼드 선수가 9회 세 타자를 깔끔하게 돌려세우며 팀의 승리를 지켜냅니다! 지금까지 캐스터에 김진철, 해설에 이용대 위원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해설을 끝낸 두 사람이 헤드셋을 벗었다.
“후아-! 레이먼드는 이제 확실하게 뒷문을 잠그네요.”
“그러게. 점수가 좀 일찍 났으면 신우가 14승을 올렸을 텐데, 아까워.”
“그러게요. 하필 정신우 선수가 내려가고 바로 점수가 날 게 뭡니까.”
오늘 경기에선 신우가 마운드를 지켰다.
6이닝 1실점 3피안타 2볼넷 9탈삼진.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했지만 평소 7이닝은 기본으로 던졌던 신우이기에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오늘 구속이 조금 떨어지던데. 아무래도 체력 문제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냥 그런 걸 수도 있어. 그동안 워낙 잘 던졌으니까, 이상하게 보일 뿐이지. 6이닝동안 1실점을 다른 투수가 했다면 임무완수라고 했을걸?”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이용대의 말에 김진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우에게 거는 기대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7이닝을 던져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 그럼 모레 공항에서 보자고.”
“와...그러고보니 올스타전이 벌써 다음주네요.”
어느덧 7월이 됐다.
전반기 마감을 눈앞에 둔 신우는 17번을 등판해서 13승 0패를 기록한 상태였다.
또한 그에게는 한 가지 희소식이 있었다.
“드디어 올스타전 선발투수님을 만날 수 있겠네.”
“그러고 보니 위원님도 못 만나보셨다고 하셨죠?”
“응. 한국에 있을 때는 2군에만 있었으니까, 만날 기회가 없었지.”
두 사람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자리를 떠났다.
그런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한 장의 보도자료가 출력된 종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올스타전 내셔널리그팀의 선발투수로 확정된 정신우 선수!」
그건 바로 신우의 올스타전 선발기사였다.